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날이 새자 마자 경찰서로 달려간 강형사는 형사반장으로부터 이명훈의 사망소식을 듣고는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이번에도 왕대의 짓인가요 ?

 “그놈밖에 더 있겠어? 목이 송두리채 날아갔어.

“이런, 언제 당했나요?

“어제저녁 7시 반경인 것 같더군.

“으음.

강형사는 어제밤에 자신의 집에 침입한 왕대을 떠올리고는 몸서리를 쳤다. 반백의 형사반장은 강형사를 흘끔 쳐다본다.

“그런데말이야, 이상한 것은  이명훈이 당한 장소야.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사망장소가 바로 칠보산 입구쪽인데 그곳은 자네가 사는 부근 아니던가 ?

“그렇군요. 그런데 왜  이명훈이 그곳에 갔을까요?

“내가 이상하다는 점이 바로 그거야.

겉으로는 심드렁하게 대답을 하면서도 형사반장의 심상치않은 눈빛과 부딪치자 강형사는 속으로 뜨끔했다. 얼마 전에 수거한 왕대의 털을 형사반장한테 보고하지 않고 이명훈에게 넘긴 사실을 알고있나 싶어서였다.하지만 그는 이왕 저지른 일 끝까지 비밀로 하기로 작정했다.

“퇴근하자마자 으슥한 외곽지역으로 달려갔다? 뭔가 찜찜해."

"바람이라도 쐬러 갔나보죠?"

"그런가?"

형사반장이 계속 긴가민가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강형사는 그의 신경을 다른 쪽으로 돌려야 했다.

“현장에서 뭐 다른 단서는 없었나요?

“놈이 그런 것을 흘린 놈이야?"

“……”

 "하여간 자네도 조심하라구, 이젠 그곳까지 녀석이 설쳐대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형사반장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강형사는 이명훈이 왕대에게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이미 그의 심장은 벌렁대기 시작했다.사건을 전말을 모르는 형사반장의 눈으로 보면 이명훈의 죽음은 그저 수많은 억울한 죽음중의 하나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왕대의 경고를 받은 강형사는 본능적으로 두 개의 사건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그 보이지 않는 공통분모가 바로  왕대의 털이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왕대는 두 사람이 자신의 흔적을 분석하려는 것을 눈치채고 서둘러 제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왕대는 어떻게 이명훈이 자신의 털을 분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을까. 정말 불사신 왕대는 두 사람의 움직임을 탐지할 수 있는 불가사의한 천리안을 가진 영물일까.

“……!

그런데 죽음을 부르는 왕대의 위험한 털을 가진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이 강형사의 뇌리에 퍼뜩 떠올라왔다. 그 사람은 바로 세호였다. 그 사람은 바로 세호였다.

“이런,  세호가 위험하다!

강형사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하애졌다. 그는 부리나케 경찰서를 빠져나와  광교산을 향해  승용차의 페달을 거칠게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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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열쇠 내놔!”

정호야, 왜 그래? ”

빨리!”

정호가  다시 한번 고함을 치자 황박사는 마지못해 바지주머니에서 자동차 키를 꺼내든다. 혜영이 서둘러 다가가 재빨리 키를 나꿔챘다.정호는 권총으로 황박사의 등을 꾹 찌른다.

당신 차 있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해!”

너는 여기서 절대 도망치지 못해 !”

황박사가 버티며 응수하자 정호는 무섭게 인상을 썼다.

그러면 당신하고 같이 죽을 수 밖에 없군.”

정호는 권총의 시커먼 총구를 황박사의 이마 한 가운데에 갖다댔다. 황박사의 이마에 진땀이 배여나왔다.

, 알았네.”

황박사가 포기한 듯 이미 꽤 어두워진 주차장으로 걸어가자 그들을 둘러싼 보안요원들도 주춤 주춤 따라왔다.

황박사, 개죽음당하고 싶지않으면 저놈들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해!”

모두 물러서!”

황박사가 요원들에게 소리치자 뒤따라오던 그들은 곤혹스런 표정으로 엉거주춤 멈춰섰다.

잠시 후  황박사가 자신의 차앞에 서자 정호는 황박사를 차에 밀어넣고는 신속하게 같이 올라탔다.운전대를 잡은 혜영은 그대로 공사의 정문을 돌파해나갔다. 그제서야 보안요원들도 요란법석을 떨며  자기들 차로 그 뒤를 맹렬히 추격하기 시작했다. 혜영은 여자답지않게 그들의 추적을 절묘하게 따돌리고는 종로의 여민각을 향하여 쏜살같이 질주해갔다.

“……”

승용차가 역전으로 향하는 굴다리를 진입하는 동안 황박사는 자신이 억류되어서 잡혀가는 현실이 믿기지않는 듯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터질 것 같은 차안의 침묵이 불편한지 정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박사님은, 왜 그런 것을 만들었죠?”

증강현실말인가?”

황박사는 인상을 조금 펴고 정호를 돌아보며 반문했다.

.”

난 자네와 같이 미치도록 일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을 위해서 그것을 만들었지.”

한순간이지만 자신이 납치되어가는 현실을  잠깐 잊은 듯 조용히 대답하는 황박사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 피어났다.

그건 진짜가 아니잖아요!”

정호가 소리를 지르며 반박을 하자 황박사는 미간을 약간 찌

푸렸다.

현실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자네들은 일반 샐러리맨처럼 하루 8시간씩 일을 했어. 그리고 충실감을 느꼈어. 단지 다른 것은 자네들은 증강현실에서 일했다는 것 뿐이야. 꼭 회사에 출근해 펜대를 놀려야 일하는 건가?”

그건 아니지만…..”

정호는 적절한 대답을 못찾았는지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그러자 혜영이 발끈한 표정으로 룸미터를 쳐다보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하지만 정호를 가상현실에 불법감금한 것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어요!”

미안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었네.”

어쩔 수 없었다고요?”

자네가 가상현실에서만 활동하도록 만들어진 캐릭터인 승희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기 때문이야.

사람의 감정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정호는 운전을 하고있는 승희의 눈치를 흘끔 살피며 나지막하게 대꾸했다.

그렇지. 하지만 자네가 승희에 대한 기억을 머리에 담고 그대로 현실세계로 나가면 사람들은  자네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을 것이네. 심지어는 자네 부모도 말이야. 그래서 나는 정호를 가상세계에 붙잡아둘 수 밖에 없었어. 대신 자네 부모를 불러다가 자네가 결혼하는 가상의 모습을 인위적으로 심어주었지.”

황박사가 자신이 저지른 죄를 대수롭지 않게 되뇌이자 정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당신 정말 몹쓸 사람이군요.”

그러자 황박사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던 혜영은 룸미러속의 황박사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그것을 빼고는 도대체 증강현실이 뭐가 문제인가?그냥  절망에 빠져 허송세월하는 것보다 그렇게라도 일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아?"

말을 마친 황박사는 자신을 범죄자 취급하는 혜영과 정호가 정말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을 짓는다.그러자 룸미러속의 황박사를 노려보던 혜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조만간 그 궤변도 이제 종칠 때가 됐네요.우리는 곧 당신의 음모를 언론에 폭로할테니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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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은 뭐 때문에 괴물하고 무모한 대결을 하려는 것일까?)


저 사냥꾼들도 어쩌면 호랑이가 아니라 자신들이 파괴해야 할 일상의 지루함을 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이면 눈뜨기가 무섭게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보다 흥미롭고 자극적인  뉴스부터 찾는 자신과 저 사냥꾼들과는 근본적으로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명훈 은 신문을 들여다보면서 따분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는 야릇한 오르가즘을 느끼곤 했다. 신문보는 재미는 기묘한 사건이 많을수록 더해진다.

하여간  이명훈은 자기랑 마주친 용감한 도시의 사냥꾼들이 무사하기를 빌며 강형사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

그때였다. 조그마한 산등성이를 마악 돌아서면서  이명훈이 자신쪽으로 두 개의 커다란 노란불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처음에  이명훈 은 노란불을 그저 스쳐 가는 오토바이의 불빛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도로위에서 심하게 출렁이는 그 불빛이 매우 수상했다. 더구나 그 불빛은 어느 틈엔가 그의 차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순간 위험을 직감한  이명훈 은 차를 황급히 세웠다. 그래도 노란 불빛은 막무가내로 그를 향해 돌진해 들어 왔다. 갑자기 그 노란 불빛이 하늘위로 치솟았다.

!

조명탄같이 밤하늘에 긴 빛을 흘리며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노란 불빛속에서  이명훈은 거대한 짐승의 발톱과 얼룩 무늬의 뱃가죽을 언뜻 보았다. 그건 다름아닌 도시의 사냥꾼들이 노리고 있는 왕대 거대한 배였.

 

 

"......!"

한동안 자신의 2층집을 노려보던 강형사는 품에서 권총을 슬며시 꺼냈다. 총을 움켜쥔 손이 파르르 떨린다. 그는 마구 방망이질치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집 대문을 슬며시 밀어냈다. 마치 처음 들어가는 낯선 집처럼 조심스럽게,

녹색 기와로 치장된 2층집은 오늘밤 예전의 그의 집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왠지 낯설고 무섭게 보인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 암흑속에 파묻혀 있는 집은 강형사를 삼켜 버리기 위해 또아리를 틀며 숨어있는 구렁이 같다.

뭔가 모를 위험한 분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은 집안에는 다행히도 식구들은 없었다. 강형사의 아내와 어린 아들은 며칠전에 시골에 일이 있어 내려갔었다. 덕분에 강형사는 며칠동안 자유를 맘껏 누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밤낮으로 왕대를 추적하는 통에 외박을 밥먹듯 해야 하는데 마침 잘된 셈이었다.

그래도 저녁이 되면 텅빈 그의 집에는 어김없이 불이 켜지곤 했었다. 해가 지면 자동으로 온 집안에 조명이 켜지게끔 강형사가 미리 센서 장치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사람사는 집이 특히 저녁에 불이 꺼져버려 매우 을쓸년스럽게 보이는 것을 그는 몹시도 싫어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틀만에 돌아온 강형사의 집안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집안에 무슨 나쁜 일이 생긴 탓이라고 느낀 육감은 아무 생각없이 집안으로 들어서려던 그를 대문앞에 붙잡아 세웠다.

강형사는 거의 기다시피하여 현관에 도달하였다. 그가 슬쩍 밀어보자 예상대로 현관문은 잠겨 있었다. 그는 얼른 열쇠를 밀어넣었다. 딸칵하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커텐이 쳐져있던 탓인지 거실안은 칠흑처럼 캄캄하였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떠보자 차츰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

거실안은 역시 난장판이었다. 제자리에 있는 가구는 하나도 없었고 거실탁자에 있던 전화기는 처참하게 박살이 나 있었다. 마치 거대한 해머로 힘껏 내리친 것처럼 같았다.

산산조각난 파편에서는 짐승의 지독한 노린내가 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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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나야,”

마침내 통화가 되었지만 그녀는 넉넉치 못한 밧데리량 때문에 곧바로 결론으로 들어갔다.

아주 엄청난 특종을 보내주겠어. 동영상을 보내줄 테니 일단 받아봐.”

그 사이 밧데리의 초록색 칸이 하나 남아있는 것을 본 혜영은 급하게 말을 자르고는 스마트폰에 저장해둔 동영상의 공유 아이콘을 클릭했다.그리고는 선배기자에게 곧바로 전송했다. 전송을 끝나고나서야 그녀는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는 다시 보충설명을 하기위해서 선배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동영상을 보고있었는지 선배는 한참만에야 전화를 겨우 받았다.

, 이것 놀라운데! 대선에서 제일 유력한 잠룡이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지르다니……”

그러니까 빨리 그것을 세상에 폭로해줘요.”

분노가 새삼스럽게  치솟는지 혜영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려나왔다.

그런데 동영상이 너무 어두워서 못해서 당사자가 아니라고 잡아떼면 오히려 우리가 당할 수 있어. 명예훼손으로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예요?  그 정도면 정황이 충분하지 않아요!”

아니야. 결정타가 필요해.”

결정타라고요?”

혹시  이 음모를 증언할 수 있는 증인을 확보했어?”

증인이요?”

혜영의 시선이 다시 스크린을 뚫어지게 쳐다보고있는 정호에게 쏠렸다.

있어요!”

그럼 그 사람을 데리고 와. 그리고는 기자회견을 하는 거야.”

알았어요. 여기도 상횡이 녹록하지는 않지만 시도를 해볼께요.”

이제 하나 남은 밧데리칸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심하게 깜박거리자 혜영의 말이 덩달아 빨라졌다.

오케이. 한 시간 후 종로에 있는 여민각에서 만나자.”

,”

정치부 선배하고 간신히 통화를 끝낸 혜영은 재빠르게 스마트폰을 껐다.앞으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최대한 밧데리를 아껴두어야 했다.

 

 

이것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황박사는 혜영이 청원 경찰 두 명을 때려눕히고 탈출했다는  급보을 받고는 기겁을 했다.연약하게 보이던 여자아이가 장정을 때려눕혔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마치 자신의 거대한 야망 즉 대한민국에 증강현실을 세우려던 계획이 한낱 계집아이의 주먹질에 허망하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길함에 그는 크게 당황했다.

 만일 그 아이가 이미 개발공사를 빠져나갔다면 모든 것이 허망하게 물거품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의 입술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는 청원경찰뿐만 아니라 모든 보안요원들을 무장시켜 총동원시켜 내부와 공사주변를 철저히 수색하도록 했다.

 샅샅히 뒤져!”

황박사가 1층 로비에서 사정없이 부하들을 독려하고 있을 때 정호가 혜영을 권총으로 겨눈 채 황박사에게 다가왔다.

아니, 너는……”

너무나도 뜻밖의 상황에 황박사는 기쁜 것인지 놀란 것인지 모를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정호, 네가 그 계집아이를 잡았니?”

황박사는 가상현실에서 사위로 받아들인 정호가 혜영을 검거해 온 것이 마냥 기특한 모양이었다.그는 단숨에 정호에게 다가갔다.그리고는 자신을 애태우게 한 혜영에게 따귀라도 날리려고 오른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정호는 혜영을 겨누고 있던 권총을 황박사에게 돌리며 나즈막하게 으르렁거렸다.

잠깐, 장인어른 고정하시죠.”

이게 무슨 짓이냐?”

황박사는 예상치않은 정호의 돌변에 적잖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다.

두 손 들어요!”

뭐라고?”

내 말 안들려!”

금방이라도 발포할 듯이 정호가 고함을 지르자 질끔한 황박사는 양 손을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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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저녁 국립과학수사 연구소 제1 건물 정문앞은 여느 때처럼 퇴근하는 직원들의 인파로 한동안 몹시 북적거렸다.

“……”

그때 얼굴이 좀 말랐지만 총명하고 말끔한 인상을 풍기는 한 사내가 어지러운 인파속을 뚫고 나왔다. 제각기 술친구를 끌어당기며 즐겁게 실강이를 하는 퇴근길의 분위기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사내는 곧장 주차장쪽으로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좀체로 긴장된 얼굴빛을 풀지 않는 사내는 자신의 승용차에 오르더니 뭔가에 쫒기는 사람처럼 쏜살같이 빠져 나간다.

사내는 국과수의 제1 분석실 수석 연구원 이명훈이었다. 올해 30대초반인 그는 키가 너무 휘청거리는 바람에 뭐 저런 사람이 과학자일까하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그의 눈빛만은 항상 과학자답게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느새 이명훈의 시야에 노란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며 출렁이는 들판이 들어왔다

(도대체 이 양반은 어디에 쳐박혀 있는거야 )

그는 지금 호랑이 털을 분석의뢰한 강형사를 애타게 찾는 중이었다. 강형사는 취향이 좀 별나서 전원주택을 고집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누구든지 강형사를 만나려면 외곽으로 나가야 했다. 문득 이명훈은 옆자리에 놓여 있는 검은 색의 서류가방에 긴장된 시선을 던졌다. 그의 눈에 두려움이 확연히 되살아났다.

(저것을 빨리 그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

서류가방속에는 자신이 분석한 호랑이털과 사진자료들이 들어 있다 것을 잘 알고 있는데도 이명훈은 마치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달리는 사람처럼 가슴이 조마 조마했다.

 결론적으로 왕대가 흘리고 간 것으로 추정되는 호랑이털은 생명체의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놈의 정체는 뭐야?)

다시 그 생각에 빠지자 이명훈은 새삼 전신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위험한 사건에 빠져들었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면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얼른 그 물건을 원래의 주인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그 일에서 빠지고 싶었다.이명훈은 연구원으로는 더할 나위없이 날카롭고 훌륭했지만 공포심을 이겨낼만한 강형사같은 두둑한 배짱은 없었던 것이다.

(내 메세지를 못들었나 ?)

명훈은 연구실을 떠나기 전에도 수 차례 강형사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비번인 듯 싶어 그의 집으로 걸었지만 실망스럽게도 자동응답기에서는 부재중이니 메세지를 남겨달라는 말만 되풀이될 뿐이었다. 그래서 급한 대로 그에게 메세지를 남겼었다.

혹시 강형사를 못 만나더라도  이명훈은 그 서류봉투를 강형사의 마당에라도 던져놓고 돌아올 작정으로 연구소를 나섰었다. 강형사는 자신이 보낸 분석결과를 열어보고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강형사의 집에 갈려면 금곡동에서 산모퉁이를 하나 더 돌아가야 했다. 어느새 주변에는 짙은 땅거미가 내려와 어둠침침해졌다. 오른쪽의 나즈막한 야산의 그늘진 곳은 저녁처럼 제법 컴컴했다. 이명훈은 그날따라 차창밖의 땅거미가 스산하게 느껴져 자꾸만 온몸에 소름이 쫙 돌았다.

.......

그때 그 어두운 산그늘속에서 무엇인가 한순간 꿈틀거렸다. 그러나 차가 너무 빨리는 바람에 그것이 무엇인지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또 수상한 움직임이 어둠속에서 꿈틀거렸다. 그때는 이명훈도 제대로 보았다.이명훈이 차의 속도를 천천히 줄여나가면서 꿈틀거림을 유심히 보자 수상한 그늘의 주인공들은 다름아닌 대여섯명의 중년의 사내들로 드러났다. 모두들 사냥총을 바짝 움켜쥐고 참호속에서 웅크리고 있다. 그들은 물론 경찰이나 군인차림은 아니었다. 왕대를 노리고 잠복중인 도시의 사냥꾼이었다.

(미친 놈들! 죽지못해 환장했군. )

도시의 사냥꾼들은 왕대를 단순한 호랑이라고 여기고 여기 저기 설쳐대는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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