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나흘이 지났건만 호랑이는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을 놀리듯 이곳 저곳에 출몰하면서 더욱 기승을 부렸다. 호랑이는 빗발치는 총탄속에서도 지붕과 지붕을 뛰어 건너서 도망쳐 버리는 바람에 호랑이의 모습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하여간 계속 희생자가 늘어나면서 기세등등했던 경찰과 사냥꾼들은 심한 공포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순찰을 돌던 한 전경이 호랑이에게 걸렸다가 천운으로 중상만 입고 살아난 기적이 발생했다.

그 전경은 사격과 운동신경이 뛰어난 자로 그날 밤도 거리 순찰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어느 골목 모통이를 마악 도는데 어두운 골목안에서 두 개의 새파란 불빛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더라는 것이었다순발력이 빠른 그는 순간  ‘범이구나! ’직감하면서 그 불빛을 향해 다짜고짜 M16를 드르륵 갈겨 버렸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골목안에서는 으르렁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물체가 뛰쳐나오면서 자신을 덮치더라는 것이었다.  전경은 엄청난 무게를 느끼면서 옆구리에 예리한 통증을 느꼈었단다. 그때 운좋게도  M16 총구가 호랑이의 가슴밑으로 들어가 있어서 그 전경은 오로지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남은 탄알을 모조리 범에게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의 필사적인 사격에 놀랐는지 호랑이는 더이상 전경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 못하고 급히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M16의 가공할 파괴력마저 없었으면 그는 이미 호랑이의 저녁 식사가 되었을거라고 전경은 온몸을 떨며 증언했다그는 미친 놈처럼 중얼거렸다.

“그 놈은  불사신이야. 왕대(王大)야!

굳이 그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간혹 기자들의 카메라에 잡힌 호랑이의 모습은 ‘왕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넓직한 이마에 선명하게 새겨진 왕( )이라는 글자는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고 굵직한 목덜미는 드넓은 하늘을 받치는 듯 싶었다.

불사신으로 등극한 왕대는 차츰 신성화 되기 시작했다. 배고픔 때문에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마저도 떠돌았다. 왕대가 비록 사람들을 비참하게 물어 뜯기는 했어도 그 시신에는 전혀 입을 대지 않은 사실 때문이었다.

도시에는 왕대의 배고픔을 달래줄 만한 야생동물들이 거의 없었던 탓에 왕대는 무척이나 굶주려 있을텐데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한 사람들을 왜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불사신이라 배고픔도 없는 것일까.

왕대의 행태를 보고 호사가들은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해석했다. 그 하나로 물론 죽은 사람에게는 안된 말이었지만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 당할 만 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개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을 꽁꽁 숨겨왔지만 왕대의 날카로운 눈만은 피해갈 수가 없었다는 ‘징벌론’이었다. 그 본보기로 거론되는 것이 최근에 희생당한 등산객 남자였다. 사실 그들 남녀는 순수한 연인 사이가 아니라 불륜관계에 있었던 점이 경찰의 신원 확인과정에서 밝혀졌었다.

하지만 강형사는 사람들의 그런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해석에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그래서 그는 징벌론 다음으로 인기가 있는 게임론’에 더 마음이 쏠렸다. 즉 왕대는 지금 인간과 게임을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즉 왕대는 자신을 드러내놓고 사람들보고 날 잡아보쇼 한다는 것이다. 대신 자신을 보고도 죽이지 못하는 인간에게는 ‘죽음’이라는 벌칙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왕대가 사람고기를 먹지 않는 것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되지를 못한다. 아무리 왕대라 한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어떻게 인간과 게임을 즐길 수가 있겠는가.

아무튼 황당한 소문과 해석이 난무하는 가운데 왕대는 점점 신비로운 존재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우상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시내의 분위기도 처음의 맹목적인 공포는 점차 사라지면서 일상적인 것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정말 왕대가 정말 인간하고 게임을 즐기기를 원한다면 마땅히 상대해주겠다는 객기 비슷한 분위기마저 서서히 사람들사이에 퍼져 갔다. 불사신이라고 불리는 존재를 자기 손으로 꺽어서 세상의 이목을 받아 보겠다는 사람들-주로 왕년에 군이나 경찰기관에서 한가락 하던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총포상에서는 각종 총기류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왕대의 출현은 경이로울 정도로 급속하게 소심한 도시에 겁없는 인간들을 양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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