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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여행 - 우리의 여행을 눈부신 방향으로 이끌 별자리 같은 안내서
최갑수 지음 / 보다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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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애 작가 중 한 분인 최갑수 작가님께서 신작을 내셨다.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나도 모르는 어느 곳으로 떠나고 싶어지게 만드는 작가님께서, 친절하게도 여행 안내서를 발간해 주셨다.

'당신과 함게 가보고 싶은 그곳'이라니... '우리의 여행을 눈부신 방향으로 이끌 별자리 같은 안내서'라니....! 거기에 심지어 BTS정거장이라니!!!!!!

나는 표지에서부터 치인 덕심을 달래며,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우리 인생의 행복한 기억은 대부분 '즐겁게 놀았던' 순간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의 대부분은 여행이라는 것도 알게 됐구요. 그러나까, 우리는 더 잘 살기 위해 조금 더 놀아야 할 것이고, 더 행복하기 위해 더 여행해야 할 것입니다.-4

시간이 없습니다. 주저하고 망설이기엔 우리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이 책은 당신이 더 여행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당신이 더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이 책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는 당신의 여행에 별자리 같은 안내서가 된다면 좋겠습니다.-5

코로나 시기에 여행이라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어서일까. 더욱 와 닿는 말이였다. 시간이 없다. 주저하고 망설이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 나는 이 책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단어가 '인생', '쉼', '여행', 그리고 '함께'인 것 같다.

많은 여행지들이 페이지를 따라 흘러가는 중에 여행의 소중함, 현재의 소중함, 그리고 사랑의 소중함을 계속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책은 감정을 움직이는 사진과 글들 뿐 아니라, 좋은 여행지와 함께 맛집 소개까지 정말 여행 안내서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여행 챕터의 말미에는 여행팁과 함께 그 지역 맛집이 있어 꼭 한 번 추천해 주시는 맛집에서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여행지가 나오는 데 그 장소들에 얽힌 역사적인 사건들, 또는 개인적인 사연들, 또는 시인의 시 한구절이라든지, 누군가의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말들이 각 장소에 대한 이미지를 더 뚜렷하게 하고, 궁금증을 일으켜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닦아주고/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 앞/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정호승의 시<선암사>중에서-240

나는 작가님의 사진이 좋다. 글이 좋다. 벌써 작가님의 책을 몇 권 읽었지만, 작가님의 사진과 글은 참 내 취향이다. 보고 있으면 뭔가 마음이 따뜻해지고, 추억에 잠기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이번 책에서 참 좋았던 것은 모두 국내 여행지였다는 것이다. 내가 가 본 곳도 있고, 처음 들었던 곳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방방곡곡 예쁜 곳이 참 많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또 해외 못 나가면 어때, 우리나라에도 못 가본 곳이,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평선 너머에서 번지기 시작한 노을은 삽시간에 섬을 덮친다. 섬을 집어삼키기라도 할 듯 맹렬한 기세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황홀한 일몰이다.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아름다운 풍경이다.

지금은 혼자이지만 당신을 꼭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한다. 햇빛으로 넘쳐나는 다정한 사월의 섬, 자월도. 당신 손을 잡고 따뜻하게 데워진 해변을 맨발로 걷고 노을 속을 산책하는 일. 당신에게 이 섬을 보여주는 것으로 내 마음을 대신하고 싶다.-206

내가 작가님 글에서 참 좋아하는 부분들 중 하나인데, 작가님은 혼자 있는 곳에서 늘 함께를 그리시는 것 같다. 좋은 풍경을 보고, 맛있는 걸 먹으면. 함께 오지 못한 좋은 사람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혼자 가는 여행도 좋고, 함께 가는 여행도 좋고! 여행은 일단 좋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이번 책에서 새로웠던 부분은 작가님의 직업에 대한 생각이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로 남기는, 여행작가라는 직업이 일개 회사원인 나에게는 무척 매력적이고도 부러웠었다. 그러나 직장에 가기 싫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나보다.

팬데믹 이전,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여행작가였다. 회사원이 회사에 가기 싫어하듯, 여행작가인 나는 여행 가는 것을 싫어했다.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를 세팅하는 그 시간이 너무 지겨웠다. 그리고 팬데믹이 왔다. 내 여행은 조금 달라졌다. 팬데믹 속에서 나는 가족과 함께 느리게, 느긋하게 이 땅을 여행했다. 사람들과 떨어져 우리끼리 머물렀다. 나는 여행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가족과 여행을 하며 나는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할 것인지 희미하게나마 깨달아 가고 있다.-167

팬데믹이 끝나면 뉴욕과 세렝게티, 아이슬란드, 조지아, 남극엘 가려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안 가도 된다. 못 가도 그뿐이다. 그렇지만 가족과 함께 계획중인 숲여행은 해 보고 싶다. 이 땅의 오래된 중국집에 다 다녀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어쨌든 나의 여행은 조금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향할 것이다. 거기에 다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169

'취미'가 '직업'이 되고, '일'이 되면, 일이 취미가 되는 게 아니라, 취미가 사라진다고 그랬던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여행작가라니.... 내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을 찍으시면서 카메라 세팅하는 시간이 너무 지겨우셨다니......흐규흐규....

그럼에도 책의 말미에는 아직도 사진을 아직도 잘 찍고 싶다는 작가님의 말에 역시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음을 느꼈다.

다사다난하지 않은 한 해는 없었던 것 같다. 올해도 마찬가지.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났고 그 일들을 처리하고 해결하고 때로는 무시하느라 조금은 지쳤다. 그래서 쉬기로 했다. 1월이니까. 다시 달려야 하니까. 다시 힘을 내야 하니까.-338

온 힘을 다했던 적이 있었던가. 일에도 사랑에도 여행에도 그랬던 적이 있었던가. 내일 아침 일찍 서울로 출발해야겠다. 우리는 어쨌든 다시 시작해야 하고, 다시 시작하기엔 '내일'보다 좋은 날은 없으니까.-345

​다시 시작하기에 '내일'보다 좋은 날은 없다.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가고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도, 또 머물러 있을 수도 없다. 나를 스쳐지나가는 시간들 가운데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벌써 10월이다. 올해가 벌써 세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나의 올해도 매우 다사다난했다. 휴식이 필요한 시기.

은행나무가 노오랗게 물들고, 산천이 알록달록 물드는 시기, 나도 작가님을 따라서 10월에만 열린다는 숲으로 여행을 떠나볼까한다. 누군가의 슬픈 사연에 얽힌 로맨스를 따라서 안내서에 적힌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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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여성, 아무튼 잘 살고 있습니다 - 같이는 아니지만 가치 있게 사는
권미주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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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여성에 대하여 사회적 시각이 점점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 비혼 여성이라 하면 노처녀라고 불리기 쉽상이었고, 그들은 히스테리를 부리고 못난 이미지가 강했다면 어느 순간 그들을 지칭하는 단어가 골드 미스가 되었다. 골드 미스인 그녀들은 결혼은 '못'했지만 당당하고, 자신을 꾸미고 살았다. 이제 오늘날의 그녀들을 지칭하는 단어는 비혼 여성이다. 못난 사람이나 잘난 사람만 비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우리도 비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나는 완전한 비혼주의자는 아니다. 작가도 말하지만, 처음부터 결혼이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그냥 멋진, 내 삶을 온전히 함께 해도 좋겠다 싶은 사람을 아직 못 만난 것이다. 만나면 결혼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그런 사람이 없고, 그래서 결혼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달까? 굳이 아무나 만나서 결혼해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 때문에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것 같다. 이 여자는 같이 살지는 않지만, 어떻게 비혼 여성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잘 살고 있는 것일까하는 궁금증이 컸다.


내 나이가 어느덧 삼십을 넘고,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면서, 내가 결혼을 안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주변에 내가 비혼할 지도 모르겠다 말하기 시작할 즈음에 결심한 것이 하나 있다. 결혼은 못 한게 아니라 안 한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이 책의 저자도 그런 느낌인 것 같다. 혼자이기 때문에 내가 더 '나'를 잘 챙겨야 한다. 나를 책임질 사람이 나밖에 없기 때문에 나를 존중하고 나의 가치를 내가 더 찾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언제나 내가 가진 돈보다 훨씬 가치 있는 사람이다. 나는 결코 내가 가진 돈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의 목표는 돈을 모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돈을 잘 가치 있게 사용하며 사는가에 있음을 기억하자. -248


싱글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283



작가는 비혼 여성에 대해 말을 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인생 전체를 통과하는 내용들이 많이 보였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내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그런 것은 남녀를 떠나서 결혼하고 안 했고를 떠나서 중요한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 집에서 여유롭게 지내며, 여행도 다니고, 돈도 모으고, 그 돈을 가계부 써가며 내 인생에 통제력을 갖는... 이런 것은 누구에나 필요한 것이 아닐까.


비혼 여성으로서 그녀가 살고 있는 삶과 내가 추구하는 삶이 온전히 같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앞서 간 선배가, 내가 갈지도 모를 길을 홀로 걷고 있는 한 여성을 보며, 그녀 또한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처녀가 골드 미스가 되고 이제는 비혼 여성이 되었다. 점점 1인 가구의 비중이 높아져 간다. 전에 비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면 "멀쩡한데 왜?"라고 물었다면, 요즘은 "그래, 누구나 그럴 수 있지."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낀다.

점차 비혼을 꿈꾸는 이들이 느는 것 같다. 그러나 뭐 이건 거창한 것이 아닌 나를 더 온전히 찾아가는 또 다른 길이라는 생각이 점점 더 들어났으면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인생 선배가 "나 이렇게 잘 살고 있어. 너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내가 결혼 할 지 안 할지 내 미래를 나조차 알 수 없지만, 이런 책들이, 이런 여성들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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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잘못이 없다 - 어느 술고래 작가의 술(酒)기로운 금주 생활
마치다 고 지음, 이은정 옮김 / 팩토리나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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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뭔가 신박한 느낌이었다. 술은 죄가 없다니. 이건 술을 권하는 건가 술마시는 사람을 욕하는 건가 알 수 없는 제목이다. 일본 작가가 쓴 책이라는데 읽어 보니 과연 소설가의 느낌이 오는 글이었다.

내용은 애주가였던 작가가 어느 날 갑자기 금주를 결심하고, 금주를 해오면서, 금주의 이유를 고심하고, 결론은 금주의 이득을 말하는 그런 책이다.

30여 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시며 살아 왔다. 그 때문에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인생에 대체로 만족하며 이대로 계속 마시고 뭐, 이제 한 20년 정도 있으면 죽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16

그러면 이쯤에서 다시 묻는다. 왜 나는 술을 끊으려고 생각했을까. 이제부터 그 이유를 찾아보려고 한다. -21

 

과연 소설가의 글이라고 느껴졌던 대목이 몇몇 있는데, 금주의 이유를 찾는 부분 중에서 내 생각에 대해 쓴 부분이다. 생각이 금주를 결심해서하고 했는데, 그 생각을 교각에서 떨어트려 죽여버렸기 때문에 왜 금주를 했는지 알 수가 없어져서 작가는 금주의 이유를 이리저리 생각하게 된다.

건강이상이라는 이유도, 미쳤서 그렇다는 이유도, 인생의 부채를 만든다는 이유도, 금주모임으로도, 금주약으로도, 금주 선언으로도, 인간 개조로도, 인식 개조로도, 바보라는 이유로도. 작가는 갑자기 금주를 선언하고 술을 마시고 픈 계속 되는 욕망을 참는 이유를 계속해서 찾는다. 결론은 그 모든 것이 이유인듯 하다. 마치 이렇게 까지 말했는데도 계속 마실 녀석들은 마시겠지... 이런 느낌이랄까. 혹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계속 마실거냐? 이런 느낌?

 

                     

내가 술을 끊었다고 분명하게 말한 것은 금주 1주년이 지나고 나서다. 한 가지 말해 두고 싶다. 그렇게 했다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진 건 아니다. 이 점을 덧붙여 둔다.-238

그래, 뚱뚱한 것보다는 마른 편을 선호하는 세상이니 "좀 살이 빠진 것 같은데?"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 좋다. 살이 빠진 원인? 딱히 특별한 걸 한 기억이 없으니까 아마도, 틀림없이, 금주, 단주의 효능일 것이다.-250

술을 끊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으로 1. 다이어트 2. 수면의 질 향상 3. 경제적 이익이 있다. 그리고 추가로 4. 뇌가 좋아지는 느낌을 더한다. 이로써 업무가 순조롭게 잘 풀리는 효과까지 얻을 수있다. 아, 한 마디 더 말해 둘 것이 있다. 이 효과는 범재가 천재로 탕바꿈한다는 뜻이 아니라, 원래 그 사람리 가지고 있던 뇌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273

많은 이유를 말하고 작가는 금주의 좋은 점들을 말한다. 인생의 진정한 기쁨을 알게되고, 수면의 질이 올라가고, 경제적으로 이익이 생기며, 다이어트가 저절로 되고, 자신감을 갖게되며, 뇌까지 좋아진다. 물론 그게 멍청했던 게 똑똑해진다는 뜻은 아니며, 단지 본래 뇌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기본적으로 소설가의 글이라서 그런지 아주 잘 읽히고 재밌었다. 글에서 가끔은 정치로, 역사로, 인물같은 샛길로 빠지긴 했지만, 금새 돌아와서 금주해야 하는 이유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가고 술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의 제목이 술은 죄가 없다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아니 나도 어느 날부터 작가처럼 금주를 하게 되었다. 누가 권하지도, 시키지도 않았지만, 나도 작가처럼 금주를 하게 되었다. 아마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냥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봤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나도 내 금주의 이유를 궁금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나서 평해보자면, 이 책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봐도 재밌다. 일단 문체가 재밌고, 작가의 생각이 재밌다. 그리고 금주가가 자신의 금주의 이유를 돌아보는 데 좋다. 술을 마셨다 금주하게 된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으리라. 그리고 술을 마신다면, 이 책을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애주가가 이 책을 읽는다고 금주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인생과 술에 대해서, 그리고 애주가가 왜 술을 끊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탐구해 볼 수 있으리라. 또 이것이 한 잔의 안주가 되면 그것도 멋있는 일이지 않겠는가(이렇게 꼬셔서 이 책을 읽고 금주하게 되면 초고 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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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넘은 여자는 무슨 재미로 살까?
김영미 지음 / 치읓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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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단순히 제목에 대한 흥미였다. 나는 마흔이 아니지만, 언젠가 마흔이 될 여자였고, 나는 잘 놀고 싶은 여자였음으로. 인생선배의 조언을 듣는 기분으로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갔다.

언제나 희생한 만큼 보상이 따라오지는 않았기에 나는 만족하지 못했고 불행했다. -34

아무도 나에게 희생을 강요하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어릴적 희생하는 엄마를 보며 자랐다. 어른이 되고 보니 다들 그렇게 살고 있었도. 사회 분위기에 떠밀려 내 꿈은 사라졌다. 그게 옳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35~6

여자, 남자, 그리고 아줌마 중에 나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었다. 그냥 아줌마였다. 지금까지 남편에게 사랑받는 여자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그날 그렇게 "빵"하고 가슴에 총을 맞고, 커다란 구멍이 생긴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남편에게 나는 여자가 아니었다. -52

 

책의 내용엔 마흔 넘은 한 여자의, 여자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의 인생이야기가 가득했다. 현실 주부로서 남편을 직장에 보내고, 아이들을 등교 시키고, 카페에서 다른 학부모들과 수다떠는 이야기부터,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리고 아이들의 엄마로서 희생해야했고, 기꺼이 희생했던 이야기들. 그리고 꿈을 찾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내용까지 가득했다.

초반 내용은 익숙한 내용이 많았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위해, 남편을 위해 살고, 뒷바라지 하는 아내이자 엄마의 모습. 작가는 남편의 바람으로 일부 각성하게 되는데, 이혼을 기대했으나 이렇게 공개적으로 책으로 박제할 정도면 잘 해결됐구나 생각하기로 했다. 연애건, 결혼이건, 이혼이건 본인들의 사정이 있고, 본인들의 상황이 있고, 본인들의 결론이 있을 것이니 말이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또 딸들을 통해서 작가는 점점 자신의 꿈을 찾게 되고, 소소한 활동들을 통해서 거창한 것만이 꿈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작은 노력들이 꿈을 향해가는 것임을 느끼게 되었다. 글쓰는 것이 좋고 작가가 꿈이라는 이 마흔 넘은 아줌마는 결국 책을 냈고, 또 하나의 꿈을 이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의 인생은 무언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오 채워진다니 멋진 말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먼저 작가분이 책을 정말 많이 읽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 중간중간에 많은 인용들은 작가의 지식의 풍부함 뿐 느끼게 했고. 명언은 명언이다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내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다만 나의 책임일 뿐이다."

-호오포노포노의 비밀

가장 인상깊었던 인용이다. 알베르 카뮈부터 시작해서 책 인용도 있고, 명언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런 작은 작은 인용들이 참 좋았다.

성공 확률은 50%, 실패 확률도 50%, 그러나 경험 확률은 100%-240

작가는 책의 후반부에서 꿈을 찾는 것과 꿈꾸는 삶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한다. 결국 잘 놀려면 잘 꿈꾸는 게 필요한 걸까. 뭔가 노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걸로 끝나서 좀 아쉽기도 했다. 내가 생각한 노는 것은 좀 일탈적인 것이었는데, 작가의 노는 것은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가는 것이었달까. 별 내용 없이 잘 노는 걸 기대했는데 뜻밖에(?) 너무 유익했달까.

솔직히 내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는 삶은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나도 언젠가 마흔이 넘은 여자가 될 것이다. 그때 나는 꿈이 여전히 있고, 즐거운 삶을 살고 있을 것인가를 상상해 볼 때, 가능할까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어떻게 나이를 먹어갈 것인가 하는 것에 많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기왕이면 모험적이고, 꿈꾸며 살고, 즐기며 살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늙어가길 그저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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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해서 그렇습니다 - 소극적 평화주의자의 인생다반사
유선경 지음 / 동아일보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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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해서 그렇습니다

 

 파아란 파스텔 톤의 표지에 '소심해서 그렇습니다'라고 써 있고 그 아래로 하얀 글씨로 '소극적 평화주의자의 인생다반사'라고 부제가 써 있다. 나도 누구보다 소심하다고 자부하는 일인으로서 이 책 제목과 부제가 참 맘에 든다. 소심해서 그렇다는 말은 뭔가 핑계같기도 하고, 자랑할 일도 아닌데 어쩌라는 건지 하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저 작가는 소심한 '우리'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책의 또 다른 부제는 '보통의 느낌'이다. 소심한 사람의 보통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며 책을 폈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별일 없는 날, 2부 이래야 할까, 저래야 할까, 3부 나와 참 많이 다른 사람들, 4부 소심해서 그렇습니다, 5부 가족이라는 말, 6부 아무렴, 해놓은 것이 아무 것도 없을까. 각 장들은 정말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고, 작가는 그 일들에 대한 본인의 느낌을 더해 놓았다.

 

그리고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잃어버린 뒤에야, 잊어버린 뒤에야
비로소 그것들의 모습을 뚜렷이 봅니다.


지금까지 모르던 내가 보입니다.
사라지고 나서야 마음의 눈 속에
깊이 새겨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54

 

돌이켜 보면, 그처럼 분명히 내 손 안에 있었는데
아이스크림 녹듯 사라져버린 것이 적지 않습니다.
시간이 그렇고, 기회가 그랬습니다.
그 두 가지가 아이스크림 녹듯이 녹아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56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너무나 많은 때 이미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가치를 깨닫게 된다. 많은 사람이 한 말이고, 나도 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인어공주 물거품처럼 현재의 내 시간 속에서 사라진 친구들은 또 새로웠다. 아 그래, 시간이 가고 기회를 놓쳐버리기도 하지만 고마웠던 사람들, 내 친구들이 사라져 버리기도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이 책에 그림이랄 건 몇 없지만, 책 밑단에 그려진 물거품 몇 방울이 얼마나 아스라이 느껴지던지. 그리운 얼굴들이 그 안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소심해서 더 상처 받고, 우유부단해서 더 손해 봅니다.
타인에게 상처 주고 손해 주느니 그게 더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178

 

변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소심한 이들의 18번이 아닌가 싶다. 나도 자주 중얼거리는 말 중 하나이다. 타인에게 상처 주고 손해 주고 내 마음 고생 하는 것보단 차라리 편하다고 말이다.

 

행운이 불운의 시작인 것처럼
불운이 행운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 수 있는 비결은
단점이나 불행, 불운 등을 지렛대로 삼을 수 있는 힘에서 옵니다.
나빴던 것들이 나의 존재를,
나의 생을 들어 올리는 지렛대가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말입니다. -287

 

길이란 아마도 그렇게 가는 거겠지요.
오늘 조금만 더
지금 조금만 더
징검다리를 놓아가며 내를 건너 산을 넘어
끝까지 가는 거겠지요. -293


이 책에서 제일 좋았던 구절 중 하나는 '길'에 대한것이었다.오늘 조금 더, 지금 조금만 더... 이 구절이 좋았던 이유는 내가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말이다. 가는 길은 징검다리라 물에 가끔 빠지기도 하고, 균형을 못 잡아 비틀거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가는 것. 지금 현재의 내가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오직, 한 걸음만 앞으로 나아갈 뿐,
한 걸음 너머에 있는 걸음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오직, 한 걸음만 바라볼 뿐, 멀리 보지는 못합니다.
떨어질까봐 아래를 내려다 보지도 못합니다.
가만히 웅크리고 멈춰 서 있으려고 하면
오히려 균형을 잃고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멈추지 않고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좌로 우로 비틀비틀거리는 것은 균형을 잡기 위해서 입니다.
그 위태로운 한 걸음, 한 걸음이 나를 만들어갑니다.
그렇게 나는 나를 향해 나아갑니다.
끝이 있을지 없을지도 아직은 알 수 없는 허공의 줄을 타고서
비틀거리고 흔들거리면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314


나는 밤에 징검다리를 건너가는 사람같다. 작가는 외줄타기에 비유를 했지만, 나는 징검다리가 더 와닿았다. 밤에 징검다리를 건너니 다음 발은 저기에 닿으면 된다고 어림짐작하고 발을 떼게 된다. 온 힘을 다해 발을 내밀어 보면, 다음 돌에 닿을 때도 물어 떻어질 뻔 하기도 물에 떨어지기도 한다. 너무 힘들어 뒤 돌아가고 싶지만, 뒤도 어둠. 내가 가는 방향이 옳은지도 이제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눈 앞에 보이는 돌에 발을 내딛어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매일이 아닌가 싶다.

 

 

책의 뒷표지이다. 알고보면 모두들 소심하다. 주위에선 대범하다 생각하지만, 스스로는 소심하다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 대화를 하다보면 느끼게 된다. 상대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 말은 쉬워보여도 실행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실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인 사회에서 소극적 평화주의자들이 더 많아지기를. 작은 마음들이 모여 웃는 마음들을 만들어 낼 수 있길. 책을 덮으며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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