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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한 여행자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배니 로페즈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무척 놀랐던 점은 지구 곳곳을 관광하듯 즐기는 여행자의 기록이 아니라 북극, 남극, 초원, 숲, 사막, 평원, 섬 등 자연 본연의 땅을 탐험하며 생명이 깃든 아름다운 지구와 상반된 인간의 야만성을 성찰하는 회고록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새삼스럽게도 여행의 진짜 의미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된 책이네요. 1945년 미국 뉴욕주 포트체스터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주 샌퍼낸도밸리와 뉴욕 맨해튼에서 성장했고, 노터데임대학교에서 글쓰기, 사진, 연극을 공부했던 배리 로페즈는 1960년대부터 땅과 인간의 관계를 비롯해 인간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 픽션 및 논픽션 작품들을 발표했고, 환경운동가, 과학자 등과 공동작업을 하며 평생 약 일흔 개 나라를 여행하며 스무 권 넘는 책을 펴냈고, 2020년 일흔다섯 나이에 암으로 생을 마감했어요.
《호라이즌》은 배리 로페즈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집필한 장편 논픽션이에요. 이제껏 만나본 벽돌책들 중 손에 꼽을 정도, 총 928쪽의 어마마한 분량의 책이에요.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저자가 평생 여행하고 탐사하며 보낸 지난 세월을 담아낸 자전적 성격의 이야기이니 그 시간을 고려한다면 비교적 압축된 내용이라고 볼 수 있어요. 로페즈는 첫 장에 "여행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살갗을 바꾸는 일이다." (7p) 라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남방 우편기』 의 문장을 인용했는데, 평생 여행자였던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문장을 찾아낸 것 같아요.
"··· 파울웨더곶에 겨울 폭풍을 만나러 갔을 때는 마흔아홉이었으며, 스크랠링섬의 고고학 캠프로 날아갔을 때는 사십 대 초반으로 북미의 극북 지역에 관한 책인 『북극을 꿈꾸다』를 막 출간한 시점이었다는 것, 그리고 남극횡단산맥의 그레이브스누나탁스에 다녀왔을 때는 쉰넨이었다는 것···
스크랠링섬의 고고학 유적지를 찾아갔던 젊은 남자는 책의 끝부부에서 포트패민으로 가는 길에서 낯선 남자를 만난 이와 같은 사람이지만, 둘은 서로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12p)
대부분 여행을 주제로 한 책은 여행을 하는 지역이나 장소에 초점을 두기 마련인데, 로페즈의 책은 여행자의 시선으로 세상과 나 자신을 돌아보며 지구와 인류의 운명을 사유하게 만드네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우리에게 무관심한 자연의 세계가 우리를 덮쳐오는 가운데, 우리가 문화의 경계선을 넘어 서로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인류는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60p) 로페즈는 자신이 오랫동안 여러 물리적 세계들을 여행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이야기하네요. 장소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아서 몸으로 수집한 정보들과 단절될 때도 있었다고 말이죠. 낯선 장소에 대한 호기심이 다양한 생물과 생태계를 알아가는 경이로운 경험인 동시에 진화의 어둠 속을 나아가는 과정인 거예요. 우리가 아는 한 다른 어떤 생명체도 호모사피엔스만큼 정체성과 운명에 주의를 집중하지 않지만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기에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의 소중함이에요. 로페즈는 지평선까지 막힘없이 뻗어 있는 남극 고원의 광경을 바라보며, 그 광경이 그대로 또 하나의 태평양이었다고, 너무나 철저히 텅 빈 공백의 광경이라서 공간조차 존재하지 않는 듯 느껴졌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지평선, 수평선 너머에 존재하는 것에 관한 깨우침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