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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가 된 어느 흑인 사형수 - 가장 악명 높은 감옥의 한 무고한 사형수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자비스 제이 마스터스 지음, 권혜림 옮김 / 불광출판사 / 2024년 7월
평점 :
영화 <신과 함께>를 보면 죽은 사람은 망자가 되어 저승에서 재판을 치르는 장면이 있어요.
주인공이자 소방관인 김자홍은 아이를 구하다가 죽음을 맞이했기에 귀인으로 분류되었지만 재판 과정에서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죄들이 하나씩 드러나게 돼요. 저승에서조차 한 사람의 죄를 판가름하기가 이토록 어려운데, 현실에서는 오죽할까요. 소소하게 드러나지 않는 잘못들을 끊임없이 저지르는 인간과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회개한 인간, 둘 중에서 누가 더 나쁠까요. 문득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누군가에겐 끔찍한 지옥일 수도 있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폭력과 학대로 얼룩져 있던 소년은 열아홉 살에 저지른 강도 사건으로 샌 퀜틴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교도관 살해 공모 혐의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그는 결백을 주장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무죄를 믿고 구명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붓다가 된 어느 흑인 사형수》는 자비스 제이 마스터스의 책이며, 논픽션 작품이에요.
이 책은 자비스가 힘겹게 써내려간 자신의 인생 이야기예요. 독방에 수감된 사형수인 자비스가 글을 쓰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건 명상에서 배운 인내 덕분이에요. 열아홉 살에 샌 퀜틴에 수용된 자비스는 4년 후인 1985년 교도관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약물주사형 사형을 선고받았어요. 살인 재판을 받는 동안 자비스는 전혀 몰랐던 과거들을 알게 되었어요. 엄마가 얼마나 오랫동안 학대를 당했고, 어두운 거리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자비스와 형제누이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중독자 생활을 얼마나 오래 했는지 등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자비스는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궁금해졌고 감옥에서 내가 나를 도울 수 있는 길이 뭔가를 생각하게 됐어요. 그때 자비스의 사건을 담당하던 민간 조사관 수잔이 명상하는 방법과 고통과 아픔을 다루는 방법에 관한 책을 보내줬고, 불교 잡지에서 티베트 불교 영적지도자 라마인 차그두드 툴쿠 린포체가 쓴 글을 읽고 출판사에 편지를 보냈다고 해요. 그 뒤에 린포체를 만날 수 있었고, 린포체는 자비스에게 넓게 생각하고 "무해함, 유익함, 순수함"을 위해 지성을 사용하라고 격려했어요. 린포체는 자신이 있는 곳이 감옥이든 바닷가 저택이든 매 순간이 원인과 조건이라는 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인 이 세 가지 약속을 실천할 기회라고 상기시켰고, 이런 식으로 마음을 단련하면 수많은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며, 이는 한 사람을 돕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어요. 그의 조언 덕분에 자비스는 의심스러운 생각을 다스리고 불교의 길에 더 깊이 헌신할 수 있었어요. 샌 퀜틴의 지옥 속에서 자신에게 더 큰 고통을 주지 않는 법을 배운 거예요. 모든 존재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영적 수행에 전념해온 자비스에게도 위기는 있었어요. 그때 면회 온 다르마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자비스, 자네가 처음에 마음속으로 느낀 바로 그 분노가 바로 이 사회의 거의 모든 사람들, 사형이라는 제도를 믿고 사형 집행을 외치는 모든 이들이 자네에게 느끼는 감정이라네." (410p) 아주 적확한 표현인 것 같아요. 사형수인 자비스가 정말로 결백한지 안닌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과거 불우했던 삶을 보며 연민을 느꼈고, 영적 수행을 통해 견뎌내는 모습에서는 감동했어요. 자비스가 다른 이들에게 끼친 피해와 고통에 대해 깊이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이 진심이라면 그 마음을 지지해주고 싶어요. "내가 얻은 진리, 내가 다른 모든 아이들로부터 얻은 진리는 아이들은 자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믿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삶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믿고 싶어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와 함께 자란 젊은이들, 그리고 어떤 이유로든 나만큼 혹은 그 이상의 고통을 겪었거나 겪게 될 수많은 젊은이의 숨은 외침이 이 책에 담겨 있기를 바란다. (···) 몇 번이고 날개를 잘렸다고 해도 그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소중하고, 세상을 바꿀 힘이 있으며, 날 수 있다는 진리가 그들의 손을 잡고 있다." (448-449p) 마지막으로 자비스가 "저 새가 내 날개를 갖고 있으니까!" (447p)라고 했던 말이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