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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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의 진 루이즈는 뉴욕에서 메이콤으로 돌아온다. 아버지의 건강이 염려되어 잠시 다니러 온 것이다. 그녀는 자유분방하고 독립심이 강하며, 전형적인 남부 여성으로 그려지는 알렉산드라 고모와 대척점에 서 있다. 바지와 코르셋은 두 사람의 거리감을 보여주는 단어다. 진 루이즈는 고모가 질색하는 백인 하층민 출신(화이트 트래쉬)의 변호사 행크와 데이트하면서 그와 결혼한 모습을 그려보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다. 고향에 돌아와 추억을 더듬던 것도 잠시, 그녀는 아버지와 행크가 참여하는 메이콤 주민 협의회가 실은 인종차별 집회임을 목격한다. 동류라고 생각했던 이들의 배신에 진 루이즈는 고통스러워하고, 아버지를 우상화하던 자신-어린 스카웃-을 졸업함으로써 성장하는 모습이 주된 줄거리이다.


진 루이즈는 메이콤을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그리워한다. 뉴욕에서도 ‘메이콤 트리뷴’을 읽으며 고향에 대한 소식을 찾는다. 어린 시절의 추억에 대한 애정은 핀치스 랜딩을 팔았다는 말에 반응하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그녀에게 메이콤은 동화 같은, 오랫동안 간직하고픈 소중한 세계이다. 그래서 진 루이즈는 ‘귀향’한 날, 아빠의 질문-연방대법원의 판결과 NAACP(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상상조차 못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잭 핀치의 말대로 진 루이즈는 ‘인종적으로 사고’한 적이 없으며, 그녀에게는 ‘사람’만 있을 뿐이니... 1950년대 미국은 인권운동이 일던 시대였다. 애티커스의 질문 속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공립학교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여 교육시키는 것이 불법이라 선고한 것이다. 진 루이즈가 얘기하는 ‘버스 스트라이크’는 버스에서도 행해진 인종분리,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강요받은 로자 팍스의 거절에서 비롯한 운동들을 가리킨다.

 

『파수꾼』의 절정은 애티커스와 진 루이즈의 설전이다. 이 대화를 통해 진 루이즈는 어린 시절, ‘스카웃’을 졸업하게 되는데 이보다 핵심을 찌르는 것은 잭 삼촌과의 대화이다. 아빠와 행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조카의 말에, 잭은 ‘남부 전역에서 거의 사라진 철학’ 얘기를 꺼낸다. 인척으로 구성된 보수적인 지역 사회, 농경을 중심으로 한 중세 장원과 같은 사회. 이들을 내전에 참여하도록, ‘동족 의식’을 부여한 것은 ‘남부의 정치적 독자성’을 보존하자는 것이었다. 실제 노예를 본 사람은 5퍼센트에 불과했으므로 결코 ‘노예’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주목적은 남부 연합의 국가 승인, 연방 탈퇴였고 노예제는 구실이었을 뿐이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시간이 흘러 재건되었어도 남부의 ‘자치’에 대한 유산은 여전했다. 진 루이즈의 헌법 제 10조에 대한 생각, ‘연방이 주의 자치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역시 남부 사람다운 의견이라 할 수 있다.


재건된 남부는 연방(북부)의 간섭이 탐탁지 않다. ‘남부의 전통과 가치를 수호’하고, ‘남부의 일은 남부가 알아서 한다’는 생각은 당시 인권 운동의 선봉에 섰던 NAACP와 맞물린다. 새로운 문명에 준비되지 않은 남부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연방정부가 거대정부가 되어 자치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공포가 불러온 결과는 애티커스가 ‘방어’라고 표현한 지역 공동체(클랜)들의 성립이었다. 남부와 북부의 발전 정도와 가치관의 괴리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영화화된 소설 『헬프』와 진 루이즈가 커피 모임 전 고모와 나눈 대화를 교차해보자. 알렉산드라는 메이콤 가정부들이 몇 해 동안 NAACP 회원이었다며, 고용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1960년대 미시시피 주를 배경으로 하는 『헬프』에서 흑인 가정부들은 고용주의 가정을 돌보지만 사소한 일로도 해고당하며, 주인과 같은 화장실을 쓰지도 못한다. 이런 배경, 그보다 앞선 시기의 메이콤에서 백인과 흑인이 같은 교실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연방’의 법령이 어떻게 받아들여졌겠는가?

 

진 루이즈는 이러한 논리를 가진 애티커스를 거세게 비난하며, 이 모습은 자신의 가치를 고집하는 알렉산드라 고모와 겹쳐진다. 잭의 말대로 고집불통다운 모습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이들의 본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을 ‘색맹’이라 자책하지만, 그 범주에 스스로를 넣지 않았다. 진 루이즈는 메이콤 유지인 핀치 집안에서 태어났고, 변호사이자 주 의회 의원을 역임한 애티커스의 딸이다. 그녀의 행동들은 행크의 말대로 ‘스카웃’이기 때문에, 핀치 집안의 아이이기 때문에 용인된다. 캘퍼니아 집에 들어서는 진 루이즈에게 경의를 표하는 흑인들을 떠올려보자. 그들 중 한 명은 직업학교 교장이자 교수요, 다른 한 명은 목사였다. 아버지 뻘인 지보는 그녀를 ‘미스 스카웃’이라 부르며 쩔쩔맨다. 엉망인 문법을 구사하며, 자신을 ‘백인’으로 대하는 캘퍼니아 앞에서 절망하는 진 루이즈. 그 집 지붕 아래 있는 흑인들과 캘퍼니아는 무엇이 다른가. 진 루이즈는 자신이 사회에서 ‘핀치’ 집안의 ‘백인 여성’으로서 누리는 권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동류라 생각했기에, 하층민 출신의 백인과는 결혼을 생각해보지만 흑인과의 결혼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은 진 루이즈 역시 보수적임을 보여준다. 흑인들이 능력을 발휘할 교육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음을 간과하고, 그들을 이류 시민으로 분류하는 아버지에 반대하는 그녀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생각의 물꼬를 틔워주며 대화를 주도하는 잭도 마찬가지다. 또 진 루이즈가 스스로 ‘사회의 변화’를 모색하기보다 잭의 조언을 받아들여 고향에 남을 것을 시사하는 대목도 좀 안타까웠다.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진 루이즈가 그 시대 여성의 한계를 넘어선, 자유롭게 사고하는 독립적인 여성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독립한 주체적인 존재로서 성장하는 주인공이,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점은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주장만큼이나 진보적이라 느껴졌다. ‘파수꾼은 개인의 양심이지 집단의 양심이 아니다’라는 잭의 말은, 자신의 양심과 아버지의 양심을 동일시했던 ‘스카웃’과의 대화 속에서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는 ‘집단의 양심’이 필요하다. 소설 속에서도 NAACP의 존재가 두려움을 불러오지 않는가. 진 루이즈는 남부 사회에서 자라났지만 그 가치관을 이어받지 않은 별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별종, 기득권층에 있으면서 소외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 별종들이 함께, ‘집단적 양심’을 형성하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백인들이 참여하면서 인권 운동이 더 활발해졌던 것처럼 말이다.

 

이 작품에서 그려진 애티커스의 변화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오히려 『앵무새 죽이기』에서 느꼈던 그의 수동성(톰의 변호는 판사의 지명, 흑인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대한 의문이 『파수꾼』을 통해 풀렸다. 또 애티커스가 NAACP의 활동을 포퓰리즘이라 하고, 잭이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프레임 논리를 지적하는 두 형제의 시각 차이도 흥미로웠다. 『파수꾼』이 『앵무새 죽이기』의 초고였다는 사실은 다듬어지지 않은 적나라함에서 알 수 있었고 (주석의 도움 없이) 책장을 넘기기 쉽지 않았다는 점은 개고를 권한 편집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작품보다 쉽고 명확한 교훈을 드러내는 『앵무새 죽이기』와 언제나 비교되겠지만, 거기서 얻는 즐거움도 지극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청사에는 남부연합 국기가 걸려있었다. 그리고 인종차별문제와 폭력사건들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다른 대륙에서는 정체성 문제로 심화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도 여전한 갈등... 다시 한 번, 문학의 울림이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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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9-02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리뷰는 진짜 짱이에요!

그렇지만 전 파수꾼을 읽기 위해서는 앵무새 죽이기를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아요. 너무 오래되어서..

에이바 2015-09-03 10:2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고맙습니다. >_<

오류를 고쳤어요. 『헬프』와 교차한 부분은 헤스터가 아니라 알렉산드라 고모와의 대화였어요! 『파수꾼』을 먼저 읽으셔도 상관없는데 앞부분은 많이 지루했어요. 스카웃(진 루이즈) 폭발하는 장면쯤 되면 흥미로워져요. 역시 싸움구경이 최고(?) 이례적으로『파수꾼』은 두번 읽고 리뷰를 썼어요.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더라고요.

cyrus 2015-09-02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수꾼>과 <헬프>의 한 장면을 비교하는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조만간 <앵무새 죽이기>를 읽어보려고 하는데, 이것과 같이 읽을 수 있고, 비교할만한 흑인 문학 작품을 알아보고 있어요.

에이바 2015-09-03 10:25   좋아요 0 | URL
cyrus님 댓글 달아주신 후 오류를 고쳤어요. 『헬프』와 교차한 부분은 헤스터가 아니라 알렉산드라 고모와의 대화였어요. 『헬프』는 비교적 최근에 나온 작품이고, 알렉산드라 발언 부분에서 떠올라서 언급하게 되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