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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1~3 세트 - 전3권
현기영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평점 :
"어떠한 비극,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_ 2023년 초여름, 현기영
《제주도우다》는 현기영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우선 "제주도우다"라는 말은 제주어로 '제주도입니다'라는 뜻이에요. 소설은 제주 출신 안영미와 그의 남편 임창근이 함께 장편 다큐를 제작하는 것으로 시작되네요. 영미 할아버지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때의 참사를 형상화해내려는 거예요. 당시 열여섯 살이던 영미의 할아버지는 그 사건으로 누나와 외삼촌을 한꺼번에 잃었고 그 자신도 죽음의 문턱까지 끌려갔었다고 해요. 이 소설은 1945년에서 1948년까지, 한국사에 유례없는 무서운 폭력, 국가폭력에 내몰려 희생당한 제주도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영미야, 창근아, 이 할아비도 어릴 적엔 꿈이라는 게 있었다. 허어, 황당한 꿈이주만, 중학생 시절에 나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고 싶었주. 그런데 그 무서운 사건이 내 꿈을 완전히 박살 내버린 거라. 그 사건 후로는 모든 게 헛것으로 보여 무얼 쓸 수가 없었어. 모든 것이 헛것이고 그 사건만이 진실인데, 당최 그걸 쓸 엄두가 안 나는 거라, 무서워서. 그걸 글로 써야 하는데, 그걸 쓰고 싶은데 무서워서 말이야. 어, 지금도 무서워······" (15p)
할아버지는 이야기 도중 눈물을 흘릴 때가 많았고, 한라산의 깊은 눈 속으로 사라진 누이 안만옥을 떠올리며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기까지 했어요. 인간이라면 결코 저지를 수 없는 만행이기에 세월이 흘러도 지울 수 없는 비극이 된 거예요. 일제의 극심한 압박에 짓눌렸던 제주, 그로 인해 희생된 무고한 생명들... 그때의 생존자들은 하나 같이 "살아 있는 죽은 자" (356p)였고, 살아 있는 죽은 자의 삶이었던 거예요. 불과 75년 전의 일이에요. 3만여 명의 양민들이 소리 없이 죽어갔고, 유족들은 오랜 세월 억울함과 분통함을 꾹꾹 억누르며 살아왔어요. 그 애통하고 절통한 설움의 한을 어찌 풀어내야 할까요. 제주도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낸 《제주도우다》를 통해 우리 모두가 제주도를 이해하고, 영령들을 추모하고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진상조사보고서는 4·3 당시 인명피해를 2만 5,000명에서 3만으로 추정한다.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6·25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이다.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 536p>
과거 반세기가 넘도록 금기의 영역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을 위령하는 행사조차 공개적으로 열기 어려웠고, 4·3 희생자 추념일을 법정 기념일을 봉행하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을 거쳤어요. 법정 기념일 지정을 계기로 지금까지 4·3 사건을 둘러싸고 빚어진 이념 논쟁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되었는데, 윤 대통령의 추념식 불참은 시사하는 바가 크네요. 제주 4·3 진상규명에 앞장서온 제민일보가 4월2일자 4면 하단에 제주 4·3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5단 통광고를 게재했다는 사실은 몹시 충격적이에요. 일부 극우단체의 역사 왜곡과 폄훼 시도가 끊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구태의연한 이념 논쟁으로 분열과 혐오를 조장하는 무리들에게는 엄중한 경고가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