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철학이 너를 도와줄 거야 ㅣ 인문 톡톡 시리즈 1
조성군 지음 / 넥서스Friends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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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투덜대고 짜증을 부리면서도 왜 그런지 모른다고?

사춘기 아이의 마음은 이랬다가 저랬다가 도통 알 길이 없네요. 과연 아이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 10명 중 4명은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청소년 10명 중 2.5명이 1년 이내 우울감을 경험하며, 상담 유형 1위는 정신건강 고민 43.7%, 2위는 대인관계 24.2%, 3위는 학업과 진로 문제 9.3%로 정신건강이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났네요. 청소년 10명 중 8명은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다고 응답했지만 평균도움인원은 2017년 4.2명에서 2025년 3.7명으로 감소했고,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비율이 상승하고 있어서 청소년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볼 수 있네요.

까칠하게 구는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부딪히지 말고, "지금 마음이 많이 복잡하구나. 진정되면 그때 이야기하자"라며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대응하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하는데 현실은 가장 나쁜 선택을 할 때가 많네요. 당장 눈에 보이는 말과 행동이 반항처럼 느껴져서 섭섭함, 배신감, 분노, 슬픔, 절망 등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쓰나미처럼 몰려와서 쾅! 감정 싸움으로 번지는 거죠. 아이의 말과 행동을 지적하느라 정작 가장 중요한 아이의 마음은 외면했던 것 같네요. 바로 그 사춘기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여러 다양한 고민을 철학으로 풀어낸 책이 나왔네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이지만 자녀를 둔 부모들이 먼저 읽어봐야 할 책이네요.

《괜찮아, 철학이 너를 도와줄 거야》는 조성군 쌤의 책이에요.

이 책은 마음속 고민이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마음쌤의 철학 상담실이라고 하네요. 책의 구성이 독특한데, 5주간의 방송 프로그램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어요. 주 5일, 총 25일간의 특집이네요. 프로그램 제목은 '마음을 안아 주는 철학 상담실', MC는 마음쌤이고, 함께하는 친구로는 초등학생 윤이가 나오며, 매회차마다 고민 주제에 알맞은 게스트 2명을 초대하는데, 게스트들의 정체가 바로 유명한 철학자 50인이네요. 어렵게 느껴졌던 철학과 답을 찾을 수 없어서 막막했던 고민들이 철학자와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며 방향을 찾아가게 만드네요. 기분 나쁜 지적이나 일방적인 명령이 아닌 자유로운 대화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씩 알아가고, 배우며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몽테뉴 : 내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공부한 과목명을 알려줄까? 그건 바로 '나, 몽테뉴'였어. 어른이 될 때까지도 아버지가 시킨 대로만 사느라, 잘 몰랐던 나 자신을 꼼꼼히 관찰하기 시작했지. 내가 진짜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두 알고 싶어서 내 자신에게 끊임없이 실험을 해 보기도 했어.

윤 : 오, 자신에게 어떤 실험을 하셨어요?

몽테뉴 : 내가 아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모든 지식을 다 의심하고 확인해 봤단다. 예를 들어 고양이와 놀 때 '내가 고양이를 갖고 노는 것인지, 고양이가 나를 갖고 노는 것인지'도 내가 고민해 본 주제 중 하나였어. 그동안 내가 안다고 믿고 있었던 지식은 몸소 체험한 후에야 비로소 내 것이 되었고,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었지. 그리고 나를 온전히 알게 되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단다.

마음쌤 : 몽테뉴 선생님, 정말 재밌는 분이지요? 선생님은 당시 진짜 별난 사람으로 유명했어요. 하지만 "나는 나를 연구한다."라며 남들 눈치를 보지 않고 꿋꿋하게 공부하셨지요.

윤 : 저는 몽테뉴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전에 달리기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뛸 수 있는지 확인해 본 적이 있거든요. 또 떡볶이를 먹으면서 내가 어느 정도의 매운맛을 먹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본 적도 있죠. 저도 몽테뉴 선생님처럼 제 자신을 더 알아 가도록 노력해야겠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나에게 더 도움이 될지, 무엇을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있을 거예요.

(29-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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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날레 - 끝까지 강하고 자유로운 나
수전 구바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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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노인이 된다는 건

내가 누리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축복이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대비하지 못한 저주이기도 하다."

(13p)

수전 구바 작가의 《피날레》 첫 문장이네요.

참으로 공감할 만한 표현이네요. 노인이 된다는 건 오래 살았다는 의미이니까 장수라는 축복을 받은 것인데 정작 당사자에겐 그리 유쾌하고 행복한 일만은 아니니까요. 노년기는 언제부터 시작되는 걸까요. 보통은 은퇴와 공적 연금을 수령하는 예순다섯 살을 노년기의 시작으로 보는데, 직업에 종사하는 기간이 연장된 경우에는 노년기를 일흔이나 여든으로 보기도 하네요. 어쨌든 독립적인 경제 활동을 하고 있으면 스스로 젊게 느끼기 때문에 우리의 심리적 나이는 숫자상의 나이보다 훨씬 더 젊을 수 있어요.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육체노동이나 의학적 사건을 겪는다면 연대기적 나이보다 훨씬 더 많게 느낄 수도 있네요. 몸이 여기저기 아프면 긍정적 감정을 갖기 어렵지만 노인의 내면세계가 노쇠와 죽음의 위협에서 자신을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고, 노년기가 삶의 가장 창의적인 단계가 될 잠재력을 지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네요.

특히나 저자는 2008년 예순셋의 나이에 말기 난소암 진단을 받은 이후 현재까지 암 생존자로서 노년의 시간을 살고 있기에 용맹한 올드 레이디들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책에서는 아홉 명의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노년에 따라오는 걸림돌을 헤쳐나가면서도 어떻게 창의력을 유지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네요. 저자가 다룬 인물 중 조지 엘리엇은 노년기에 이르지 않았지만 나머지는 모두 장수라는 가능성 낮은 일을 이뤄냈네요. 콜레트, 조지아 오키프, 이자크 디네센, 메리앤 무어, 루이즈 부르주아, 메리 루 윌리엄스, 궨덜린 브룩스, 캐서린 더넘에 대해 '연인들', '이단아들', '현자들'이라고 분류했는데 이것은 노화가 가져오는 여러 고통에 대한 해독제의 원료가 될 만한 역할들을 제시하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이 역할들은 역사적으로 팽배했던 편견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기도 하네요. 노년기의 연인은 음탕한 과부, 말년의 이단아는 마녀, 쭈그렁 할멈, 노년의 현자들은 학교 선생, 여장부, 마녀, 추녀, 전쟁도끼 등 저질스러운 꼬리표를 붙이고 모략했는데, 이런 고정관념을 뒤엎은 여성들이 바로 여기에 소개된 인물들이네요. 예술적 야망은 수명이 길다는 사실을 매혹적으로 증명해냈으니 말이에요. 그동안 유명한 여자 예술가 중에는 고령까지 장수하지 못한 이들이 많았고, 비교적 최근까지도 여자가 예술가로 산다는 건 목숨을 위협하는 모순들에 걸려들기 쉬운 일이었으니 노년까지 살아남아 창조성을 보여준 인물들은 존경받을 자격이 있네요. 저자의 말처럼 삶의 마지막 단계를 정신 번쩍 드는 각성의 시간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꽤 많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놀랍고 경이로운 "그랜드 피날레"를 보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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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지더라도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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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입에서 맴돌지만 차마 못한 말들이 있어요.

가벼운 농담이나 마음에도 없는 말들은 잘도 하면서, 진심을 전하는 건 왜 이리도 어려운 걸까요.

모리사와 아키오 작가의 《벚꽃이 지더라도》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네요.

낚시를 좋아하는, 내성적이고 착한 남자 타다히코는 우연히 낚시 잡지에 실린 마스미 강 기사를 읽고 그 매력에 이끌려 구와바타 마을을 갔고, 그곳에서 동갑내기 히로유키를 만나면서 휴일마다 그곳을 찾게 되었고 어느덧 구와바타 마을은 제 2의 고향이 되었네요. 마스미 강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공원 중심에 우뚝 서 있는 300년 먹은 거목 벚나무 아래에서 마을 사람들은 꽃놀이 행사를 즐기고, 여름만 되면 아이들은 계곡에서 헤엄치고 하루종일 작살을 들고 물고기를 쫓아다니며 노니는 참으로 평화로운 마을이었죠.

이 소설은 야마카와 타다히코, 그의 아내 마쓰시타 아사미, 그리고 딸 리나와 아들 겐토 순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네요.

20여 년의 세월 동안 타다히코의 가정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하나의 사건으로 촉발된 비극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말았네요. 착한 남자 타다히코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던 것인데 그 결과는 참혹했네요. 동료의 말처럼 그는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니까요. 다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양심을 저버릴 정도로 못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게 불행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눈앞에서 벌어진 참사가 한 남자의 인생을 바꿔버렸고, 그의 가정을 흔들어놓았네요. 남의 불행을 밟고 쌓아올린 성공, 여기에선 그 부분을 깊게 다루지 않았는데 나쁜 놈들은 싹 잡아서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 돼요. 사실 이 부분에 집중했다면 제 마음은 분노로 들끓어서 참지 못했을 거예요. 근데 정작 당사자인 타다히코는 전혀 다른 감정으로 평생을 살았다니, 에휴, 착한 남자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인 건가요.

문득 인어공주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면서, 벚꽃이 진 언덕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풍경에서 그만 눈물이 나고 말았네요. 용서할 수 없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마음, 이 모순된 마음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던 가족들은 그 언덕에서 비로소 깨달았네요. 벚꽃이 지고 나면 푸른 잎이 돋아나듯, 상처 입은 마음도 사랑으로 다시 꽃피울 수 있다는 걸, 서툴고 부족해도 괜찮다고, 아름답게 피고 지는 꽃들처럼 담담하게 깊은 위로를 건네는 이야기였네요. 당신의 삶은 헛되지 않았노라고, 꼭 말해주고 싶어요.


"야, 야마카와."

"응?"

"너는 요컨대, 거대한 악과 싸우는 '정의의 사도'가 되고 싶은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남자끼리의 우정을 지키기 위해?"

"······."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마도 그게 가장 가까운 이유일 것 같았다.

아니면 히로유키와 그 가족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자기방어 때문일지도 모른다.

(···)

"너 혼자 정의의 깃발을 휘두른다고 해서 세상은 1밀리도 변하지 않아."

머릿속에 히로유키와 마코 씨, 아이짱 얼굴이 어른거렸다.

"1밀리도······."

"아니, 뭐야? 설마 너, 정말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83-88p)


"아빠, 요즘 배드민턴부 선배들이랑 사이가 안 좋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린 내가 솔직하게 상담하자, 식물에 해박한 아버지는 손에 들고 있던 화이트보드에 이런 글을 써주었다.

<나무의 가늘고 약한 가지에 병이 생겻을 때 거기만 잘라내는 건 별로 도움이 안 돼. 과감하게 가지가 갈라져 나오는

그 근본을 자르는 게 중요해. 나무의 가장 중요한 '줄기'를 병으로부터 지키는 거지. 그러면 그 나무는 다시 건강해져서

무럭무럭 자랄 수 있어. 인간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선배들과 사이가 나빠진 원인을 뿌리까지도 되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면 분명 잘될 거야.>

그렇구나. 뿌리부터 끊어내야 해······.

(205-2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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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빌려줄게 - 2016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2016년 책따세 겨울방학 추천도서 ㅣ 도토리숲 알심문학 7
박하령 지음 / 도토리숲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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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일, 그럴 수 있어요.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요.

근데 한 사람을 여럿이 미워하고 괴롭히는 건 정말 나쁜 일이에요. 학교폭력은 신체적 폭력 외에도 언어적 폭력, 심리적 폭력, 사이버 폭력 등 그 방식이 다양하고 잔인하네요. 우리나라 10대 청소년들의 사망 원인 1위는 지난 2011년 이후 14년째 자살이며, 자살자 수는 해마다 늘어 지난해는 역대 최다인 396명에 달했다는 가슴 아픈 뉴스를 보았네요. 통계에 따르면 상당수의 청소년이 학교폭력을 경험하거나 목격했고, 학교폭력 피해자는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겪게 되고, 이러한 정신적 고통은 자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네요.

박하령 작가의 《기억을 빌려줄게》는 학교폭력을 다룬 청소년 소설이네요.

이 소설은 하루아침에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누명을 쓰게 된 열일곱 살 장세란의 이야기네요. 대놓고 피해자여도 속상한 일인데 가해자 누명은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네요. 처음엔 사실이 아니니까 무심히 넘겼던 것인데 오히려 그것이 오해를 낳았고, 나중에 수습하려고 했더니 전교생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신세가 된 거예요. 혼자서 어떻게든 누명을 벗기 위해 애쓰는 세란은 타인의 기억을 빌려 자신의 삶을 다시 구성할 수 있는 가상 공간 '기억의 창고'라는 인터넷 카페를 발견하는데요. 인간관계의 갈등과 오해로 마음앓이를 해봤다면 세란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을 거예요. 빌려온 기억은 진짜 나의 것이 아님을 깨달은 세란은 도망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며 자신 같은 피해자가 또 생기지 않도록 나아갈 바를 찾는 모습이 멋져보였네요. 반면에 스스로 받는 벌을 괴로워하지 않을 뿐더러 스스로 받는 벌이란 개념 자체를 아예 모르는 사람도 있네요. 문득 그 애의 눈물이 진심일까라는 의심이 들었네요. 솔직히 그 애가 한 짓을 말끔하게 씻어낸다는 건 거짓말 같거든요. 그럼에도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눈물로 다 씻겨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네요.


"당당해져 봐. 네 잘못이 아니잖아!"

"그니까.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왜 그 고통을 혼자 껴안아야 한담?"

"이렇게 생각해 봐. 만약, 누군가 너에게 욕을 하는데 네가 받지 않잖아?

그럼 그건 그 사람 몫으로 남아 있는 거지. 넌 그냥 한 발짝 떨어져서 그걸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고.

선의는 마치 우산을 씌워 주는 것과 같아서 두 사람이 같이 비를 피하고 온기도 나누면서

그렇게 훈훈해지지만, 반면 잘못 배달된 적의는 네가 안 받으면 되돌아가서

보낸 사람이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물 폭탄 양동이 같은 거야."

(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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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의 탐스러움 ㅣ 픽셔너리 2
정기현 지음 / 북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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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가깝고도 먼...

그 다음에 올 단어는, 사실 너무 자주 사용하는 관용구라서 '사이' 혹은 '관계'를 떠올리게 되네요.

물리적으로는 매우 가깝지만 마음이나 관계의 거리는 완전히 멀어진 존재가 있죠. 바로 이웃인데요. 언젠가부터 이웃은 '전혀 모르는 타인'과 다르지 않은 의미가 되었고, 옆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신경쓰지 않는 무관심한 세상이 되었네요.

정기현 작가님의 소설 《이웃집의 탐스러움》은 서울 외곽의 21평 신축 아파트 705호에 이사 온 기현과 706호에 사는 기은, 준영 부부의 이야기네요. 처음엔 긴가민가, 분위기를 파악하기 어려웠네요. 화자인 기현이 들려주는 독특한 가족 내력 때문인지 그의 태도가 몹시 수상쩍게 느껴졌거든요. 더군다나 제목이 '이웃집의 서랍장'이었다면 모를까, '이웃집의 탐스러움'이라니요. 도대체 뭐가 그리 탐스럽다는 건지 알 수 없으니 제멋대로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되네요. 왠지 의심병 환자가 된 것 같지만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무엇보다도 기현이 이웃집 부부인 기은과 준영에게 쓴 편지는, 뭔가 숨은 의도를 찾게 되더라고요.


"안녕하세요, 기은 씨, 준영 씨. 정기현입니다. 이쯤에서 직접 인사를 건네봅니다.

책 속의 인사라니 좀 낯설 수도 있으려나요? ··· 제가 두 분께 이 책을 드리는 이유는 별일이 없었다면 진즉 자연스레 되었을지도 모르는 '진짜' 이웃 관계를 당신들과 맺고 싶기 때문입니다. 조금 늦었을지도 모르지마는 늦었다면 늦은 대로 맺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 나는 당신들 둘과 지금보다 복잡하고 자세한 사이가 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어요. 요즘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갈 때 이런 식의 소개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이는 제가 가족으로부터 배운 것 중 일리가 있다 여기는 몇 안 되는 관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언젠가 당신들의 기원에 대해서도 듣고 싶네요······. 이 소설을 완성한 뒤 셋이 함께 다 읽고 나면 우리에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24-25p)


손잡이가 새파란 나무 서랍장, 이 물건 때문에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는 것, 그리하여 몹시 얄밉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탐스러운 이야기를 만났네요. 탐스러움의 정체는 바로 '이야기'였거든요. 기현은 편지에서, "여기에 거짓된 말은 한마디도 없으므로 이것이 저의 진심이에요." (138p)라고 했는데, 그 진위 여부는 책 속에서 확인할 수 있네요. 한끗 차이, 아슬아슬 줄타기 하듯이 이야기가 쫀득하니 맛있네요.


"나는 어머니 아버지와 달리 남의 이야기에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 대신 나는 상대와 관계라는 것을 맺는다. 기은과 준영과 나. 우리는 이웃이다. 그리고 나는 이웃 그다음이 있다고 자꾸만 믿게 되는 것이다. 아직은 내게도 세상에도 미지일 그 다음 영역을 기꺼이 탐사해보고 싶다. 기은 그리고 준영과 함께······."

(1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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