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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의 진짜 직업
나심 엘 카블리 지음, 이나래 옮김 / 현암사 / 2025년 8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뭘 먹고 살래?"
이 분야를 전공한다고 하면 어른들이 하던 말이에요. 아무래도 옛날부터 듣던 말이 있다보니 철학에 대한 편견이 생겼던 것 같아요. 철학을 전공한 뒤의 진로, 아무래도 대학에서 연구하거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할 수는 있지만 '잘 먹고 잘 사는' 일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던 거죠. 더군다나 철학자들의 난해한 말들은,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했고요. 근데 나이들수록 철학 공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걸 보면, 역시 철학의 쓸모는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철학은 철학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켜켜이 스며들어 있다는 걸, 인생을 조금 살아보니 이제서야 인생 공부가 곧 철학이구나 싶더라고요.
《철학자들의 진짜 직업》는 저자의 궁금증에서 시작된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참, 저자인 나심 엘 카블리는 철학 교사이자 박사님으로, 철학의 역사를 되짚어보다가 과거의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는지를 찾아보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이 책은 철학자들의 밥벌이 기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철학과 일은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소개된 40인의 철학자들을 통해 '지적 노동'과 철학 외적 노동이 어떻게 현실에서 균형을 이뤄내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요.
"스피노자는 당대에 렌즈 세공사로도 알려져 있었다. 렌드 세공은 그의 '밥벌이'였다. 일 덕분에 그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었고, 시간이 나면 철학에 몰두할 수 있었다." (20p) 스피노자가 렌즈 세공사였다니, 철학자가 생계를 위한 직업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가 만든 렌즈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하는 도구였다는 점도 신기하네요. 저자는 단순히 철학자들의 직업뿐만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기', '깊이 파고들기'를 통해 각자 생각하고 더 공부할 거리를 제공해주네요.
"당시 광학 기술이 경이로운 발전을 생각하면, 17세기를 진정한 계몽시대라고는 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빛의 시대라고는 부를 수 있지 않을까?" (24p) 우리는 오감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인식의 세계를 넓혀가는데, 이때 철학은 사유의 도구로써 삶을 지혜롭게 이끄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악보 필사가였던 장자크 루소, 변호사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가장 이색적인 직업을 꼽으라고 하면 노예가 아닐까 싶어요. 노예는 엄밀히 말하면 신분이지 직업은 아니지만 육체적인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철학을 완성해냈다는 점에서 진정한 철학자의 면모를 느꼈네요. 어쩌면 철학이란 타인의 시선이나 외적인 것들에 얽매여 있는 우리의 정신을 자유롭게 만드는 길이 아닌가 싶어요. 철학 없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말하지만 결국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철학을 만날 수밖에 없어요. 저자의 말처럼, "두 발을 현실이라는 땅에 꼭 붙인 채 멀리 바라볼 줄 아는 것" (17p) 이 '진짜' 철학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