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맞장구에 지월은 본론에 들어가려는 듯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우리 아마라가 머물고 있는 곳을 인간들은 9()이라고 부르더구나.”

9식이요?”

 

영재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아직 9식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은데 간단한 설명을 하마.”

부탁합니다.”

인간들중에서 지혜로운 철학자들은사물을 식별하는 인간의 마음의 작용에 단계별로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분류를 해두었단다. 즉 눈으로 사물을 판단하면 안식(眼識)이 되고, 귀로 소리를 들으면 이식(耳識), 코로

냄새를 맡으면 비식(鼻識), 혀로 느끼는 설식(舌識), 그리고 몸으로 판단하는 신식(身識) 등 해서 5(五識)이 있지. 그리고 의식(意識) 6식이다. 이것들은 인간이 사물을 판단하는데 필수적이야.

”두뇌의 신경세포 뉴우런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경로와 비슷하군요.

 

영재는 지월이 설명하는 것을 자신의 뇌지식과 연결하면서 빠르게 이해했다. 

 

“맞다. 하여간 6식까지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누구나 발휘하는 능력이야. 하지만 6식까지의 판단력밖에 없다면 인간은 충동적인 존재밖에 되지 않지.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제7식인 말나(末那)식이란다.

“말나식이요?

 

해박한 지식을 가진 영재도 또다시 생소한 단어가 나오자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산스크리트어인 말나식은 보다 깊은 사색을 통해서 사물의 현상속에 숨어있는 법칙성을 발견하고 혹은 보다 확실한 자기자신을 사색하는 단계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즉 이성(理性)의 단계이지.

“뇌가 받아들인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자아를 느끼는 단계라는 말씀이죠?”

“그렇지. 그 다음이 8식인 아뢰야(阿賴耶)이야. 저장소(貯藏所)를 뜻하는 아뢰야식은 오랜 과거로부터 인간 자신이 행한 모든 행동이 축적되는 무의식의 층을 말한단다. 카르마(karma)라고 하는 업()이 형성되는 곳이야. 이 카르마를 바탕으로 해서 현재의 네자신을 형성하지.

뉴우런에서 받아들인 정보를 저장하는 곳인 기억세포군을 말하는 것이군요. 꽤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영재가 눈빛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떡이자  지월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다시 이었다.

 

“아뢰야식이 끝이다.”

 

지월의 결론이 뜻밖이라는 듯 영재는 고개를 꺄우뚱햇다.

 

끝이라고요? 조금 전에는 9식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그랬지. 하지만 우리 아마라는 사실 아뢰야속에서 숨어있단다.그속에 있다가 우리를 부르는 암호를 들으면 8식을 구식으로 바꾼단다.”

그 암호가 구식심왕진여의도 인가요?”

 

지수가 진지하게 물어보자 지월은 지수에게 엄지손을 힘껏 치켜보였다.

 

맞다. 말 그대로 9(九識)의 심왕(心王)이 머무는 곳을 만드는 거지.”

“9식의 심왕이라고요?”

 

심왕이라는 말에 동그래진 영재의 두 눈이 왠지 두려움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모든 식을 다스리는 왕이지.우리는 표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근본정식(根本淨識)으로 깨끗하기 때문에 심왕으로서 나머지 식들을 청정하게 관리하는 거란다.”

정말 마음의 제왕이군요.”

 

이번에는 지수가 눈빛을 빛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서 소유천이  9식을 찾을 수 없었던 거군요.”

 

영재는 그제서야 모든 것을 알겠다는 듯 얼굴색이 매우 밝아졌다.지월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완벽한 위장이 되었어. 암호없이는 아무리 뇌속을 아무리 뒤져도 9식를 찾을 수가 없지.”

하지만,”

 

 지금까지 훨씬 어려운 것들도 잘 이해오던 영재는 지월이 막상 심왕을 거론하자 이상하게도 매우 난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왠지 심왕이라는 말 자체가 마음에 안드는 것 같았다.

 

전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데요.”

 

영재가 토를 달자 지월은 영재의 이해를 돕고 싶은지 설명을 덧붙였다.

 

영재야, 너는 대승불교에서는 9식을 심왕으로 여기는 것을 아느냐?”

모르는데요.”

 

지월의 물음에 이번에도 영재는 서양사람처럼 두 손을 벌리며 대꾸했다.상대방을 매우 맥빠지게 만드는 태도였다.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지월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너는 9식 심왕의 존재를 믿지않는구나.”

 

안타까운 듯 지월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자 영재는 입을 삐죽거리며 결국 속내를 드러냈다.

 

심왕이라는 것은 한가한 옛날 철학자들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존재가 아닐까요?인간의 뇌는 뉴우런의 집합체일 뿐이잖아요?”

 

영재의 의구심에 지월은 고개를 세게 내저으며 반박했다.

 

안타깝게도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너처럼 우리들의 존재를 믿으려고 하지 않더구만. 하지만 인간의 지성들은  석존이 입멸하기 8년 전에 설했다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그 해설서인 마하지관(摩訶止觀) 또 어의구전(御意口傳) 등 불교의 여러 최고 경전들속에  한결같이 우리들을 심왕으로 기록해두었단다.

그래서 좋으신가요?”

 

영재는 약간 비꼬듯이 물었다.그런데 예상밖으로 지월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아니다.”

아니라고요?”

 

의외라는 듯 반문하는 영재의 눈꼬리가 치켜졌다.

 

그래. 하지만 암호를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아마라가 심왕으로 나타나는 것은 별로 없었어. 그 탓에 인간의 뇌는 안타깝게도 그만 우리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말았단다.”

저런,”

 

영재는 짐짓 무척 놀란 척 했다.

 

“그래서 우리 아마라는 인간의 뇌에서 있으면서도 없는 것와  같은 아주 이상한 존재가 되어버렸단다.”

꼭 뇌의 잘못만은 아니잖아요?”

 

영재가 은근슬쩍 아마라를 비난하자 지월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아주 틀린 말도 아니지.”

 

지월이 안타까운 듯이 답변하자 잠시 대화에서 밀려났던 지수는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군요.”

 

지수가 아쉬움을 나타내자 지월은 고개를 끄떡이었다.다시 말을 꺼내는 지월의 얼굴빛이 매우 어두워졌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심호흡을 하느라고 지월이 잠깐 말을 끊자 영재는귀를 쫑긋하며 얼른 끼어들었다.

 

그게 뭐죠?”

어느 때부터인가 소유천이라는 요사한 것이 인간의 뇌를 장악하려고 덤벼든 거야. 그리고 우리의 존재를 눈치 챈 소유천은 비소를 이용하여 우리를 협박했어.  우리는 인간의 뇌를 죽게 그냥 놔둘 수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어쩔 수 없이 인간의 뇌를 포기하고는 기나 긴 방랑생활을 시작한 거야.”

결국 소유천은 불사신이 된 거군요.”

 

지수가 새삼 소유천에 대한 분노로 몸을 떨자 지월도 울컥한 듯 차츰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그런 셈이지. 하여간 그렇게 어이없게 소유천에게 쫓겨난 대부분의 아마라들은  곧바로 화이트홀로 되돌아갔지만 나를 비롯한 일부 아마라들은 돌아가지 않고 저항하기로 했지. 그리고 주변에 버려진 다른 존재의 껍데기를 뒤집어써야 했단다. 안그러면 죽거든.하여간 난 운좋게도 정조대왕의 모양을 한 마네킹을 내 몸으로 삼았단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서 왕노릇을 하고 있는 거야.후후,”

이왕이면 왕이 좋죠!”

 

영재는 지월에게 진심인지 거짓인지 모를 야릇한 아부성 맞장구를 쳐주었다.

 

어쨌든 우리는 팔달산을 우리가 머무를 새로운 둥지 즉  ()로 만들어 가기 시작했지.그래서 지금까지 흙덩어리에 불과했던 팔달산이 지금처럼 살아있는 인간의 뇌처럼 변한 거야.즉 영산이 탄생한 거야.”

 

지월의 말이 잠시 끝나자마자 이상하게도 영재의 눈빛이 번쩍하고 빛났다.지월은 그것을 느꼈는지 영재를 주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팔달산의 뇌를 소유천으로부터 지키기위해서 전자기 펄스를 내뿜는 우주입자로 팔달산에 방어망을 쳤단다”

 

지월의 설명에 영재는 그제서야 팔달산의 불가사의한 비밀이 완전하게 풀렸다는 듯이 손뼉을 힘껏 쳤다.

 

세상에!그래서 팔달산에서 모든 전자기기들이 갑자기 작동이 안되었던 거군요.

 

지월은 그런 영재를 잠시 바라보면서 매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에게는 매우  미안했지만 방어망 구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단다.”

. 정말 아주 많이 불편했죠.”

 

영재가 아주 대놓고 그렇다고하자 지월은 잠깐 겸연쩍어 하더니만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러는 동안 팔달산으로 들어오는 아마라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팔달산은 인간의 뇌이상으로 정밀해졌다마침내 황박사가 야심차게 꾸미고 있던 여우탑도 저지해 버릴 정도로 강력해졌단다.

“하지만 덕분에 팔달산이 우리들의 피난처가 되었어요.

 

지수는 우주입자 방어망이 팔달산에 끼친 영향이 그리 싫지않았다는 듯이 밝게 웃으며 응답했다.지월은 그말이 정말 고마웠던지 밝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준비를 해놓고도 우리가 뇌로 돌아가면 비소가 방출되어 사람들이 죽을까봐 귀환을 못하고 있는 거야.급기야는 신하들도 지쳤는지 저 홍승상과 무리를 지어 나에게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그냥 팔달산의 뇌에서 편히 살자고 말이다.”

 

지월은 자기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있는 신하들 특히 탐탁지않다는 표정을 짓고있는 승상을 슬쩍 노력보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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