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환하니 서러운 일은 잊어요 - 문태준 시인의 초록문장 자연일기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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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주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참 부럽더라고요.

겨우 며칠 간의 여행에서도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을 바라보며 힐링이 되는데 이 좋은 걸 매일 누릴 수 있는 이들은 축복이지 않을까요.

《꽃이 환하니 서러운 일은 잊어요》는 문태준 시인의 제주살이 5년간의 기록을 담은 책이에요.

저자는 시골로 들어와 살면서 조금 바뀐 것이 있다면 조용하게 은은하게 일어나는 생활의 태도라고, 그것이 시골살이의 매력인 것 같아요. 마음은 자연에 있지만 몸은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에 끌리나봐요. 시인의 제주살이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역시나 초록의 문장들이 주는 싱그러움과 일상의 노동을 느낄 수 있는 땀내음이 있네요. 푸른 비와 맹꽁이 울음소리, 꽃들이 활짝 핀 여름 정원으로 시작해 가지마다 조롱조롱 자줏빛 무화과 열리는 가을을 거쳐 싸락눈 내리는 겨울, 한동안 얼어있던 마당가 수도에서 맑은 물이 쏟아지는 봄의 정원과 산빛을 보여주고 있어요.

"한동안 작약꽃이 피어 화단과 마당을 환하게 밝히더니 작약꽃이 지고 낮달맞이꽃이 피었다. 이 꽃들은 오일장에서 사서 심었는데 이제 두 해째 꽃이 피었다. 구근에서 시작된 이 꽃들은 각각의 성품에 기초한 것이되 흙과 물과 바람과 햇살과 구름과 꿀벌과 낮과 밤과 나의 작은 노동을 흔쾌히 받아서 개화한 것이다. ... 꽃은 험담을 할 줄 모르고, 꽃은 불평이 없고, 꽃은 분노가 없다. ... 연한 꽃잎이 수줍은 듯이 피어 있다. 그 꽃 앞에 내가 앉고, 식구가 앉고, 찾아온 손님이 앉고, 나비가 앉고, 시간이 앉는다. 가만히 앉아 숨을 고르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기운을 받는다. 꽃이 환하니 사람도 환하고 세상도 환하다. 서러운 일은 잊을 수 있다." (26-27p)

누가 작약꽃을 좋아한다길래 어찌 생겼나 보았더니, 아하, 겹겹이 여린 꽃잎을 옹그린 어여쁜 꽃이더라고요. 시인은 마당 화단에 작약꽃을 심어 봄마다 언제 피어나려나 마음 설레며 기다린다고 하네요. 이 기다림 자체가 개화를 보는 순간 못지않게 좋다고,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시골의 자연 속에 살면서 화단을 가꾸고 텃밭 농사를 짓는 시인의 일상을 보고 있노라니 소박하고 평온한 기쁨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네요. 내 마음속에도 작약꽃이 피어난듯 환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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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오세요, 저승길로 로컬은 재미있다
배명은 지음 / 빚은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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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에서 귀신이 젤로 무섭다는 사람들 중에 진짜 귀신을 만난 경우는 얼마나 될까요.

저 역시 지금껏 살면서 귀신을 본 적은 없지만 보이지 않을 뿐이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상상은 해봤어요.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나 악행을 저지른 자들은 쉽사리 이승을 떠나지 못해 귀신이 되어 떠도는 거라고 말이죠. 어찌됐든 귀신 이야기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인데, 이번 책에서 만난 귀신들은 친근한 이웃처럼 느껴졌네요. 특히 사천왕, 불교에서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킨다는 수호신의 등장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K 판타지가 완성된 것 같아요.

《놀러오세요, 저승길로》는 배명은 작가님의 어반 판타지 장편소설이에요.

이 소설의 주인공 여운영은 번아웃인 건지, 알 수 없는 우울감 때문에 회사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퇴사를 결정했어요. 막막한 운영에게 아빠는, 2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집을 유산이라며 주셨어요. 수원시 행궁동에 위치한 이층집은 1970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손수 지으신 집이라, 차마 팔 수 없었던 운영은 돈도 아낄 겸 직접 고쳐가며 커피숍을 준비하는데, 카페 이름은 '카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고 지었네요. 집을 수리하던 도중, 2층에 숨겨진 문을 발견하고 억지로 없앤 듯한 계단 아래에 골목으로 이어지는 입구를 막은 담장을 허물게 되는데... 어설픈 해머질로 담벼락을 부수다가 뜻밖의 손님을 만나게 되면서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는 이야기네요.

카페 주인이 된 운영과 저승길 상인회 그리고 사천왕의 아찔한 만남으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라는 신비로운 세계의 문이 열렸네요. 처음 접하는 이야긴데 전혀 낯설지 않은 이 익숙함은 우리 고유의 정서와 문화적인 공감대일 거예요. 사천왕 중 '국'은 왜 운영에게만 꼼짝을 못하는 걸까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망자들, 별별 귀신들, 저승길에 있는 상인들 등등 참으로 살벌하고 괴이한 존재들인데 무서워하기는커녕 참견하고 오지랖을 떠는 운영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졌어요. 운영이 본인만 몰랐던 매력과 대대로 내려온 특별한 재능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랄까요. 수원 화성 축제가 열리는 행궁동 거리, 그 어디쯤 있을 것 같은 운영의 카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가보고 싶네요. 분명 작가님은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을 거라고, 혼자만의 기대를 품고 있네요. 운영과 국의 컬래버레이션, 여기서 멈추기엔 너무 환상적이잖아요.


"있잖아요. 이 모든 게 운명 같지 않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OO를 보려고 필연들이 이 자리에 다 모였잖아요.

작은 세계평화 같달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평화가 오래 가도록 노력해야겠군요." (2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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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사투리 - 서울 사람들은 이거 어떻게 읽어요? 아무튼 시리즈 70
다드래기 지음 / 위고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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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잉, 실물 책이 요렇게 쪼매난 줄 몰랐네요.

문고판 사이즈보다 더 작은 것 같아요. 평소 사용하는 수첩 크기라서 주머니에 쏙 들어갈 듯.

《아무튼, 사투리》는 아무튼 시리즈 70번째 책이라고 하네요. 그동안 아무튼 시리즈의 다양한 주제들을 보면서 약간의 호기심 정도로 그쳤는데 이번엔 사투리가 좀 궁금했어요. 주변에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우리말인데도 우리말 같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사투리, 그것이 알고 싶다는 심정으로 책을 펼쳤는데, 사투리에 대해 할 말 많은 저자의 흥미진진한 화개장터 인생 스토리를 만났네요. 부산에서 태어나 광주에 살고 있는 만화가 '다드래기'는 현재 영호남을 관통하는 화개장터 언어를 구사하고 있어요. 자연스러운 경상도와 전라도의 컬래버레이션이라는데, 사투리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어떤 느낌인지 영 감은 안 오지만 쫀득쫀득한 말맛이 주는 재미가 있네요. 사투리의 재발견, 요근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사투리 자체가 맛깔스럽게 등장하면서 사투리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각 지역이 가진 정서적 특성이 녹아있는 사투리, 드디어 그 언어적 가치에 대해 제대로 알아봐주는 시대가 온 것이겠지요. 저 역시도 잘 몰랐던 사투리의 묘미를 알아가는 중이네요.


"영화 <친구>가 나에게 그랬듯 지역 배경의 드라마들이 수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지난 시간의 추억을 상기시켰고, 그와 함께 슬쩍 누르고 있던 사투리를 분출하게 만들었다. 부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큰 신호탄이었던 것 같다. 이후 광주를 배경으로 한 <오월의 청춘>, 제주인들의 삶과 사랑을 그린 <우리들의 블루스>, 충남 부여의 청년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년시대> 등이 계기가 되어, 드라마 속 사투리에 반응한 지역 사람들의 격의 없는 대화가 순식간에 SNS를 훈훈하게 만들기도 했다.

특히 육지 사람은 알아듣기 힘든 제주도 사투리가 나오는 드라마에 대한 제주인들의 반응은 한결같은데, 바로 '나는 안 쓰는 말인데 신기하게 다 알아먹겠다'는 것. 그들 또한 그야말로 몸속에 사투리가 스며든 것이다." (1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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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꽃
제임스 서버 지음, 강무홍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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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하얀색 표지 위에 노란 글씨로 쓰여진 《마지막 꽃》은 제임스 서버의 그림책이에요.

20세기 미국 최고의 유머 작가이자 만화가인 그는, 첫 장에 이렇게 적고 있어요. "로즈메리에게 너의 세상은 나의 세상보다 더 좋아지리라는 애틋한 바람을 담아"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일 거예요. 우리 아이들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행복하기를 말이에요.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두 달 뒤인 1939년 11월에 출간되었는데, 이야기 속에서는 가상의 전쟁인 제1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것들이 파괴되고, 폐허가 된 모습을 그려내고 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 번도 꽃을 본 적 없는 소녀가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꽃 한 송이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작은 변화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그 다음은... 희망은 서서히 작은 풀꽃처럼 피어나는데, 왜 비극은 갑자기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걸까요. 책 속의 그림은 아무런 색채 없이 검은 펜으로만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어요. 허허벌판에 피어 있는 한 송이 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어요. 그림으로 보는 우화, 이 책은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에요. 불필요한 말 말 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진실과는 거리가 먼 말들이 넘쳐 나고 있어요. 나쁜 말들이 사람들의 관계를 갈라놓고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고 있어요. 책속에서는 총칼을 든 군인들의 모습으로 전쟁을 묘사했는데, 무시무시한 전쟁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가를 인류는 이미 역사를 통해 알고 있으면서도 멈추질 않네요.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려고 들 때 갈등과 분열이 생기고, 끔찍한 전쟁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상식을 뒤엎는 자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도록, 상식 있는 다수들이 행동해야만 해요. 세상에 남은 마지막 꽃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희망을 키워가야 할 시점이네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모두를 위한 희망이 담긴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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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우주에서 우리 만나더라도
마크 구겐하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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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엄청난 불행이 함께 찾아온다면... 너무나 잔인한 것 같아요.

이 소설의 주인공 조너스 컬런은 생애의 최고의 밤으로 시작해 최악의 비극으로 끝난 그날 이후 매일 악몽에 시달리고 있어요. 2년 전 그날, 조너스는 아내 어맨다와 함께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교의 마그나 대강당에서 행사를 앞두고 있어요. 긴장하는 조너스에게 어맨다는 작은 상자를 건넸고, 그 안에는 임신 테스트기가 들어 있었어요. 와우, 노벨 물리학상를 수상하는 자리에서 임신 소식까지, 두 사람은 환한 표정으로 행복의 순간을 누리고 있었죠. 교통사고가 나기 직전까지는, 그것이 어맨다와의 마지막 밤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조너스는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아기를 동시에 잃고 말았어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요? 아니오, 그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평행우주, 다중세계의 존재를 증명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조너스는 다중세계 어딘가에 살아 있는 어맨다를 다시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어요.

마크 구겐하임 작가님의 SF 소설, 《다른 우주에서 우리 만나더라도》는 우주를 뛰어넘는 조너스의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아마 누구라도 조너스와 같은 선택을 했을 거예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면 1%의 가능성이라도 매달렸을 것 같아요.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SF 이야기처럼 원하는 시공간에 뿅! 단번에 갈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조너스의 다중우주는 만만치가 않네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희망만큼 지독한 고문은 없는 것 같아요. 더군다나 수많은 평행우주들 사이를 이동하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는데... 흥미로우면서도 조금 섬뜩하기까지 하네요. 사랑과 운명, 과연 조너스는 사랑하는 어맨다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이야기 속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사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어. 집에 가자." (388p)였네요. 우리에겐 지금 여기, 유일한 우주가 있다는 것, 왠지 뭉클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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