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지월의 말이 사실이었단 말이야?

 

공노인은 정말 자신이 지하궁전을 발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짜릿한 전율을 온몸에 느꼈다그후 몇 개월을 정신나간 사람처럼 동굴을 파내려가던 그는  결국 숨겨진 지하궁전의 입구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그런데 지월이 예고했던 위험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어느 날 동굴의 벽을 삽으로 찌르자 공간이 확 뚫리면서 은은한 빛에 싸여있는 웅장한 성문이 눈앞에 확 드러났다.

 

이게 정말 아마라궁이야?”

 

탄성을 지르던 공노인은 조심스럽게 성문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휘둥그래진 눈앞에 수많은 옛날 누각들이 펼쳐졌다.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누각 한 쪽에서 창검으로 무장한 군졸들이 한 떼로 쏟아져나오더니 곧바로 공노인을 포위했다.포도대장같은 벙거지와 군복을 차려입은 자가 다짜고짜 지휘봉으로 공노인을 가리키며 눈을 부라렸다.

 

감히 아라마궁을 침범을 해?여봐라, 당장 저 놈의 목을 쳐라!”

 

벙거지의 호통에 군졸들은 주저없이 검과 창을 치켜들고는 공노인에게 달려들었다.영문도 모른 채 공노인의 목이 졸지에 달아날 판이었다. 그때였다.

 

멈춰라!”

 

어디선가 거친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제일먼저 공노인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치던 군졸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그의 등에 큼직한 화살이 꽂혀 파르르 흔들리고 있었다. 뜻밖의 사태에 깜짝 놀란  공노인이 주위를 살펴보니 전방에 있는 누각의 지붕위에서 복면을 쓴 무사들이 활을 겨누고 있었다. 군졸들이 놀란 틈도 없이 그들은 날렵하게 몸을 날려 땅위으로 사뿐히 내려섰다. 그리고는 검을 뽑더니 군졸들을 향해 범처럼 달려들었다.순식간에 서너 명의 군졸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포도대장은 황급히 검을 뽑아들고 직접 복면무사를 상대했다.당황했던 군졸들도 그 사이 복면무사들을 재빨리 에워쌌다.하지만 복면무사들의 무예가 워낙 출중해서 군졸들은 쉽게 침입자를 제압하지 못했다.

 

빨리 도망가지 않고 뭐해!”

 

이리떼처럼 달려드는 군졸 두 명을 한 칼에 해치운 복면무사 한 사람이 멍하니 그 격전을 지켜보고있는 공노인을 향해 버럭 고함을 쳤다.그제서야 공노인은 주춤 주춤 뒤로 물러섰다.그때 그의 도주를 눈치 챈 군졸 한 명이 창을 치켜들고 공노인에게 달려들다가 복면무사가 던진 단도를 등에 맞고는 구슬픈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기겁을 한 공노인은 자신이 뚫고왔던 동굴속으로 허겁지겁 뛰어들어갔다.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않고 냅다 도망쳤다. 

 

공노인은 숨을 헐떡이며 동굴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떨리는 마음을 도저히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어떤 때에는 자신이 목격한 것들이 모두 혹시 꿈이 아니었나 싶어 허벅지를 꼬집어보기도 했다.하지만 모든 일들이 끔찍한 현실이었다.그러자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두려움이 물밀듯이 그를 엄습해왔다.

 

(도대체 살기등등한 군졸들의 정체가 뭐지?)

 

그나마 다행인 것이 복면의 무사들이 자신을 도와준 점이었다.하여간 그는 영문도 모르고 죽을 뻔 하다가 간신히 구조당한 것이 매우 답답했다.하지만 다시는 그 지하궁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그러던 중 자신을 죽이려다 실패한 군졸들이 동굴을 따라 몰려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났다.

그는 급히 동굴을 다시 메꾸고 싶었지만 짧은 시간안에 길고도 긴 동굴을 다시 메꾼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급기야는 황금에 눈이 멀어 괜히 발굴을 시작했다는 뒤늦은 후회마저 들었다. 하여간 급한 대로 그는 동굴입구만 대충 흙으로 대충 막고는 그것도 미진해서 판자를 대고 못질을 했다.그러는 사이에 어느 덧 저녁이 되었다.

 

“……!”

 

깊은 생각에 몰두해있던 그는 등뒤에서 찬기운이 이는 것을 느꼈다. 뭔가 심상치않은 것을 느낀 공노인은 불안한 기색으로 뒤돌아보다 흠칫 놀랐다.눈앞에 웬 낯선 칼잡이가 검을 들고 서 있기 때문이었다.

 훤칠하게 키가 큰 칼잡이의 눈이 유독 가늘고 길게 째졌다.공노인이 벌떡 일어나려하자 칼잡이는 재빨리 칼을 뽑아 그의 목에 얹었다.피부깊숙히 스며드는 강철의 섬뜩함에 공노인은저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후후, 이제 네 목을 떼어야 할 때가 되었군.”

 

칼잡이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번쩍이는 검을 치켜들었다.

 

, 누구요?”

나는 네가 훔쳐본 아라마궁을 지키는 검귀장군이다.”

그런데 왜 나를 해치려는 거요?”

네가 우리 아마라궁을 보았기때문이다.모든 것이 네 탓이니 날 원망하지마라.”

도대체 그 따위 궁이 뭐길래 날 죽이려는 거요?”

감히 우리 궁을 폄하하다니……이놈!”

 

검귀는 당장이라도 공노인의 목을 베겠다는 기세로 칼을 치켜올렸다.공노인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그때 문득 칼과 칼이 날카롭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꼼짝없이 죽는구나 했던 공노인은 무슨 일인가 싶어 슬그머니 눈을 떴다.그의 눈앞에서 웬 낯선 검이 검귀의 검을 가로막고 있었다. 덕분에 목숨을 구한 공노인이 얼른 그 검의 주인을 치켜올려보니 전의 그  복면무사가 서 있었다.

 

네 놈은 누구냐?”

 

당황한 검귀가 복면무사를 노려보며 소리치자 복면무사는 검귀의 칼을 서서히 밀어낸다.

 

난 이자의 수호무사다! 무고한 목숨을 해치지 말라!”

무고하다니? 이놈은 아마라궁을 위험에 빠뜨린 자이다.”

 

검귀는 복면무사에게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으려고 용을 쓰는 듯 서로 맞댄 두 개의 검이 부르르 떤다.슬쩍 밀렸던 복면무사의 검이 다시 검귀의 검을 밀쳐냈다.

 

언제까지 아마라궁이 숨겨질 것 같은가?”

네 놈 말투를 보니 폐하의 사주를 받은 것 같은데?”

 

복면무사를 향해 내뱉는 검귀의 얼굴에 굵은 핏줄이 우드득 일어섰다.다시 검귀의 검을 막아내느라고 힘겨운지 복면무사의 팔이 부르르 떤다

 

“……!”

후후, 그렇지만 어쩌겠느냐. 난 아마라궁을 지켜야한다는 승상의 명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 모두는 폐하의 명만을 따라야 하오.”

 

되받아치는 복면무사의 목소리에 날이 잔뜩 섰다.하지만 검귀는 콧방귀를 꼈다.

 

, 무슨 소리야! 아무리 폐하라 해도 아마라궁을 위험에 빠뜨리면 따를 수 없어.”

따르지 않으면 반역으로 다스린다.”

나약한 왕이? 무슨 힘으로?”

내가 바로 폐하의 힘이다!”

 

화가 매우 난 듯 복면무사는 검귀의 검을 거칠게 밀어제치면서 고함을 쳤다.그 바람에 그의 칼 끝이 검귀의 목에 직접 닿게 되었다.복면에 뚫린 두 개의 구멍사이로 섬찍한 살기가 쏟아져나온다.그것에 흠칫 놀란 검귀는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검귀도 밀리면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곧 다시 검을 고쳐잡고 공격자세를 취했다.

 

네놈이 날 대적하겠다고?”

내 검은 반역자를 용서치않는다!”

 

복면무사가 서슬 퍼렇게 나오자 검귀는 쉽게 덤벼들지 못한다. 결정적으로 복면무사의 무술수준이 그를 능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좋아, 협상을 하지.”

 

검귀는 짐짓 호기롭게 검을 걷어들이더니 공노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아마라궁과 이 동굴에 대해서 영원히 입을 다물겠다는 약속을 하면 오늘은 그만 물러가겠다.”

약속을 지키겠소.”

 

공노인은 누그러진 검귀의 태도가 다시 돌변할까봐 얼른 대답했다.그러자 검귀는 다시 험상궂게 말했다.

 

하지만 누구라도 우리 아마라궁에 들어오는 자가 있으면 당신이 누설한 것으로 알고 지체없이 당신의 목을 따러 오겠소.”

알겠소.”

우리가 밤낮으로 당신을 지켜보겠소.”

 

검귀가 협박하듯이 다시 공노인에게 쏘아부치자복면무사는 검귀의 목을 향해 검을 대고 허공에 쓰윽 긋는 시늉을 했다.

 

검귀, 너야말로 어설프게 이 어르신을 해치려하면 이렇게 될 줄 알아!”

 

복면무사의 경고에 검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는 말없이 뒤로 물러서서는 왔던 길로 급히 돌아갔다.그러자 복면무사도 검을 칼집에 집어넣고는 공노인에게 말했다.

 

저자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좋겠소. 내가 당신을 지키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알겠소.”

 

 공노인은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그러다가 문득 묻는다.

 

그런데 왜 당신은 나를 지켜주는 것이요?”

그건 폐하의 깊은 뜻이니 묻지 마시요.”

 

복면무사는 짤막하게 대답을 하고는 뒤돌아서 아까 검귀가 사라졌던 방향으로 급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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