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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번째 캐서린에게 또 차이고 말았어
존 그린 지음, 최필원 옮김 / 북폴리오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나에게 소설이란 Tv나 영화보기와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보는 속도를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설을 읽으면 자연스레 상황이 떠오른다. 주인공과 등장인물의 모습, 그들이 마주친 상황. 그러기에 소설은 나에게 글자로 보는 영화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주로 이야기의 흐름을 집중한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무엇일지, 어떻게 마무리 될지. 그것이 제일 궁금하고 알고 싶다. 때문에 소설은 쭈-욱 읽는다.
<열아홉 번째 캐서린에게 또 차이고 말았어>(이하 열아홉번째 캐서린)도 그렇게 읽었다. 다만 이번 소설은 전혀 모르는 작가. 그리고 관심이 전혀 없었던 점이라는 것을 밝힌다. 보통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거나 지인 추천이나 소개 글을 통해 끌려서 읽은 것과는 다르다. 관심 밖이다 보니 작가도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소개를 보니 그래도 꽤 유명한 사람인가 보다.
특이한 점은 원작이 2006년에 나온 것이다. 나는 외국 책을 볼 때 꼭 copyright와 원제를 확인한다. 펼쳐보니 2006 이라는 숫자가 눈에 띈다. 13년 전 작품인데 이제 나온 이유가 뭘까? 편집자가 이제 이 책을 복 마음에 들었나? 아니면 작가 인기가 많아지니 예전 작품까지 찾아내서 낸 건가?
원제는 <An abundance of Katherines>이다. 캐서린이 풍부하다? 풍부한 캐서린? 풍부한 캐서린들? 한국어 제목이 더 와 닿는다.
(밑에서부터는 소설의 주요 내용이 있으니 담겨져 있습니다.)
소설 내용은 제목과 같다. 주인공인 콜린이 여자친구(열아홉번째 캐서린)와 헤어지고 나서 그 아픔을 달래기 위해 친구인 하산과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무작정 떠나다 ‘것샷’이라는 지역에서 머물면서 마주하는 일과 콜린의 생각과 정리(?)가 담겨 있다.
주인공이 평범치 않다. 천재를 꿈꾸는 영재, 자신의 경험을 수학(정리)로 표현하라고 한다. 정리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보이고 싶어 한다. 열아홉 번의 경험을 대입해서 공식을 완성(?)한 듯 하지만 딱 하나의 예외가 발생한다. 왜지? 세 번째 캐서린이 공식이 적용이 안 된다. 공식이 틀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이 틀렸다. 자 이제 공식은 완전해지고 새로운 사귐도 예측 해 본다. 하지만 그 예측은 여지없이 맞지 않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을, 주인공은 나름대로의 공식을 통해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 과학이 발달하고 사회가 발전하는 것은 쓸데없어 보이지만(?) 주인공 같은 자세가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하다. 당연에 대한 의심. (콜린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경험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일 뿐)
마지막에 도표와 수식으로 가득 찬 수첩이 문장으로 메꿔준다는 것이 꽤 인상적이다. 왠지 결론은 감성 이라는 내 멋대로의 해석.
콜린은 열아홉의 캐서린과 만남을 가졌지만 19명인 것은 아니다. 첫 번째 캐서린과 캐서린-19는 동일인물이다. 캐서린으로 시작된 캐서린과의 연애는 캐서린과 헤어짐으로서 마침표를 찍는다. 콜린의 정리가 떠오른다. 한 명의 캐서린이 아니라 캐서린들과의 연애한 콜린에게는 딱 들어맞는 정리가 아닐까?
세 번째 캐서린에게 공식이 적용되지 않았단 것은 ‘전제’가 잘못 되었다. 콜린은 맨날 자기가 차였다고 생각했는데 캐서린-3은 자기가 찼던 것이다. 뭐든 잘 기억하는 주인공이었기에 그 기억이 틀렸을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기억이란 것은 언제든지 틀릴 가능성이 있다.
책에 부록이 있다. 콜린이 만든 ‘정리’에 대한 수학자의 해설이다. 이런 내용으로 논문을 쓰고 책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하지만 그 책은 읽고 싶지 않다.
콜린은 캐서린을 떠나고 린지와 연애를 시작한다. 린지와의 연애가 끝나면 두 번째 린지와 연애를 할까? 아니면 이름에 대한 속박에서 자유로워졌으니 기묘한 우연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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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신동은 남들이 이미 밝혀 낸 것을 매우 신속히 배울 수 있다. 천재는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을 최초로 밝혀낼 수 있어야 하나. 신동은 천재들이 이루어 놓은 것들을 남다른 속도 배울 수 있을 뿐이다. 신동 대부분은 커서도 천재가 되지 못한다.
(28쪽) 차는 쪽이라고 해서 매번 상처를 주지 않고, 차이는 쪽이라고 해서 매번 상처를 받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모두가 둘 중 하나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 모든 남녀 관계는 셋 중 하나의 방향으로 끝맺어지게 돼 있다. (1) 결별 (2)이혼 (3) 죽음
(45쪽) 도처에서 사람들은 자연과 운명을 탓한다. 운명이란 그저 그들의 성격과 열정, 그들의 실수와 약점의 반향일 뿐인데.“
(53쪽) 영어에는 그런 냄새를 제대로 표현할 단어가 없다. 하지만 콜린은 적절한 프랑스어 단어를 알고 있었다. 시야주sillage(향수의 잔향). 콜린이 커브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피부에 뿌렸을 때 풍기는 향기 때문이 아니라 ‘시야주’ 때문이었다. 향긋한 이별 냄새
(100쪽) 하루에 물 여덟 잔을 마셔야 한다는 조언을 틀렸다. 특별히 물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하루에 여덟 잔씩 마실 이유가 없다. 대부분 전문가들을 몸에 특별히 이상이 없다면 그냥 목이 마를 때만 물을 마시는 게 좋다고들 한다.
(151쪽) 사랑에는 한계가 있어.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움의 한게는 사랑을 훌쩍 뛰어넘는다고.
(260쪽) 결국 모든 남녀관계는 결별이나 이혼이나 죽음으로 끝장나게 돼 있어. 난 그 세 가지 엔딩 중에서 이혼과 죽음. 그 두 가지 옵션만 바라보고 갈래.
(289쪽) 이 이야기의 교훈은, 우리가 과거 일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기억이 과거 일로 굳어진다는 거야.
(294쪽) 자신에게 가치있는 것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정의한다는 린지의 말을 믿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정리가 틀리지 않았기를 내심 바랐다. 모두가 믿어온 것처럼 자신이 특별한 존재이기를.
(295쪽) 과거는 이미 벌어진 일을 논리적으로 풀어놓은 이야기다. 하지만 기억할 수 없는 미래는 논리적으로 이치에 닿지 않는 게 정상이다.
(297쪽) 올바른 그래프가 정리의 정확함을 증명하지는 핞는다. 우리 기억에는 왜곡의 가능서잉 늘 도사리고 있으니깐. 그는 어느새 새로운 깨달음을 휘갈겨 적는 중이었다. 수첩을 빽빽하게 채운 그래프들은 이제 단어들로 대체되었다.
(312쪽)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게 한 가지 있다. 존에게는 친구들의 인생을 작품 속에 풀어 소개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 나 또한 어릴 적 학교에서 똑똑하다는 소리깨나 들었지만 콜린은 절대 내개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캐릭터가 아니다. 게대가 내가 지금껏 사귄 캐서린은 달랑 두 명 뿐이다. 나는 주로 차는 입장이었고 태어나서 딱 두 번 차였을 뿐이다. 흥미롭게도 나를 찬 두 여자가 바로 그 두 캐서린이었다. 신기하지 않은가? 왠지 세상 어딘가에 나를 위한 공식이 존재할 것만 같은 섬뜩한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