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하이킥! 2 - 지루한 일상을 날리는 코믹 가족극, MBC 시트콤 사진만화
삼성출판사 편집부 엮음 / 삼성출판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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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거침없이 하이킥>은 즐겨 봤던 기억이 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으니까.

개성이 톡톡 튀는 가족들이 보여주는 거침없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속을 후련하게 웃겨준다.

이 책은 요즘 새롭게 등장한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사진만화다. 기존에 인기 있던 드라마, 시트콤, 영화를 만화 형식으로 다시 만든 것이다. 워낙 재미있게 본 내용들이 책으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다시 봐도 재미있다.

특히나 <바바리맨의 진실>편은 제일 많이 웃었던 내용이다.

잘난 척 하는 며느리 때문에 늘 속상한 문희 여사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온다. 며느리 박해미가 아침에 화장실에서 큰 용무를 치르고 물이 내려가지 않아 쪽지만 남기고 나간다. 이걸 발견한 나문희 여사는 동네방네 이 사실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 통쾌한 표정이 정말 실감난다. 평소에 박해미가 얄미운 건 사실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용무를 가지고 놀려 줄 생각을 했다는 점이 웃음이 난다. 그만큼 자존심 강한 며느리니까 작은 실수도 치명적인 모양이다. 가족끼리 좀 심했다 싶은데 그 뒤 얘기에 반전이 있다. 저녁까지 수리가 안 된 상태에서 이순재 원장이 다른 한의사들과 함께 집에 온다. 그 때, 이순재 원장은 우리 집사람이 큰일 본 게 막힌 거라며 나문희 여사에게 떠넘긴다. 며느리의 약점을 잡아보려다가 오히려 억울하게 뒤집어 쓴 나문희 여사의 모습이 딱해 보이면서도 자꾸 웃음이 난다. 나문희 여사의 마지막 말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빨리 전화해서 내 똥 아니라고 얘기 좀 해, 제발.

남들에겐 별 거 아닌 일이지만 오해 받는 당사자의 속은 얼마나 답답할까?라는 안쓰러운 생각이 조금 들지만 자꾸 웃음이 난다. 아마도 이것이 시트콤만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다른 이들의 사소하고 엉뚱한 일상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날리는 기분이다.

가족을 대상으로 한 시트콤이지만 모범적인 모습보다는 일탈적인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줘서 사랑 받았던 것 같다. 야동 순재, 식신 준하, OK 해미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개성 만점이다.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면서 신나게 웃을 수 있어 좋았다.

사진만화 시리즈들을 몇 번 접해보니 혼자 심심하거나 스트레스 받을 때 기분 전환으로 볼 만한 책인 것 같다. TV화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지면을 보고 있으면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명대사는 한 번쯤 따라 해봐도 좋고, 좋아하는 배우들 사진은 감상하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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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 이해인 수녀의 사모곡
이해인 지음 / 샘터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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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라는 말은 그 자체만으로도 시가 되는 것 같다. 어른이 된 지금도 엄마라고 부르면 아이처럼 엄마가 간절히 그리워지니 말이다. 시는 그리움을 노래하는 것.

세상에 가장 위대한 사람은 엄마라고 했던가?

하느님께 일생을 바친 수도자 생활 40년이라는 이해인 수녀님도 엄마 앞에서는 귀염둥이 작은 딸이다. 우리는 모두 엄마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 같다. 이해인 수녀님의 어머니가 작년 가을 돌아가신 후 상심이 깊었던 모양이다. 마음의 슬픔을 아름다운 시로 엮은 후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라고 한다. 마음이 아프고 슬프면 몸도 따라 아프게 된다더니 슬픔과 아픔은 쌍둥이인가 보다.

엄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담은 시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해진다.

오히려 어린 시절에는 괜찮았는데 어른이 되어 나이가 들수록 엄마 생각만 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젊은 시절의 엄마는 늘 씩씩하고 든든했지만 나이든 지금의 엄마는 너무나 작고 여린 여자로 보인다. 딸이 커서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의 심정을 어렴풋이 헤아리게 되고 더욱 애틋해지는 것 같다.

오래 전, 잠결에 흐느껴 운 적이 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날 밤 꿈에 엄마가 돌아가셔서 너무나 서글피 울었던 것이다. 잠에서 깬 뒤에 꿈인 걸 확인하고 얼마나 안심을 했던지. 그 뒤로는 엄마만 보면 꼬옥 안고 뽀뽀를 해드린다. 다 커서 남사스럽다고 하셔도 자꾸 해드리니 이제는 웃으며 받아주신다. 그리고 가끔 편지를 보낸다. 자주 볼 수 없는 먼 곳에 계신 것도 아닌데 그냥 엄마를 생각하며 편지가 쓰고 싶을 때가 있다. 화창하고 파란 하늘을 보며 갑자기 엄마가 그리워서, 혹은 엄마가 살아계신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좋아서, 어떤 날은 제대로 효도 못한 죄송스러움을 편지에 적곤 한다. 엄마가 보내준 편지를 받은 날은 참 기쁘다.

이해인 수녀님과 어머니의 편지를 보면서 엄마와 딸 사이의 사랑이 곱게 말린 꽃잎마냥 향기롭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또한 시 구절마다 엄마의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느껴져서 괜히 우리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엄마>라는 시 중에서 엄마 없는 세상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라는 구절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오죽하면 꿈에서도 울었을까?

이해인 수녀님의 <엄마>라는 시집은 우리 곁에 엄마의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나 엄마가 그리워질 것이다.

그리고 이해인 수녀님의 쾌유를 기도해본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병이 되었지만 아프고 힘든 순간이야말로 엄마의 빈 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을 알기에 마음이 아프다. 수녀님의 말처럼 부디 단순하고 지혜로운 원더우먼이 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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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 라라
마광수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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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하면 <즐거운 사라>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바가 있다. 불법 포르노도 아닌 소설책이 음란문서라고 해서 법적 처벌을 받은 것이다. 그 당시(92)에 미성년자였던 관계로 그 책을 읽을 기회가 없다가 이제서야 <발랄한 라라>로 마광수 교수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참 당황스러운 책이다. 민망하다고 해야 할까?

주제는 성, 섹스다. 작가의 말을 옮기자면 성적(性的)이라기보다는 유미주의적(唯美主義的)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 경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지극히 남성적인 입장에서 꿈꾸는 성적 판타지를 고스란히 글로 묘사하고 있어서 그가 왜 사회적 지탄을 받았는지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이 책을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솔직하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벗은 몸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어느 장소냐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은밀한 분위기는 아름다울 수 있지만 노골적이면 확 깨는 느낌.

예전에 읽었던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를 보면 역사적으로 인간의 잔인하면서도 기묘한 성욕은 존재하던 것이다. 다만 그는 자신의 욕망과 상상을 결합하여 거침없이 세상에 책을 낸 것뿐이다. 현대판 사드 백작인가? 걔 중에는 나와 같이 호기심으로 그의 소설을 읽다가 놀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공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한 것 같다. 자신의 성적 취향을 고루 갖춘 이상형의 여인이 등장하거나 아예 자신의 실명이 들어간 단편도 있다. 인조속눈썹과 야한 화장, 짧은 초미니스커트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긴 손톱이 등장한다. 또한 다양한 부위의 피어싱을 통해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표현한다. 정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충실하게 성적 판타지를 적어내는 정성이 대단하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성적 쾌락을 위해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가만 살펴보면 <심각해씨의 비극>, <그리운 그 긴 손톱의 여인>, <마광수 교수와의 사랑>를 통해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대변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는 자신의 이상형 여인을 만날 길이 없으니 문학적 상상력으로 해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욕구불만이 그만큼 큰 것 같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도 성적 욕망은 전혀 사그러들지 않는 모양이다. 한 편으론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 의식 덕분에 <즐거운 사라>에 이어 <발랄한 라라>가 탄생된 것이겠지만. 은밀한 자신의 성적 환상을 충족시켜 줄 상상 속의 그녀들, 사라, 라라 등등……

이 정도면 대충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점은 시대가 바뀌고 감시와 검열이 자유로워진 것은 알겠지만 미성년자들을 위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평범한 책인 줄 알고 아이들이 들춰봤다가는 낭패다.

미성년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들키지 않게 읽기 바란다. 그나저나 이 책을 어디에 둬야 할 지 걱정이다. 아무리 성 해방을 외쳐대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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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 그녀 이력서를 쓰다 -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는 여성 10인의 이야기
김병숙 지음 / 미래의창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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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업주부 아줌마들의 변신은 무죄!

당당하게 내 인생을 찾기에 나이는 중요치 않다.

이 책의 주인공은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동창 모임에서 직장여성인 친구, 백희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서른아홉의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바로 이력서를 쓰게 된 것이다. 결혼과 동시에 미련 없이 그만 둔 직장을, 서른아홉이 된 지금 간절히 원하게 된 것이다. 친구 백희가 멘토 역할을 해주고 주변에 있는 10명의 여자들 이야기를 토대로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체 형식이라서 아줌마 독자들에게는 일상의 수다처럼 편안하면서도 멘토다운 조언을 충실히 하는 유익한 책이다.

대부분의 여자들, 특히 40대를 바라보는 여자들은 취업하고 싶은 마음만 앞설 뿐 행동으로 옮기지 않지. 나도 얼마 전까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난 우연히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는 돌파구를 찾았어. (113p)

그래,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그 취업걸림돌이 아니라 부딪쳐보지도 않고 못하겠다고 포기하는 거야.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지. (186p)

사실 여자가 결혼한 뒤에도 계속 직장 생활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당당히 자신의 일을 하는 여성을 보면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책 속에서 멘토 역할을 해준 백희란 친구처럼 말이다. 반면 전업주부로 지낸 주인공과 같은 아줌마들은 상대적인 위축감을 느끼게 된다. 그건 전업주부로서의 자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닌 순수하게 란 존재를 잊고 있었다는 허탈감 때문일 것이다.

서른아홉의 그녀가 이력서를 쓰는 이유는 전업주부보다 직장여성이 더 멋져 보여서가 아니다. 단순히 그런 의도로 직업을 구하는 거라면 금세 좌절하고 말 것이다. 직장여성이 전부 우아하고 멋진 일만 할 거란 기대는 대단한 착각이며 환상이니까.

그녀는 결혼과 함께 자신의 원래 꿈을 잊고 있었다. 전업주부의 삶도 보람되겠지만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그녀가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특별한 강의를 들으면서다. 빠르게 고령화 사회가 되고 있는 요즘, 우리가 150세까지 산다고 하면 지금 함께 사는 남편과는 100년을 더 넘게 살아야 된다. 주부로서의 역할도 어느 시기가 되면 더 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뒤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본격적으로 나만의 직업을 찾는 과정은 빠를수록 좋다. 아니,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흔히 듣던 말이지만 진짜 옳은 말이다.) 서른아홉 아줌마가 이제서야 자신에게 알맞은 직업을 찾았다고 말할 때, 곁에서 남편들은 격려하며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왜냐하면 남자들 역시 평생 직장이란 없으니까 안심하긴 이르다. 어쩌면 마흔아홉 그가 이력서를 쓰게 될 지도 모르니까. 남편들을 위해서는 <또 다른 40년을 준비하는 40대 인생경영>이란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세상을 향해 자신 있게 소리쳐본다.

나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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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꿈이었을까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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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님의 첫 연애소설이라고 해서 무척 기대했다. 이 말은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는 것이지, 실망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적어도 내가 기대하는 연애소설은 달콤해야 한다. 왜냐하면 너무 현실과 다를 바가 없다면 재미가 없으니까. 현실은 굳이 소설이 아니라도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달콤한 이야기만을 원한다고 나의 유치함을 탓해도 어쩔 수 없다. 어쩌면 더 나이가 들고 늙어도 나의 바람은 여전할테니까.

'그것은 꿈이었을까?' -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잠시 제목을 잊고 책을 읽다보니 온통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린다.

준과 진. 의대생인 두 남학생은 친구들에게 '하품하는 쌍둥이'라고 불린다. 항상 붙어다니면서 하품을 동시에 한다나?

진이 좋아하는 비틀스의 노래마다 하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비틀스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잠시 난감했다. 무슨 연관이 있나 싶어서. 그러나 마지막 작가의 말을 보니 전혀 연관이 없다고 한다. 그저 그 이야기를 쓸 때 비틀스 음악을 들었다고 한다.

왠지 이 소설은 비틀스 음악을 들으면서 읽어야 그 느낌이 제대로 사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책 첫 페이지에 <주의 사항 : 비틀스 음악을 들으면서 읽지 않으면 내용이 헷갈릴 수 있음.>이라고 적어줬어야 된다.

우리 집에는 비틀스 음악이 없기에 그냥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왜 이 책이 연애소설일까? 난 모르겠다. (그러나 작품해설을 읽고 싶지는 않다. 느낌까지 설득당하기 싫어서.)

분명 여자와 남자가 나오긴 하는데 서로가 사랑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냉소적이면서 애잔한 느낌이 공존한다.

준의 꿈에 나오는 여자 마리아는 슬픔의 상징 같다. 이들 주인공은 온통 슬픔으로 가득 차 있어서 사랑이 들어갈 틈이 없는 것 같다. 처음에는 참 희한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씩 그들을 알 것도 같다.

솔직히 준의 모습은 보는 사람까지 나른하게 만든다. 특별한 열정이나 열의가 없는 사람을 보면 괜히 덩달아 힘이 빠진다. 세상 사는 일이 귀찮아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그가 꿈에서는 전혀 다르다. 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간절함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것이 불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내게는 준과 진, 모두가 꿈 같으니까.

뿌연 안개 속의 길을 걸은 느낌이다. 어디까지 왔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른 채 길 위에 서 있다.

아마도 그들이 말하는 슬픔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 것 같다. 내게는 그런 깊은 슬픔이 없으니까.

꿈이라고 해서 막연히 즐겁고 행복한 꿈만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연애소설이 가볍고 유쾌하기만 한 것도 아니겠지.

깊은 슬픔을 간직한 사람은 어떤 사랑을 할까?

작가가 말하는 연애소설이란 결국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닐까?

차디찬 슬픔의 여운.

현실의 슬픔을 외면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꿈에서조차 현실을 벗어나기 힘드니까.

한바탕 꿈 속을 헤매다 보니 내 모습이 보인다.

당신은 어떤 사랑을 꿈 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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