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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덕후 1호 - 나를 몰입하게 한 것들에 대하여
문화라 외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6월
평점 :
단편 수필 모음집이라는 소개에 덜컥 신청했다. 얼마 전에 연작소설을 읽을 때 한 편 한 편이 짧다 보니 어느덧 한 권은 금방 읽게 되더라. 그때 경험을 떠올리니 ‘오, 이 책은 빨리 읽을 수 있겠는걸!’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받아보니 기대(?)보다 두께가 얇다. 다행이다.
<이웃덕후 1호>는 미래엔 북폴리오에서 개최한 단편 에세이 공모전의 첫 번째 수상 작품집이다. 이웃덕후라니, 제목이 재밌다. 내 주변에 덕후가 그만큼 많다는 것일까?
책에는 다섯 편의 수상작이 수록되어 있다. 네 편은 완독했고 한 편은 읽다 건너뛰었다. 내가 건너뛴 편은 <내 인생의 브리티쉬-롹커즈-앤드-트랙즈> 영국의 락을 제대로 소개한다. 하지만 내가 관심이 없는 분야이니 음악을 듣기보다 읽는 게 도통 재미가 없었다.
내 기억에 가장 남는 글은 <키보드 위에서 나를 확인한다>이다. ‘키보드’를 소개하는 글이다. 아무래도 사무실에서 계속 쓰는 익숙한 물건이니 더 쉽게 글이 와 닿는다. 키보드를 대표적인 세 종류로 구분하고 하나하나 소개해 준다. 나열식 소개가 아니다. 찍다. 먹다 식으로 다양한 비유를 들어 소개한다.
글의 저자가 키보드를 소개한 이유는 좀 더 원대한 꿈이 있어서이다. ‘글’을 쓰는 길로써 키보드를 소개한다. 키보드 치면 ‘타닥닥’ 소리가 울려 퍼지고 내 귀도 함께 글을 쓰고 있게 된다.
여러 소재의 글이다 보니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최우수상을 받은 <모임의 여왕>을 통해 모임운영의 팁을 얻을 수 있다. 혼자만 모임을 운영해서는 오래갈 수 없다는 것에 공감했다. 여러 명의 운영진을 둬야 한다. 함께 가야 오래 간다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거 같다.
<꽃 하나에 사계절을 담아>를 읽으면 ‘어랏, 튤립 한번 키워볼까?’라는 생각이 든다. ‘크레이지 가드너’라는 만화를 얼마 전부터 봐서 식물 키우기가 낯설지가 않다. 튤립은 구근으로 키우는 게 손쉽고, 꽃이 피고 지면 구근이 쪼개진다고 한다. 그럼 구근 하나하나가 다시 꽃을 피울 수 있다. 식물의 신비로움이란... 튤립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자꾸 내 머릿속은 그 옛날 튤립 광풍이 떠오른다. 요즘 비트코인도 광풍이 꺼졌는데.. 광풍일 것일까, 조정일가?
책을 다 읽고 나니 내 마음 속 최우수는 다른 작품이다. 최우수와 우수를 구별한 것은 무엇일까? 마침 맨 뒤에 심사평이 수록되어 있다. 미래엔 홈페이지에 가도 심사평을 볼 수 있다.
[최우수상] <모임의 여왕>
자꾸 내 안으로만 파고들려 하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에 몰두하고 이를 스스로 에너지화하는 과정들이 참신하다. 여러 종류의 모임을 시작하거나 참여하는 방법, 무엇보다 이를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 않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진솔히 이야기한다. 향후 출 간할 선정작 모음집 《이웃 덕후(1호)》(가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충분히 독특하면서도 우리 삶에 가장 가까운 주제를 다룬 것이 최우수상 선정 이유다.
[우수상] <내 인생의 브리티쉬-롹커즈-앤드-트랙즈> <키보드 위에서 나를 확인한다> <꽃 하 나에 사계절을 담아> <오늘도 다이어리 테라피>
<내 인생의 브리티쉬-롹커즈-앤드-트랙즈>는 록, 그중에서도 특별히 영국 록음악에 심취한 26살 록덕후의 인생 베스트 트랙들을 소개한다. 하이라이트 구간의 일부 가사를 중심으로 깊이 있는 설명과 분위기 묘사가 이어지는데, 그 전달력이 뛰어나다.
<키보드 위에서 나를 확인한다>는 기계식 키보드라는 다소 낯선 소재를 이야기한다. 구어체로 풀어낸 이 글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영업 당한 듯’ 나도 모르게 기계식 키보드를 사보고 싶어진다. 관심 없던 일반인들마저 끌어들이는 묘한 흡인력과 매력을 갖춘 글이다.
<꽃 하나에 사계절을 담아>는 튤립이라는 꽃 하나에 초점을 맞춘, 단정함과 다정함이 느껴지는 글이다. 튤립을 키우는데 필요한 실용적인 정보를 담았다. 이만큼의 지식을 완성도 있게 담기까지 얼마나 튤립을 애정으로 바라보았을지 글에서 그 정성이 듬뿍 느껴진다.
<오늘도 다이어리 테라피>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다이어리를 쓰겠다는 다이어리 덕후의 사랑 스러운 에세이다. 기록하며 알게 된 자신의 취향, 감정, 버릇에 관한 이야기부터 다이어리 한 권과 펜 하나가 주는 작고 소중한 일상의 행복을 담백한 문체로 풀어냈다.
사람의 생김이 다르듯이 관심 분야가 다르다. 주변 사람보다 조금 더 알고 있는 지식이 있다면, 남들보다 조금은 더 잘하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덕후다. 덕후는 별 게 아니다. 우리 모두가 덕후다.
덧붙여,
제2회 덕후 단편 에세이 공모전도 지금 하고 있다.
https://www.mirae-n.com/ct/mn-ct-2-01.frm?linkServiceCd=CT0001BC&mcmIdx=72
응모는 10월까지. 1등은 200만원, 최우수 2편은 각 100만원, 우수상 5편은 각 50만원
내가 남들보다 관심이 많고 빠져있는 게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남들에게 설명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면 지금 당장 키보드를 두드려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