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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오늘을 살아갑니다 - 서른다섯, 눈부신 생의 끝에서 결심한 것들
케이트 보울러 지음, 서지희 옮김 / 북라이프 / 2024년 9월
평점 :
"진실은 내 안 어딘가에 있다. 삶에 공식 같은 건 없다.
우리는 살고, 사랑받고, 떠난다. 종양들은 내 동의 없이 내 안에 싹터 대장과 간으로 퍼졌고···
그게 나다. 삶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아지지 않으며, 선택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찰나의 공포를 느낀다. (···)
삶의 마지막은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누군가 내게 말해 줬더라면.
몇 년이 몇 달로, 몇 달이 며칠로 줄어들면 그 시간을 헤아리기 시작해야 한다.
내 꿈고 야망, 우정이나 사소한 다툼, 휴가, 공룡 잠옷을 입은 아들과 잠드는 시간을
몇 시간, 몇 분, 몇 초로 쥐어짜 내야 한다.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12-14p)
《내가 가진 오늘을 살아갑니다》는 1980년생 케이트 보울러의 에세이예요.
저자는 서른다섯 나이에 결장암 4기, 생존율 14퍼센트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는 "2년이요."라고 말했다고 해요. 감히 상상도 못하겠어요.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으로도 짐작할 수 없는 충격일 것 같아요.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불안, 두려움, 고통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겠어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사람이 죽음을 선고받고 이를 인지하기까지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이 라는 단계를 겪는다고 했는데, 이는 죽음뿐만이 아니라 불행한 사건에서도 비슷한 감정의 단계를 거친다고 하네요. 불행은 예기치 않은 태풍처럼 모든 걸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폐허가 되어버렸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다행히도 케이트 보울러는 암 진단을 받은 이후의 시간들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충실하게 보냈으니까요. 물론 순탄하지는 않았죠. 어린 아들 잭이 죽음에 대해 물을 때는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으니까요.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둘러대는 케이트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해맑게 웃는 아이와 미래의 시간을 약속하면서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약한 모습을 감춰야만 하는 엄마라는 사실이 슬픔으로 다가왔네요.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저자는 이 책에서 괴롭고 힘든 순간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럴 듯한 격려와 위로가 당사자에겐 전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부록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과 '더 복잡한 진실'이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네요. '불가능은 없다'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현실적인 조언은 '차라리 오늘 무엇이 가능한지 물어라.' (255p)예요. 현재에 집중하며 즐기라는 멋진 격언이 고통을 겪는 당사자에겐 해당되지 않아요. 인생은 불확실하고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만큼 살아가면 되는 거예요.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순순히 내려놓을 때 진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