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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은 맛있다
강지영 지음 / 네오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꿈만큼이나 다양한 해석과 이론들이 난무하는
학문 분야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꾸는 당사자에게만
보이는, 신비의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꿈에 관한 수많은
이론 중 욕망의 발현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꿈을 통해서라면 다시 가고 싶은 과거의 삶, 간절히 기대하는 미래의 삶, 심지어 질투 혹은 부러움의 대상인 타인의
삶으로도 갈 수 있다. 영화 <금발의 초원>의 주인공 닛포리가 60년을 초월해 자신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인
대학교 때로 시간여행을 하듯, <하품의 맛있다>의
주인공 박이경은 자신과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단아름다운의 삶을 여행을 하게 된다.
너무나도 다른 둘, 박이경과 단아름다운
박이경과
단아름다운, 둘은 지극히 평범한 이름과 특별한 이름의 차이만큼이나 정반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박이경은 특수청소용역 회사에서 일한다. 사망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청소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곳은 누군가의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안타까움, 무서움, 불길함을 한 순간에 없애버리고도 남을 지독한 악취가 풍기고
쓰레기들이 널브러져있다. 다른 일을 안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커피숍이나
편의점처럼 깔끔하고 편한 일이 싫을 리 없다. 하지만 작은 키와 못생긴 얼굴은 항상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빨리 그리고 많이 돈을 벌어야 한다. 학자금대출은 이미 삼천
만원을 넘어섰다.
남들처럼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다른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도움은커녕 보험료 체납으로
수급 대상자에서 누락된 아빠의 병원비와 가족의 생활비까지 충당해야 했다. 아빠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신세를
지고 있고 엄마는 간병인 교육을 수료해 아빠 병실의 다른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꼬일 대로 꼬인 인생이다. 인정사정없이 얽힌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단아름다운은 모든 것을 갖고 있다.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번 부모님이 계시고, 명문대의 음악과를 다니고, 돌아다닐 때면 주변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만한 예쁜 얼굴과 몸매를 갖고 있다. 누구라도 부러워할만한 인생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만들어준 녹즙을 마시고, 엄마와 함께 손톱관리와
마사지를 받는다. 점심에는 친구를 만나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떤다. 저녁에는 만나달라고 하는 많은 남자 중 한 명을 골라 데이트를 한다. 걱정
없어 보이는 그의 일상이다.
치즈케이크의 맛
전혀
다른 둘의 인생은 꿈을 통해서 뒤바뀐다. 마치 왕자와 거지가 뒤바뀐 것처럼 박이경은 단아름다운의 삶을
단아름다운은 박이경을 삶을 살게 된다. 언뜻 보기엔 단아름다운에게는 찝찝하고 끔찍한 꿈일 테고 박이경에게는
황홀하고 행복한 꿈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온실의
화초처럼 아무런 상처 없이 예쁘게만 보이는 단아름다운의 인생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뿌리는
잘려나갔고 썩기 일보직전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겉모습은 상처투성이인 내면을 가리기 위한 포장일 뿐이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 엄마의 강요로 살인을 저질렀다. 박이경이
청소했던 집에 살던 여자를 죽인 것도 단아름다운이었다.
박이경에게
단아름다운은 환상과 동경의 대상, 치크케이크 같은 존재다.
나는 십수 년 동안 치즈케이크에 대한 환상을 품어왔다. 물론 그 사이 나는 몇 번이나 치즈케이크를 먹을 기회가 있었다. 매달
적으나마 용돈이 생겼고, 프랜차이즈 제과 점에 가면 단 돈 몇 천 원에 살 수 있는 것이 치즈케이크였다. 하지만 나는 제과점에 갈 때마다 케이크 진열대를 외면하고 슈크림이나 페이스트리를 계산대로 가져갔다. 맛이 있는 케이크의 한 종류일 거라는 애초의 상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없으면 안 되는 궁극의 요리로 진화해갔고, 종래에는 만에 하나 맛이 없을까 봐 맛볼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갔다.
스무 살 생일 날, 엄마의 손에 그것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p.205-206)
동경을
넘어 궁극의 대상이 된 치즈케이크, 그가 처음 맛본 치즈케이크의 맛은 어땠을까. 생각했던 그대로의 맛이었을까. 아니면 기대를 산산조각 내버릴 만큼
실망을 안겨주는 맛이었을까. 스무 살의 생일 때의 치즈케이크처럼 그의 손에 단아름다운의 인생이 주어졌다. 환상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그는 꿈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행복을
느끼고 있을까 아니면 환상이 깨진 것을 안타까워하며 실망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