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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엘리 / 2025년 8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목을 보면서 갸우뚱했네요.
마치 영혼이 없는 작가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단숨에 뒤집는 문장이니까요.
그리고 '영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알고 있다고 착각해서 놓쳤던 부분들을 들여다보게 되었네요.
《영혼 없는 작가》는 다와다 요코 작가님의 독일에세이라고 하네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러시아문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로 건너가 함부르크대학교에서 독문학 석사 학위를, 취리히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2년부터 2006년까지 함부르크에서 살다가 2006년부터 베를릴에 살면서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쓰는 작가라고 하네요.
이 책은 다와다 요코의 대표작이자 초기 산문 작품들인 『유럽이 시작하는 곳』 (1991) , 『부적』 (1996), 『해외의 혀들 그리고 번역』 (2002)에 수록된 텍스트를 새롭게 묶어낸 것이라고 해요.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책 속의 책 - 사전 마을> (110p)으로, 다와다 요코 작가가 일본어로 쓴 글을 페터 푀르트너가 독일어로 옮긴 글을 다시 최윤영 교수가 한국어로 옮겼다는 거예요. 일본어 원문, 독일어 번역본, 독일어를 다시 한글로 번역한 글이 나란히 실려 있는데, 기묘한 느낌이 들었어요. 언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외국어를 전혀 모르는 일본인, 독일인, 한국인이 이 부분을 읽을 때, 과연 똑같은 의미로 받아들일까요. 충실한 번역을 통해 문장이 지닌 의미를 안다고 해서 사유의 깊이까지 같을 순 없을 거예요. 저자는 타자기 앞에 앉아 있으면 타자기가 자신에게 어떤 언어를 제공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그래서 모어(母語)가 아닌 독일어 덕분에 독일어로 여성 명사인 타자기를 말엄마(語母)라고 부르며, 새로운 말엄마를 얻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네요. 새로운 말엄마를 갖게 되면 유년 시절을 다시 한번 겪을 수 있다고, 즉 단어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유년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는 거예요. 단어들이 문장 내의 의미에서 해방되면서 모든 단어가 각자의 삶을 살게 된다는 표현이 놀라웠네요. "모어에서는 단어들이 사람과 꼭 붙어 있어서 도대체 언어에 대한 유희를 하는 재미를 느낄 수 없다. 모어에서는 생각이 단어에 너무 꼭 들러붙어 있어서 단어나 생각이나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수가 없다. 외국어를 쓸 때 스테이플러 심 제거기 같은 것을 갖게 된다. 이 제거기는 서로 바짝 붙어 있는 것과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을 모두 떼어놓는다." (49p) 실제로 뇌과학 연구 결과를 보면 이중언어 사용자들이 더 많은 회백질을 유지하고 백질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는 더 효율적인 뇌의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대요. 뇌의 회백질은 사람들의 경험에 의해 부피가 달라지는데, 새로운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경험치가 높아지는 거예요.
"나는 처음 유럽에 올 때 시베리아 기차를 타고 오면서 내 영혼을 잃어버렸다. 그다음에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갔을 때 내 영혼은 유럽으로 가는 길 어딘가에 있었다. 나는 내 영혼을 잡을 수 없었다. 다시 유럽에 올 때 내 영혼은 일본으로 가는 길에 있었다. 그다음에는 몇 번 비행기를 타고 오고 가고 했는데 내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그것이 여행자에게 영혼이 없는 이유다. 긴 여정에 대한 이야기는 영혼이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진다." (58p)
독일에서 저자는 항상 자국어를 외부에서 건드리는 외국인 취급을 받았다고 해요. 그에 반해 미국 학생들은 영어가 자신들의 언어인 것처럼 독일어가 저자의 언어라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건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의 고유한 특성일 텐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약간의 벽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다와다 요코 작가님은 두 개의 언어를 오가며 오롯이 언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우리에게 철학적 사유와 상상력을 전해주고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