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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바람난 여자
아니 프랑수아 지음, 이상해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제목이 끌려 읽게 되었다. 책과 바람날 정도는 아니지만 너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니까.
부제목 또한 재미있다 - 책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작용들에 대한 소소한 고찰.
책을 자주 읽는 이들이라면 일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는 평범하면서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저자 ‘아니 프랑수아’는 30년간 오로지 책 읽는 일만 한 사람이다. 직업적으로 편집일을 하다보니 의무적인 책 읽기와 일상에서는 본인이 너무도 좋아하는 책 읽기로 이루어진 그녀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어야만 잠들 수 있는 그녀의 습관은 아마도 책이 그녀에게 주는 의미, 그만큼의 친밀감이 아닐까 싶다. 나는 워낙 뒹굴거리며 책을 봐서 처음에는 의자에 앉아 보다가 어느새 누운 채로 ‘앞으로 나란히’를 하고 책을 보고 있다. 책을 만만하게 본다.
예전에는 새책을 사면 애지중지 구겨질까, 손때 탈까 조심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책에 대한 예의가 없어진 모양이다. 맘에 드는 구절이 나오면 서슴없이 펜을 들어 그어주는 과감함이 생겼다. 책에게 너무 예의를 갖춰 대하다 보니 멀어지고 책장에 얌전히 모셔놓게 된 것 같다. 너무 멀어진 타인처럼 말이다. 책이 책장에 그냥 꽂혀져만 있다는 것이 오히려 책을 더 무시하는 처사라서 마음을 바꿨다. 만만하게 생각하자고.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 휙휙 들춰보고 펜으로 그어진 부분이 많은 책, 손때 묻은 책들은 그만큼 나의 사랑을 받았다는 징표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아니 프랑수와’는 독서광이다. 그녀가 말하는 독서광 일반병리학을 보며 웃음이 났다.
“….책을 가지고 다니는 일만으로도 독서광은 부두 노동자로 변하고 만다. 간단히 말해, 적어도 3킬로그램을 어깨에 메거나 등에 짊어지고 다니다 보면, 제2경추부터 미저골에 이르기까지 척추가 변형되어 망가진다….대부분 어딘가에 괴고 있는 팔꿈치에 생기는 까끌까끌한 못이나 접촉성 피부염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그것은 귀를 약간 멀게 만든다. (“그거 다 읽고 나서 샐러드 좀 사다 줄래?” “……” ) 끓기 시작한 주전자의 분노에 찬 날카로운 외침만이 독서광을 선택성 청각 장애에서 끄집어낼 수 있다….독서는 잠을 못 자게 만든다….독서광은 손전등, 가로등, 깜빡이는 네온등, 자동차 미등, 촛불의 가물가물한 빛 아래에서도 눈을 비벼가며 책을 읽을 수 있다. 대부분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안경을 쓴다……”
나는 독서광은 아니지만 정말 흥미진진한 책을 읽을 때만큼은 독서광과 비슷한 모습이다. 한 장을 넘길 때의 안타까움, 읽는 순간에는 누구에게도 방해 받고 싶지 않은 자폐성, 위급한 상황이 아닌 경우는 귀를 닫는 선택성 청각 장애까지.
그녀는 책을 마약과 같다고 생각한다. 독서광, 책중독증 – 만약 이런 질환명을 만든다면 해당되는 사람이 꽤 될 것이다. 중독이란 표현은 독서로 인해 일상 생활이 불편하거나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평생 책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라면 마약의 중독성보다 강하다 할 수 있겠지 싶다. 그녀가 책벌레, 책 허기증 환자가 된 것은 주변의 권유가 아니라 오히려 읽지 말라는 억압, 금기에 대한 반항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재미난 일이다. 우리도 어릴 적에 하지 말라는 것에 더 집착하고 어기는 순간의 쾌감을 느끼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책을 읽지 않는 아이 때문에 걱정인 부모에 대한 충고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부모가 먼저 책에 빠져 보라고, 그런 뒤에 서재에 아이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어린 녀석이 어딜 감히!”라는 모욕적인 말로 그들을 쫓아내라고. 그렇게 해도 책에 흠뻑 취하는 방식으로 반항하지 않는 아이는 진정한 반항아, 호기심도 없는 아둔한 녀석, 혹은 자극해봤자 씨도 안 먹히는 철학자라고.
요즘은 아이들에게 책을 좋아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부모들이 많다. 그러면서 정작 부모가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이들도 책과 멀어질 것이다. 책 읽는 즐거움은 마치 행복한 바이러스와 같다. 누군가 책에 빠져 재미있게 읽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속으로 무슨 책일지 궁금할 것이고 적극적인 사람은 그 책을 빌리거나 사서 보게 될 것이다.
가을이다. 선선한 바람이 쾌적한 느낌을 준다. 책상 한 켠에 보고 싶은 책들을 쌓아놓고 흐믓한 미소를 지어본다. 나의 손길과 눈길이 오길 간절히 기다리며 얌전히 놓인 책들에게 골고루 애정을 주리라 생각하면서.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책과 관련된 다양한 수다를 떤 느낌이다. 얇고 손에 쏙 잡히는 책 크기가 맘에 든다. 역시 책은 만만해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