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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넘 숲
엘리너 캐턴 지음, 권진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버넘 숲》은 최연소 부커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엘리너 캐턴이 10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이라고 해요. 이 소설은 스티븐 킹과 버락 오바마의 추천을 받고, <뉴욕타임스>를 포함한 다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1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오웰상과 길러상,네로북 어워드 후보에 올랐다고 하네요. 그럴 만하다고 생각해요. 버넘 숲은 지금,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에서 마녀들의 예언은 맥베스의 욕망에 불을 지폈고, 기어이 악한 짓을 저질러 권력을 거머쥐게 만들었으며, 버넘 숲은 절대 움직일 리 없으니 자신의 권력은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제멋대로 해석하고 맹신한 맥베스에게 비극적인 최후를 선사했네요. 맥베스의 비극은 진실과 같은 거짓말을 하는 악마의 모호한 예언 때문이 아니라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욕망을 선택한 맥베스의 자유의지였고, 잔혹하고 무자비한 맥베스 부인에게 설득당한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마음의 결과였네요.
뉴질랜드의 소설가 엘리너 캐턴은 이 소설에서 뉴질랜드의 버려진 땅에서 작물을 가꾸는 게릴라 가드닝 단체인 '버닝 숲'의 설립자 미라와 일원들, 땅 주인 오언 다비시와 억만장자 로버트 르모인 간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어쩌면 이리도 닮았을까요. 소설 속 인물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생생한 현실감으로 우리의 양심을 콕콕 찔러대고 있어요. 자기 살 궁리만 하는 인간, 불리한 상황에 처하자 제일 먼저 탈출하려고, 이미 탈출 준비를 한 모습이 너무나 역겨웠어요. 신도 아니고, 인간 같지도 않은... 결국 우리 자신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지 않는, 어렵지만 해내야 하는 선택들인 것 같아요. 오직 본인의 욕망을 위해 잘못된 일을 저지르는 자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세상의 비극은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네요. 중요한 건 그들의 선택은 반드시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것, 마녀들의 예언에 홀려 죄를 저지른 자는 버넘 숲의 공격을 피할 수 없을지니.
「이를테면 나쁜 놈들은 뭘 해줘도 고맙다는 말을 안 하고 무슨 짓을 저지르고도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해······. 하지만 내 생각을 해보자면, 음, 나라면 사실 내 잘못이 아닌 일에 억지로 사과하기를 택할까, 아니면 진심이 아닌데 억지로 감사하는 걸 택할까?」 (247p)
「그리고 훨씬 더 엿 같은 건 뭐냐면, 당신한테는 세상을 더 낫게 만들 힘이 있다는 거예요. 역사를 통틀어, 오늘날 억만장자들보다 재난을 막을 힘을 더 많이 갖춘 사람은 사실상 없었어요. 당신이 쓸 수 있는 기술, 자원, 돈, 영향력, 연줄······. 사실상 역사상 그 누구도 이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단 한 번도.」
「맞아요, 우린 신들 같아요. 하지만 신들은 변덕스럽기도 해요. 늘 사람들이 원하는 걸 하지는 않거든요. 신들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움직이죠.」
「정말로 진지하게 자기가 신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어떤 아이러니도 없이?」
「알겠어요. 당신은 내가 내 존재에 대해 사과하길 바라는군요. 당신은 내가 회개하고 모든 재산을 줘버리길 바라죠. 왜냐하면 드디어, 이 오랜 세월 끝에, 마침내 난 당신을 만났고 빛을 봤으니까, 그렇죠?」
「꽤 괜찮은데요, 시작으로는.」
「그래서, 다시 말하자면, 당신도 신이 되고 싶어 하죠.」
「이봐요, 여기서 영원히 살겠다고 난리 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고요. 난 생존주의자가 아니에요. 염병할 테크노 미래주의자도 아니고, 난 내가 죽는다는 걸 알아요. 그래도 괜찮다고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괜찮은 거죠.」
「난 다른 대안 없어요. 그게 인간이라는 거예요.」
「다른 대안이 실제로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러면 생각이 아주 많이 바뀔걸요. 그것도 인간이죠.」 (275-277p)
「<해리포터>에서 말이야. 덤블도어가 이런 말을 하는 장면 있지. 우리 모두 옳은 일과 쉬운 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러게.」
「내가 보기에 덤블도어는 잘못 생각하고 있어. 그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뭐가 옳은지는 사실 아무도 모르잖아. 내 말은, 뭐가 옳은지 안다고 생각할 수 있고, 안다고 자신에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선택하는 시점에는, 그러니까 그 순간에는 절대 확신하지 못하잖아. 그냥 바랄 뿐이지. 그냥 일단 행동하고 최선의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거지. 지나고 보면, 그게 옳은 일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었을 수도 있지. 아닐 경우에는, 적어도 노력은 했다고 말할 수밖에. 하지만 잘못된 일은 말이야. 종종 훨씬 분명해. 잘못된 일은 많은 경우 옳은 일보다 더 잘 보여. 더 명확해. 이건 내가 안 넘을 걸 아는 선, 이건 내가 절대 하지 않을 일, 이런 식으로.」
「어, 알겠어.」
「그래서 어쨌거나, 이런 생각을 했어. 살면서 하는 진짜 선택들, 정말 어렵고 파장이 큰 선택들은 절대 옳은 일과 쉬운 일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고. 그건 잘못된 일과 어려운 일 사이의 선택이야.」 (332-333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