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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김미조 지음 / 수미랑 / 2026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꿈인가 싶은 이야기였네요.
똑같은 꿈을 꾼 적은 없지만 죽음을 떠올리며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은 있거든요. 죽고 난 뒤에는 어떻게 될까라는... 어쩌면 모두가 궁금해 하면서도 끝까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미리 만나 본 건지도 모르겠네요. 김미조 작가님의 장편소설, 《하루》는 죽은 자들의 이야기네요.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자신이 언제 죽을지는 알 수 없잖아요. 불현듯, 느닷없이, 돌연히, 불시에,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죽음, 그 죽음을 소재로 꿈 같은 이야기가 펼쳐지네요. 주인공 '나'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냉장고 문을 열었을 뿐인데 이세계로 연결되는 통로마냥 직사각형의 틈 너머로 뭔가 이상한 것이 보였어요. 쭉 이어진 길 위에 책상 하나가 보이더니, 친하게 지내던 김 사장이 나타나서는 대뜸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해. 그냥 이 책을 먹기만 하면 되거든." (11-12p)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리고 김 사장이 건넨 책은 <치다꺼리 지침서>, 시뻘건 얼굴을 한 책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씩 웃고 있더래요. 무서워서 꼼짝 못할 것 같은데 김 사장이 재촉하는 바람에 책을 먹었고, 주인공 '나'는 생각지도 못한 임무를 맡게 되었네요.
적요의 설명에 따르면 죽은 것을 알지만, 세상에 미련이 남은 자들의 집요한 의지가 저승을 소란스럽게 만들었고, 그들을 위한 '리턴 서비스'를 운영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죽은 자에게 주어진 하루, 자신이 살았던 세상에 잠깐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을 준 거예요.
불쌍한 사람들, 단지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상황이 너무 비극적이네요. 그들에게 주어진 하루를 동행하는 '나'는 숨겨진 진실을 보고야 마는데... 죽음을 통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삶들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네요. 책 속의 책, <치다꺼리 지침서>는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네요. 치다꺼리가 된 '나'와 그들의 하루는 신비로우면서도 잔인하게 느껴졌네요. 가엾은 도깨비... 그러나 안타까운 마음이 그들을 거쳐 나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걸 깨닫는 순간, 아... 다음은 내 차례구나, 끝나지 않은 이야기였네요.
"다 지워줘." 언젠가 허 08은 이렇게 말했다.
감정의 삭제와 동반되어야 하는 것은 생각의 삭제, 둘 중 하나만 남겨지는 건 치다꺼리에 주어진 가장 큰 형벌이다.
미처리 시신 주인들을 치다꺼리하는 노동의 대가가 이 같은 형벌인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나마 생각 대신 감정을 삭제시킨 것은 저 세상이 치다꺼리들에 주는 최소한의 자비일지도 모르겠다. (219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