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방 열린책들 세계문학 28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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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회자되었던 배우자를 고르는 법은 같은 풍경을 보고 싶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는 것은 관심사와 가치관 등 많은 것을 함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E. M. 포스터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 ‘전망 좋은 방’은 그런 배우자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루시는 약혼자 세실이 ‘창이 없는 응접실’처럼 느껴진다. 세실은 자신을 전망 좋은 방으로 여겨주길 바랐지만... 어째서일까. 세실은 중세, 고딕 조각 같은 금욕적 인물이다. 잘난 자신에게 도취되어 뽐내기를 즐기고, 사람들을 평가하고 가르치려 든다. 루시의 가족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지만, 어쨌든 그는 좋은 배우자의 조건을 갖추었다. 잘난 외모와 사회적 지위 때문에 루시의 이상적인 배우자로 여겨진다. 사회와 주변 인물들의 가르침 덕에 루시 역시 그를 사랑하노라 ‘생각’한다. (루시는 세 번째 청혼에서야 그를 받아들인다.) 이웃을 곯리고자 한 세실의 심술은 에머슨 부자를 이 런던 교외의 조용한 동네에 정착케 한다. 여기서 과거의 일이 불쑥 튀어나온다.


이들 모두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만났다. 루시는 나이 차가 있는 사촌 샬럿과 함께 여행중이었다. 피렌체에서 머문 빌라, 그 곳에서 에머슨 부자는 괴짜로 여겨진다. 아버지는 예의 없고 아들은 염세주의자이기 때문인데 아직 어려 사회의 기준에 물들지 않은 루시는 이들을 좋게 보려한다. 광장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기절한 루시를 돌봐 준 조지.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날씨가 좋은 날, 떠난 소풍에서 풍경을 즐기던 조지는 우연히 제비꽃 밭에 떨어진 루시에 다가가 열정적인 키스를 한다.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데, 하늘에서 떨어진 루시는 너무도 아름다웠으리라. 그날 밤 비를 맞고 돌아온 조지는 루시와 대화하려 했지만 샬럿에게 제지당한다. 샤프롱인 샬럿이 그 장면을 봤기 때문이다. 루시 역시 무언가를 느꼈지만 다음 날 아침 샬럿의 재촉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 로마에서 세실을 만나 약혼에 이른 것이다. 어쨌든 루시와 재회한 조지는 행복하고, 루시는 불편하다. 남동생의 초대로 조지와 어울리게 된 루시는 그가 키스 사건을 함구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일을 비밀에 부치게 한 샬럿이 조지와의 일을 발설했음이 드러난다. 화가 난 루시는 샬럿에 따지지만 결국, 사촌의 의도대로 조지에게 떠나줄 것을 요구하게 된다. 이에 조지는 루시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세실의 본모습을 보라고 한다. 루시는 자신의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낀다.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세실은 루시를 한 존재로서가 아닌, 방에 걸어 둘 예술품 같은 소유물로서 사랑한다. 그래서 루시는 약혼자를 ‘창이 없는 응접실’ 같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살고자 하는 욕망, 사랑을 담아 열정적인 키스를 했던 조지, 그리고 어설픈 키스를 한 세실의 차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조지는 솔직하게 고백한다. 자신도 루시를 ‘가지고 싶고 지배하고 싶다’고. 하지만 자신의 품안에서도 ‘다른’ 생각을 하기를 바란다고 한다. 루시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 그 자체를 사랑한다고 말이다. 조지는 루시가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라며 호소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샬럿의 가르침, 어머니와 사회의 시선으로 루시는 세실을 ‘사랑한다’고 믿었고 그와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응접실에 걸린 그림, 화병에 놓인 꽃처럼 살기엔 그녀의 영혼은 너무도 열정적이다. 언제나 ‘승리’한 것처럼 피아노를 연주하는 루시. 결국 세실과 파혼하지만 손가락질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도피하려 한다. 그러나 목사관에서 만난 에머슨 씨와의 대화로 사랑을 마주할 용기를 낸다. 루시와 조지는 피렌체의 그 빌라, 전망 좋은 창가에 앉아 서로의 이름을 속삭이며 끝난다.


눈에서 비늘이 벗겨진 순간 그 광장에서, 그 숲 속에서 조지는 루시를 발견했고 사랑에 빠졌다. 에머슨 부자는 솔직하기 때문에 무례하게 느껴지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다. 루시를 향한 사랑에도 자유를 주고자 하는 소망이 드러나 있지 않은가. 예의범절, 사회의 관습을 중시하던 루시가 결국 내면의 열정을 택하는 것은 이탈리아 여행 덕분이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영국은 내내 보수적인 시선으로 그려진다. 반면 이탈리아는 자유로운 시선을 대변한다. 가부장에 도전하지만 한계를 지닌 영국인 여성, 엘리너 래비쉬가 등장하는 곳도 이탈리아다. 이곳에서 주인공들은 사랑에 빠지고, 삶에 대한 시선을 달리한다. 루시는 주변인들의 위선을 감지할 만큼 새로운 경험을 얻었으며, 조지는 사랑을 알고 염세주의를 버린다.


조지의 진솔한 고백이 와 닿는다.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어려운 게 어디 있을까. 눈에서 비늘이 벗겨진 사람은 루시만이 아니었다. 샬럿은 양심을 발휘하여 루시를 자신이 속한 그 어둠의 군대에서 몰아냈다. 용기 내어 응접실의 그림이 아닌, 전망을 택한 루시처럼 때로는 행복을 위해 사회의 가치관에 맞설 용기가 필요하다. 후일담이 함께 실린 꽉 막힌 해피엔딩이다. 이탈리아인들은 사랑을 잘 안다고 했던가? 마부가 좋은 남자(젠틀맨, 여기서는 함께 소풍을 갔던 목사)에게 데려다 달라고 했던 루시를 조지에게 데려다 준 것을 보면 그 말이 틀린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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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11-06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다가 포기한 책이로군요...^^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열린책들 책은 글자가 너무 깨알스럽게 많고 줄간격이 또 좁아 눈알이 몹시 피곤하고 또 책장 넘기는 재미가 없어요 그래서 실패......

에이바 2015-11-06 18:06   좋아요 1 | URL
지루한 건 딱히 없는데 앞부분은 묘하게 집중하기 어려웠어요. 영화도 재밌어요. 헬레나 보넘 카터가 열여덟살인가 그때 찍었는데 무지 이쁩니다..

다락방 2015-11-06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전에 이 책 읽었는데 이게 이런 내용이었나요?(기억력 어쩔 ㅜㅜ)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에이바 2015-11-06 18:07   좋아요 1 | URL
20세기 초 소설이라는 걸 감안해야 하지만 괜찮았어요. 영화도 배우들 비주얼 아름답고 좋고요..

2015-11-07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11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