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사고로 여는 새로운 세계 - 유전학자가 들려주는 60가지 과학의 순간들
천원성 지음, 박영란 옮김 / 미디어숲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먹고 마시고 즐기는~" 다음에 나올 만한 단어는?

세상에나, 여기에 "과학"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 있네요. 제 인생 사전에는 없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단어였네요. 과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도, 우리는 과학의 세계 안에서 살고 있다는 걸 일깨워주는 책이 나왔네요.

《과학적 사고로 여는 새로운 세계》는 생물학에 초점을 맞춘 과학 교양서라고 하네요.

저자는 국립양명교통대학교 명예교수이자 교육부 종신 국가 강좌 교수이며 유전연구소에서 연구와 교육에 힘써온 유전학자 천원성 교수예요.

이 책은 일상 생활 속 과학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저자가 지난 6년간 과학 잡지에 연재한 '교과서 밖의 과학 이야기'라는 칼럼에서 엄선한 59편의 글과 이전에 발표했던 한 편을 추가하여 엮어낸 것이라고 하네요. 유자, 감자와 볶음쌀국수, 푸딩과 궁바오지딩, 탄산수와 같이 음식을 소재로 한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과학 원리와 이론이 등장하니 재미있고, 각 글의 마지막에 실린 그림은 임팩트 있는 한 컷 그림인 데다가 저자가 직접 그렸다고 하니 뭔가 더 집중하게 되네요. 사실 이야기가 재미있으니까 저절로 몰입이 된 것 같아요. 과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은 물론이고, 과학적 사고가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과학 에세이네요. 읽다 보면 똑똑해지는 느낌이랄까요.

"내 친한 친구인 아론 교수는 평소 맛집 탐방을 즐기고, 집에서도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는 미식가인데 최근 들어 식습관 조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바로 통풍 때문이다. 혈액 내 요산 수치가 너무 높아져 관절과 힘줄에 결석이 생기고, 이로 인해 심각한 염증이 생기는데 이 염증은 극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나는 아론에게 통풍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는 퓨린의 농도가 높은 음식을 피해야 한다고 했다. ... '고퓨린'은 평생 DNA와 RNA를 연구해 온 나에게 큰 흥미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음식에 들어 있는 퓨린의 대부분이 DNA와 RNA의 두 가지 이중고리 염기인 아데닌과 구아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퓨린은 대사 과정을 거쳐 잔틴과 하이포잔틴으로 분해된 후, 요산으로 분해되어 최종적으로 소변으로 배출된다. 모든 자연식품은 생물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DNA와 RNA, 퓨린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퓨린의 농도가 높은 음식일나 단순히 세포 수가 많은 음식이 아닐까? 나는 동료들과 의사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 학술 논문에서도 어떤 음식이 퓨린 함량이 높은지, 낮은지만 나열되어 있을 뿐,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했다. 계속된 연구 끝에 나는 내 가설이 맞을 거라고 확신했지만 ... 유인원 이외의 동물들은 통물에 걸리는 경우가 드물다. 그들은 대부분의 생물과 마찬가지로 요산 산화 효소를 가지고 있어서 요산을 알란토인으로 분해한 후 배출할 수 있기 때문에 체네 요산 농도가 높지 않다. 유인원 역시 원래 요산 산화 효소를 가지고 있었지만, 진화 과정에서 몇 차례 돌연변이가 일어나면서 이 유전자는 기능을 잃어버렸다. 왜 이렇게 진화했을까? 하나의 가설은 요산이 강력한 항산화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산 농도가 높으면 혈관을 보호하고, 암 발병 가능성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진화 과정에서 요산 산화 효소를 잃어버리면서 또 다른 항산화제인 비타민 C를 생성하는 능력도 상실했기 때문에 식단을 통해서만 섭취할 수 있게 되어 체내 요산 농도를 높이면 비타민 C 부족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이러한 가설은 완전한 동의를 얻지 못했다. 체내 요산 농도가 높아지만 통풍뿐 아니라 신장 결석, 고혈압, 당뇨병 등의 발병 위험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라는 표현이 절로 떠오른다." (60-64p)

교과서 속 과학 지식이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숨은 과학적 원리를 찾아내어, 누구나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과학'으로 만들어낸 저자의 능력이 탁월한 것 같아요. 실험실 안에서만 연구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도 순수한 호기심으로 탐구하는 자세야말로 과학적 정신과 연구 태도라는 것을 보여주는 롤모델이네요. "과학자는 정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올바른 질문을 하면 정확한 출발점에서 시작할 수 있고,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올바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으며, 길을 잃거나 좌절하게 만드는 잘못된 길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지식을 계속 확장해 나갈수록,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과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끊임없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154p) 라는 말 그대로 우리에겐 과학자와 같은 사고 방식과 태도가 필요해요. 문명이 시작되면서 도구는 인간의 능력을 강화하고 확장하며, 진화의 방향마저 바꾸어 놓았네요. 지금은 AI라는 도구 자체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고, 어쩌면 인간을 앞설 수 있다는 두려움에 직면해 있네요. 과연 어떤 미래를 만들어야 나가야 할까요. 이제 올바른 질문을 던질 차례네요. 과학적 태도와 정신으로 나아가야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만나는 미술관 - 그림이 먼저 알아차리는 24가지 감정 이야기
김병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순전히 좋아서 하는 일들, 이런 걸 취미라고 하죠.

그림을 봐요. 전시회나 미술관을 가서 직접 작품들을 감상하면 좋겠지만 대부분 그림책이나 화보집을 보고 있어요. 가만히 보고 있는, 그 고요한 시간이 힐링이 되더라고요. 나만의 공간에는, 비록 인쇄된 그림이지만 좋아하는 그림들이 걸려 있어요. 그림은, 마치 따사로운 오후 햇살 같아서 울적하고 축축해진 마음을 툭 널어놓으면 어느새 개운하게 말려주네요. 그냥 툭, 그게 내 마음을 대하는 태도였는데 이 책을 보면서 약간의 섬세함과 다정함을 배웠네요.

《나를 만나는 미술관》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병수 원장님의 '내면을 위한 그림 처방전'이라고 하네요.

"그림은 언어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을 붙들어 눈앞으로 가져옵니다.성급히 이해하려 들지 않고 함께 머물다 보면 미술은 침묵으로 말합니다.

존경은 숭배가 아니라 반복을 견디는 인내에서 피어나고, 열정은 소유하는 게 아니고 깨닫는 것이며, 모순된 감정은 혼란이 아니라 마음의 자연스러운 상태이고, 허무의 바닥에 얇게 깔린 삶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게 하며, 고통은 회피가 아니라 폭풍우 속으로 들어가라는 용기라고 가르쳐 줍니다. 미술을 통해 마음을 배우고, 마음으로 미술을 읽을 수 있습니다." (7p)

이 책은 미술관과 진료실 사이, 그 어디쯤을 거닐며 자신을 만나는 길을 안내하고 있어요. 저자는 미술이 내면을 비추는 그림이지만 그것이 자기의 본래 얼굴이 아니라 자기이기를 바라는 얼굴을 비추는 거라고 이야기하네요. 그림 속에 자신을 투사하여 불완전한 얼굴을 재구성하고, 그 안에서 은밀히 품고 있던 소망을 확인하는 것,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는 것이 심리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거예요. 우리는 미술 관람자처럼 '나를 만나는 미술관'으로 입장하면 돼요. 저자가 우리를 위해 준비한 작품들은 모두 스물네 가지의 감정을 담고 있어요. 존경, 열정, 다채로움, 고통, 낙관성, 무의미, 재미, 허무, 사랑, 실존, 자괴감, 자기애, 불안, 죄책감, 애도, 우울, 부러움, 순수, 행복, 자존감, 자연애, 정체감, 미지감, 자기가치감이라는 주제를 유명 화가들의 작품과 함께 하나씩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있어요.

영화 <엑상프로방스의 세잔> 포스트 (2015)로 시작하여 폴 세잔의 <생 빅투아르 산>, 마크 로스크의 <무제>, 윌리엄 터너의 <눈보라. 항구를 나서는 증기선> 등등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데, 이 중에서 살바토레 코콜루토의 <그린>이 인상적이네요. 이 작품을 그린 화가의 설명에 따르면, 작품은 크지 않지만 완성하는 데까지 3년 정도 걸렸는데, 겉으로 보면 전체적으로 녹색의 물결과 위아래로 흐르는 파랑으로 단순하지만 그 아래에는 수십 장의 캔버스와 그 위에 칠해진 색깔이 퇴적층처럼 쌓여 있다고 하네요. 한 장을 그린 뒤에 물감이 다 마르면, 그 위에 또 한 장을 그려 붙이고, 그것이 마르면 또 색찰하고 다시 그 위에 붙이면서 계속 이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3년 넘는 시간이 걸린 거예요. 실제로 이 그림을 옆에서 보면 그 두께가 5cm가 넘는다고 해요. 흘러가는 시간을 캔버스에 붙잡아 놓듯이, 차곡차곡 쌓아 올린 그림들이 입체감 있게 표현되어, 사진으로도 그 느낌이 전달된 것 같아요. 이런 작품 앞에 서면 묵묵히 제 길을 간 이의 단단한 자존감이 느껴진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네요. 자존감을 높여보겠다고 자기 마음속을 파고드는 건 별 효과가 없고, 몸을 써야 된다는 거예요. 꼭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특별한 무엇을 향해 온몸으로 다가갈 때 자존감도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법이라고, 결국 무엇을 하느냐보다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대한 인식이 중요해요.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어떠한 시련에도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어요. 그림으로 만나는 감정의 언어들을 통해 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더욱 단단해질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네요.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위대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점 그림으로 읽는 경제 - 투자의 초석을 쌓는 부자 수업
김치형 지음 / 포르체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그림 속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명화 감상의 기준에는 정답이 없어요. 보는 사람에 따라서 주관적인 감정과 해석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작품 자체의 미적 요소를 보고 느끼는 것에서 시작해 화가의 생애, 작품을 둘러싼 시대적 배경을 파악하면 더 깊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돼요. 여기, 경제 전문기자의 눈으로 바라본 그림 이야기가 나왔네요. 그림이 보여주는 돈, 경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한 점 그림으로 읽는 경제》는 명화 속 경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경제 초보 가이드북이에요.

저자는 한국경제TV 앵커이자 방송과 유튜브 등에서 경제 이슈를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경제뉴스 큐레이터, 김큐로 활동 중이라고 하네요.

이 책에서는 우리가 이제껏 봐 왔던 명화들을 색다른 경제 관점에서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어요. 2025년 세계 경제 이슈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네요. 전 세계가 트럼프발 관세 정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무역적자 해소가 당면 과제인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아름답다고 표현했는데, 저자는 이 발언을 듣고 인상주의 대표 화가 클로드 모네를 떠올렸다고 하네요. 아름답고 섬세한 빛과 색채의 변화를 표현한 모네의 그림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맞물려 역사 속에서 최근 경제 이슈까지 살펴보니 무척 흥미롭네요.

"모네는 연작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데, 동일한 주제(대상)를 다양한 조건에서 여러 번 그리며 빛과 상황을 만들어내는 다름을 작품에 표현했다. ... 버려진 세관 오두막을 그린 연작은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의 바렌주빌 절벽의 허름한 오두막을 그린 작품으로, 오래된 세관 건물과 주변의 자연 풍광이 아름답게 묘사돼 있다. ... 노르망디 해안 절벽엔 왜 이런 세관 건물이 덩그라니 세워졌을까? 이는 나폴레옹 시대의 유물이다.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에 크게 패한 나폴레옹은 해군력에 큰 타격을 입는다. 결국 군사력으로 영국을 정복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경제 봉쇄라는 카드를 꺼내든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지 않던가? 미국이 이란을, 북한을 그리고 중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려 하는 전략은 200여 년 전 나폴레옹이 이미 써먹은 전략이다." (19-21p)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잖아요.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 관세정책은 지난 30년간 이어진 WTO 체제를 무너뜨리고, 미국이라는 큰 장벽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꼴이 되었네요.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 정책은 결과적으로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져왔고,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은 이전에도 실패한 사례가 있어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정부가 민심을 얻은 역사는 없어요. 생존과 권력, 돈이 흘러가는 역사가 수많은 명화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는 것이 신기하네요. 저자의 말처럼 경제와 미술은 닮은 면이 많네요. 그림을 보면서 예술과 경제, 역사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미술관에서 배우는 경제 수업이었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 불교심리학 - 생각과 감정에 더 이상 속지 않는 보만 스님의 마음 사용법
보만 지음 / 불광출판사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사춘기 때였던 것 같아요.

혼자서 끙끙 고민하던 시기에 화엄경에 관한 책을 만났고, 그 의미를 다 이해하진 못해도 흩어진 마음을 다독이며 위로받았네요. 마치 보이지 않는 적들과 홀로 싸우는 심정이었는데 아군 하나가 생긴 느낌이랄까요. 종교적인 믿음보다는 철학적인 돌파구에 가까웠고, 이후에도 종종 힘들 때마다 불교 경전의 말씀을 찾아 읽으며 마음 챙김을 했네요. 깨달음은 찰나, 늘 번뇌 속에서 괴로운 것이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쉽지 않았네요. 사춘기는 지나갔지만 여전히 방황하는 마음을 붙잡고자 이 책을 읽게 되었네요.

《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 불교심리학》은 보만 스님의 마음 사용법이 담긴 책이에요.

보만 스님은 인생 사는 방법을 수영에 비유하고 있어요. 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수영을 배우고 뛰어들어야 하는데, 가끔 수영도 못하면서 남들이 물에 들어간다고 따라 들어가는 이들이 있어요. 수영을 배운 사람에게 물은 놀이터가 되지만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는 공포스러운 지옥이 될 거예요. 그러니 세상이라는 바다에 뛰어들기 전에 수영을 배워야 한다고, 이 책에서는 어떻게 해야 물에 뜨고, 앞으로 나아가며, 즐겁게 헤엄치는 방법과 다리에 쥐가 났을 때의 대처 방법을 알려주고 있어요. 이른바 '내 마음 사용 설명서'라고 할 수 있어요. 불교 심리학에서는 '견해와 기억'의 구조로 마음을 해석한다고 해요. 견해는 매 찰나 쌓여 기억을 바꾸고, 이 기억들이 다음 견해를 만드니, 아름다운 견해를 가지려면 아름다운 기억이 저장되어야 하겠지요. 어떤 의미를 담아내고, 무엇을 덜어낼지, 그 선택은 자신의 몫이에요. 보만 스님은 육신의 해부학이 아닌, 마음의 해부학을 '불교'라고 설명하면서, 불경은 매일같이 일어나는 마음의 소음과 통증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안내하므로, 여기에서는 불경에 나오는 말씀을 쉽게 풀어 마음을 분석하고 있어요. 의미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불교 심리학에서는 '깨달음' 대신 '정신'이라는 말을 쓰는데, 본래부터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갖추어진 능력이라는 뜻으로 정신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하네요. 불교 심리학에서는 시선을 자기 안으로 돌리게 하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들어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평생 '나'라고 믿어 왔던 것들에 대한 의심이 생기는데, 계속 생각을 바라보는 연습을 통해 진짜 자신을 만날 수 있어요. 책의 구성은 흥미롭게도 '마음'이라는 제품을 소개하고, 부품 명칭과 구조, 작동 매뉴얼, 사용 시 주의사항, 고장 진단법, 고급 사용법, 복원 모드 순으로 나와 있어요. 마지막 단계는 보만 스님의 애프터 서비스로 강의 중 받았던 질문들을 Q&A로 정리하여 알려주고 있어서 고민 해결에 도움이 되네요. 부록에는 '내 마음 관찰 노트'가 있어서 직접 기록하며 마음의 작동 원리를 살펴볼 수 있어요.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인생은 사실 딱 한 가지 작용이었습니다. 바로 깨닫는 일!

슬픔을 통해서도, 기쁨을 통해서도, 괴로움과 환희를 통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깨닫고 있습니다.

'아, 세상이 있구나.'

'이게 나였구나.'

'아, 나와 다르구나.'

'함께였구나.'

그렇게 우리는 수없이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단지 만들어진 사연일 뿐이며,

근원은 깨닫는 능력에서 비롯됩니다. 깨닫는 능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있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생겨나게 하는 법칙'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 생겨난 것은 반드시 사라집니다. 그러니 애써 없애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힘들게 하는 고민과 모든 아픔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어 있으니 두려워할 필요도,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없는 일을 상상하며 '이렇게 되면 어쩌지.' 하고 고통을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모든 것들은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사라진다고 해도 세상을 바라보는 깨달음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 여러분의 정신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끝없이 깨닫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227-228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드립니다
루스 윌슨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어둡고 긴 터널 속으로, 정말이지 피하고 싶은 구간에 들어서면 어찌 할 도리가 없어요.

무사히 통과하기를 바랄 뿐이죠. 그때 와구와구 읽었던 것 같아요. 잡히는 대로, 보이는 대로... 독서의 즐거움도 모르고 그냥 읽었고, 가끔 위로를 받았네요. 활자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으니, 무엇이 내게 남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니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네요. 어느새 그 터널을 빠져 나왔다는 걸... 물론 터널 밖이라고 해서 꽃길은 아니지만 파란 하늘이 보이니 좋네요.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드립니다》는 32년생 루스 윌슨의 놀라운 인생 이야기가 담긴 책이에요.

오스트레일리아 그리피스에서 태어난 저자는 열다섯 살에 제인 오스틴 소설에 입문하여 평생 열렬한 오스틴 독자로 살고 있어요. 제인 오스틴의 모든 작품을 다시 읽기 시작한 건 예순 살 생일에 겪은 기묘한 경험 때문인데, 그 일은 영혼이 시름시름 앓고 있다고 육신이 보내는 경고라고 생각했기에 독서로 재활 치료를 하게 된 거래요. 일흔 살에 남편과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에서 '자기만의 방'을 마련하여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을 읽으며, 다시 독서에 열중하는 시간이 재활 치료라고 여겼대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독서법의 출발점이 오스틴의 작품 다시 읽기였고, 그 세계관의 프레임에 비추어 자신의 인생을 탐색하며 헝클어진 마음 상태를 회복하고, 삶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나이 일흔에 시작한 오스틴 다시 읽기가 스스로를 위로하다 못해 자신을 인생의 화양연화로 이끌었노라고, 여든여덟 살에 문학 독서에 관한 새로운 접근법으로 시드니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아흔이 넘은 지금은 평화로운 가정으로 귀환하여 남편과는 따로 또 같이 생활을 하고 있다네요.

이 책에서는 제인 오스틴 다시 읽기가 로스 윌슨의 삶을 어떻게 구했는지, 오스틴의 소설 여섯 편을 각각 소개하며 독서 치료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우리의 미래, 백세 인생의 롤모델이 알려주는 제인 오스틴 독서 요법서라고 할 수 있어요. 독서의 마법으로 영혼의 시름을 치유할 수 있다고, 지금 저자는 '정녕 진실로'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하네요. 삶이 불만스럽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길, 특급 치료제를 만날 수 있어요.

"에마 우드하우스,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괴로운 일이나 성가신 일은 통 모르고 살았다는 이 아가씨가 대학생이 되어 내가 첫 번째 읽은 오스틴 작품의 주인공이었다. 1949년에 시드니 대학교에 입학한 나는 책을 좋아하는 성향상 처음부터 영문학 공부가 관심사에서 우선순위였고, 그러니 자연히 오스틴과 더욱 진지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에마』와 연을 맺어준 헤링 선생님은 첫째 날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에게 이 소설의 첫 문장을 두 번 낭독해주었다. 『오만과 편견』을 읽었을 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면서 내가 있을 곳을 잘 찾아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자기 자신을 발견해가는 에마라는 주제로 강의가 진행될수록 나도 이 인물을 발견해가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헤링 선생님이 이끄는 대로 소설 속의 퍼즐들을 차곡차곡 풀어나갔더니 마침내 소설 전체에 질서와 품격을 더하는 하나의 큰 그림이 만들어졌다. 강의가 끝날 즈음에는 나도 에마가 사는 하트필드에 둥지를 틀고 마을 정경이 머릿속에 지도처럼 그려지더라." (82p)

제게는 중학교 시절, 국어 수업 시간이 떠오르네요. 수업을 끝마치기 10분 전에 짧은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어주시던 선생님 덕분에 문학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거든요. 와, 이런 세계가 존재하는구나, 라는 경이로움과 기쁨이 삶의 즐거움을 더해주던 시절이었네요.

"『에마』를 읽고 나서 『오만과 편견』에 도전했는데, 그 작품도 못지 않게 좋았어요.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좋으세요?"

"솔직히 우열을 가리긴 힘들어요. 각각 다른 이유로 두 작품 다 좋아하거든요. 오스틴 독자들한테 물어보면 많이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말해요. 『오만과 편견』에서는 주인공이 남의 마음을 읽는 법을 배우고, 『에마』에서는 주인공이 자기 마음을 읽는 법을 배워요. 잘 읽는 것이 왜 중요한지 각각 다른 측면에서 보여주는 것 같아요. ··· 우리가 지금 읽기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오스틴 소설을 이해하는 진짜 비결은 다시 읽기니까요."

"자, 그렇다면 저처럼 그 사람 책을 전혀 읽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간단히 한말씀 해주신다면,"

"오스틴의 소설을 읽는 게 영화를 보는 것보다 낫다는 걸 어떻게 설득하시겠어요."

"아무래도 독서의 장점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겠죠. 영화에선 감독과 배우들이 대신 생각해주는 게 많잖아요. 그 사람들은 비평가의 견해 같은 것을 분석하고 심지어는 영화에서 그걸 앞세울 때도 있고요. 그러니까 원작을 안 읽으면 남들이 이해한 걸 얻는 걸로 끝이에요. 하지만 책을 정독하면, 특히 다시 읽기를 하면, 두뇌에 자극이 오면서 이야기 안의 숨은 의미를 알아내야 한다는 도전 의식이 생기죠. 또 소설을 내 인생에 비춰서 해석해볼 수가 있어요. 나한테 가치 있는 게 뭔지, 나한테 우정이 뭔지, 내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주죠. 내 생각에 독서는 두뇌 활동을 더 활발하게 만들어요, 권태를 물리칠 진정한 해독제랄까요!" (100-102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