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무뢰한과 함께 사는 법 1
패트릭 갸그니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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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자리에 앉아 있던 그 아이가 몸을 휙 돌렸고,

내 턱끝에서는 살짝 피가 흘렀어요. 그 아이가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커터칼. 그 칼에 찔려 상처가 났다는 것 외에는 기억나질 않지만 그 아이가 별로 미안해 하지 않았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어요. 잘못한 건 걘데 사과는커녕 무심한 태도 이 책을 읽다가 문득 그 아이가 떠올랐어요.

《내 안의 무뢰한과 함께 사는 법》은 패트릭 갸그니의 자전적 소설이에요.

"내 이름은 패트릭 갸그니, 소시오패스다. 가정에서는 헌신적인 아내이자 어머니이며, 밖에서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심리치료사이기도 하다." (8p) 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모두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놀랍게도 저자는 이미 <뉴욕타임스>에 '그는 소시오패스와 결혼했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고, 자신이 병리학적 소시오패스라는 사실과 함께 결혼 생활의 모습을 공개했어요. 충격적인 고백을 한 이유는 건강하게 살고 싶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래서 소시오패스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가감없이 솔직하게 들려주고 있어요. 소시오패스가 아닌 사람에겐 이해할 수 없는 심리와 행동들을 보여주는 것, 바로 그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에요. 겉보기엔 사교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파괴적인 충동이 들끓고 있다는 것. 만약 속이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었지만 패트릭 갸그니는 완전히 다른 선택을 했어요. 소시오패스 증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치료받기를 원했던 거예요. 불안과 무감각 사이, 파괴적인 충동을 가진 그녀의 인생이 뒤바뀐 계기는 사랑이었어요. 소시오패스는 감정이 없고, 공감할 줄 모른다고 여겼는데,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놀라웠어요. 이 책의 첫 장에는 "데이비드를 위해"라고 적혀 있어요. 사랑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은 그 마음, 그것으로 충분하네요.



"네가 느끼는 그 압박감이라는 걸 좀 더 들려줘 봐."

"별로 특별한 건 없어. 다만 내가 기억하는 한 정말 오래전부터 그걸 느껴 왔지."

"그렇구나. 그러면 어떤 기분인데?"

"뜨거운 난로 위에 물을 담아 올려놓은 그릇 같은 느낌?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어.

그러다가 작은 물방울들이 올라오기 시작해. 그렇게 물이 끓을 때쯤이면 정말 불안해지는 거야.

왜냐하면 물이 끓어서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거든."

"왜 불안하지? 물이 끓어 넘치면 어떻게 되는데?"

"폭력적으로 변해."

"물이 끓어 넘치는 걸 막기 위해서 자꾸 뭔가를 한다는 거지?

거기가 어디였더라? 누구 집엔가 몰래 가서 뭘 훔쳤다고······."

(···)

"정말 그렇게 생각해? 사랑받을 필요가 없다고?"

"잘 모르겠어. 사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살아가는 데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그것참 흥미로운데."

"흥미롭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거야 네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휘둘리는 감정에 대해 너는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거든.

너도 사랑이 좋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하지만 갈망하지는 않기 때문에 너는 휘둘리지 않는 거야. 너는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달라!"

(117-1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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