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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들 - 거의 모든 사람의 이야기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조구호 옮김 / 알렙 / 2024년 6월
평점 :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제대로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역사를 알아야 해요.
근데 그 역사가 달의 뒷면처럼 감춰진 부분이 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구, 백인, 남성, 권력자가 아닌 '거의 모든 사람'의 역사"라는 소개글을 보고,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거울들》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다시 쓴, 달의 뒷면을 보여주는 역사책이에요.
이 책은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인류의 근원적인 탐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세계사를 지배해왔던 서구, 백성, 남성, 권력자를 제외한 더 많은, 거의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진짜로 600여 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서 기존의 역사책과는 결이 다르네요. 저자는 첫 장에서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의 출처를 생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어요. 출처가 더 많은 지면을 차지하기 때문이에요.
세계사를 다룬 역사책이지만 고대 문명의 발전과 국가의 성립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지 않고 단편적인 이야기로 구성한 점이 놀라웠어요. 우리가 알다시피 최초 인류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완벽하게 담아낸 사료는 존재하지 않아요. 수많은 유적과 유물, 역사적인 자료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세계사라는 점, 원래 짜깁기한 역사라는 걸 잊고 있었을 뿐이에요. 마치 불변의 진실인양 세계사를 읊어댄다면 그건 거짓말인 거죠. 저자가 선택한 방식은 이야기예요. 이야기를 통해 외면하거나 무시했던 진실들을 꺼내어 보여주고 있어요. 짧은 이야기들을 '거울들'이라고 표현하면서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잊힌 사람들'을 주목하고 있어요. 인류 역사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는 "우리는 욕망으로 만들어진 존재다." (19p) 라는 거예요. 아프리카에서 최초의 인류가 탄생했다는 사실은 고인류 화석의 아이콘 '루시'가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되었고 아프리카 북부 모로코 제벨 이르후드 동굴에서 약 32만 년 전으로 연대가 밝혀진 초기 호모사피엔스 화석이 발견되었기 때문인데, 이러한 내용 대신에 이 책에서는 "아담과 이브는 검은색이었을까? 인간의 세상 여행은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 그곳으로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지구 정복을 시작했다." (19p)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동안 현생인류의 기원과 발상지를 알기 위한 연구가 오랫동안 이루어졌고, 최초의 현생인류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살았다면 우리는 당연히 같은 뿌리인데 왜 인종 차별이 일어나는 걸까요. 저자는 그 원인을 인종주의가 기억상실증을 낳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어요.
아메리카 정복을 악마 퇴치 작업이라고 여겼던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을 자신과 동일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꺼리낌 없이 학살했어요. 원주민들의 땅과 목숨을 빼앗은 정복자들의 피부가 희었기 때문에 '서구, 백성, 남성'이라는 단어들이 '권력자'의 이미지가 되어 끔찍한 역사를 만든 거예요. <아메리카인들>이라는 이야기를 보면, "공식 역사는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가 파나마의 어느 산꼭대기에서 두 대양, 즉 태평양과 대서양을 처음 본 사람이었다고 언급한다. 그렇다면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장님이었다는 말인가? ... 메이플라워호의 순례자들은 하느님이 아메리카가 약속의 땅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귀머거리였다는 말인가? 그러고 나서, 북쪽에서 온 그 순례자들의 손자들은 이름과 그 밖의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 아메리카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다. 지금 다른 아메리카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224-225p) 라고 나오네요. 우루과이의 좌파 지식인이자 언론인, 소설가였다는 에드아르도 갈레아노의 책은 이번이 처음인데, 무거운 내용을 부드럽고 우아하게 풀어내는 솜씨에 반했네요. 승자에 의해 왜곡되고 은폐되며 날조된 역사를 바로잡는 이야기, 진짜 세계사를 읽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