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강형사는 왕대라는 별명은 그렇다 치더라도 호랑이가 불사신으로 불리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았다. 사방에서 왕대를 노리는 사냥꾼들의 눈이 번뜩이고 있기에 왕대도 언제가는 최후를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달리 게임의 순교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들은 처음처럼 가엾은 피해자는 아니었다. 모두 스스로 원해서 왕대를 쫓는 무서운 모험을 즐기다 죽어갔기 때문이다.

죽음의 공포는 역설적으로  그들에게 짧은 순간이나마 밋밋했던 세상을 의미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것을 눈치챘는지 도시의 모든 사람들은 순교자가 너도 나도 호랑이를 좇는 이상한 열병에 휩싸여 버렸다.

“모두 미쳤어!

강형사는 무모한 도박속에서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무조건 왕대의 뒤를 쫒기보다는 왕대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우선  시립도서관에 가서 호랑이에 관한 서적과 모든 영상물을 탐닉하였다.

호랑이는 돌멩이 길을 좋아하고 산림속에서도 등성이를 타고 달린다. 그럼으로써 한 눈에 사방을 폭넙게 감시할 수 있으니까. 물론 자신도 거꾸로 다른 동물이나 사냥꾼에게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백수의 왕인 호랑이가 무얼 두려워 하랴.

 그런 습성때문에 왕대도 도시의 지붕과 지붕사이를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호랑이에 대한 지식이 하나 둘씩 늘어가는 사이에, 처음에는 도무지 감조차 잡을 수 없던 왕대의 행적이 서서히 강형사의 시야에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 이제 추적을 한번 해볼까!”

그는 하얀 도면을 책상위에 펼쳤다. 그동안 왕대가 출몰했던 모든 지점을 일일이 도면위에 그려가면서 분석과 추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돌연 강형사의 눈이 번쩍 빛났다.

“이것봐라? 왕대의 도주방향이 거의 광교산 방향이네!

호랑이도 예기치않은 상황에서 군경에 쫒기다보면 아무 방향이나 도망가는 것이 상책일텐데 마치 계산이라도 한 것처럼 항상 광교산방향이니 뭔가 냄새가 났다.

“우연일까?”

해발582m인 광교산은 비록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산세가 험하고 의왕시와 수지쪽으로 산맥이 드넓게 형성되어있어서 왕대가 며칠이고 숨어있기에는 아주 안성마춤이었다.

그런데 단지 그 이유뿐일까.

광교산과 왕대사이에는 또다른 은밀한 거래가 있지나 않을까. 모든 것이 궁금해진 강형사는 당장 광교산으로 차를 몰았다.그는 광교호수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반디불이 화장실 뒤쪽으로  난 경사가 심한 나무계단을 조심스럽게 밟아올라갔다. 등산로 옆에 만들어진 경기대 철망을 따라올라가니 제법 우거진 숲이 외부세계를 차단시키면서 등산길에만 집중하게끔 만들었다.

 인적이 뚝 끊어진 등산로 주변을 면밀히 살피보다가 커다란 짐승 발자국을 서너개 발견한 강형사는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주변에 있던 잡초들이 힘없이 꺽어져 있었다. 그것이 왕대가 지나 간 탓이려니 생각하자 그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아먹고 숲속으로 들어가 이리 저리 살펴보는데 10미터 정도 떨어진 숲속에서 뭔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왕대?”

각오는 했지만 그곳을 노려보는 강형사의 머리칼이 일제히 바짝 일어섰다.엉겁결에 뽑아들고 수풀을 겨눈 총이 파르르 흔들렸다.여차하면 방아쇠를 당길 작정이었는데 뜻밖에도 수풀속에서 세호가 어슬렁거리며 걸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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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뭐야?”

너무나도 이상한  광경에 깜짝 놀란 혜영은 유리파편을 얼른  

눈에서 뗐다.그러자 원래의 활기찬 사무실의 모습이 다시 나타나고 로봇과 선글라스도  각각의 책상위에 다시 선을 보였다.혜영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하지만  조금 전에 보았던 낯선 모습은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싶어, 그녀는 유리파편을 양쪽 눈에 다시 조심 조심 갖다 대보았다.

그러자  조금 전에 보았던 불꺼진 사무실의 모습이 다시 등장하며 로봇과 선글라스도 덩달아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그것들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보여 혜영은 순간적으로 어떤 것이 진짜 현실인지 헤갈릴 정도였다.

이런 젠장,”

그녀의 입에서 여자답지않게 욕설이 튀어나왔다.그때 저만치 사무실 입구쪽에서 파란 선글라스를 낀 청원 경찰 서너 명이 권총을 빼어들고 무엇가를 찾는 듯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왠지 그들이 자신을 찾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 혜영은 얼른 파편들을 치마 주머니에 밀어넣었다.그리고는 그대로 몸을 틀어 오른쪽 출구를 향해 도망쳤다.

그러자 뒤늦게 그녀를 발견한 청원경찰들도 후다닥 혜영의 뒤를 쫒아갔다. 혜영은 미로 같은 복도를 정신없이 달리다가 급한대로 마침 문이 열려있는 어느 방으로  뛰어들어가 몸을 숨겼다.

 

“……!”

 

그런데 혜영의 정면에 웬일인지 성영 아파트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은 황제수가 일러준 아파트라는 기억이 났다.

 

, 간신히 찾았네.”

혜영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파트의 입구로 조용히 걸어들어갔다.

“……!”

그런데 그녀가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30m 앞에 눈에 익은 3층 단독건물이 들어왔다.그집 또한 그녀가 얼마 전에 방문했던 정호의 집이 틀림없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휴대폰이나 찾아가자.)

그녀는 성영아파트로 향하던 발길을 3층 건물쪽으로 서서히 돌렸다.집앞에 도착한 그녀는 눈부신 듯 건물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이윽고 다시 용기를 내어 대문벽에 붙어있는 초인종을 살그머니 눌렀다.

누구세요?”

역시나 귀에 익은 정호의 목소리였다.

나야 혜영이……”

혜영이?”

목소리로 보아 정호는 뜻하지않은 혜영의 방문에 매우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잠시 거북한 침묵이 흐르더니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 현관문에 다다르자 문이 열리며 정호와 그의 부인이 그녀를 맞이했다.

그렇게 긴장안해도 돼. 난 내 휴대폰을 찾으러 온 것뿐이니까.”

혜영은  당혹한 빛을 아직도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 정호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고는 미리 선수쳤다.

휴대폰?”

정호는 휴대폰이라는 말에 조금 안도하는 빛을  보이면서 애써 자기 아내에게 미소를 지어보인다.

지난 번 내가 여기 왔었을 때 깜박 잊고 갔었나봐.”

그래?”

고개를 갸웃거리던 정호가 거실로 들어가 여기 저기 둘러보자, 뒤따라온 혜영은 곧바로 접대용 붉은 색 테이블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 저기 있다!”

혜영은 뛰다시피 걸어가 붉은 색 테이불위에 놓여있던 스마트폰을 얼른 집어들었다.

그래.찾았으니 다행이다.”

혜영이 스마트폰을 찾고는 매우 좋아하자 뒤따라온 정호는 환한 얼굴빛으로 자기 아내에게 바라본다.혜영이 더 이상  자기 집에 거북스럽게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어져서 기분이 매우 좋은 듯 했다.

아얏!”

그때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서둘러 밀어넣던 혜영은 갑자기 인상을 찡그렸다.

후다닥 빼낸 그녀의 오른손 검지 끝에서 붉은 핏방울이 선명하게 맺혔다.그녀는 왼손을 그 주머니속에 집어넣더니 조심스럽게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의 손가락끝에 파란색 선글라스 유리파편들이 몇 개  잡혀나왔다.

그거 웬 유리조각이야?”

정호는 눈을 크게 뜨고 유리조각을 바라보고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으응, 이거……”

그녀는 유리파편의 출처에 대해서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아 꾸물거리자 정호가 그녀에게 손을 벌리며 말했다.

그거 되게 날카롭네. 이리줘. 내가 버려줄 테니까.”

아니야. 됐어.”

혜영은 파란색 선글라스 유리조각을 정호에게 건네주지않고 잠시 유심히 들여다본다.그리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유리 조각을 자신의 오른 쪽 눈앞에 슬쩍 대보았다.

!”

그 순간 화사했던 거실의 풍경은 사라지고 어둠침침한 극장 같은 모습이 쓰윽 나타났다.동시에 정호의 화사하던 부인은 어디로 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대신 정호만이 객석의 맨 앞줄 의자에 앉아 전면에 있는 노란색 스크린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띠었다.그의 눈빛은 마취에 취해있는 듯 풀려 있었다.

정호야?”

그의 몰골에 깜짝 놀란 혜영은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어 얼른 선글라스 파편을 눈에서 뗐다.그러자 조금 전 거실의 밝은 모습과 함께 정호와 사라졌던 그의 아내가 다시 그녀의 눈앞에 나타나 웃고 있었다.그들은 기겁하고 있는 혜영을 매우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서 민망한 혜영은 얼른 선글라스 파편을 눈에 다시 갖다 대었다.그와 동시에 또다시 정호부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음울한 극장의 모습이 나타났다.

도대체 어떤 모습이 진짜야!”

두려움과 함께 극심한 혼란속에 빠진 혜영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그때 의자에 앉아있던 정호가 혜영의 소리에 깊은 잠이 깬 듯 동공이 잔뜩 풀린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내가 미친 거야 아니면 네가 이상한거야?”

혜영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마구 지껄였다.그녀는 두 가지의 상반된 모습을 연달아 목격하면서 대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정호를 쏘아보는  그녀의 눈에는 정말 미친 것처럼 광기마저 번뜩였다.정신없이 선글라스 파편을 눈에다 댔다 떼었다 하기를 반복하던 혜영은  마침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양 눈에 선글라스 파편을 대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했다. 이윽고 혜영은 상영관의 한 구석에 있는 수상한 제어기기를 찾아냈다.

, 이거다!”

환호성을 지른 그녀는 이것 저것 생각할 것없이 대뜸 제어기기의 전원 스위치를 세게 눌렀다.제어기기속에서 윙하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렸다.두어 개의 비상등만이 텅빈 극장무대와 관객석을 희미하게  간신히 비춰주었다. 갑작스런 정전사태에 노란 스크린이 꺼지면서 그것을  바라보던 관객들은 크게 놀라면서 웅성거렸다.

역시 선글라스 유리 조각이 보여준 것이 진실이었군.”

 아니, 승희는 어디갔어?”

환상에서 깨어난 다른 사람들처럼 무척 황당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던 정호는 대뜸 혜영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승희는 없어!”

없다니?”

초점이 풀려있던 정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순간 깊이 잠자고 있던  혜영의 질투심이 폭발하면서 그녀의 심사가 뒤틀렸다.

나도 어찌된 영문인지 통 모르겠어!”

이런,”

혜영의 말에 핼쓱해진 정호는 주위에 승희가 숨어있다고 생각하는 듯 고함을 치며 두리번거렸다.

승희야! 승희야!”

 

그때 극장의 출입문이 벌컥 열리면서 또다시 청원경찰들이 우르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그들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있는 혜영을 단박에 알아보고는 달려와 혜영에게 총을 겨누었다. 혜영은 재빠르게 선글라스 파편을 치마주머니속에 숨기고 조용히 두 손을 들자

깡마른 얼굴에 뱀눈을 가진 청원경찰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그녀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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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영은 놀라는 황제수를 그대로 놔두고 까페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까페 밖은 마치 오피스텔의 복도와 같은 분위기였는데 그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바삐 오고갔다.그런데 정호의 모습은 이미 인파속으로 묻혀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그래도 이왕 나선 김에 잠깐 잊고있었던 정호를 더 찾아보기로 했다.

 

 그녀는 복도에서 파란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고는 했는데 그들은 뭔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제복 비슷한 것을 말끔하게 걸친 그들은 혜영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유심히 보곤해서 주눅이 들린 그녀는 슬쩍 고개를 돌리거나 숙여버렸다.

 

어느 순간 혜영은 자신이 끝없는 미로를 수 십 km을 걸기라도 한 듯 다리가 매우 뻐근해지고 피로해짐을 느꼈다. 차츰 거대한 미로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온몸에 이상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두려움마저 확 들었다.  

 

혜영씨,”

그런데 그녀가 당혹스러움에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귀에 익은 황제수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녀가 반색을 하면서 뒤돌아보니 황제수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혜영씨는 아직 다 버리지를 못했군요.”

그게……”

하긴 사람의 정이라는 것이 쉽게 끊지 못하죠.”

그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서요.”

, 좋아요.”

그녀를 바라보는 황제수의 시선이 착잡하게 보였다.그리고는 뭔가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언제든지 마음의 준비가 되면 날 찾아와요.”

서늘하고 아쉬운 눈빛으로 말을 맺고는 황제수는 조용히 돌아선다.그의 어깨너머에서 한 번 떠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않을 것 같은 강한 불길함이 혜영을 끌어당겼다.

어디로요?”

“……”

잠시 애간장을 녹이는 침묵이 흘렀다.한참만에 황제수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말문을 열었다.

정자동 성영아파트 5004. 난 항상 그곳에 있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황제수는 그대로 발길을 옮겼다.

잠깐만요!”

갑자기 치솟는 아쉬움에 혜영은 무작정 황제수를 세우려고 했다.그렇지만 황제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오히려 걸음이 더 빨라졌다.

“제수씨!

 이번에 황제수를 보내면 다시는 영원히 못 만날 것 두려움에 혜영은 체면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그러나 황제수는 그녀가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고 야별차게도 그냥 맞은 편 복도로 사라져버렸다. 다급함에 그녀는 허둥지둥 앞으로 뛰쳐나갔다.

!”

그런데 그때 오른 쪽 복도에서 튀어나오던 한 남자와 그만 부딪치고 말았다.그 순간 남자가 쓰고 있던 파란 선글라스가 벗겨지면서 공중으로 획 날아가더니 바닥에 사정없이 떨어졌다.그리고 여러 조각으로 깨지고 말았다.

복도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던 혜영은 상대방의 선글라스가 박살이 나자 자기 엉덩이 아픈 것도 잊어먹고 발딱 일어났다. 그리고 인상을 찡그리며 당황해하는 40대 중반의 남자에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사람을 찾느라고……”

“아, 그러길래 여기서는 선글라스를 써야지!

인색하게 생긴 남자는 그녀에게 왕짜증을 부리더니 갑자기 자신의 양 눈을 두 손으로 급하게 가리고는 황급히 아무 사무실이나 쏜살같이 뛰어들어가버렸다.

쌍방 잘못이건만 혼자 성질을 부리고 사라지는 남자의 행태에 혜영은 부아가 났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칠까봐  깨어진 파편들과 선글라스 몸체를 얼른 주섬 주섬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쓰레기통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말끔한 복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는 혜영은 황제수를 완전히 놓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훼손된 선글라스를 그냥 손에 든 채로 그가 사라진쪽으로 서둘러 쫓아갔다.

 

양쪽으로 방들이 즐비한 복도를 한동안 우왕좌왕하던 끝에 혜영은 어느 넓은 사무실로 들어서게 되었다.

“……!”

사무실의 좁은 입구를 벗어나니 눈앞에 의외로 오페라 하우스같은 넓은 공간이 펼쳐졌는데 바닥에는 50m 되는 긴 테이블이 일정한 간격으로 수 백줄 놓여 있었다. 또한 테이블위에는 1m 간격으로 켬퓨터와 비슷한 기구들이 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수많은 젊은 남녀들이 달라붙어 뭔가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천정에는 거대한 산데리아 같은 노란 등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곳에서 야간 근무자들을 위해서 노란 빛을 밑으로 쏟아붓고 있었다.

그들속에서 황제수의 흔적을 찾아 조심스럽게 중앙으로 다가가던 혜영은 문득 로봇을 능숙능란하게 설계하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였다. 그 남자의 책상위에는 김영수라는 명패가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마치 백묵을 거머쥔 선생님처럼 김영수가  손가락으로 칠판위를 분주히 움직일 때마다  태권V를 닮은 로봇의 모습이 눈앞에 점점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 과정이 너무나 신기하고 혜영은 혜경은 잠시 황제수에 대해서 잊고 그저 감탄사만 연발하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거기 일안하고 뭐하는 거요?”

김영수가 너무도 진지하게 일하는 바람에 황제수에 대해서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을 때 혜영의 뒤쪽에 있던 누군가가 그녀에게 핀잔을 주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녀가 얼결에 뒤돌아보니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말끔하게 생긴 남자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그 사람의 칠판위에도 여러 개의 선글라스 디자인이 걸려 있었다.

, 선글라스?”

즉각 그 남자가 선글라스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을 알아챈 혜영은 손에 들고있던 찌그러진 파란 선글라스를 흔들며 그 사람에게 걸어갔다.

이것 좀 고쳐주세요.”

남자는 다짜고짜 선그라스를 내미는 혜영을 힐끔 바라보더니 마지못해 선글라스를 받아든다.

이것 높은 양반들이 쓰던 선글라스인데……”

중얼거리던 남자는 깨지고 휘어진 선글라스를 이리 저리 살펴본다.그리고는 자신의 눈앞에 대고는 실내를 휘이 들러본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 , 저게 뭐야?”

그리고 마치 못볼 것을 본 듯 남자는 선글라스를 재빠르게 벗어내더니 부들 부들 떨었다.그리고 힐끔 헤영을 다시 노려보더니 얼른 선글라스를 그녀에게 내던졌다.

바닥에 처참하게  처박힌 선글라스를 다시 집어든 혜영은 분통을 터뜨리면서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며 남자에게 따졌지만 남자는 앞만 쳐다볼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남자의 침묵에 도대체 남자가 선글라스로 무엇을 보았길래 호들갑을 떠는 가 싶어 혜영은 선글라스를 자기 눈앞에 조심스럽게 대보았다.

 “어?

그랬더니 지금껏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일하던 사무실의 밝은 모습이 사라지고 대신 어둠침침하고 썰렁한 모습이 낯설게 나타났다.물론 사람들은 그대로였으나 김영수가 만들던 로봇설계와 또다른 남자가 만들던 선글라스 디자인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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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나흘이 지났건만 호랑이는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을 놀리듯 이곳 저곳에 출몰하면서 더욱 기승을 부렸다. 호랑이는 빗발치는 총탄속에서도 지붕과 지붕을 뛰어 건너서 도망쳐 버리는 바람에 호랑이의 모습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하여간 계속 희생자가 늘어나면서 기세등등했던 경찰과 사냥꾼들은 심한 공포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순찰을 돌던 한 전경이 호랑이에게 걸렸다가 천운으로 중상만 입고 살아난 기적이 발생했다.

그 전경은 사격과 운동신경이 뛰어난 자로 그날 밤도 거리 순찰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어느 골목 모통이를 마악 도는데 어두운 골목안에서 두 개의 새파란 불빛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더라는 것이었다순발력이 빠른 그는 순간  ‘범이구나! ’직감하면서 그 불빛을 향해 다짜고짜 M16를 드르륵 갈겨 버렸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골목안에서는 으르렁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물체가 뛰쳐나오면서 자신을 덮치더라는 것이었다.  전경은 엄청난 무게를 느끼면서 옆구리에 예리한 통증을 느꼈었단다. 그때 운좋게도  M16 총구가 호랑이의 가슴밑으로 들어가 있어서 그 전경은 오로지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남은 탄알을 모조리 범에게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의 필사적인 사격에 놀랐는지 호랑이는 더이상 전경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 못하고 급히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M16의 가공할 파괴력마저 없었으면 그는 이미 호랑이의 저녁 식사가 되었을거라고 전경은 온몸을 떨며 증언했다그는 미친 놈처럼 중얼거렸다.

“그 놈은  불사신이야. 왕대(王大)야!

굳이 그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간혹 기자들의 카메라에 잡힌 호랑이의 모습은 ‘왕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넓직한 이마에 선명하게 새겨진 왕( )이라는 글자는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고 굵직한 목덜미는 드넓은 하늘을 받치는 듯 싶었다.

불사신으로 등극한 왕대는 차츰 신성화 되기 시작했다. 배고픔 때문에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마저도 떠돌았다. 왕대가 비록 사람들을 비참하게 물어 뜯기는 했어도 그 시신에는 전혀 입을 대지 않은 사실 때문이었다.

도시에는 왕대의 배고픔을 달래줄 만한 야생동물들이 거의 없었던 탓에 왕대는 무척이나 굶주려 있을텐데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한 사람들을 왜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불사신이라 배고픔도 없는 것일까.

왕대의 행태를 보고 호사가들은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해석했다. 그 하나로 물론 죽은 사람에게는 안된 말이었지만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 당할 만 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개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을 꽁꽁 숨겨왔지만 왕대의 날카로운 눈만은 피해갈 수가 없었다는 ‘징벌론’이었다. 그 본보기로 거론되는 것이 최근에 희생당한 등산객 남자였다. 사실 그들 남녀는 순수한 연인 사이가 아니라 불륜관계에 있었던 점이 경찰의 신원 확인과정에서 밝혀졌었다.

하지만 강형사는 사람들의 그런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해석에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그래서 그는 징벌론 다음으로 인기가 있는 게임론’에 더 마음이 쏠렸다. 즉 왕대는 지금 인간과 게임을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즉 왕대는 자신을 드러내놓고 사람들보고 날 잡아보쇼 한다는 것이다. 대신 자신을 보고도 죽이지 못하는 인간에게는 ‘죽음’이라는 벌칙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왕대가 사람고기를 먹지 않는 것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되지를 못한다. 아무리 왕대라 한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어떻게 인간과 게임을 즐길 수가 있겠는가.

아무튼 황당한 소문과 해석이 난무하는 가운데 왕대는 점점 신비로운 존재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우상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시내의 분위기도 처음의 맹목적인 공포는 점차 사라지면서 일상적인 것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정말 왕대가 정말 인간하고 게임을 즐기기를 원한다면 마땅히 상대해주겠다는 객기 비슷한 분위기마저 서서히 사람들사이에 퍼져 갔다. 불사신이라고 불리는 존재를 자기 손으로 꺽어서 세상의 이목을 받아 보겠다는 사람들-주로 왕년에 군이나 경찰기관에서 한가락 하던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총포상에서는 각종 총기류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왕대의 출현은 경이로울 정도로 급속하게 소심한 도시에 겁없는 인간들을 양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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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떻게든 정호를 꼭 찾아돼.)

이튼날 혜영은 회사로 다시 출근하자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어제 일을 떠올리며 새삼스런 각오를 했다.황금색 원목으로 정갈하게 처리된 다소 미끄러운 로비바닥을 조심스럽게 걸어가 혜영은 마침 열려있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안에 이미 탑승한 수많은 젊은 사원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들을 실은 엘리베이터가 빨리 자신들의 사무실로 쏜살같이 올라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설만한 공간이 보이지않아서 조금 주저하던 혜영은 겨우 미안합니다라!라고 말하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라서려고 했는데 앞에 서 있던 젊은 남자가 재빨리 손을 뻗어 야속하게도 엘리베이터의 문을 닫으려고 했다.

, 잠깐만요!

깜작 놀란 그녀가 일단 얼른 한 발을 엘리베이터안으로 걸쳐놓고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좀 같이 가요.

혜영의 간절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안의 남자들은 대부분 못 들은 체 했다.

다음 것 타요. 늦었어요.

조금 전에 서둘러 엘리베이터의 문을 닫으려고 했던 젊은 남자가 냉정하게 내뱉자 다른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맞장구쳤다.

자리도 없구만. 그냥 올라갑시다.

, 빨리 문닫아. 첫날부터 지각할 수는 없잖아요.

누군가 냉정하게 고함치자 엘리베이터의 문은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그냥 밖으로 내밀린 혜영은 울상을 짓고 말았다. 그런데 무정하게 닫히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중간에 딱 멈추어 섰다. 어떤 젊은 신입사원이 재빨리 발로 엘리베이터의 문을 걸었던 것이다. 그 남자는 감색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건강하고 수수하게 생긴 젊은 훈남이었다. 그의 앳띤 얼굴에서 아직은 순수해보이는 신입사원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저 여자분도 첫 날은 중요할테니까 같이 좀 갑시다.

에이, 자리가 없잖아요!

자리야 조금씩만 양보하면 되죠.

그 말과 함께 젊은 훈남은 우격다짐으로 뒤에 서있던 남자들을 조금 밀어 부쳐 혜영이 들어설 만한 공간을 조금 확보해 주었다. 그리고는 남자들의 눈치를 살피며 엉거주춤 서있는 혜영의 팔을 재빨리 잡아 안으로 끌어당겼다.자리가 좁아지면서 여기 저기서 원성이 터져나왔지만 이윽고 엘리베이터는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

그런데 정작 거북해진 것은 혜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좁은 공간에 자신을 태우는 바람에 뒤에 있던 신입사원과  등뒤에서 너무 밀착되었기 때문이었다.젊은 여자의 둔부와의 밀착을 피하려고 애쓰는 듯 뒤로 하체를 필사적으로 뒤로 빼는 바람에 허리가 아파오는지 남자의 신음소리가 혜영의 귓가로 밀려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혜영은 야릇한 감정을 느꼈다.

엘리베이터가 사무실이 있는 5층에 서자 대부분의  사원들은 썰물 빠지듯 엘리베이터안에서  빠져나갔다.

혜영은 자신에게 자리를 만들어주느라고 뒤에서 남다른 고충(?)을 겪었던 그 신입사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기위해서 돌아봤건만 그 남자는 어디론가 휩쓸려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언제 사라졌지?”

하여간 혜영은 간신히 지각을 면했다.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일을 막 시작하려는데 팀장이 웬 젊은 남자를 달고 사무실로 들어섰다.그에게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혜영은 흠칫 놀랐다. 아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신사다운 배려를 해주었던 훈남이었기 때문이었다.

, 오늘도 신입사원 들어왔어요!”

혜영를 비롯한 직원들의 얼굴에 쫙 퍼진 궁금증을 이미 읽은 듯 팀장은 약간 장난스럽게 외쳤다.직원들에게 일일이 정중히 고개숙여 인사하던 훈남은 혜영을 금방 알아보고는 반색을 했다.

여기서 일해요?

놀라움으로 유독 반짝이는 그의 눈빛을 보자 혜영은 아까 엘리베이터에서의  일이 생각나 얼굴이 괜시리 화끈거렸다.

.아까는 고마웠는데 인사도 제대로 못했어요.

괜찮아요. 황제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혜영을 향해 활짝 웃음짓는 남자. 황제수라는 이름이 그녀의 마음속에  큰 소리를 내며 굴러들어왔다.

 

 

하여간 황제수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언뜻 언뜻 그의 시선과 마주치는 것이 빈번해지면서 혜영은 이상하게도 그녀의 마음속에서 정호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짐을 느꼈다. 그저 황제수의 젊은 미소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혜영의 행복감은 더할 나위없이 커져갔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날 오후 혜영은 아침의 각오와는 달리 정호를 찾으러 다니지 않았다.

 

어쨌든 급속하게 황제수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황제수를 생각하며 잠못 이루는 밤들이 점점 많아졌다. 점차 그녀는 그와 결혼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어느날 아늑하고 분위기있는 회사 구내 카페에 황제수와 오붓하게 둘이 있게 되자 혜영은 그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우리 결혼할까?”

결혼?”

황제수는 뜻밖이라는 듯 약간 흠칫했지만 곧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

정말!”

혹시나 걱정했던 혜영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황제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이윽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한데 시집오려면 다 버리고 와야 하는데 그럴 수 있겠어?”

다 버리라고?”

혜영의 얼굴에 살짝 걱정스런 빛이 스쳐갔다. 황제수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 내게는 당신만이 필요하거든.”

황제수의 달콤한 말에 혜영은 걱정스런 빛을 완전히 날려보내고는 다시 활짝 웃었다.

나도 당신만 필요해.”

이미 격정에 사로잡힌 혜영은 뜨겁게 반응했다.그러는 가운데 그녀의 가슴 한가운데에 응어리로 남아있었던 김정호의 존재는 완전히 녹아서 사라져 버렸다.

 

“……!”

그런데 그때였다. 황제수의 목을 두 팔로 껴안던 혜영의 눈에 카페 문 저머로 김정호 비슷하게 닮은 남자가 지나가는 것이 들어왔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왜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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