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밥상 - 먹지 않을 수 없다면 정확히 알고 먹자
박지현.서득현.배관지 지음, 배나영 구성 / 이지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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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밥상

 

 산업화와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음식은 개인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개인이 직접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고, 요리를 하는, 그러니까 자연에서 시작해 음식으로 만들어지고 입으로 들어가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시기에서 모든 과정은 가려진 채 음식이 되고 그것이 나의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만을 볼 수 있는 시기로 넘어왔다.

 사람들은 불안할 수 밖에 없다. 대량 생산되고 대량 소비되는 식품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자기 앞까지 왔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잊을만하다 싶으면 터지는 음식 관련 사고 때문에 그 불안감은 증폭된다. 자연스럽게 관심은 불안감을 없애주는 식품으로 향한다. 비싸더라도 화학적 과정이 더해져 만들어진 식품이 아닌 흔히 유기농, 천연 식품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찾는다. 식품회사들은 이에 발맞춰 너도 나도 유기농, 천연 식품을 내놓고 또 이러한 전략은 그렇지 않은 식품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감을 높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유기농 제품을 찾게 만든다.

 

우리가 좋다고 알고 있었던 것들, 안 좋다고 알고 있었던 것들

 

 한 번 생각해보자. 유기농 설탕은 보통 설탕보다 좋을까? 천연, 자연재료는 더 좋을까? 반대로 식품첨가물과 MSG는 무조건 안 좋을까? 나 역시 유기농, 천연이라는 말이 붙으면 보통 식품보다 왠지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왠지 식품첨가물과 MSG가 들어있는 음식들은 몸에 안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왠지라고 했다. 그게 왜 좋은지, 왜 나쁜지 생각해보지 않은 채 출처조차 불분명한 얘기로 그렇게 지레짐작한 것이다.

 하지만 절대 아니다. 유기농 설탕과 정제 설탕의 영양 성분은 큰 차이가 없고, 유기농이라고 이름 붙은 식품이 완전한 유기농이 아닐 수 있고 천연식품은 오히려 정제되지 않은 독성 때문에 인체에 해를 입힐 수 있다. 식품첨가물이 없다면 지금 싼 가격으로 먹고 있는 음식들을 훨씬 더 비싼 돈을 주고 먹어야 하고 산다 하더라도 얼마 못 가 상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MSG의 성분은 육류, 채소, 닭고기 같은 단백질 식품에 자연적으로 들어있는 아미노산의 한 종류다. 우리가 매일 먹고 있는 음식에 들어있는 것이다. MSG가 인체에 해가 되는 것이 아님은 이미 수많은 실험에서 검증됐다. 미국 국립연구원은 미국의 나트륨 섭취를 줄이기 위한 전략중 하나로 소금을 대체해 MSG의 사용을 권장할 정도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음식은 약이 아니다. 특정 음식을 몇 번 먹는다고 해서 건강이 갑자기 좋아지지 않고 그 음식을 안 먹는다고 해서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지 않는다. 또한 좋은 식품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의 영양소는 다른 식품에서도 얼마든지 섭취할 수 있다.

 좋은 성분으로만 가득한 식품이라도 많이 먹으면 살이 찌고 건강에 안 좋다. 결국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식품을 먹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먹느냐이다. 365일 좋은 음식만 먹는 부자들 중에도 비만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책임을 음식의 탓으로 돌린다.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은 하나다. 골고루 적당히 먹고 꾸준히 운동할 것, 이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단지 귀찮아서 편법을 찾을 뿐이다.

햄버거에 대한 옹호

 

 대전선병원 국제의료원 원장 윤방부 교수는 유해식품이라는 누명을 쓴 햄버거를 변호한다. 그에 따르면 햄버거는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좋은 음식이며 제대로만 먹으면 건강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모두가 알다시피 햄버거는 빵, 고기, 채소로 이루어진다. 탄수화물, 단백질, 비타민을 한 번에 섭취할 수 있는 식품이다. 게다가 1일 기준치 콜레스테롤을 넘으려면 햄버거 10개를 먹어야 한다. 빅맥 1개에 들어있는 콜레스테롤은 삼계탕, 짜장면, 순두부 백반에 들어있는 콜레스테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적다.

 우리 모두 햄버거를 먹자. 요즘 군대를 소재로 한 방송 덕에 군대리아가 사람들의 입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고 군대리아와 비슷한 햄버거가 출시되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다. 군대에서는 아침마다 우유가 한 개씩 나온다. 진정한 군대리아가 완성되려면 반드시 우유와 함께 먹어야 한다. 모든 군인들은 군대리아를 우유와 같이 먹는다. 그리고 그때 햄버거에는 없는 칼슘이 더해져 군대리아는 진정한 완전식품이 완성된다. ‘군대리아는 완전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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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은 맛있다
강지영 지음 / 네오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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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만큼이나 다양한 해석과 이론들이 난무하는 학문 분야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꾸는 당사자에게만 보이는, 신비의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꿈에 관한 수많은 이론 중 욕망의 발현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꿈을 통해서라면 다시 가고 싶은 과거의 삶, 간절히 기대하는 미래의 삶, 심지어 질투 혹은 부러움의 대상인 타인의 삶으로도 갈 수 있다. 영화 <금발의 초원>의 주인공 닛포리가 60년을 초월해 자신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인 대학교 때로 시간여행을 하듯, <하품의 맛있다>의 주인공 박이경은 자신과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단아름다운의 삶을 여행을 하게 된다.

 

너무나도 다른 둘, 박이경과 단아름다운

 

 박이경과 단아름다운, 둘은 지극히 평범한 이름과 특별한 이름의 차이만큼이나 정반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박이경은 특수청소용역 회사에서 일한다. 사망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청소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곳은 누군가의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안타까움, 무서움, 불길함을 한 순간에 없애버리고도 남을 지독한 악취가 풍기고 쓰레기들이 널브러져있다. 다른 일을 안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커피숍이나 편의점처럼 깔끔하고 편한 일이 싫을 리 없다. 하지만 작은 키와 못생긴 얼굴은 항상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빨리 그리고 많이 돈을 벌어야 한다. 학자금대출은 이미 삼천 만원을 넘어섰다.

 남들처럼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다른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도움은커녕 보험료 체납으로 수급 대상자에서 누락된 아빠의 병원비와 가족의 생활비까지 충당해야 했다. 아빠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신세를 지고 있고 엄마는 간병인 교육을 수료해 아빠 병실의 다른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꼬일 대로 꼬인 인생이다. 인정사정없이 얽힌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단아름다운은 모든 것을 갖고 있다.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번 부모님이 계시고, 명문대의 음악과를 다니고, 돌아다닐 때면 주변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만한 예쁜 얼굴과 몸매를 갖고 있다. 누구라도 부러워할만한 인생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만들어준 녹즙을 마시고, 엄마와 함께 손톱관리와 마사지를 받는다. 점심에는 친구를 만나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떤다. 저녁에는 만나달라고 하는 많은 남자 중 한 명을 골라 데이트를 한다. 걱정 없어 보이는 그의 일상이다.

 

치즈케이크의 맛

 

 전혀 다른 둘의 인생은 꿈을 통해서 뒤바뀐다. 마치 왕자와 거지가 뒤바뀐 것처럼 박이경은 단아름다운의 삶을 단아름다운은 박이경을 삶을 살게 된다. 언뜻 보기엔 단아름다운에게는 찝찝하고 끔찍한 꿈일 테고 박이경에게는 황홀하고 행복한 꿈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온실의 화초처럼 아무런 상처 없이 예쁘게만 보이는 단아름다운의 인생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뿌리는 잘려나갔고 썩기 일보직전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겉모습은 상처투성이인 내면을 가리기 위한 포장일 뿐이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 엄마의 강요로 살인을 저질렀다. 박이경이 청소했던 집에 살던 여자를 죽인 것도 단아름다운이었다.

 박이경에게 단아름다운은 환상과 동경의 대상, 치크케이크 같은 존재다.

 

 나는 십수 년 동안 치즈케이크에 대한 환상을 품어왔다. 물론 그 사이 나는 몇 번이나 치즈케이크를 먹을 기회가 있었다. 매달 적으나마 용돈이 생겼고, 프랜차이즈 제과 점에 가면 단 돈 몇 천 원에 살 수 있는 것이 치즈케이크였다. 하지만 나는 제과점에 갈 때마다 케이크 진열대를 외면하고 슈크림이나 페이스트리를 계산대로 가져갔다. 맛이 있는 케이크의 한 종류일 거라는 애초의 상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없으면 안 되는 궁극의 요리로 진화해갔고, 종래에는 만에 하나 맛이 없을까 봐 맛볼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갔다. 스무 살 생일 날, 엄마의 손에 그것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p.205-206)

 

 동경을 넘어 궁극의 대상이 된 치즈케이크, 그가 처음 맛본 치즈케이크의 맛은 어땠을까. 생각했던 그대로의 맛이었을까. 아니면 기대를 산산조각 내버릴 만큼 실망을 안겨주는 맛이었을까. 스무 살의 생일 때의 치즈케이크처럼 그의 손에 단아름다운의 인생이 주어졌다. 환상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그는 꿈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행복을 느끼고 있을까 아니면 환상이 깨진 것을 안타까워하며 실망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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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화양연화 - 책, 영화, 음악, 그림 속 그녀들의 메신저
송정림 지음, 권아라 그림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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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양조위와 장만옥이 출연한 영화의 제목으로 많이 알려진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의미한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까. 거창한 표현 때문인지 나의 추억은 화양연화에 끼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영화가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열정적인 사랑과 생명을 담보로 하는 모험 정도는 해야 감히 화양연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내 주눅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보면 주눅들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말로 영화 속 한 장면인 <화양연화>에 나오는 양조위와 장만옥의 사랑은 따지고 보자면 불륜이고 열정적인 사랑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서로 너무나 좋아하지만, 정말로 현실의 모습인 것처럼 불륜이라는 현실에 가로막혀 어쩔 줄 몰라 하는 두 사람이다. 그래서 그렇게 국수만 먹어댄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의 저자 송정림 씨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어느 시간으로 가 본다면 꼭 한 번 가고 싶어지는 시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그리 거창한 사건이 있었던 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평범한 일상의 시간입니다.’(p.222)라고 말한다. 양손에 하나씩 부모님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놀이공원을 갔던 날, 처음으로 애인과 손을 잡은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던 순간, 훈련소에서 고된 훈련을 마치고 동기들과 함께 초코파이를 먹었던 찰나, 누구나 나도 그랬었지하고 공감할 만큼 한 번쯤은 경험했던 순간일 것이다. 이것들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인생의 화양연화는 그리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지금도 무심코 스쳐가고 있는 수많은 평범한 일상에 사람의 향기, 즉 사랑이 더해지면 모든 순간이 화양연화가 된다. 놀이공원에서 느꼈던 부모님의 따뜻한 온기, 사랑하는 이의 손에서 전해오는 설렘, 초코파이 속의 마쉬멜로우 보다 훨씬 끈끈한 전우애, 이 모든 것들이 사랑으로 완성된다. 우리의 몸이 각각의 원소로 환원되는 것을 막는 것은 사랑이라고 노래한 전혜린 작가의 시처럼, 어쩌면 사랑은 뒤돌아서면 잊혀질 뻔한 순간의 사소한 기억들을 잊혀지지 않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만들어 주는 것일지 모른다.

 

사랑, 사랑이란 무엇일까?

한 개의 육체와 영혼이 분열할 때

탄소, 수소, 질소, 산소, , 기타 각 원소로 환원하려고 할 때

그것을 막는 것이 사랑이다.

-전경린

 

 결국 송정림 작가가 이 책을 통해 가장 하고 싶었던 한 마디는 사랑하자가 아니었을까. 혹하자, 빠지자, 사랑하자. 설령 영화 <화양연화>에서 장만옥과 함께한 과거의 추억이 묻은 장소를 다시 찾아왔을 때의 양조위처럼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하게 될지라도, ‘최선을 다해 좋은 기억을 만들기를…. 그 기억은 최선을 다해 잊지 말기를….’(p.174)

 

Ps. 영화 <화양연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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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원정대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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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발정이 나서 밤에 울어대는 것 때문에 거세를 당하고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성대 수술을 당한 강아지의 처지와 오토바이를 타고 싶고 스포츠를 하고 싶은 욕구와 욕망을 억압당한 자신의 처지에서 동질감을 느끼는 나의 모습을 그린 <안녕 할리>, 소녀시대에게 선물을 주겠다는 목표 하나로 조공 원정대를 결성해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상경한 청년 세 명의 모습에 지역과 세대를 불문하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현실을 그린 <조공 원정대>, 속도 경쟁에 치어 생명을 담보로 피자를 나르는 배달원과 미국의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아 한국까지 오게 된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담은 <어느 추운 날의 스쿠터>, 우스운 표현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쉽게 웃을 수 없다. 그것이 곧 현실이기 때문에, 웃음을 머금게 하는 표현이 역설적으로 슬픔을 자아내게 한다.

 

끝이 없는 마라톤을 하고 있는 우리들

 

 <안녕 할리>의 내가 꿈꾸는 S Sex Sports. 하지만 부모님이 꿈꾸는 S S대와 S전자다. S대와 S전자를 가는데 Sex Sports는 쓸모 없는 존재, 방해하는 존재다. 나는 그것을 절제하고 S대와 S전자라는 목표를 향해서만 묵묵히 달려가는 마라토너가 되어야만 한다.

 

 나는 조화로운 인격체로 자라나기보다는 자전거나 신나게 타고 싶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게 너무 좋아서 학원에 갈 때도 아이들과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를 놓고 내기를 할 정도였다. 나는 엄마에게 크면 자전거 선수나 오토바이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이제 그만 놀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두 바퀴 달린 것을 타고 달리는 직업은 아파트 엄마들이 합의한 자식 성공 기준에 따르면 많이 뒤처지는 것들이었다. (…)

 엄마들에게 우리는 같은 목표를 향해 부지런히 달리는 일종의 마라토너들이었고, 엄마들은 오직 그 결승선만을 바라보고 달릴 수 있도록 선수를 조련시키고 전략을 짜는 감독들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파트 엄마들끼리 합의한 그 기본 방향을 위해 부지런히 달리려면 선수들에 대한 통제가 필수적이었다. 때문에 우리가 수업 시간에 배우는 헌법에 보장된 행복 추구권이랄지, 어딘가에서 주워들어서 알고 있는 개인의 사생활 보장이랄지 하는 것들은 우리 앞에 놓인 S라인을 따라잡기 위해서 모조리 희생되어야 하는 인권들이었다. P12-13

 

 모두 마라토너가 되어야 한다. 부모님과 사회가 정해준 목표를 향해서 뛰는 마라토너 말이다. 그들에게 딴짓, 그러니까 앞만 보고 달리는 것 외에 다른 일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주변의 경치를 둘러 보는 것, 함께 뛰는 마라토너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오로지 S대와 S전자를 위해 용맹정진(勇猛精進)해야 할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마라톤은 끝날 줄을 모른다. 고등학교 때는 S대가 결승점인줄 알았다. 그곳만 도착하면 그 동안 못했던 모든 것들을 맘껏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S대라는 결승점을 들어가 잠시 숨을 돌리려고 하자 다시 새로운 결승점이 주어진다. S전자다. 다시 또 달려야 했다. 학원은 고등학생들만 다니는 곳이 아니었다. 취업, 영어, 심지어 상식을 배우기 위해 대학생들은 학원을 다녀야 했다.

 그렇게 해서 S전자를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새로운 결승점 주어지고 다시 운동화 끈을 묶어야 한다. 새로운 목표의 이름은 승진이다. 남들보다 뒤처지기 않기 위해 밤 11시가 넘어서도 회사에 있어야 하고 주말도 회사에 반납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승진을 했다 치자. 과연 마라톤에 끝이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다시 또 다른 결승점이 주어질 테고, 그게 아니라면 이제는 자신이 누군가의 결승점을 정해주게 된다. 그 대상은 그의 아들, 딸들이다. 그들에게, 자신도 하기 싫었던 마라톤을 강요한다.

 마라톤은 끝날 수 있을까. 그리고 결승점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달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들에 핀 꽃을 바라보고 싶고, 함께 뛰는 친구와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고 싶다. 하지만 이내 다시 신발끈을 질끈 묶고 달리기에 나서며 최면을 건다. ‘이것만 끝나면 정말 끝이겠지… ’

 

모든 것은 연결돼있다

 

나 같은 3류 시민이 존중 받아야 당신 같은 2, 1류 시민도 보호받을 수 있다.

- 영화 <래리 플린트>

 

카라치(Karachi)나 바그다드의 어린이들이 잠자리에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미국의 어린이들도 그럴 것이다. 세계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박탈감과 굴욕감에 젖어 있다면 유럽인들이 아무리 자유를 자랑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 벤저민 바버(Benjamin R. Barber)

 

 시골에 사는 <조공 원정대>의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갈 곳이 없다. 땅이 없는 사람들은 공단에 취직을 했다. 하지만 그나마 있는 공단은 이제 경제 악화를 이유로 사람을 뽑지 않는다. 뉴스를 보니 미국에서 벌어진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사태로 인해 세계적으로 경기가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좌절한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친구들과 씁쓸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는 일 뿐이다.

 서울에서 만난 동수형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잘해 서울로 대학을 간 동수형이 어릴 때는 참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후줄근한 추리닝에 덥수룩한 수염이 얼굴을 뒤덮은 동수 형의 지금 모습은 나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술이 한 잔 들어가자 동수형은 하소연을 했다. 시골 출신은 어쩔 수 없다, 서울에서 밥 먹고 잠자고 생활하는 것도 벅차다, 어학연수다 뭐다 공부한 애들을 자신이 무슨 수로 이기겠냐, 하는 넋두리다. 신기했다. ‘미국 때문에 대학을 나온 동수 형이나 나나 둘 다 막막해졌다는 것이다. 그토록 우러러보던 동수 형이 친구처럼 느껴졌다.’(p55)

 

 <어느 추운 날의 스쿠터>의 나는 피자집에서 배달을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할만했다. 미국에서 건너온 세계 굴지의 피자 지점이 내가 일하는 피자가게 옆에 생기기 전까지는. 그 피자지점은 배달 경쟁을 유발했다. 배달이 10분 이상 걸릴 시 돈을 안받겠다는 파격적인 선언을 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고, 딱 내 꼴이었다. 내가 일하는 피자가게도 10분 안에 배달을 선언했다. 피자가 굽는 시간은 빨라 질 수 없다. 배달원이 목숨을 걸고 총알  처럼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과 시비가 붙어 끌려간 경찰서에서 오토바이를 훔친 혐의로 잡혀온 미국인 조지와 빌을 만났다. 미국 때문에, 정확히는 미국인 강사 때문에 여자친구를 잃고, 정확히는 미국 피자 회사 때문에 피자 배달까지 힘들어져 미국에 대해 잔뜩 심기가 불편한 마당에 미국인들을 만난 것이다. 가운데 손가락을 날려줬다. 얘기를 하다 보니 그들의 처지도 참 딱했다. 일하던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아 해고를 당하고 동네에서 피자배달부를 하다가 영어 강사를 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했다. 묘하게 동질감이 느껴졌다.

 취조가 끝났다. 배달 시간은 이미 30분을 넘겼다. 뒤를 돌아보니 조지와 빌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스쿠터 시동을 끄고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피자를 들고 그들에게 향했다.

     

 우리는 좋던 싫던 세계화가 이루어진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미국에서 일어난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한국의 시골 마을의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피자 배달원은 한국에 진출한 미국 피자회사 때문에 배달 속도 경쟁의 피해자가 되고, 미국에서 해고 당한 미국인은 돈을 벌기 위해 멀리 한국까지 오게 된다. 그리고 그 미국인들은 한국에 와서 범죄를 저지른다. 반대로 <조공 원정대>의 친구들이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이미 주변에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을 찾은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보고 있지 않은가.

 벤저민 바버의 말을 살짝 바꾸자면, 한국과 필리핀의 노동자가 안정적으로 일하지 못하면 미국과 유럽의 노동자들도 그럴 것이다. 지금 주변을 한 번 살펴보자. 나와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노동자를, 불안에 떠는 바그다드의 어린이들, 나는 괜찮은 회사를 다니고 편하게 잠을 자고 있으니까 괜찮을까. 래리 플린트의 말을 되새겨보자. 3류 시민이 존중 받지 봇하면 3류 시민이 아닌 나 역시 보호 받지 못한다. 그리고 나 또한 언젠가는 3류 시민이 될지도 모른다. 항상, 3류 시민이 될지 모른다는, 언제 테러의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언제 회사에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어떤 문제도 개인적 차원에서, 일국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연결돼있다.

 

우리 위에 달려 있는 줄은 무엇일까

 

 미국의 사회학자 피터 버거( Peter L. Berger) <사회학에의 초대>에 이런 말을 남겼다. 사회학이 우리가 사회의 꼭두각시임을 보여주지만 그냥 꼭두각시와 달리 우리가 매달린 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발견이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다. 배상민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우리가 매달린 줄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살이에 지친 하류들은 누렇게 뜬 얼굴로 오로지 자신의 길만 걸어가고 있었다. 내 눈에는 우리가 무엇엔가 내몰리는 좀비처럼 보였는데, 뒤에 무엇이 있는 아무도 돌아보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들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 뒤에 무엇이 있는지 조금이라도 그려보고 싶었다.

– ‘작가의 말

 

 우리에게 끝이 없는 마라톤을 강요하고 결승점을 정하는 것은 누구인지, 10분 안에 피자배달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건 질주를 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일자리가 없어 미국에서 한국으로 시골에서 서울로 향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지 의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 위에 달린 줄은 무엇이고, 뒤에서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내모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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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 - 위기의 순간을 사는 철학자들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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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는 이택광 교수가 지그문트 바우만(Zigmunt Bauman),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 8명의 세계 유명 석학들과 나눈 대화를 묶은 책이다. 자본주의에 대해, SNS를 통한 새로운 운동 등 최근에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회현상에 대해 각각의 의견을 제시한다.  8명의 학자들의 주옥 같은 얘기들은 읽는 이에게 많은 질문과 생각을 던져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반드시 이렇다라고 단언하거나 확신하지 않는다. 각자 나름의 논리적인 시선을 통해 현상을 바라보고 이해할 뿐이다

 미래의 모습을 예측하는 것은 차치하고, 현재와 과거의 모습을 이해하려는 어떠한 이론도 완벽할 수 없다. 사회가 급변하고 복잡다단해질수록 특정 현상이 일어나게 만든 원인들은 급속도로 증가하고 그 모든 원인들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두 손을 놓은 채 아무런 노력 없이 실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종국에는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고민해보고 노력해보는 것이다. , ‘더 낫게 실패하는 것이다. 어떤 이해와 예측도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100%의 정확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더 낫게 실패하기위해 끊임 없이 70%의 해석력을 가진 이론, 80%의 통찰력을 가진 이해을 만들어내고 공부하는 것이다. 그렇게 더 낫게 실패한이론과 행동들이 모이고 모이다 보면 언젠가는 보다 나은 사회가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어렵고 멀어보지만 가장 쉽고 빠른 길이라는 것을 믿는다.      

 

책에 실린 내용 중 일부를 옮겨봤다

 

 인터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한 철학자들의 대답은 한 마디로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쓴 『최악을 향하여』에 나오는 구절이다. 말하자면 철학은 실패에 대한 사유다. 따라서 철학은 또다시 실패할지언정 다시 시도하기를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 철학자들이 경제학자들과 다른 점을 여기서 짚어낼 수 있다. 자본주의가 실패하는 그 위기의 순간에 철학은 새로운 체제를 사유한다. 위기의 순간을 사는 것이야말로 철학자의 본질이자 사명이라는 것이 이 책에 실린 철학자들 사이에 합의되어 있는 명제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에서 비로소 사유의 혁명은 시작된다. (프롤로그, 11)

 

 나는 쉬운 해결책을 찾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해결책보다 사유를 해야 한다. 유명한 마르크스의 구절이 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왔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말인데, 20세기에 우리는 이 말에 따라 너무 많이 세계를 변화시켰다.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변화를 추구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변화보다도 해석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 (지젝, 83)

 

 사유를 시작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자동적으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종교만 해도 복잡하다. 내가 믿는 신이 다른 사람에게는 신일 수 없다. 서로 교환되지 않는다. 이런 걸 고민해야 한다. 호기심에 그치지 말고 전 생애에 대한 고민을 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을 시작해야 한다. (지젝, 87)

 

 오해는 최초의 이해보다도 더욱 지적인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인 것이다. 원조 철학자보다 더 훌륭한 지적인 성취가 오해에서 오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모두 외국인이 되어야 한다. (지젝, 88)

 

 아랍의 혁명들은 내가 자주 강조하려고 했던 사실을 하나 상기시켜주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란 정부 기구들의 집합이 아니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민주주의란 무엇보다 자신들의 태생, 재산 혹은 권력을 운용하는 전문지식 등에 의해 그렇게 운명이 정해진사람들이 지닌 권력에 대한 위반의 표명이다. (랑시에르, 101)

 

 혁명이란 보이는 것의 질서 자체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인데, 혁명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자신들의 역량들을 표명함으로써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의 경계들을 지워버린다. (랑시에르, 102)

 

 나는 지배적인 두 가지 해석에 반대하면서 민주주의를 다시 사유하고자 노력했다. 하나는 단순하게 대중 선거에 근거하는 제도적 형식 전체와 민주주의를 동일시하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란 계급지배를 그 내용으로 하는 사실상 단순한 형식이라는 해석이다. (랑시에르, 102)

 

 다시 말해 말할 능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그들이 말한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불가능(한 것)의 규칙을 위한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밤』에서 말하는 노동자 시인들의 경우 우리가 상대하는 것은 구술과 산문 밖에 모르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글을 쓴다. 그들은 운문으로 글을 쓴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통속적인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인들의 시를 쓴다. 내가 보기에 이런 개인적인 실천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임금은 개별 노동자들이 고용주와 교섭하는 일이 아니라 공적 토론과 시위에 속하는 집단적인 일이라고 결정하게 하는 집단적 실천과 마찬가지로 가능한 것들의 질서에 대한 단절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이런 실천은 주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채 생산할 능력이 있다고 노동자들 스스로 선언하게 하는 훨씬 더 근본적인 단절과 일맥상통한다. 불가능한 것은 사실상 이중의 지위를 가진다. 한편으로 불가능을 주장하는 것은 가능한 것의 영역을 선험적으로 한정하는 데 사용된다. 다시 말해 평민이 말하거나 노동자가 주인 없이 생산하는 것은 지배적인 논리로 가능하지 않다. 다른 한편 불가능한 것의 의미는 가능한 것의 울타리를 무너뜨린다. 1968년에 이런 슬로건이 있었다. “현실주의자가 되라.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실제로 우리가 가능한 것을 얻는 것은 오로지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면서 이루어진다. ‘노동자 공화국을 원했던 노동자들은 대신에 사회적 권리를 쟁취했다. 오늘날 이런 모든 권리를 폐지하고자 하는 세계의 지배자들이 갖는 집념은 그들이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이런 변증법에 나름대로 얼마나 민감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랑시에르, 120)

 

 고니는 노동의 하루 여정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글쓰기를 통해 재구축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경험에 대한 글쓰기를 그 경험으로 전환시키는 수단으로, 착취를 통해 도둑맞은 시간과 소유권을 통해 독점된 공간의 소유를 되찾는 수단으로 만든다. 그가 그와 그의 동료들을 위해 행하는 것은 글쓰기를 통한 자기의 재전유 작용이다. 이런 작용은 감각적인 것의 분배/나눔에 이른다. 그것은 노동자의 몸이 시간과 공간의 분재/나눔 속에 기입된 것으로 간주되는 방식을 수정한다. 그는 노동자가 말하는 방식, 언어를 활용하는 방식, 노동자가 낮과 밤에 할 일을 분배하는 방식, 그의 생산과 소비를 관계 짓는 방식을 바꾼다. 해방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이 모든 것이다. 고니는 그것을 개인적인 경험의 틀 안에서 표현한다. 그러나 이 개인적 경험은 노동자들이 서로 말하고 그들의 고용주에게 말하기 위해 모이는 방식, 그들이 그들의 말의 지위를 바꾸는 방식, 그들이 동시에 새로운 삶의 수단과 투쟁의 능력을 창안하는 방식 속에서 즉시 연장된다. (랑시에르, 125)

 

 1968년이 보여주는 것은 복종과 반역의 원인 복종과 반역 그 자체일 뿐이라는 점이다. 반역은 자각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반란이 폭발하는 세계를 다르게 이해하게 하고, 우리가 적응하고 있었던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불가능해 보이던 것을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 바로 반란이다. 반란은 또한 모든 사람이 생각한다는 단언, 사유가 구상되는 세계와 그것이 적용되는 세계가 따로 있지 않다는 단언이기도 하다. 내가 『프롤레타리아의 밤』에서 적용한 것은 바로 이런 교훈이다. 말하자면 나는 노동 해방이 생산의 과학에 기초한 운동이 아니라 무엇보다 노동자들에 의한 그들의 사유 능력, 의식/지각(sentir) 능력, 그때까지 특권계급에게 제한되어 있었던 것을 실천하는 능력의 단어임을 보여주었다. 나에게 이런 교훈은 현안의 문제로 귀착한다. (랑시에르, 127)

 

 현존하는 정치제도가 자신의 권력을 무장해제당한 것과 달리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권력은 정치적을 통제되지 않고 있다. 권력과 정치를 다시 결합시키지 않는 한 당장 발들에 떨어진 불을 끄거나 일시적으로 구멍을 메울 수 있는 것 이외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바우만, 141)

 

 내가 한국 독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은 자신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에 대해 당신이 인지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또는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책임을 지는 것은 필연이다. 설령 책임지는 것을 거부하더라도 책임은 언제나 강렬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해 당신의 선택의 결과를 주의 깊게 고려하고 당신 자신과 당신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 그리고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면밀하게 따져본 뒤에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그 선택이 무엇인지, 또한 그 선택이 초래할 문제들에 대해 최대한 파악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려울지라도 그 노력을 통해 선택의 결과를 평가하고 추후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바우만, 153)

 

 일상의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경험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 잘 훈련된 지성은 경험을 토대로 추상적인 것을 만들어 낸다. 독자의 입장에서 경험의 텍스트를 읽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트레이닝이다. 자기 트레이닝이든 무엇이든 끝없이 경험을 해석하는 것이 정치적 행위자를 만들어낸다. (스피박, 165)

 

 내가 보기에 만일 사람과 동물이 더 행복하고 덜 고통스럽게 살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더 나은 사회일 것이다. (싱어, 177)

 

 나는 그 어떤 체제도 자본주의만큼 생산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순전히 자본주의 때문에 빚어지는 끔찍한 결과들이 감소되기를 원한다. 부를 활용함으로써 자본주의는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이들에게 강력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 이타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말하자면 윤리적 삶을 강조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충분히 편안하다면 당신의 부를 타인과 나누어서 어떤 이들도 극도의 빈곤 속에서 살아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거듭 각인시켜야 한다. (싱어, 178)

 

 나는 공리주의자다. 급진적인 평등주의자는 차치하고 평범한 평등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평등이라는 것이 저절로 얻어지는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00달러의 가치라는 것은 1년에 5만 달러를 버는 사람과 1년에 500달러를 버는 사람에게 결코 같을 수가 없다. 500달러를 버는 사람에게 100달러의 가치라는 것은 5만 달러를 버는 사람보다 훨씬 클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부유한 사람의 부 상당량이 가난한 사람에게 재분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말해주듯이 이타주의는 가난한 사람을 돋게 만드는 동기로 충분하지 않다. 이런 까닭에 정부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싱어, 180)

 

 종교적 실망과 정치적 실망에서 철학에 대한 요청이 나온다고 했다. 실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상실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무엇인가 잃어버린 경험에서 실망이 기인한다. 실망은 끝이라기보다 시작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 시작이 바로 철학에 대한 요청이다. (크리츨리, 187)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조심스럽게 마르크스의 생각들을 분리해내야 한다. 자본주의의 현재 위기에 관해서라면 마르크스가 모든 점에서 옳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저작은 중요한데, 경제에는 언제나 정치적 작용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에 의존하는 삶은 상품 구매 수요로부터 이윤을 얻는 이들에게 취약하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기본적인 정치적인 가설이다. 그는 경제를 지배하는 이들의 우리의 의식적 행동 또한 지배한다고 말했다. 만일 마르크스가 틀린 점이 있다면 자신의 말이 얼마나 옳은지를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경제를 지배하는 자는 우리의 의식적 행동뿐 아니라 무의식적 행동까지 지배한다. (바커, 231)

 

 한국 독자에게 충고하고 싶은 것은 간단하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읽고 그림을 그려보라는 것이다. 그림은 지적 성장에 아주 좋은 훈련이다. 덧붙여 유머를 잃지 말라.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유머다. (바커,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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