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사가 분기탱천하여 호통을 치자 소유천은 서서히 웃음을 지우고는 싸늘하게 내뱉었다.

 

영감, 나를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너희들이 안돌아와도 내가 죽으면 사람들의 뇌속에 설치되어있는 여의주가 자동으로 정지되는데 2분안에 다시 작동이 안되면 아주 치명적인 비소가 방출되지.”

뭐라고?”

잘들어! 그때는 나랑 연결된 수 백만 명이 순식간에 죽어나간다. 저 지수처럼말이다. 그래도 날 죽일거야? 호호,

  

말을 마친 소유천이 통쾌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자 장용사의 얼굴이 이그러졌다.

어디 네놈의 칼맛좀 보자구!

 

소유천은 붉은 양산을 내려놓고 대담하게도 장용사가 겨눈 검앞으로 목을 길게 쓱 내밀었다.그 기세에 오히려 장용사가 뒤로 주춤 밀려났다.

 그때를 놓칠세라 소유천이 소리치면서 장용사를 향해 무대포로 달려들자장용사 김경호는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소유천을 내리치려고 했다.  그 순간 그 광경을 지켜보고있던 지월은 장용사에게 급하게 소리쳤다.

 

멈춰라!장용사 그대의 분노를 잘 알지만 만에 하나 진짜 무고한 사람들이 죽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다. 우리도 바로 그것 때문에 여태 소유천을 죽이지 못했던 것아니더냐?”

 

지월의 만류에 장용사는 이를 악물며 소유천의 목을 베려던 검을 가까스로 멈추었다.

 

폐하, 정말 분통합니다.”

 

그러자 더욱 의기양양해진 소유천은 장용사를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멍청한 놈 ! 감히 내게 대들다니.....죽여버리겠어.받아라!

 

소유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붉은 양산에서 쏟아져 나온 수 십개의 비수가 장용사를 향해 무섭게 날아갔다.

 

“이크!

 

쏜살처럼 날아오는 비수를 장용사는 본능적으로 민첩하게 피했다. 그러나 소유천은 장용사에게 몸을 날렸다.그때 마침 종주가 장용영군사들과 함께 급히 대원품전으로 들어왔다.그리고는 위기에 빠진 장용사를 발견하고는 거머쥐고 있던 검귀의 머리통을 바닥에 내동댕치고는 얼른 검을 뽑아들었다.그리고는 지월이 말릴 틈도 없이 소유천에게 성난 범처럼 마구 달려들었다.그러자 그의 기세에 멈칫하며 뒤로 물러선 소유천은 허리에 차고있던 호리병 하나를 꺼내들어 종주를 향해 겨누며 크게 소리쳤다.

이것들이! 이 블랙홀의 힘으로 모조리 깨끗하게 청소해주마!”

 

 그리고는 장용영을 향해  호리병을 힘껏 내던졌다.장용영 군사들의 머리위로 날아간 호리병은 무섭게 회전을 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커져갔다.이윽고 집채만하게 커진 호리병은 술렁이는 장용영 군사들을 천천히 조준했다.그러자 소유천은 날카롭게 외쳤다.

 

“한 놈도 빠짐없이 모두 빨아들여!

 

소유천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호리병은 장용영들을 빠르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지월과 장용사를 비롯해서 모든 신하들마저 순식간에 다 쓸어담았다.그리고는 다시 원래의 크기로 줄어들더니 소유천의 손바닥에 툭 떨어졌다.

 

“가소로운 것들!  

 

소유천은 투명한 호리병속에서 갇힌 지월과 신하들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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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네가 비소에 중독되었는데도 죽지않고 살아났다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느냐?”

 

말을 마친 지월은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지수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지수는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씀은 폐하가 제 머리속으로 흘러나온 비소를 처리하신 것이 아니라는 겁니까?”

그래.”

, 이런,저는 폐하가 비책(秘策)으로 비소를 없앤 것으로 알았는데요.”

너무 실망마라. 너의 아마라가 혹시 기억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

제 아마라가요?”

, 네 아마라를 불러내어 물어보자.”

 

말을 마친 지월이 손을 뻗어 지수의  머리위로 올리자 곧바로 지수의 모습을 닮은 푸른 빛이 나타났다.지월은 단도직입적으로 푸른 빛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누가 지수를 구해주었는지 아느냐?”

 

푸른 빛속에서 익숙하면서도 야릇한 지수의 목소리가 맑게 흘러나왔다.

 

폐하, 전 당시 비소의 독이 워낙 강해서 의식을 완전히 잊어버린 탓에 아무 것도 기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런,”

 

지월은 크게 실망을 한 듯 탄식을 했다. 그리고는 푸른 빛에게 손짓을 하자 푸른 빛은 얼른 지수의 머리속으로 다시 스며들어갔다.지월은 지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네 아마라마저 기억을 못하니 참 큰일이구나.”

하지만 한 가닥 희망이 있습니다.”

 

지수가 조심스럽게 말을 떼자 지월의 얼굴빛이 금방 환해졌다.

 

그게 뭐더냐?”

제가 비소에 중독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었을 때 분명히 누군가 저를 발견하고 뭔가 조치를 해주었을 것입니다. 그자에게 저를 어디에서 발견했고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물어보면 뭔가 단서를 찾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것 일리있는 생각이다.”

 

지월은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편전에 늘어선 신하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여봐라! 너희들중에 누가 비소에 중독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던 지수를 발견하고 구해주었느냐?”

 

그러나 편전에 들어선 신하들은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서로 얼굴만 쳐다본다. 그러자 지월은 승상을 노려보며 다시 크게 물었다.

 

이제 승상의 눈치는 안봐도 된다. 누가 이 아이를 구해주었더냐?”

“……”

이런, 너희들중에는 아무도 지수를 구해준 사람이 없다는  말이지? 그럼 당장 방을 내려 예전에 지수를 발견했거나 구조해주었던 사람을 빨리 알아보거라.”

.”

 

신하중에서 이조판서의 관복을 걸친 자가 고개를 숙여 대답을 하자 지금껏 잠자코 있던 영재가 뒷짐을 진 채 불쑥 나섰다.

뭐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뭐라고?”

 

지월은 영재가 지껄인 말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러거나 말거나 영재는 지수를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이렇게 하면 생각날까?   멍청한 놈아!”

 

느닷없이 고함을 지른 영재는 재빨리 뒷짐에서 손을 빼냈는데 그의 손에 날카로운 비수가 번쩍거렸다. 비수는 지수의 오른쪽 옆구리를 사정없이 찔렀다. 방심하고 있다가 칼에 찔린 지수는 인상을 찡그리며 그만 바닥으로 넘어졌다. 본능적으로 옆구리를 감싼 지수의 가락사이로 붉은 피가 새어 나왔다.

 

이놈! 이게 무슨 짓이야!”

 

뜻밖의 사태에 신하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하지만  장용사는 무인답게 본능적으로 장검을 재빠르게 빼들고는 영재를 향해 겨누었다.하지만 피묻은 단도를 쥔 영재는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고 키득거릴 뿐이었다.

 

“……!”

 

그런데 그때 영재의 정수리위에서 갑자기 거대한 붉은 빛살이 쏟아져나왔다.순식간에 대원품전의 천정까지 솟구쳤던  빛살은 서서히 인간의 형상으로 바뀌어 갔다. 하얀 투피스를 차려입고 붉은 양산을 거머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었다. 여인의 모습이 완전히 형성되자 영재는 줄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이리 저리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픽 쓰러졌다. 대원품전의 한 가운데 정체불명의 여인이 나타나자 장용사는 재빨리 지월을 호위하고는 여인에게 소리쳤다.

 

넌 누구냐?”

난 대환희국의 지배자 소유천이다.”

뭐라고? 소유천!

 

소유천이라는 소리에 장용사는 깜짝 놀랐다.하지만 붉은 우산을 이리 저리 흔들던 소유천은 그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듯 지수를 향해 돌아섰다.  

 

이놈아, 너는 지금 비소에 중독되었다.후후,”

, 비소!”

, 죽기전에 빨리 기억을 짜내어 비소를 맹물로 만들어야지,예전에 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서!”

비열한 놈!”

욕할 시간 없을텐데……너만의 비법을 쓰란 말이야!빨리!”

 

소유천이 비웃으며 재촉했지만 지수는 고통스럽게 신음만 내뱉을 뿐이었다.그러자 소유천은 이번에는 지월을 향해 매섭게 소리쳤다.

 

이놈을 그냥 죽게 놔둘 거야!빨리 비책을 써야지!

 

소유천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지월은 극심한 고통으로 몸을 비틀기 시작하는지수에게 달려가 와락 끌어앉았다.

 

지수야,어떡하냐?”

빨리 저를 구해준 자를 찾으세요.으헉,”

누가 이 아이를 살릴 수 없느냐!”

 

지월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하들을 둘러보았으나 모두 곤혹스런 표정을 지을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그 광경을 바라보던 마침내 소유천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지수앞으로 다가왔다.

 

특별한 비책은 없었군. 넌 단지 우연히 운좋게 살아난 것뿐이야.호호,”

 

소유천은 비로소 큰 걱정거리를 해결했다는 듯 유쾌하게 웃어제켰다.그의 웃음소리가 못마땅한 장용사 김경호는 울그락 불그락 한 얼굴을 하고는 소유천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이런, 방자한 것, 감히 폐하의 손님을 해치다니!내 너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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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맞장구에 지월은 본론에 들어가려는 듯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우리 아마라가 머물고 있는 곳을 인간들은 9()이라고 부르더구나.”

9식이요?”

 

영재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아직 9식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은데 간단한 설명을 하마.”

부탁합니다.”

인간들중에서 지혜로운 철학자들은사물을 식별하는 인간의 마음의 작용에 단계별로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분류를 해두었단다. 즉 눈으로 사물을 판단하면 안식(眼識)이 되고, 귀로 소리를 들으면 이식(耳識), 코로

냄새를 맡으면 비식(鼻識), 혀로 느끼는 설식(舌識), 그리고 몸으로 판단하는 신식(身識) 등 해서 5(五識)이 있지. 그리고 의식(意識) 6식이다. 이것들은 인간이 사물을 판단하는데 필수적이야.

”두뇌의 신경세포 뉴우런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경로와 비슷하군요.

 

영재는 지월이 설명하는 것을 자신의 뇌지식과 연결하면서 빠르게 이해했다. 

 

“맞다. 하여간 6식까지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누구나 발휘하는 능력이야. 하지만 6식까지의 판단력밖에 없다면 인간은 충동적인 존재밖에 되지 않지.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제7식인 말나(末那)식이란다.

“말나식이요?

 

해박한 지식을 가진 영재도 또다시 생소한 단어가 나오자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산스크리트어인 말나식은 보다 깊은 사색을 통해서 사물의 현상속에 숨어있는 법칙성을 발견하고 혹은 보다 확실한 자기자신을 사색하는 단계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즉 이성(理性)의 단계이지.

“뇌가 받아들인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자아를 느끼는 단계라는 말씀이죠?”

“그렇지. 그 다음이 8식인 아뢰야(阿賴耶)이야. 저장소(貯藏所)를 뜻하는 아뢰야식은 오랜 과거로부터 인간 자신이 행한 모든 행동이 축적되는 무의식의 층을 말한단다. 카르마(karma)라고 하는 업()이 형성되는 곳이야. 이 카르마를 바탕으로 해서 현재의 네자신을 형성하지.

뉴우런에서 받아들인 정보를 저장하는 곳인 기억세포군을 말하는 것이군요. 꽤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영재가 눈빛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떡이자  지월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다시 이었다.

 

“아뢰야식이 끝이다.”

 

지월의 결론이 뜻밖이라는 듯 영재는 고개를 꺄우뚱햇다.

 

끝이라고요? 조금 전에는 9식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그랬지. 하지만 우리 아마라는 사실 아뢰야속에서 숨어있단다.그속에 있다가 우리를 부르는 암호를 들으면 8식을 구식으로 바꾼단다.”

그 암호가 구식심왕진여의도 인가요?”

 

지수가 진지하게 물어보자 지월은 지수에게 엄지손을 힘껏 치켜보였다.

 

맞다. 말 그대로 9(九識)의 심왕(心王)이 머무는 곳을 만드는 거지.”

“9식의 심왕이라고요?”

 

심왕이라는 말에 동그래진 영재의 두 눈이 왠지 두려움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모든 식을 다스리는 왕이지.우리는 표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근본정식(根本淨識)으로 깨끗하기 때문에 심왕으로서 나머지 식들을 청정하게 관리하는 거란다.”

정말 마음의 제왕이군요.”

 

이번에는 지수가 눈빛을 빛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서 소유천이  9식을 찾을 수 없었던 거군요.”

 

영재는 그제서야 모든 것을 알겠다는 듯 얼굴색이 매우 밝아졌다.지월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완벽한 위장이 되었어. 암호없이는 아무리 뇌속을 아무리 뒤져도 9식를 찾을 수가 없지.”

하지만,”

 

 지금까지 훨씬 어려운 것들도 잘 이해오던 영재는 지월이 막상 심왕을 거론하자 이상하게도 매우 난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왠지 심왕이라는 말 자체가 마음에 안드는 것 같았다.

 

전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데요.”

 

영재가 토를 달자 지월은 영재의 이해를 돕고 싶은지 설명을 덧붙였다.

 

영재야, 너는 대승불교에서는 9식을 심왕으로 여기는 것을 아느냐?”

모르는데요.”

 

지월의 물음에 이번에도 영재는 서양사람처럼 두 손을 벌리며 대꾸했다.상대방을 매우 맥빠지게 만드는 태도였다.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지월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너는 9식 심왕의 존재를 믿지않는구나.”

 

안타까운 듯 지월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자 영재는 입을 삐죽거리며 결국 속내를 드러냈다.

 

심왕이라는 것은 한가한 옛날 철학자들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존재가 아닐까요?인간의 뇌는 뉴우런의 집합체일 뿐이잖아요?”

 

영재의 의구심에 지월은 고개를 세게 내저으며 반박했다.

 

안타깝게도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너처럼 우리들의 존재를 믿으려고 하지 않더구만. 하지만 인간의 지성들은  석존이 입멸하기 8년 전에 설했다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그 해설서인 마하지관(摩訶止觀) 또 어의구전(御意口傳) 등 불교의 여러 최고 경전들속에  한결같이 우리들을 심왕으로 기록해두었단다.

그래서 좋으신가요?”

 

영재는 약간 비꼬듯이 물었다.그런데 예상밖으로 지월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아니다.”

아니라고요?”

 

의외라는 듯 반문하는 영재의 눈꼬리가 치켜졌다.

 

그래. 하지만 암호를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아마라가 심왕으로 나타나는 것은 별로 없었어. 그 탓에 인간의 뇌는 안타깝게도 그만 우리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말았단다.”

저런,”

 

영재는 짐짓 무척 놀란 척 했다.

 

“그래서 우리 아마라는 인간의 뇌에서 있으면서도 없는 것와  같은 아주 이상한 존재가 되어버렸단다.”

꼭 뇌의 잘못만은 아니잖아요?”

 

영재가 은근슬쩍 아마라를 비난하자 지월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아주 틀린 말도 아니지.”

 

지월이 안타까운 듯이 답변하자 잠시 대화에서 밀려났던 지수는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군요.”

 

지수가 아쉬움을 나타내자 지월은 고개를 끄떡이었다.다시 말을 꺼내는 지월의 얼굴빛이 매우 어두워졌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심호흡을 하느라고 지월이 잠깐 말을 끊자 영재는귀를 쫑긋하며 얼른 끼어들었다.

 

그게 뭐죠?”

어느 때부터인가 소유천이라는 요사한 것이 인간의 뇌를 장악하려고 덤벼든 거야. 그리고 우리의 존재를 눈치 챈 소유천은 비소를 이용하여 우리를 협박했어.  우리는 인간의 뇌를 죽게 그냥 놔둘 수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어쩔 수 없이 인간의 뇌를 포기하고는 기나 긴 방랑생활을 시작한 거야.”

결국 소유천은 불사신이 된 거군요.”

 

지수가 새삼 소유천에 대한 분노로 몸을 떨자 지월도 울컥한 듯 차츰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그런 셈이지. 하여간 그렇게 어이없게 소유천에게 쫓겨난 대부분의 아마라들은  곧바로 화이트홀로 되돌아갔지만 나를 비롯한 일부 아마라들은 돌아가지 않고 저항하기로 했지. 그리고 주변에 버려진 다른 존재의 껍데기를 뒤집어써야 했단다. 안그러면 죽거든.하여간 난 운좋게도 정조대왕의 모양을 한 마네킹을 내 몸으로 삼았단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서 왕노릇을 하고 있는 거야.후후,”

이왕이면 왕이 좋죠!”

 

영재는 지월에게 진심인지 거짓인지 모를 야릇한 아부성 맞장구를 쳐주었다.

 

어쨌든 우리는 팔달산을 우리가 머무를 새로운 둥지 즉  ()로 만들어 가기 시작했지.그래서 지금까지 흙덩어리에 불과했던 팔달산이 지금처럼 살아있는 인간의 뇌처럼 변한 거야.즉 영산이 탄생한 거야.”

 

지월의 말이 잠시 끝나자마자 이상하게도 영재의 눈빛이 번쩍하고 빛났다.지월은 그것을 느꼈는지 영재를 주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팔달산의 뇌를 소유천으로부터 지키기위해서 전자기 펄스를 내뿜는 우주입자로 팔달산에 방어망을 쳤단다”

 

지월의 설명에 영재는 그제서야 팔달산의 불가사의한 비밀이 완전하게 풀렸다는 듯이 손뼉을 힘껏 쳤다.

 

세상에!그래서 팔달산에서 모든 전자기기들이 갑자기 작동이 안되었던 거군요.

 

지월은 그런 영재를 잠시 바라보면서 매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에게는 매우  미안했지만 방어망 구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단다.”

. 정말 아주 많이 불편했죠.”

 

영재가 아주 대놓고 그렇다고하자 지월은 잠깐 겸연쩍어 하더니만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러는 동안 팔달산으로 들어오는 아마라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팔달산은 인간의 뇌이상으로 정밀해졌다마침내 황박사가 야심차게 꾸미고 있던 여우탑도 저지해 버릴 정도로 강력해졌단다.

“하지만 덕분에 팔달산이 우리들의 피난처가 되었어요.

 

지수는 우주입자 방어망이 팔달산에 끼친 영향이 그리 싫지않았다는 듯이 밝게 웃으며 응답했다.지월은 그말이 정말 고마웠던지 밝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준비를 해놓고도 우리가 뇌로 돌아가면 비소가 방출되어 사람들이 죽을까봐 귀환을 못하고 있는 거야.급기야는 신하들도 지쳤는지 저 홍승상과 무리를 지어 나에게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그냥 팔달산의 뇌에서 편히 살자고 말이다.”

 

지월은 자기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있는 신하들 특히 탐탁지않다는 표정을 짓고있는 승상을 슬쩍 노력보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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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웅장하군!)

 

아마라궁에 들어서니 즐비하게 늘어선 수많은 방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장용사 김경호는 미로와 같은 복잡한 방들을 지나 지수와 영재를 가장 크고 웅장한 방으로 데리고 갔다대원품전이라고 쓰여진 현판을 지나치니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방안 풍경이 훤히 드러났다. 우선 왼쪽 끝에 높은 용상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뒤로 제왕의 위엄을 상징하듯 황금검이 거치대에 걸려있었다.아직 용상은 텅 비어 있었다. 그 용상밑 신하들이 죽지어 서있는 곳 바로 앞에는 연못 모양처럼 생긴 작은 정원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정원 가운데에 이파리만 해도 60cm가 넘어보이는 커다란  붉은 색 연꽃이 아름다운 자태를 맘껏 뽐내고 있다연꽃에서 뿜어나오는 듯한 정갈한 향기는 보는 이의 정신을 맑고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지수는 저도 모르게 연꽃의 신비로운 향기에 취해 코를 씰룩거린다.

 

“……!”

 

그런데 장용사가 지수와 영재를 데리고 용상쪽으로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일제히 쳐다본다. 관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었지만 경계심이 가득 찬 쏘아보는 시선이 왠지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뭔가 싸한 실내 분위기에 두 사람이 잔뜩 긴장하고 있을 때 그들의 앞 줄에서 붉은 비단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황급히 장용사 앞으로 쫓아왔다. 마른 얼굴과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50대 중반의 남자는 매우 위압적으로 보였다.그는 장용사의 인사는 받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재빠르게 지수와 영재를 예리하게 흝어본다.

 

장용사, 대체 이 아이들은 뭐요?”

폐하께서  이 아이들을 데려오라고 명을 내리셨습니다.홍승상,”

보아하니 이 아이들은 우리 족속들이 아닌 것 같은데 어찌 함부로 이곳으로 들인다는 말이요?”

 

승상이라는 남자의 목소리가 와락 커지자 편전에  있던 다른 신하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그러나 장용사는 홍승상을 무섭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전 단지 폐하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진짜 폐하의 뜻이란 말인가?”

 

홍승상은 반문을 하면서 예리한 눈빛으로 장용사의 눈을 쏘아본다.하지만 장용사가 당당하게 시선을 피하지 않자 그는 약간 우려섞인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난 이해가 안가는군. 이 아마라궁에 절대 외부인을 들이지 않는 우리의 규율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 그런 어명을 내리시다니……”

폐하는 이 아이를 기다렸습니다.”

 

장용사가 이글 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힘주어 말하자 홍승상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조금 목소리를 낮추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이 아이가 소유천의 끄나풀이라면 우리 아마라궁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단 말이요.”

감히 폐하의 안목을 욕하지 마시요.”

이 사람 정말 융통성이 없군.설사 폐하께서 그렇다 치더라도 자네가 이 아이들을 처리하고는폐하께 적당히 한 마디 올리면 될 것을 그냥 덜컥 데리고 온단 말인가?”

 

평소 왕을 무시하는 승상의 속마음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자 장용사는 분개한 듯 얼굴빛이 붉어졌다.

 

승상!그동안 당신이 하늘처럼 믿고있던 금위영은 오늘 장용영에 의해 모조리박살이 났소.”

뭐라고!”

 

홍승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는 급히 호위병들을 불렀지만 아무도 응답이 없었다. 대신 장용사 군사들만 그의 앞에 우르르 나타나자 비로소 정변이 일어난 것을 눈치챈 홍승상의 얼굴빛이 새하얗게변했다.

 

승상, 당장 폐하의 명을 따르지 않으면 대역죄로 다스리겠소. ”

“……”

 

장용사의 노여운 호통에 찔금해서 입을 다문 홍승상의 다리가 후들거렸다.그때 밖에서 내시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납시요!

 

그 소리에 편전의 모든 신하들이 황급히 허리를 굽히자 승상은 후다닥 제 자리로 돌아갔다.그 바람에 지수도 얼결에 고개를 숙였다.잠시 후 지수옆으로 천근의 무게가 느껴지는 발걸음 소리가 묵직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갑자기 강력한 자기장 같은 힘이 지수의 등줄기를 타고 지나갔다.그 가운데 묘한 향기가 피어나서 지수가 잠시 취해있는데 이윽고 향기가 멀어지면서 누군가 용상에 걸터앉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라,

 

단아한 목소리에 슬며시 고개를 들어 용상쪽을 유심히 바라보던 지수는 그만 흠칫 놀라고 말았다. 50대 후반의 사내가 검은색 바탕에 황금세공으로 장식한 날렵한 익선관을 쓰고 용이 그려져 있는 황색 곤룡포를 걸치고 앉아  있었다왕의 얼굴에는 기품이 넘쳤으나 어딘지 모르게 그늘이 드리어져 있었다.그런데 왕의 낯이 매우 익었다.

 

“폐하는?

“나를 알고 있느냐?

“혹시 화령전의  초상화에 그려진 분?"

“그게 바로 나다.”

“그럼 폐하가 정조대왕이십니까?

“몸둥아리만 그렇지.후후,

 

왕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지수는 지금 자신이 조선시대의 왕인 정조를 생생하게 마주보고 앉아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지 계속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럼 지월(池月)이라는 분은?

“나의 본명이지.”

 

지월은  제왕답지않게 매우 솔직담백했다미소를  지으며 지수를 바라보던 짓던 지월은 문득 정색을 한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느냐?”

“제 사부님이 알려주셨어요.

“사부?”

“제 사부의 성함은 공영실입니다.”

“아, 공노인!”

 

금방 옛날 일이 떠오른 듯 지월의 얼굴빛이 환해졌다. 그때 지수가 주머니에서 족자를 꺼내어  내밀자 장용사가 그것을 받아 왕에게 전달해주었다.족자를 펼쳐 자신의 초상화를 유심히 바라보던 지월은 미소를 지으며 지수를 지긋이 바라본다.

 

“네 사부가 나를 제대로 기억해두었구나. 내가 일부러 금을 뿌려놓은 보람이 있었어.”

 

지월은 편전에 장용사 김경호가 버티고 있어서 그런지 전에 없이 과감하게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지월의 말에 제일 놀란 표정을 지은 사람은 당연히 홍승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과는 다르게 대놓고 화를 내지 못했다. 사뭇 자신있는 시선으로 홍승상을 바라보던 지월은 다시 지수를 돌아보았다.

 

난 너희들이 황박사에게 잡혀간부모들을 구하기 위해 코브라 파괴작전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네가 여기 온 것을 보니 실패했구나.”

그것을 어떻게 아시죠?”

난 모든 것을 다 꿰뚫고 있지.후후,”

저희들은 코브라를 성공적으로 파괴한 것으로 알고있었는데 사실은 그것이 환영(幻影)이었습니다.모두 증강현실의 덫에 잡혀버렸습니다.”

저런,”

그런데 너는 어떻게 탈출했느냐?”

탈출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황박사가 저를 이곳에 보낸 것입니다.”

? 황박사가? ”

. 황박사는 제게 산속에 있는 무예24기시범단에 침투해서 그들이 어떻게 여의주의 시스템을 고장냈는지 알아보라고 협박했습니다.”

협박을?”

.저는 원래 황박사의 심복으로 비밀감찰부장이었습니다.

당연히 제 뇌속에는 여의주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비극이지.”

그런데 얼마전에 제가 유정화를 잡기 위해서 팔달산에 들어왔었는데 무슨 까닭이었는지 그만 여의주가 고장나버렸습니다.그 바람에 비소가 방출되면서 전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싶이 저는 어떤 영문인지 죽지 않았습니다.”

 

지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월은 매우 상기된 표정으로 지수에게 물었다.

 

비소에도 네가 죽지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에게도 정말 대단한 사건이다!”

무슨 말씀이죠?”

그 비소는 황박사가 인간의 뇌를 수호하는 아마라를 쫓아내기 위해서 여의주에 설치해놓은 것이다.”

 

지월의 말에 지수의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황박사는 여의주에 시스템적으로 필요해서 비소를 삽입했다고 했는데…….”

그자가 너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 이런!”

 

지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지월은 그런 지수를 안스럽게 바라본다.

 

황박사 그자는 목적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않는 천하의 몹쓸 사람이야.”

 

지수는 여전히 충격에서 못 벗어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철저하게 저를 속였군요. 그럼 저도 황박사를 속여야겠군요.”

그게 무슨 말이지?”

황박사가 저희 보모님들을 붙잡아놓고 협박하는 바람에 여기에 온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은 비소가 방출되고도 제가 죽지않은 이유를 찾아내어서 여의주를 저지시킬 각오로 여기에 온 것입니다.”

그자가 너희 부모들을 죽일텐데……”

부모님들을 구하기 전까지는 제가 배신한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할 겁니다.그 사이 부모님을 구할 방도를 찾겠습니다.”

장하다,”

그런데 여의주를 고장냈다는 무예24기 시범단와 폐하는 어떤 관계이신지……”

 

지수가 조심스럽게 묻자 지월은 흔쾌히 대답한다.

 

그들은 나를 호위하는 금위영과 장용영이다.”

역시……그런데 폐하는?”

이제 우리들의 비밀을 말할 때가 된 것 같구나.”

비밀요?”

 

지수가 눈빛을 빛내며 묻자 지월은 잠시 미소를 짓는가 싶더니 갑자기 그의 모습이 푸른 빛으로 바뀌었다.

 

우리들 아마라의 본 모습이니라.”

 

빛속에서 터져나온 목소리는 지월의 것이 틀림없었다.깜짝 놀란  지수와 영재는 무심결에 뒤로 물러섰다.

 

이게 어떻게 된거죠?”

 

지수가 매우 놀라며 묻자 푸른 빛이 사라지고 지월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지월은 장난기가 넘치는 웃음을 지으며 휘둥그래진 눈을 껌벅거리고 있는 지수에게 물었다.

 

“혹시 너는 화이트홀(White hole)에 대해서 아느냐?”

“화이트홀이요?”

 

화이트홀에 대해서 잘 모르는 듯 지수가 되묻자 지월은 영재를 물끄러미 돌아본다. 지월의 재촉하는 시선이 부담스런 영재는  예전에 책에서 배운 기억들을 애써 되살린다.

 

“화이트홀은 천문학자들사이에서는 상상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재가 자신없이 대답하자 지월은 즉각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만에! 화이트홀은 우주에 실제로 존재한다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는 반대로  화이트홀은 모든 것을 우주로 내보내단다.

“그게 정말인가요?”

 

나름 다양한 과학적 지식을 섭렵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던 영재는 지월의 말에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그리고는 솟구치는 호기심을 참지못하고 다소 당돌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 화이트홀이 아마라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 거죠?”

“우리 아마라는 화이트홀을 구성하고 있는 광()세포이다.”

광세포요?”

그래서 이렇게 푸른 빛을 띠지. 화이트홀에서 태어난 모든 만물은 똑같이 우리 아마라를 갖고 있지. 인간도 마찬가지로 화이트홀에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 아마라를 소유하고 있어.너희들은 우리를 혼()이라고 부르더군.”

혼이라고요?”

아주 같다고는 할 수 없지. 어쨌든 우리 덕분에 연약한 존재로 보이는 인간들도 언제든지 화이트홀와 하나가 될 수 있지.”

, 정말 대단한 이론이군요.”

 

새로운 지식을 배웠다는 기쁨에 겨워 영재가 환호하자 지월은 약간 이맛쌀을 찌푸렸다.자신의 말을 자꾸 이론으로만 이해하려는 영재가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그는 약간 엄한 목소리로 꾸짖듯이 말했다.

 

이론이 아니라 실상(實像)이란다!”

 

그런 지월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챈 지수는 얼른 화답해주었다.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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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 꼼짝마!”

 

검귀는 번쩍이는 검을 거머쥔 채 눈알을 부라리며 지수와 영재에게 다가왔다.

 

이런,”

 

깜짝 놀란 지수와 영재는 도망갈 길을 찾았지만 검귀의 군사들이 신속하게 그들을 에워싸버렸다. 아이들 코앞까지 다가온 검귀는 주저없이 지수의 목에 번쩍거리는 검을 갖다댔다.

 

네놈이 감히 여기까지 들어오다니……누가 아마라궁으로 들어오는 비밀번호를 가르쳐주었느냐?”

푸른 빛이 가르쳐 주었소.”

 

지수가 당당히 되받아치자 검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더니 곧 지수의 멱살을  쥐고는 지수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소리쳤다.

 

네 놈이 혼자 살겠다고 아라마궁을 함부로  노출시켜!”

 

검귀의 아리송한 질책은 계속 되었다.

 

지금 소유천이 아마라궁을 찾아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있는 마당에 암호를 함부로흘리다니! 내 너를 이적죄로 엄히 다스리겠다.”

 

호통을 치고난 검귀는 지수를 사정없이 내팽개쳤다. 지수가 땅바닥에 맥없이 주저앉자 검귀는 주저없이 지수의 목을 베겠다는 듯  검을 치켜들었다.그때였다.

 

멈춰라!”

 

전방 20미터에서 누군가 급하게 말을 타고 오면서 소리쳤다붉은 갑옷으로 무장한 종주와 채연이 검을 뽑아들고 바람처럼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종주는 곧바로 검귀에게 달려들어 자신의 검으로 검귀의 칼질을 막아냈다. 그틈을 놓칠세라 지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리나케 줄행랑을 쳤다.영재 또한 꽁지빠지게 그뒤를 따랐다.

그들이 어느 정도 안전지대로 도피한 것을 확인한 종주와 채연은 곧바로 싸움을 멈추고 기수를 돌렸다.

 

저놈들을 절대 놓치지마라!”

 

검귀는 길길이 날뛰며 종주와 채연을 추격했다.검귀에게 쫓기던 그들이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파란 물이 사납게 흐르는 어느 개천앞에 다다랐다.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도주했던 지수와 영재가 다리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검귀의 부하들에게 막혀 주춤거리고 서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개천의 폭은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진한 독기를 잔뜩 내뿜고 있었다. 개천에는 나무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삭아보였다. 하지만 뒤에는 검귀와 그의 부하들이 따라오고 있어 휘청거리는 다리가 중간에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정면돌파해야 했다.

일단 마음을 정하자 종주와 채연은 다리쪽을 지키고 있는 검귀의 부하들을 향해 무섭게 달려들었다.창칼이 충돌할 때마다 시퍼런 불꽃이 난무하는 가운데 차츰 검귀의 부하들이 하나 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틈을 타 지수와 영재는 무작정 나무다리로 달려나갔다.그런데 검귀의 부하 한 명도 검을 꼬나들고 지수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지수의 등뒤까지 바짝 쫓아간 검귀부하는 그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그러나 그 순간 뒤통수에서 강한 살기를 느낀 지수가 살짝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화를 면했다.그런데 잔뜩 힘을 주고 지수의 목을 노렸던 검귀부하는 헛손질을 하는 바람에 그만 중심을 잃고 몸을 비틀거렸다. 그 기회를 놓칠세라 지수는 탄알처럼 그자에게 몸을 내던졌다.기습을 당한 검귀부하는 어!!하면서 허우적거리더니 그만 다리의 낡은 동앗줄을 끊어트리고는 곧장 그대로 개천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풍덩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푸른 물거품이 높이 솟았다.

 

으악! 살려줘!”

 

푸른 물속에 떨어진 운나쁜 검귀부하는 가라앉았다 솟구치기를 반복하면서 고통스럽은 비명을 내질렀다.하지만 그 광경을 발견한 다른 검귀부하들은 일제히 얼어붙고 말았다.이상하게도 검귀의 부하들은 마치 저승사자와 맞부딪친 것처럼 벌벌 떨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던 검귀부하는 얼마 안되어서 뜨거운 물속에서 얼음 녹듯이 녹아버렸다.한 가닥 푸른 연기만이 허공에 남아 있었다.

 

그런 섬뜩하고 이상한 광경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지수 일행은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나무다리를 통과했다.지수와 영재는 정신없이 달리다가 으슥한 숲속을 만나자 서둘러 몸을 숨겼다.가쁜 숨을 몰아쉬던 영재는 개천쪽을 살피며 종주에게 물었다.

 

저놈들은 왜 다리앞에서 쩔쩔매는 거죠?”

 

그러자 종주는 새삼 몸서리를 치며 대답했다.

 

아까 그 개천은 그들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지.”

지옥이요?”

그래. 개천의 물이 한 방울만 닿기만 해도 그들은 형체도 없이 녹아버리지.”

 

덩치에 어울리지않게 종주가 매우 두려워하자 영재도 따라서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그 정도예요?”

죽음이나 다름없으니까.”

 

종주가 확실한 대답을 안하자 그들의 대화를 듣고있던 지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이상해.”

그러자 채연이살짝 웃으며 얼른 그의 말을 받았다.

 

뭐가 그렇게 이상해요?”

왠지 아까 그 개천을 전에도 본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전에 본 것 같다고요?”

 

화들짝 놀라며 되묻는 채연의 눈빛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까 검귀의 부하가 개천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을 보니까 어렴풋이 나도 같은 일을 겪은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그래요?”

그렇소.”

그런데 이렇게 말짱한 것을 보면 그때 누가 구해주기라도 했나보지요?”

 

채연은 짐짓 모른 채 지수에게 유도성 질문을 던지고는 그의 대답을 진지하게 기다렸다.

모르겠어요. 그 기억은 전혀 안나요.”

아무 것도요?”

그래요. 어찌보면 그냥 데자뷰 같은 것인지도 모르죠.”

그럴 수도 있겠죠.”

 

힘없이 대꾸하는 채연의 눈동자에서 기대감이 사라지고 대신 실망하는 빛이 가득 찼다.하지만 그런 것을 지수에게 들키기 싫은 듯 곧 정색을 하고는 지수를 바라본다.

 

그런데 너희들은 왜 자꾸 이 동굴에 들어와 검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거지?”

우리는 무예24기시범단을 찾아야하는데 사부님이 아마라궁으로 찾아가라고 했습니다.”

아마라궁?”

 

종주와 채연은 놀란 듯 동시에 되묻자 지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 당신들도 차림새를 보니까 아마라궁하고 관계가 있죠? 맞죠?”

그렇다.”

그래요? 그럼 아마라궁은 어디로 가면 되죠?”

 

지수의 물음에 종주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더니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너흐들은 이미 아마라궁에 들어왔어.”

정말이예요?”

 

지수는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아까 네가 외친 구식심왕진여의 도는 아마라궁을 여는 암호였어.”

암호요?”

그래. 그 암호가 아뢰야라를 아마라궁으로 바뀌게 한 거야.”

그럴 수가?”

 

유심히 듣고있던 영재의 눈도 동그랗게 변했다.그의 반응에 종주는 으슥하며 대꾸했다.

 

그래.우리는 이 팔달산에 인간의 뇌를 본따서 아마라궁이라는 우리만의 세계를 만들어냈지. 그리고는 소유천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평소에는 아뢰야로 보이게 했어.”

, 최고의 위장이군요.”

 

지수가 감탄사를 내뱉자 종주는 문득 정색을 하며 묻는다.

 

그런데 너는 왜 아라마궁에는 가려는 거지?”

아마라궁에 있다는 지월이라는 분을 만나야 하거든요.”

 

지수의 대답에 종주의 눈빛이 심상치않게 변했다.

 

폐하를?”

.”

만나서 뭘 어쩌려고?”

꼭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냐?목숨을 걸 정도로,”

 

종주의 반문에 지수는 비장하게 말했다.

 

그분의 도움을 받아 황박사의 여의주를 저지하고 친구들을  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도와주지.”

감사합니다.”

 

지수가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종주는 채연을 돌아보며 조용히 말했다.

 

채연아, 지금 검귀는  이 아이들을 잡기위해서 사방에 병력을 쫙 깔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같이 움직이면 곧바로 놈에게 잡혀버릴 것이다. 내가 검귀의 시선을 딴곳으로 돌릴 테니 너는 이 아이들을 데리고 폐하가 계신 곳으로 가거라.”

싫어요.”

 

채연은 무슨 까닭인지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녀의 뜻하지 않은 반응에 종주는 조금 당황한 듯이 보였다.

 

?”

오빠가 위험해지니 뒤는 내가 맡을께요. 오빠가 저 사람을 데리고 가요.”

무슨 소리야? 검귀 그놈은 네 상대가 아니야.”

나를 너무 얄보지 말아요.”

어허, 명령이다.어서 가!”

 

마침내 안되겠다 싶은지 종주는 엄한 표정을 지었다.그제서야 채연은 고집을 꺽고 일어서더니 마지못해 앞장선다.그 뒤를 지수와 영재는 조심스럽게 뒤따라간다.

그들이 아마라궁이 있는 쪽으로 사라지자 종주는 검귀의 부하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뛰어갔다.곧 그를 발견한 검귀가 달려와 이를 갈았다.

 

, 이 멍청한 놈아, 소유천이 저 아이들속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는데 녀석들을 궁으로 함부로 보내?”

그들은 안전하오.”

그것을 네가 어찌 장담해?”

모두 폐하가 원하신 일입니다.”

뭐라고?어리석인 분 같으니라고!”

감히 폐하를 능멸하다니!”

 

상관이었지만 자신의 왕을 조롱하는 말을 내뱉는 검귀의 언사에 종주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검귀는 종주의 분노따위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피식 웃는다.

 

아무리 폐하라고 해도 우리 아마라궁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돼!”

 

마침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종주는 호통을 쳤다.

 

이놈, 검귀야,네가 아무리 내 상관이라 하더라도 감히 폐하를 욕되게하는 자는 용서치않겠다! 살고 싶으면 당장 무릎을 끓고 사죄하거라!”

 

그러나 종주가 혼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검귀는 코웃음을 쳤다.

 

웃기지 마라! 난 오로지 승상의 명만 받들 뿐이다!”

네놈이 군세만 믿고 감히 폐하를 얕보다니! 오늘은 너의 불충을 반드시 처단하리라!”

 

종주는 검을 고쳐잡고 요절을 내겠다는 듯 검귀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편 채연은 지수와 영재를 데리고 아마라궁 성문앞으로  다가갔다. 궁궐의 성문을 향해 다가서던  지수는 깜짝 놀랐다. 눈앞에 있는 궁궐의 모습이 왠지 팔달산 기슭에 있던 화성행궁과 똑같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 

“화성행궁?

 

아마라궁을 기대하고 왔던 지수는 매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데.

 

지난번에 친구들하고 수색하면서 보았던 화성행궁은 매우 퇴색했고 잡초만 무성했었다.그런데 지금 그가 마주보고 있는 화성행궁의 성벽에는 수많은 완전무장한 군사들이 출동해 있었다. 성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겉모습은 화성행궁이었지만 왠지 모를 긴장감에 휩싸여 낯설게 보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놀라운 변화에 지수는 의아해하면서 화성행궁의 처마밑에 있는 현판을 다시 유심히 올려다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얀 현판에는 검은 먹으로  ‘阿摩羅宮(아마라궁)’이라고  큼직막하게 쓰여 있었다

 

“아마라궁? 우리가 제대로 찾아왔군.

 

잠시 실망했던 지수와 영재는 비로소 안도를 하면서 채연을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이윽고 채연은 성벽위에 있는 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성문을 열라! 난 채연군관이다.”

 

그녀의 고함소리를 듣고 현장 지휘관이 성곽밖으로 머리를 내밀며 응수했다.

 

안돼!”

뭐라고!”

외부인은 절대 함부로 성안으로 들이지말라는 승상의 명이 있었다.”

이놈아, 난 폐하의 명을 받잡고 이들을 데려온 것이다.당장 성문을 열어!”

난 오로지 승상의 명만 따를 뿐이요.”

저런 역적놈이!”

썩 물러나지 않으면 네놈의 모가지를 날려보낼 것이다!”

이놈이! 빨리 성문을 열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채연이 아무리 호통을 쳐도 성곽에 버티고 있는 무관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심지어는 계속되는 채연의 호통에 발끈한 군관은 군사들에게 활을 들어 쏘려고하기 까지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무관이 비명을 지르며 성벽으로 떨어졌다.그자가 서있던 곳에 긴 수염이 서릿발처럼 하얗게 센 노장이 서 있었다. 장용영의 수장(首將) 장용사 김경호였다.그는 뜻밖의 사태에 눈을 동그랍게 뜨고있는 다른 금위영 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오늘 그동안 폐하를 능멸한 자들을 모두 처단하리라!”

 

그의 호통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용사의 뒤에서 붉은 갑옷을 입은 장용사 군사들이 소리없이 나타나 금위영 군사들을 향해 날새게 달려가더니 그들을 무자비하게 처치하기 시작했다. 방심을 하고 있던 군사들은 순식간에 전멸하고 말았다.잠시 후 장용사는 성문을 열고 채연의 앞으로 직접 마중을 나왔다.

 

수고했다. “

어르신, 이게 어떻게 된일이신지?”

난 그동안 이날을 기다려왔다. 드디어 때가 되어 폐하를 위해 일어난 것이다.”

마침내 결단을 내리셨군요.어르신,”

폐하의 올바른 뜻을 따르기 위함이다.그런데 종주는?”

오라버니는 검귀를 붙잡아두기 위해 뒤에 혼자 남으셨습니다.”

저런,”

 

장용사는 크게 놀라더니 옆에 서있는 부관들중에서 무예가 제일 출중한 자를 불러 급히 지시를 내렸다.

 

너는 급히 달려가 종주군관을 지원해주거라!”

!”

 

부관은 즉시 수 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종주가 있는 곳으로 부리나케 출동했다.그래도 채연은 걱정스러운지 장용사에게 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저도 오라버니를 돕고싶습니다만,”

걱정이 되는 모양이구나. 알겠다. “

 

장용사는 지체없이 채연의 출동을 승락했다. 그녀가 서둘러 자리를 뜨자 장용사는 지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폐하께서 기다리신다. 어서 가자.”

저를요?”

그래.”

“……!”

 

지수는 드디어 공노인이 말하던 아마라궁에 들어간다는 생각에 저절로 온몸이 긴장되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는 급히 장용사를 따라 성문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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