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영은 놀라는 황제수를 그대로 놔두고 까페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까페 밖은 마치 오피스텔의 복도와 같은 분위기였는데 그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바삐 오고갔다.그런데 정호의 모습은 이미 인파속으로 묻혀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그래도 이왕 나선 김에 잠깐 잊고있었던 정호를 더 찾아보기로 했다.

 

 그녀는 복도에서 파란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고는 했는데 그들은 뭔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제복 비슷한 것을 말끔하게 걸친 그들은 혜영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유심히 보곤해서 주눅이 들린 그녀는 슬쩍 고개를 돌리거나 숙여버렸다.

 

어느 순간 혜영은 자신이 끝없는 미로를 수 십 km을 걸기라도 한 듯 다리가 매우 뻐근해지고 피로해짐을 느꼈다. 차츰 거대한 미로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온몸에 이상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두려움마저 확 들었다.  

 

혜영씨,”

그런데 그녀가 당혹스러움에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귀에 익은 황제수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녀가 반색을 하면서 뒤돌아보니 황제수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혜영씨는 아직 다 버리지를 못했군요.”

그게……”

하긴 사람의 정이라는 것이 쉽게 끊지 못하죠.”

그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서요.”

, 좋아요.”

그녀를 바라보는 황제수의 시선이 착잡하게 보였다.그리고는 뭔가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언제든지 마음의 준비가 되면 날 찾아와요.”

서늘하고 아쉬운 눈빛으로 말을 맺고는 황제수는 조용히 돌아선다.그의 어깨너머에서 한 번 떠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않을 것 같은 강한 불길함이 혜영을 끌어당겼다.

어디로요?”

“……”

잠시 애간장을 녹이는 침묵이 흘렀다.한참만에 황제수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말문을 열었다.

정자동 성영아파트 5004. 난 항상 그곳에 있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황제수는 그대로 발길을 옮겼다.

잠깐만요!”

갑자기 치솟는 아쉬움에 혜영은 무작정 황제수를 세우려고 했다.그렇지만 황제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오히려 걸음이 더 빨라졌다.

“제수씨!

 이번에 황제수를 보내면 다시는 영원히 못 만날 것 두려움에 혜영은 체면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그러나 황제수는 그녀가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고 야별차게도 그냥 맞은 편 복도로 사라져버렸다. 다급함에 그녀는 허둥지둥 앞으로 뛰쳐나갔다.

!”

그런데 그때 오른 쪽 복도에서 튀어나오던 한 남자와 그만 부딪치고 말았다.그 순간 남자가 쓰고 있던 파란 선글라스가 벗겨지면서 공중으로 획 날아가더니 바닥에 사정없이 떨어졌다.그리고 여러 조각으로 깨지고 말았다.

복도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던 혜영은 상대방의 선글라스가 박살이 나자 자기 엉덩이 아픈 것도 잊어먹고 발딱 일어났다. 그리고 인상을 찡그리며 당황해하는 40대 중반의 남자에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사람을 찾느라고……”

“아, 그러길래 여기서는 선글라스를 써야지!

인색하게 생긴 남자는 그녀에게 왕짜증을 부리더니 갑자기 자신의 양 눈을 두 손으로 급하게 가리고는 황급히 아무 사무실이나 쏜살같이 뛰어들어가버렸다.

쌍방 잘못이건만 혼자 성질을 부리고 사라지는 남자의 행태에 혜영은 부아가 났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칠까봐  깨어진 파편들과 선글라스 몸체를 얼른 주섬 주섬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쓰레기통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말끔한 복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는 혜영은 황제수를 완전히 놓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훼손된 선글라스를 그냥 손에 든 채로 그가 사라진쪽으로 서둘러 쫓아갔다.

 

양쪽으로 방들이 즐비한 복도를 한동안 우왕좌왕하던 끝에 혜영은 어느 넓은 사무실로 들어서게 되었다.

“……!”

사무실의 좁은 입구를 벗어나니 눈앞에 의외로 오페라 하우스같은 넓은 공간이 펼쳐졌는데 바닥에는 50m 되는 긴 테이블이 일정한 간격으로 수 백줄 놓여 있었다. 또한 테이블위에는 1m 간격으로 켬퓨터와 비슷한 기구들이 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수많은 젊은 남녀들이 달라붙어 뭔가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천정에는 거대한 산데리아 같은 노란 등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곳에서 야간 근무자들을 위해서 노란 빛을 밑으로 쏟아붓고 있었다.

그들속에서 황제수의 흔적을 찾아 조심스럽게 중앙으로 다가가던 혜영은 문득 로봇을 능숙능란하게 설계하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였다. 그 남자의 책상위에는 김영수라는 명패가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마치 백묵을 거머쥔 선생님처럼 김영수가  손가락으로 칠판위를 분주히 움직일 때마다  태권V를 닮은 로봇의 모습이 눈앞에 점점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 과정이 너무나 신기하고 혜영은 혜경은 잠시 황제수에 대해서 잊고 그저 감탄사만 연발하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거기 일안하고 뭐하는 거요?”

김영수가 너무도 진지하게 일하는 바람에 황제수에 대해서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을 때 혜영의 뒤쪽에 있던 누군가가 그녀에게 핀잔을 주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녀가 얼결에 뒤돌아보니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말끔하게 생긴 남자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그 사람의 칠판위에도 여러 개의 선글라스 디자인이 걸려 있었다.

, 선글라스?”

즉각 그 남자가 선글라스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을 알아챈 혜영은 손에 들고있던 찌그러진 파란 선글라스를 흔들며 그 사람에게 걸어갔다.

이것 좀 고쳐주세요.”

남자는 다짜고짜 선그라스를 내미는 혜영을 힐끔 바라보더니 마지못해 선글라스를 받아든다.

이것 높은 양반들이 쓰던 선글라스인데……”

중얼거리던 남자는 깨지고 휘어진 선글라스를 이리 저리 살펴본다.그리고는 자신의 눈앞에 대고는 실내를 휘이 들러본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 , 저게 뭐야?”

그리고 마치 못볼 것을 본 듯 남자는 선글라스를 재빠르게 벗어내더니 부들 부들 떨었다.그리고 힐끔 헤영을 다시 노려보더니 얼른 선글라스를 그녀에게 내던졌다.

바닥에 처참하게  처박힌 선글라스를 다시 집어든 혜영은 분통을 터뜨리면서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며 남자에게 따졌지만 남자는 앞만 쳐다볼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남자의 침묵에 도대체 남자가 선글라스로 무엇을 보았길래 호들갑을 떠는 가 싶어 혜영은 선글라스를 자기 눈앞에 조심스럽게 대보았다.

 “어?

그랬더니 지금껏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일하던 사무실의 밝은 모습이 사라지고 대신 어둠침침하고 썰렁한 모습이 낯설게 나타났다.물론 사람들은 그대로였으나 김영수가 만들던 로봇설계와 또다른 남자가 만들던 선글라스 디자인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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