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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와인드 : 하비스트 캠프의 도망자 ㅣ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1
닐 셔스터먼 지음, 강동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은 우리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요.
가끔 너무 엉망진창이라서 도저히 희망을 찾을 수 없을 때도 있지만 진짜 희망을 버린 건 아니에요. 꺼질 듯 꺼지지 않는 희망이 오늘을 살게 하는 힘인 것 같아요. 설사 자꾸만 암울한 미래가 그려진다고 해도 말이죠. 오히려 디스토피아적 세상을 그려낸 이야기가 따끔하고 아픈 예방접종이 될 수 있겠구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했네요.
미국의 유명한 SF 작가인 닐 셔스터먼의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시리즈가 출간되었어요. 미국에서는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모두 4권의 시리즈가 나왔고, 미국 TV 시리즈 제작이 확정됐다고 하니 무척 기대가 되네요. 우선 '디스톨로지'라는 단어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작가 본인이 만든 신조어라고 하네요. 나쁘거나 어려운 것에 대한 연구를 뜻하는데, 이는 독자들이 단순히 디스토피아 SF 소설을 읽는 게 아니라 철학적 문제에 직면하도록 만든 이야기임을 표방하고 있어요. 도대체 어떤 이야기이길래... 첫 장을 읽으면서 기겁을 했네요.
"··· 전쟁을 끝내기 위해 <생명법>이라 알려진 일련의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 법은 생명파와 선택파를 모두 만족시켰다.
생명법은 인간이 잉태된 순간부터 13세에 이를 때까지 그 생명에 대한 침해를 금지한다. 그러나 13세에서 18세 사이의 아동은 부모가 소급적으로 <중절>할 수 있다. 조건은 아동의 생명이 <기술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동을 중절하는 동시에 살려 두는 과정을 <언와인드>라 한다. 언와인드는 현재 사회에서 용인되는 흔한 관행이다." (11p)
단지 임신중지, 낙태를 둘러싼 길고도 피 튀기는 내전이 벌어졌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양측에서 최종적으로 협의한 내용이 <생명법>이라니 황당무계하네요. 생명 존중의 원칙을 지키되, 기한을 정해놓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궤변이죠. 뱃속의 태아와 성장한 아이들의 생명은 모두 똑같이 소중하다는 사실에 반박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 아이들이 가축도 아니고, 잘 키워서 타인에게 장기 기증을 시킨다는 발상은 너무 끔찍해요. 정부는 아이들이 죽은 게 아니라 장기를 기증받은 사람의 몸 안에서 계속 살아가는 거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언와인드, 아이들의 몸을 분해하여 장기 기증의 도구로 써먹는 것을 법안으로 통과시킨 미친 작자들이 사는 미래 사회의 이야기라는 걸 아는 순간부터 감정이 확 올라왔고, 몰입할 수밖에 없었네요.
1권에서는 언와인드, 낙인찍힌 아이들이 도망가고 탈출하면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하비스트 캠프는 신나고 재미있는 여름 캠프가 아니라 언와이드가 결정된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갑작스런 비극의 현장을 목격하듯이 무력하게 느껴졌는데, 도리어 아이들은 어리석은 어른들보다 더 현명하고 용감했네요.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포기할 게 아니라 용기를 내야 바꿀 수 있는 희망이 생기는 거예요.
"우리에겐 우리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어!
우리에겐 우리 몸에 일어나는 일을 선택할 권리가 있어!
우리에겐 이 두 가지를 모두 누릴 자격이 있어.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게 우리 일이야!" (481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