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팔달산 기슭에서 강태풍이 아수라 군단을 이끌고 경계선 밖으로 뛰어나가자 그들을 발견한 보안군들이 보초를 서다말고 황급히 그들을  잡으러 쫓아나갔다.

 

"쉿!빨리와!"

 

잠시 후 텅빈 초소앞으로 지수, 정화, 고래밥 그리고 마돈수는 비장한 표정으로 조용히 나타났다.황박사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루면 그들의 부모들을 구해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두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히 얼굴이 굳어져갔다.

하여간 삼엄한 보안군의 시선을 딴데로 돌리고 무사히 시내로 빠져나온 그들은 제일 먼저 부모들이 갇혀있는 곳을 알아내기 위해서 시내를 샅샅이 뒤집고 다녔다.그러나 넓은 시내에서 부모들의 행방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끈기있게 계속해 나갔다.

 

점점 지쳐가던 중 그들은 현대식 첨단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어느 수상한 건물을 발견했다.3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길이만 해도 거의 50미터가 넘어 보였다.건물의 2층에 건물의 이름인 듯 ‘GSA’라는 영어 간판이 운치있게 걸려 있었다. 그런데 수위실은 이상하게도 텅 비어 있었다.

 

“……!”

 

그때 GSA1층 열린 문틈으로 환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던 고래밥이 갑자기 코를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얘들아, 저 문에서 먹을 것 냄새가 난다!

 

고래밥이 외치자 제일 먼저 돈수가 쏜살같이 그 문앞으로 달려갔다. 문위에는 식품관리부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마침 모두 배가 고팠던 참이라 구수하게 새어나오는 음식 냄새를 따라 누구 먼저라 할 것 없이 공장건물속으로 도둑고양이처럼 들어가기 시작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엄청나게 넓은 건물안에는 대형 뷔페처럼 갖가지 종류의 음식들이 식욕을 돋구는 현란한 조명빛 아래 산더미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고래밥은 환호성을 지르며 팔짝 팔짝 뛰었다.

 

“와우, 맛있겠다!

 

음식사이로 연두색 제복을 입은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잘 포장된 음식을 카트에 실고는 이리 저리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들은  왼쪽 가슴앞에 ‘F(food) 혹은 ‘D(drug)라는 빨강 글씨가 선명하게 찍힌 제복을 자랑스럽게 내밀고 다녔다.

 

고래밥이 해산물 코너에서 잘 요리된 바다가재를 하나 집어  정신없이 뜯을 때 한 중년 남자가 등뒤로 다가와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너 혹시 영수?

“어?

 

목소리가 귀에 익은지  뒤돌아보는 고래밥의 얼굴빛이 확 밝아졌다.

 

“아, 아빠,

“너 영수 맞구나!

 

중년남자는 반색을 하며 고래밥의 야윈 몸을 와락 품에 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토록 찾아다녔던 아버지를 엉뚱한 장소에서 만나서 그런지 고래밥은  중년남자를 와락  껴안고는 울먹이었다. 그리고는 그동안 무심하게 소식 한 통 보내지 않았던 아버지 고수영에게 푸념을 봇물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빠,도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나는 여의주 반대운동을 그만 두고 이 GSA에 취직했단다.

“그랬으면 진작에 연락을 해주셨었야지요?

“난 가끔씩 연락을 했는데 네가 답장을 안했잖아?

“네에?

 

고래밥은 눈물범벅이 된 눈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본다.

 

“전 한 번도 연락을 받은 적이 없어요.

“거참, 이상하네.

 

나이먹은 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들은 해맑게 웃으며 그를 다시 껴안는다.

 

“괜찮아요. 어쨌든 아빠를 다시 만났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무슨 일을 하시는 거예요?

“난 여기서 타화자재천국(他化自在天國)을 지원해주는 관리사로 일하고 있단다.

 

고래밥 아버지도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타화자재천국 관리사요?

“응. 타화자재천국에 식량의약품 그리고 각종 설비 등을 정기적으로 공급해주고 있지.

 

고수영의 자랑스럽게 대답하자 정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타화자재천국이요?그게 뭐지요?

 

정화의 물음에 고수영은 자부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정화를 바라보더니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문을 열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곳이야.

“그런 곳이 있어요?

“응, 황박사님이 세우신 이상향이야.

“황박사가요?

그래.”

난 그런 얘기 처음 들어보는데요.”

 

정화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고수영을 바라보자 그는 피싯 웃으며 대꾸한다.

 

그럴 거야. 그곳은 아무나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그래요?”

 

정화가 다시 관심을 나타내자 고수영은 마치 큰 비밀이라도 누설했다는 듯 입을 얼른 다물고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그러나 정화는 고수영이 부모님들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지금 인질로 잡혀간 부모님들을 찾고있는데 그분들도 여기에 계시나요?

 

여전히 주변을 의식하던 고수영은 정화의 질문에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

 

“글쎄. 반반이야. 여기 GSA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타화자재천국에 있을 수도 있지.”

그럼 우리 아빠는 어디에 계실까요?

 

고래밥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정화의 눈빛이 매우 간절해졌다.

 

“글쎄다. 그런데 네 아버지는 무슨 기술을 갖고 계시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셨는데 주로 여의주를 반대하는 시위활동을 많이 하셨어요.

“그렇다면 여기보다는 타화자재천국에 있을 가능성이 커.

“제 아버지는 황박사가 싫어하는 일을 앞장 서서 하셨는데도요?

 

고수영을 쳐다보는 정화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 했다.그러자 의외로 고수영은 걱정말라는 듯 환하게 웃었다.

 

황박사님은 반대자도 모두 포용하는 아주 훌륭한 분이야.나 같은 사람도 단지 몰라서 죄를 진 것뿐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받아주셨어.”

“그럼 정말 다행이군요.

 

정화는 안도의 미소를 싱긋 짓자 고수영도 따라 웃으며 물었다.

 

“네 아빠 이름이 어떻게 되는데?

“유동인입니다,

“잠깐만, 내가 고객 명단을 살펴볼께.

 

말을 마친 고수영이 오른 손을 들어 허공에 사각형 모양을 그리자 PDA 단말기 모양의 홀로그램이 나타났다.손가락으로 단말기를 몇 번 가볍게 터치하던 그는 잠시 후 정화를 돌아보며 씽긋 눈짓을 했다. 

 

“역시 타화자재천국에 계시군. 1지역이야.

“정말이예요?

“그럼.

“그럼 다른 분도 다 거기에 계시겠죠?

그렇구나.”

 

홀로그램 단말기를 다시 재빠르게 훑어보며 고수영이 자신있게 말하자 정화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를 거기에 데려다 주실 수 있나요?”

 

말을 맺은 정화의 눈시울이 문득 붉어졌다.

 

너도 아빠가 보고싶은 게냐?

 

측은한 눈빛으로 정화를 바라보던 고수영은 하지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거기는 너희같은 외부인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야.

그게 무슨 말이죠?

 

매우 낙담한 듯 정화의 얼굴빛이 금방 핼쓱해졌다.

 

허가없이 외부인을 데리고 갔다가 들키면 내 모가지가 날아가.

 

고수영은 오른 손으로 자기 목을 치는 시늉을 하며 너무나도 진지하게 말하는 통에 정화는 더는 부탁을 할 수가 없었다.그 모습이 매우 안스럽게 보였는지 고래밥은 얼른 고수영의 손을 붙잡았다.

 

“아빠, 좀 도와줘.황박사가 잡아간 부모님들을 죽인대요

“황박사는 그럴 분이 절대 아닌데……

 

그래도 고수영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린다.

 

“정말이야,아빠,

 

다시 고수영을 설득하는 고래밥의 눈에 눈물마저 맺히기 시작했다.고수영은 오랜만에 만난 아들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는지 마침내 가벼운 한숨을 내쉰다.

 

“네 녀석 고집은 여전하구나. 좋다. 마침 내가 오늘 그곳에 의약품을 배달하는 날이니까 같이 가자. 하지만 정말 조심해야 된다.내 밥줄이 달렸으니까.

알았어요.” 

 

아이들에게 두 번 세 번 다짐을 받은 고래밥 아버지는 잠깐 어디론가 가더니 D자가 새겨진 제복을 가지고 다시 나타났다.그는 아이들에게 서둘러 그 옷으로 갈아입게 했다.

그리고는 수송차에 아이들을 태우고는  타화자재천국이 있는 방향을 향해 질풍노도처럼 달려갔다.한참 어디론가 차를 급하게 몰던 고수영은 갑자기 아이들을 돌아보며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제 들어간다!

 

정화가 창밖의 주변을 살펴보니 그들이 도착한 곳은 의외로  시의 한가운데에 있는 정보탑이었다.

고수영은 평소 하던대로 수송차를 정보탑의 정문으로 몰고들어갔다. 그리고는 마침 열려있던 엘리베이터에 주저없이 그대로 올라탔다. 수송차를 통째로 태운 엘리베이터는 매우 빠른 속도로 정보탑의 상층부로 한없이 올라갔다. 그리고는 층 수를 알 수 없는 곳에 멈추자 고수영의 차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가 넓은 복도로 들어섰다. 고수영은 점점 긴장된 시선으로 은은한 빛이 가득한 복도를 이리 저리 살피며 한참 운전을 하다가는 어느 문앞에 섰다.

 

“……!

 

문위에 붙어있는 센서가 의약수송차의 등록을 인식했는지 잠시 후 문이 조용히 열렸다.정화가 내심 의외로 너무 경비가 허술한 타화자재천국에 대해 불쑥 의구심을 품을 무렵 의약수송차는 익숙하게 문안으로 쏘옥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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