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타화자재천국에 들어선다.

 

고수영은 들뜬 듯 소리치며 악세레이타를 힘차게 밟았다.차는 굉음을 내며 낯선 세계로 돌진해갔다.

 

오오!

 

잔뜩 긴장하여 손잡이를 꽉 잡고 있었던 아이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그들은 어느새 높고 높은 빌딩들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의 한 가운데를 신나게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정보탑안에서 빠져나온 기억이 없는데도 거대한 도시를 보게되다니 마치 환상의 세계로 뛰어든 느낌이었다.

 

이럴 수가!”

 

거대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파란 하늘은 높고 바람은 신선했다.감나무와 사과나무가 우거진 거리를 산보하는 시민들의 표정은 한없이 맑고 밝았다.왠지 모를 낭만과 모험과 마주칠 것 같은 설레임이 잔뜩 배어있는 피서지의 오솔객을 걷고있는 관광객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정화 일행을 태운 의약품수송차는 이윽고 어느 3층 단독 건물앞에 멈추어섰다. 고수영은 뒷자리에 앉은 정화를 바라본다.

 

여기가 네 아빠가 사는 곳이야.

“……”

 

하지만 정화는 너무 긴장했는지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상기된 표정으로 붉은 벽돌로 근사하게  세워진 낯익은 단독건물을 천천히 올려다 본다. 대문의 문패에 유동인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우리는 다른 곳을 둘러보고 올께.

 

고수영은 유정화를 집앞에 내려놓고는 어디론가 차를 바삐 몰았다.

 

잠시 건물을 살펴보던 정화는 심호흡을 길게하고 마침내 대문의 인터폰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누구세요?

 

잠시 후 벨소리가 나고 중후한 중년남자의 목소리가 났다. 조금 쭈빗거리던 정화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 정화인데요……”

정화?

 

초인종의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남자는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그리고 곧바로 조금 화난 듯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빨리 들어와!

 

정화는 예전의 추억이 새록 새록 나는 낯익은 계단을 따라 조심스럽게 3층으로 올라갔다.

 

아빠!

정화야!너 또 땡땡이친 거야?

 

유동인은 현관문을 열어주고는 짐짓 화난 표정으로 딸을 맞이했다.하지만 그는 더 이상 별 말없이 돌아서서는 거실 소파에 가서 앉는다.

 

몇 년 만에 만난 아버지.

 

아빠는 어떻게 변했을까 인사는 어떻게 하지 줄곳 속으로 노심초사했던 정화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신을 맞는 유동인의 모습에 갑자기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었나 하는 착각을 일으켰다.

그녀는 아빠를 만나면 고래밥처럼 왜 그동안 연락을 안했느냐고 마구 따져보기로 작정했었는데 막상 유동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런 마음이 쑥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녀 자신은 매일 아버지를 만났다는 기억이 차츰 자연스럽게 되살아 났다.

 

“네가 자꾸 그러면 네 엄마가 무척 화를 낼텐데.

엄마요?

그래. 마침 마트에 갔길래 다행이지.

 

한동인은 기꺼이 정화를 위해 거짓말을 해주겠다는 듯이 정화에게 눈을 찡긋했다.그러나 정화의 눈빛은 다시 크게 흔들렸다.

 

엄마는 예전에 돌아가셨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멀쩡한 엄마가 죽다니……”

그게……”

아무리 엄마가 야단을 쳤다고 그런 소리를 하면 안되지.

 

유동인은 정색을 하며 정화를 나무랐다. 그때였다.다시 비디오폰이 울렸다. 유동인은 귀찮은 듯 이 비디오를 살펴보더니만 정화를 곧 돌아보며 장난스럽게 히죽 웃었다.

 

정화야 넌 이제 죽었다.

?

네 엄마가 왔단 말이다.흐흐,

엄마가요?

 

정화의 등줄기에 왠지 모를 소름이 돋았다.잠시 후 조금 열려진 문틈으로 누군가 계단위로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자박 자박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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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팔달산 기슭에서 강태풍이 아수라 군단을 이끌고 경계선 밖으로 뛰어나가자 그들을 발견한 보안군들이 보초를 서다말고 황급히 그들을  잡으러 쫓아나갔다.

 

"쉿!빨리와!"

 

잠시 후 텅빈 초소앞으로 지수, 정화, 고래밥 그리고 마돈수는 비장한 표정으로 조용히 나타났다.황박사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루면 그들의 부모들을 구해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두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히 얼굴이 굳어져갔다.

하여간 삼엄한 보안군의 시선을 딴데로 돌리고 무사히 시내로 빠져나온 그들은 제일 먼저 부모들이 갇혀있는 곳을 알아내기 위해서 시내를 샅샅이 뒤집고 다녔다.그러나 넓은 시내에서 부모들의 행방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끈기있게 계속해 나갔다.

 

점점 지쳐가던 중 그들은 현대식 첨단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어느 수상한 건물을 발견했다.3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길이만 해도 거의 50미터가 넘어 보였다.건물의 2층에 건물의 이름인 듯 ‘GSA’라는 영어 간판이 운치있게 걸려 있었다. 그런데 수위실은 이상하게도 텅 비어 있었다.

 

“……!”

 

그때 GSA1층 열린 문틈으로 환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던 고래밥이 갑자기 코를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얘들아, 저 문에서 먹을 것 냄새가 난다!

 

고래밥이 외치자 제일 먼저 돈수가 쏜살같이 그 문앞으로 달려갔다. 문위에는 식품관리부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마침 모두 배가 고팠던 참이라 구수하게 새어나오는 음식 냄새를 따라 누구 먼저라 할 것 없이 공장건물속으로 도둑고양이처럼 들어가기 시작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엄청나게 넓은 건물안에는 대형 뷔페처럼 갖가지 종류의 음식들이 식욕을 돋구는 현란한 조명빛 아래 산더미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고래밥은 환호성을 지르며 팔짝 팔짝 뛰었다.

 

“와우, 맛있겠다!

 

음식사이로 연두색 제복을 입은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잘 포장된 음식을 카트에 실고는 이리 저리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들은  왼쪽 가슴앞에 ‘F(food) 혹은 ‘D(drug)라는 빨강 글씨가 선명하게 찍힌 제복을 자랑스럽게 내밀고 다녔다.

 

고래밥이 해산물 코너에서 잘 요리된 바다가재를 하나 집어  정신없이 뜯을 때 한 중년 남자가 등뒤로 다가와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너 혹시 영수?

“어?

 

목소리가 귀에 익은지  뒤돌아보는 고래밥의 얼굴빛이 확 밝아졌다.

 

“아, 아빠,

“너 영수 맞구나!

 

중년남자는 반색을 하며 고래밥의 야윈 몸을 와락 품에 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토록 찾아다녔던 아버지를 엉뚱한 장소에서 만나서 그런지 고래밥은  중년남자를 와락  껴안고는 울먹이었다. 그리고는 그동안 무심하게 소식 한 통 보내지 않았던 아버지 고수영에게 푸념을 봇물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빠,도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나는 여의주 반대운동을 그만 두고 이 GSA에 취직했단다.

“그랬으면 진작에 연락을 해주셨었야지요?

“난 가끔씩 연락을 했는데 네가 답장을 안했잖아?

“네에?

 

고래밥은 눈물범벅이 된 눈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본다.

 

“전 한 번도 연락을 받은 적이 없어요.

“거참, 이상하네.

 

나이먹은 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들은 해맑게 웃으며 그를 다시 껴안는다.

 

“괜찮아요. 어쨌든 아빠를 다시 만났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무슨 일을 하시는 거예요?

“난 여기서 타화자재천국(他化自在天國)을 지원해주는 관리사로 일하고 있단다.

 

고래밥 아버지도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타화자재천국 관리사요?

“응. 타화자재천국에 식량의약품 그리고 각종 설비 등을 정기적으로 공급해주고 있지.

 

고수영의 자랑스럽게 대답하자 정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타화자재천국이요?그게 뭐지요?

 

정화의 물음에 고수영은 자부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정화를 바라보더니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문을 열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곳이야.

“그런 곳이 있어요?

“응, 황박사님이 세우신 이상향이야.

“황박사가요?

그래.”

난 그런 얘기 처음 들어보는데요.”

 

정화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고수영을 바라보자 그는 피싯 웃으며 대꾸한다.

 

그럴 거야. 그곳은 아무나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그래요?”

 

정화가 다시 관심을 나타내자 고수영은 마치 큰 비밀이라도 누설했다는 듯 입을 얼른 다물고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그러나 정화는 고수영이 부모님들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지금 인질로 잡혀간 부모님들을 찾고있는데 그분들도 여기에 계시나요?

 

여전히 주변을 의식하던 고수영은 정화의 질문에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

 

“글쎄. 반반이야. 여기 GSA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타화자재천국에 있을 수도 있지.”

그럼 우리 아빠는 어디에 계실까요?

 

고래밥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정화의 눈빛이 매우 간절해졌다.

 

“글쎄다. 그런데 네 아버지는 무슨 기술을 갖고 계시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셨는데 주로 여의주를 반대하는 시위활동을 많이 하셨어요.

“그렇다면 여기보다는 타화자재천국에 있을 가능성이 커.

“제 아버지는 황박사가 싫어하는 일을 앞장 서서 하셨는데도요?

 

고수영을 쳐다보는 정화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 했다.그러자 의외로 고수영은 걱정말라는 듯 환하게 웃었다.

 

황박사님은 반대자도 모두 포용하는 아주 훌륭한 분이야.나 같은 사람도 단지 몰라서 죄를 진 것뿐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받아주셨어.”

“그럼 정말 다행이군요.

 

정화는 안도의 미소를 싱긋 짓자 고수영도 따라 웃으며 물었다.

 

“네 아빠 이름이 어떻게 되는데?

“유동인입니다,

“잠깐만, 내가 고객 명단을 살펴볼께.

 

말을 마친 고수영이 오른 손을 들어 허공에 사각형 모양을 그리자 PDA 단말기 모양의 홀로그램이 나타났다.손가락으로 단말기를 몇 번 가볍게 터치하던 그는 잠시 후 정화를 돌아보며 씽긋 눈짓을 했다. 

 

“역시 타화자재천국에 계시군. 1지역이야.

“정말이예요?

“그럼.

“그럼 다른 분도 다 거기에 계시겠죠?

그렇구나.”

 

홀로그램 단말기를 다시 재빠르게 훑어보며 고수영이 자신있게 말하자 정화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를 거기에 데려다 주실 수 있나요?”

 

말을 맺은 정화의 눈시울이 문득 붉어졌다.

 

너도 아빠가 보고싶은 게냐?

 

측은한 눈빛으로 정화를 바라보던 고수영은 하지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거기는 너희같은 외부인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야.

그게 무슨 말이죠?

 

매우 낙담한 듯 정화의 얼굴빛이 금방 핼쓱해졌다.

 

허가없이 외부인을 데리고 갔다가 들키면 내 모가지가 날아가.

 

고수영은 오른 손으로 자기 목을 치는 시늉을 하며 너무나도 진지하게 말하는 통에 정화는 더는 부탁을 할 수가 없었다.그 모습이 매우 안스럽게 보였는지 고래밥은 얼른 고수영의 손을 붙잡았다.

 

“아빠, 좀 도와줘.황박사가 잡아간 부모님들을 죽인대요

“황박사는 그럴 분이 절대 아닌데……

 

그래도 고수영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린다.

 

“정말이야,아빠,

 

다시 고수영을 설득하는 고래밥의 눈에 눈물마저 맺히기 시작했다.고수영은 오랜만에 만난 아들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는지 마침내 가벼운 한숨을 내쉰다.

 

“네 녀석 고집은 여전하구나. 좋다. 마침 내가 오늘 그곳에 의약품을 배달하는 날이니까 같이 가자. 하지만 정말 조심해야 된다.내 밥줄이 달렸으니까.

알았어요.” 

 

아이들에게 두 번 세 번 다짐을 받은 고래밥 아버지는 잠깐 어디론가 가더니 D자가 새겨진 제복을 가지고 다시 나타났다.그는 아이들에게 서둘러 그 옷으로 갈아입게 했다.

그리고는 수송차에 아이들을 태우고는  타화자재천국이 있는 방향을 향해 질풍노도처럼 달려갔다.한참 어디론가 차를 급하게 몰던 고수영은 갑자기 아이들을 돌아보며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제 들어간다!

 

정화가 창밖의 주변을 살펴보니 그들이 도착한 곳은 의외로  시의 한가운데에 있는 정보탑이었다.

고수영은 평소 하던대로 수송차를 정보탑의 정문으로 몰고들어갔다. 그리고는 마침 열려있던 엘리베이터에 주저없이 그대로 올라탔다. 수송차를 통째로 태운 엘리베이터는 매우 빠른 속도로 정보탑의 상층부로 한없이 올라갔다. 그리고는 층 수를 알 수 없는 곳에 멈추자 고수영의 차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가 넓은 복도로 들어섰다. 고수영은 점점 긴장된 시선으로 은은한 빛이 가득한 복도를 이리 저리 살피며 한참 운전을 하다가는 어느 문앞에 섰다.

 

“……!

 

문위에 붙어있는 센서가 의약수송차의 등록을 인식했는지 잠시 후 문이 조용히 열렸다.정화가 내심 의외로 너무 경비가 허술한 타화자재천국에 대해 불쑥 의구심을 품을 무렵 의약수송차는 익숙하게 문안으로 쏘옥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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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밤,

시내에 어둠이 내리면 빽빽하게 들어선 빌딩숲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빛들은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듯 밤하늘의별들로 변신을 한다지상에 별들이 가득 차자 마치 하늘과 땅이 뒤바뀐 듯 하다.그런 어지러운 별들사이로 황금색 빛으로 가득 찬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이 강렬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삼라정보탑의 화려한 야경이었다. 하지만 지수는 런 정보탑에서 바벨탑의 분위기가 느껴져 얼른 시선을 팔달산의 정상쪽으로 돌려버렸다.

 

(......!)

 

하지만 지수가 서있는 화성남쪽성곽남포루에서는 맞은 편의 울창한 소나무숲 때문에 정상에 있는 서장대가 거의 보이지않는다. 마치 전혀 떠오르지않는 깜깜한 그의 기억과  똑같았다.

 

(나는왜지금팔달산에있는것일까?)

 

이상하게도 지수는자신이언제 팔달산에들어왔는지 전혀 기억을 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자신의가족관계도전혀떠오르지않아 정말 괴로왔다. 팔달산의으슥한동굴에서 만난 공노인만이 유일하게 떠오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공노인과 자신이 과거에 무슨 인연을 맺고있었는지는 전혀 종잡을 수 없었다때문에 지수는  마치 자신의 뇌의 일부가  통째로 잘려나간 듯한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에 깊게 빠지곤 했었다.

 

 “……!

 

그때문득밤하늘의별들이어두운숲속으로우르르쏟아졌다. 지수는 웬 별똥별인가 싶어 눈을 크게 뜨고 숲속을 유심히살펴보았다.그런데땅으로마구쏟아지던별들은떼를지어출렁출렁움직이며위로상승하더니 신나게춤추며 자신이 있는 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저건......)

 

 한밤중에 지수를 놀라게한 별똥별은 다름아닌초록빛의반딧불이었다. 그러고보니 곤히 잠든 팔달산 주변이 어느새 온통반딧불이천지로 변했다.는갑갑하고 우울했던기분을떨쳐버리기위해서환호성을지르며초록빛의 반딧불이의 바다로 첨벙 첨벙 뛰어들었다. 그리고 어린 아이처럼 팔짝 뛰면서 두손으로반딧불이를잡으려했다. 그러나반딧불이들은슬쩍슬쩍그의손길을잘도빠져나간다.

 

“......!”

 

그런데지수가정신없이반딧불이의 바다를 헤치고 뛰어다니다가문득앞을바라보니누군가도자기처럼반딧불이를잡기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

 

거기누구야?

 

사람도지수의목소리를들었는지흠칫놀라며동작을멈추었다. 그리고잠자코지수를바라만본다. 지수가그쪽으로서서히걸음을옮기자문득 바람결에 여자특유의알싸한 향기가실려온다.

 

정화 ?

 

대뜸 그녀의이름을부르는지수의가슴이 갑자기 마구뛰기시작했다.

 

지수?

 

반색을하며지수의앞으로튀어나온사람은예상대로정화였다머리를 뒤로 묶은 정화의웃는얼굴이밤이슬에청초롬하게젖어있었다.  

 

이시각에웬일이야?

 

모두가잠든깊은시각에뜬금없이정화를만나게되자 지수의목소리가 괜시리 떨렸다.

 

. 잠이 안와서 나와보니 사방이온통푸른불빛이잖아. 난처음엔별이떨어지는 줄 알고 소원이나 빌려고 했는데 알고보니 반딧불이들이잖아. 그래서 요녀석들을 혼내주고 있는 거야. 호호,

 

정화는자신이 생각해도 말같지 않은 변명을 하고 있다고 느꼈는지 멋적은 웃음을 살짝 날린다.그런 정화의 웃음과 수수한외모는언제나 지수의 공허하고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곤 했었다.

 

그래  나도  혼좀 내줄까?

 

지수도 한 마디 던지고 마침 눈앞으로 날아가는 반딧불이를 오른손으로 날세게 훔친다.그러나 이번에도 반딧불이는 그의 손길을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둘 사이의 어색함을 숨기려는 듯 정화가 반딧불이를 얼른 따라간다. 지수는 또다른 반딧불이를 잡으려고 달음질쳤다.한참동안 애꿎은 반딧불이를  잡으려고 이리 저리 따라다니던 두 사람은 다리가 아파오자 결국 금잔디광장의누각난간에나란히걸터앉고 말았다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반딧불이가펼치는밤의무도회만즐겼다이윽고지수가먼저말문을열었다.

 

정화야, 나는왜엄마에대한기억이없을까?

엄마기억?

 

비록 느닷없는 질문이었지만 이미 정화는 그의 고뇌를 안다는 듯 그녀의 예쁜 눈에 걱정이 가득 찼다.

 

다들엄마아빠를구하겠다고 난리인데 나만 혼자야.”

“……”

마치머리가뻥뚫린것같이아무것도생각이안나. 왜그러지?

 

두려움과걱정이가득찬지수의 맑은 시선이정화의 까만 눈동자에머물었다.한순간정화는괴로와하는지수가안돼보여서그의과거를모두밝혀버릴까하는생각이 불쑥 들었다.그러나이후벌어질혼란과두려움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어 정화는 그냥입을다물고말았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

아니, 절망적이야.

지수야,

 

안타깝게 지수의 이름만 부르는 정화의 눈빛이 어두운 밤의 색깔보다 더 어두워지는 것을  본 지수는 얼른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정화라고 뭐 특별한 대답을 해주겠는가 싶고 지금  이 순간에는 그저 정화가 자신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너에대한내감정이싹틀수있는자리는남아있어서그나마다행이야.

정화는 지수의말이무슨뜻인지 짐짓 모르겠다는 듯 지수를 짓굿게 빤히쳐다본다.

 

그게……”

 

지수는무심코 내뱉은  말이었지만   말한 자신도 조금쑥스운지 말을  얼버버리고는 여전히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반딧불이로얼른시선을돌린다.그러다가는 문득 생각난 듯  걱정스런 시선으로 정화를다시 돌아본다.

 

정화야, 내일 부모님들을 구해내겠지?”

최선을 다하면 성공할 거야.

 

정화의  말은 진심이었다.지수는미소를띠우며고개를힘있게끄떡이었다.

 

그래.

너도 몸조심하고……

 

정화가미소를지으며말하자 지수는정화의손을 가만히 잡았다.  그녀는깜짝 놀란 듯 한 표정을 지었으나 손을 굳이 빼지는 않았다

 

정말사람의마음이란참묘했다. 정화는 겨우사흘만에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지수가 정화의마음에애뜻하게 자리잡을 줄  에도몰랐다.냉혹함이 사라진 지수는 정말 다정다감한훈남이었. 그의따뜻한미소에정화는자신도모르게 차츰 마음을빼앗겨 갔다.

 

그때정화의마음속에 일어난 미묘한 변화를 축하라도 하듯 수많은반딧불이들이초롱불처럼그녀의머리위로몰려왔다. 파란색띠에에워싸여더청초하게보이는정화는전혀딴사람처럼보였다.

 

오늘밤은손님들이유난히많네!

내일의승리를축하해주는 것 같네.

 

정화의감탄사에지수는정화의손을꼭잡은채반딧불을바라보며즐거워했다.정화도 지수의 따뜻한손이 미세하게 떨리고차츰촉촉히젖어오는것을확실히느낄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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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래도 약속을 그럭저럭 지킨 것 같은데 문제는 저 꼬맹이들이군.”

 

검귀의 거치른 목소리에 잠깐 상념에 잠겼던 공노인은흠칫 놀라면서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저 아이들도 위험에 빠진 제 부모들을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요.”

 

공노인의 강한 항변이었다.

 

그래도 그렇지.우리는 제놈들을 위해서 피를 흘렸건만 감히 우리를 잡으려고 달려들어?”

오죽하면 저러겠습니까?”

폐하의 비호만 아니었으면 저놈들도 이미 여기서 쫓겨났을텐데……이제는 오히려 우리가 피해다녀야 하다니……”

 

검귀는 솟구치는 불만 때문에 말이 안나오는 듯 잠시 말을 끊었다.그는 뒤에 장승처럼 서 있는 두 명의 사내들을 흘끔 쳐다본다.

 

그것 이리 내놔,”

 

검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명을 받은 사내는 등에 지고 있던 작은 자루를 풀어 공노인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유리병 같은 것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나 났다.검귀는 자루속에 손을 넣더니 2홉짜리 녹색 소주병을 하나 꺼내들었다.소주병속에는 자주색 연기 같은 것이 가득 차 출렁이고 있었다. 

 

승상의 명이요. 이것으로 아이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시요.안 그러면 아이들의 목숨이 위험해집니다.”

위험해지다니……그게 무슨 말이요?”

 

소주병과 검귀를 번갈아 쳐다보는 공노인의 얼굴에 불길한 기색이 빠르게 퍼졌다.

 

 

 

잠시 후 지수와 영재 그리고 돈수가 공노인 혼자 있는 동굴속으로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성질 급한 영재가 쪼르르 공노인 앞으로 쫓아나왔다.

 

저 혹시 수상한 자들을 보셨나요?”

아니, 아무도 못보았는데……”

그래요. 이상한데……분명히  이 동굴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지수야, 너도 분명히 보았지?”

으응.”

 

지수는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사부의 거처에 뜬금없이 난입한 것이 못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영재는 동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두리번거린다.그 모양을 지켜보던 공노인은 짐짓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지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난리냐?”

무예24기 시범단을 찾던 중 수상한 남자들이 이 동굴속으로 뛰어들어오는 것을 보았어요.”

그래.여기에는 아무도 안왔는데.그런데 정말 그들과 싸울 작정이냐?”

 

공노인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예요.”

 

지수가 난감한 얼굴로 이야기를 꺼내자 동굴의 판자앞에 서있던 영재가 고개를 돌리며 크게 말했다.

 

하지만 여차하면 그들과 한판 붙을 거예요.”

그들은 너희들이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야.

하지만 저희는 총이 있어요.”

 

영재는 K2 소총을 치켜들고 대꾸했다.

 

그래도 그들은 너무 위험해. “

자꾸 위험하다고 하시는데 사부님은 혹시 그들에 대해서 뭔가 알고계시나요?”

 

영재의 눈빛이 예사롭지않게  반짝했다.오히려 공노인이 시선을 슬쩍 피할 정도였다.

 

알긴……시범단이 우리를 도와주기는 했지만 너무 잔인해보여서 그러는 거다.”

하지만 내일까지 그들을 잡지못하면 엄마 아빠가 다 죽는데 어떡해요.”

 

돈수가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이었다.

 

“황박사 그자가 정말 잔인한 짓을 하는구나.,”

 

공노인이 한숨을 내쉬자 판자벽앞에 서있던 영재가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사부님여기에왜 판자를 세우셨나요?”

찬 바람이 새어나와서 막았어.”

그래요?”

 

영재는 그렇게 대꾸는 했지만 뭔가 미심쩍인지 계속 그앞에서 얼쩡거리며 판자틈사이를 들여다 본다.그러자 공노인은 결심을 굳힌 듯 공노인은 묵묵히 듣고만 있는 지수에게 작은 자루를 내밀었다.

 

그들과 싸우지 말고 차라리 황박사하고 정면대결해라!

네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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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지월의 말이 사실이었단 말이야?

 

공노인은 정말 자신이 지하궁전을 발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짜릿한 전율을 온몸에 느꼈다그후 몇 개월을 정신나간 사람처럼 동굴을 파내려가던 그는  결국 숨겨진 지하궁전의 입구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그런데 지월이 예고했던 위험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어느 날 동굴의 벽을 삽으로 찌르자 공간이 확 뚫리면서 은은한 빛에 싸여있는 웅장한 성문이 눈앞에 확 드러났다.

 

이게 정말 아마라궁이야?”

 

탄성을 지르던 공노인은 조심스럽게 성문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휘둥그래진 눈앞에 수많은 옛날 누각들이 펼쳐졌다.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누각 한 쪽에서 창검으로 무장한 군졸들이 한 떼로 쏟아져나오더니 곧바로 공노인을 포위했다.포도대장같은 벙거지와 군복을 차려입은 자가 다짜고짜 지휘봉으로 공노인을 가리키며 눈을 부라렸다.

 

감히 아라마궁을 침범을 해?여봐라, 당장 저 놈의 목을 쳐라!”

 

벙거지의 호통에 군졸들은 주저없이 검과 창을 치켜들고는 공노인에게 달려들었다.영문도 모른 채 공노인의 목이 졸지에 달아날 판이었다. 그때였다.

 

멈춰라!”

 

어디선가 거친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제일먼저 공노인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치던 군졸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그의 등에 큼직한 화살이 꽂혀 파르르 흔들리고 있었다. 뜻밖의 사태에 깜짝 놀란  공노인이 주위를 살펴보니 전방에 있는 누각의 지붕위에서 복면을 쓴 무사들이 활을 겨누고 있었다. 군졸들이 놀란 틈도 없이 그들은 날렵하게 몸을 날려 땅위으로 사뿐히 내려섰다. 그리고는 검을 뽑더니 군졸들을 향해 범처럼 달려들었다.순식간에 서너 명의 군졸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포도대장은 황급히 검을 뽑아들고 직접 복면무사를 상대했다.당황했던 군졸들도 그 사이 복면무사들을 재빨리 에워쌌다.하지만 복면무사들의 무예가 워낙 출중해서 군졸들은 쉽게 침입자를 제압하지 못했다.

 

빨리 도망가지 않고 뭐해!”

 

이리떼처럼 달려드는 군졸 두 명을 한 칼에 해치운 복면무사 한 사람이 멍하니 그 격전을 지켜보고있는 공노인을 향해 버럭 고함을 쳤다.그제서야 공노인은 주춤 주춤 뒤로 물러섰다.그때 그의 도주를 눈치 챈 군졸 한 명이 창을 치켜들고 공노인에게 달려들다가 복면무사가 던진 단도를 등에 맞고는 구슬픈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기겁을 한 공노인은 자신이 뚫고왔던 동굴속으로 허겁지겁 뛰어들어갔다.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않고 냅다 도망쳤다. 

 

공노인은 숨을 헐떡이며 동굴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떨리는 마음을 도저히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어떤 때에는 자신이 목격한 것들이 모두 혹시 꿈이 아니었나 싶어 허벅지를 꼬집어보기도 했다.하지만 모든 일들이 끔찍한 현실이었다.그러자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두려움이 물밀듯이 그를 엄습해왔다.

 

(도대체 살기등등한 군졸들의 정체가 뭐지?)

 

그나마 다행인 것이 복면의 무사들이 자신을 도와준 점이었다.하여간 그는 영문도 모르고 죽을 뻔 하다가 간신히 구조당한 것이 매우 답답했다.하지만 다시는 그 지하궁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그러던 중 자신을 죽이려다 실패한 군졸들이 동굴을 따라 몰려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났다.

그는 급히 동굴을 다시 메꾸고 싶었지만 짧은 시간안에 길고도 긴 동굴을 다시 메꾼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급기야는 황금에 눈이 멀어 괜히 발굴을 시작했다는 뒤늦은 후회마저 들었다. 하여간 급한 대로 그는 동굴입구만 대충 흙으로 대충 막고는 그것도 미진해서 판자를 대고 못질을 했다.그러는 사이에 어느 덧 저녁이 되었다.

 

“……!”

 

깊은 생각에 몰두해있던 그는 등뒤에서 찬기운이 이는 것을 느꼈다. 뭔가 심상치않은 것을 느낀 공노인은 불안한 기색으로 뒤돌아보다 흠칫 놀랐다.눈앞에 웬 낯선 칼잡이가 검을 들고 서 있기 때문이었다.

 훤칠하게 키가 큰 칼잡이의 눈이 유독 가늘고 길게 째졌다.공노인이 벌떡 일어나려하자 칼잡이는 재빨리 칼을 뽑아 그의 목에 얹었다.피부깊숙히 스며드는 강철의 섬뜩함에 공노인은저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후후, 이제 네 목을 떼어야 할 때가 되었군.”

 

칼잡이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번쩍이는 검을 치켜들었다.

 

, 누구요?”

나는 네가 훔쳐본 아라마궁을 지키는 검귀장군이다.”

그런데 왜 나를 해치려는 거요?”

네가 우리 아마라궁을 보았기때문이다.모든 것이 네 탓이니 날 원망하지마라.”

도대체 그 따위 궁이 뭐길래 날 죽이려는 거요?”

감히 우리 궁을 폄하하다니……이놈!”

 

검귀는 당장이라도 공노인의 목을 베겠다는 기세로 칼을 치켜올렸다.공노인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그때 문득 칼과 칼이 날카롭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꼼짝없이 죽는구나 했던 공노인은 무슨 일인가 싶어 슬그머니 눈을 떴다.그의 눈앞에서 웬 낯선 검이 검귀의 검을 가로막고 있었다. 덕분에 목숨을 구한 공노인이 얼른 그 검의 주인을 치켜올려보니 전의 그  복면무사가 서 있었다.

 

네 놈은 누구냐?”

 

당황한 검귀가 복면무사를 노려보며 소리치자 복면무사는 검귀의 칼을 서서히 밀어낸다.

 

난 이자의 수호무사다! 무고한 목숨을 해치지 말라!”

무고하다니? 이놈은 아마라궁을 위험에 빠뜨린 자이다.”

 

검귀는 복면무사에게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으려고 용을 쓰는 듯 서로 맞댄 두 개의 검이 부르르 떤다.슬쩍 밀렸던 복면무사의 검이 다시 검귀의 검을 밀쳐냈다.

 

언제까지 아마라궁이 숨겨질 것 같은가?”

네 놈 말투를 보니 폐하의 사주를 받은 것 같은데?”

 

복면무사를 향해 내뱉는 검귀의 얼굴에 굵은 핏줄이 우드득 일어섰다.다시 검귀의 검을 막아내느라고 힘겨운지 복면무사의 팔이 부르르 떤다

 

“……!”

후후, 그렇지만 어쩌겠느냐. 난 아마라궁을 지켜야한다는 승상의 명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 모두는 폐하의 명만을 따라야 하오.”

 

되받아치는 복면무사의 목소리에 날이 잔뜩 섰다.하지만 검귀는 콧방귀를 꼈다.

 

, 무슨 소리야! 아무리 폐하라 해도 아마라궁을 위험에 빠뜨리면 따를 수 없어.”

따르지 않으면 반역으로 다스린다.”

나약한 왕이? 무슨 힘으로?”

내가 바로 폐하의 힘이다!”

 

화가 매우 난 듯 복면무사는 검귀의 검을 거칠게 밀어제치면서 고함을 쳤다.그 바람에 그의 칼 끝이 검귀의 목에 직접 닿게 되었다.복면에 뚫린 두 개의 구멍사이로 섬찍한 살기가 쏟아져나온다.그것에 흠칫 놀란 검귀는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검귀도 밀리면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곧 다시 검을 고쳐잡고 공격자세를 취했다.

 

네놈이 날 대적하겠다고?”

내 검은 반역자를 용서치않는다!”

 

복면무사가 서슬 퍼렇게 나오자 검귀는 쉽게 덤벼들지 못한다. 결정적으로 복면무사의 무술수준이 그를 능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좋아, 협상을 하지.”

 

검귀는 짐짓 호기롭게 검을 걷어들이더니 공노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아마라궁과 이 동굴에 대해서 영원히 입을 다물겠다는 약속을 하면 오늘은 그만 물러가겠다.”

약속을 지키겠소.”

 

공노인은 누그러진 검귀의 태도가 다시 돌변할까봐 얼른 대답했다.그러자 검귀는 다시 험상궂게 말했다.

 

하지만 누구라도 우리 아마라궁에 들어오는 자가 있으면 당신이 누설한 것으로 알고 지체없이 당신의 목을 따러 오겠소.”

알겠소.”

우리가 밤낮으로 당신을 지켜보겠소.”

 

검귀가 협박하듯이 다시 공노인에게 쏘아부치자복면무사는 검귀의 목을 향해 검을 대고 허공에 쓰윽 긋는 시늉을 했다.

 

검귀, 너야말로 어설프게 이 어르신을 해치려하면 이렇게 될 줄 알아!”

 

복면무사의 경고에 검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는 말없이 뒤로 물러서서는 왔던 길로 급히 돌아갔다.그러자 복면무사도 검을 칼집에 집어넣고는 공노인에게 말했다.

 

저자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좋겠소. 내가 당신을 지키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알겠소.”

 

 공노인은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그러다가 문득 묻는다.

 

그런데 왜 당신은 나를 지켜주는 것이요?”

그건 폐하의 깊은 뜻이니 묻지 마시요.”

 

복면무사는 짤막하게 대답을 하고는 뒤돌아서 아까 검귀가 사라졌던 방향으로 급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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