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게 뭐야?”
너무나도 이상한
광경에 깜짝 놀란 혜영은 유리파편을 얼른
눈에서 뗐다.그러자 원래의 활기찬 사무실의 모습이 다시 나타나고 로봇과
선글라스도 각각의 책상위에 다시
선을 보였다.혜영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하지만 조금 전에 보았던 낯선 모습은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싶어, 그녀는 유리파편을 양쪽 눈에 다시 조심 조심 갖다 대보았다.
그러자 조금
전에 보았던 불꺼진 사무실의 모습이 다시 등장하며 로봇과 선글라스도 덩달아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그것들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보여 혜영은 순간적으로 어떤 것이 진짜 현실인지 헤갈릴 정도였다.
“이런
젠장,”
그녀의 입에서 여자답지않게 욕설이 튀어나왔다.그때 저만치 사무실 입구쪽에서
파란 선글라스를 낀 청원 경찰 서너 명이 권총을 빼어들고 무엇가를 찾는 듯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왠지
그들이 자신을 찾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 혜영은 얼른 파편들을 치마 주머니에 밀어넣었다.그리고는 그대로
몸을 틀어 오른쪽 출구를 향해 도망쳤다.
그러자 뒤늦게 그녀를 발견한 청원경찰들도 후다닥 혜영의 뒤를 쫒아갔다. 혜영은
미로 같은 복도를 정신없이 달리다가 급한대로 마침 문이 열려있는 어느 방으로 뛰어들어가 몸을 숨겼다.
“……!”
그런데 혜영의 정면에 웬일인지 성영 아파트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은
황제수가 일러준 아파트라는 기억이 났다.
“휴, 간신히 찾았네.”
혜영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파트의 입구로 조용히 걸어들어갔다.
“……!”
그런데 그녀가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30m 앞에 눈에 익은 3층 단독건물이 들어왔다.그집 또한 그녀가 얼마 전에 방문했던 정호의
집이 틀림없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휴대폰이나 찾아가자.)
그녀는 성영아파트로 향하던 발길을 3층 건물쪽으로 서서히 돌렸다.집앞에 도착한 그녀는 눈부신 듯 건물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이윽고 다시 용기를 내어 대문벽에 붙어있는 초인종을
살그머니 눌렀다.
“누구세요?”
역시나 귀에 익은 정호의 목소리였다.
“나야
혜영이……”
“혜영이?”
목소리로 보아 정호는 뜻하지않은 혜영의 방문에 매우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잠시
거북한 침묵이 흐르더니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 현관문에 다다르자 문이 열리며 정호와 그의 부인이 그녀를 맞이했다.
“그렇게
긴장안해도 돼. 난 내 휴대폰을 찾으러 온 것뿐이니까.”
혜영은 당혹한
빛을 아직도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 정호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고는 미리 선수쳤다.
“휴대폰?”
정호는 휴대폰이라는 말에 조금 안도하는 빛을 보이면서 애써 자기 아내에게 미소를 지어보인다.
“지난
번 내가 여기 왔었을 때 깜박 잊고 갔었나봐.”
“그래?”
고개를 갸웃거리던 정호가 거실로 들어가 여기 저기 둘러보자, 뒤따라온
혜영은 곧바로 접대용 붉은 색 테이블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아, 저기 있다!”
혜영은 뛰다시피 걸어가 붉은 색 테이불위에 놓여있던 스마트폰을 얼른 집어들었다.
“그래.찾았으니 다행이다.”
혜영이 스마트폰을 찾고는 매우 좋아하자 뒤따라온 정호는 환한 얼굴빛으로 자기 아내에게 바라본다.혜영이 더 이상
자기 집에 거북스럽게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어져서 기분이 매우 좋은 듯 했다.
“아얏!”
그때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서둘러 밀어넣던 혜영은 갑자기 인상을 찡그렸다.
후다닥 빼낸 그녀의 오른손 검지 끝에서 붉은 핏방울이 선명하게 맺혔다.그녀는
왼손을 그 주머니속에 집어넣더니 조심스럽게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의 손가락끝에 파란색
선글라스 유리파편들이 몇 개 잡혀나왔다.
“그거
웬 유리조각이야?”
정호는 눈을 크게 뜨고 유리조각을 바라보고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으응, 이거……”
그녀는 유리파편의 출처에 대해서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아 꾸물거리자 정호가 그녀에게 손을 벌리며 말했다.
“그거
되게 날카롭네. 이리줘. 내가 버려줄 테니까.”
“아니야. 됐어.”
혜영은 파란색 선글라스 유리조각을 정호에게 건네주지않고 잠시 유심히 들여다본다.그리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유리 조각을 자신의 오른 쪽 눈앞에 슬쩍 대보았다.
“엇!”
그 순간 화사했던 거실의 풍경은 사라지고 어둠침침한 극장 같은 모습이 쓰윽 나타났다.동시에 정호의 화사하던 부인은 어디로 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대신
정호만이 객석의 맨 앞줄 의자에 앉아 전면에 있는 노란색 스크린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띠었다.그의
눈빛은 마취에 취해있는 듯 풀려 있었다.
“정호야?”
그의 몰골에 깜짝 놀란 혜영은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어 얼른 선글라스 파편을 눈에서 뗐다.그러자 조금 전 거실의 밝은 모습과 함께 정호와 사라졌던 그의 아내가 다시 그녀의 눈앞에 나타나 웃고 있었다.그들은 기겁하고 있는 혜영을 매우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서 민망한 혜영은 얼른 선글라스 파편을 눈에 다시 갖다 대었다.그와 동시에 또다시 정호부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음울한 극장의 모습이 나타났다.
“도대체
어떤 모습이 진짜야!”
두려움과 함께 극심한 혼란속에 빠진 혜영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그때 의자에 앉아있던 정호가 혜영의 소리에 깊은 잠이 깬 듯 동공이 잔뜩 풀린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내가
미친 거야 아니면 네가 이상한거야?”
혜영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마구 지껄였다.그녀는 두 가지의 상반된 모습을
연달아 목격하면서 대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정호를 쏘아보는 그녀의 눈에는 정말 미친 것처럼 광기마저 번뜩였다.정신없이
선글라스 파편을 눈에다 댔다 떼었다 하기를 반복하던 혜영은 마침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양 눈에 선글라스 파편을
대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했다. 이윽고 혜영은 상영관의 한 구석에 있는 수상한
제어기기를 찾아냈다.
“아, 이거다!”
환호성을 지른 그녀는 이것 저것 생각할 것없이 대뜸 제어기기의 전원 스위치를 세게 눌렀다.제어기기속에서 윙하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렸다.두어 개의 비상등만이 텅빈
극장무대와 관객석을 희미하게 간신히 비춰주었다. 갑작스런 정전사태에 노란 스크린이 꺼지면서 그것을 바라보던 관객들은 크게 놀라면서 웅성거렸다.
“역시
선글라스 유리 조각이 보여준 것이 진실이었군.”
“아니, 승희는 어디갔어?”
환상에서 깨어난 다른 사람들처럼 무척 황당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던 정호는 대뜸 혜영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승희는
없어!”
”없다니?”
초점이 풀려있던 정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순간 깊이 잠자고 있던 혜영의 질투심이 폭발하면서 그녀의 심사가 뒤틀렸다.
“나도
어찌된 영문인지 통 모르겠어!”
“이런,”
혜영의 말에 핼쓱해진 정호는 주위에 승희가 숨어있다고 생각하는 듯 고함을 치며 두리번거렸다.
“승희야! 승희야!”
그때 극장의 출입문이 벌컥 열리면서 또다시 청원경찰들이 우르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그들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있는 혜영을 단박에 알아보고는 달려와 혜영에게 총을 겨누었다. 혜영은 재빠르게 선글라스 파편을 치마주머니속에 숨기고 조용히 두 손을 들자
깡마른 얼굴에 뱀눈을 가진 청원경찰이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그녀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