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마의 일인자 1 - 1부 ㅣ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평점 :
놀라울 정도로 흡입력 있고, 재밌는 소설이다. 기원전 110년의 로마를 충실히 담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눈에 익지 않은 이름들과 라틴어에도 불구하고 독서엔 전혀 지장이 없다. 이것이 작가의 내공일까? 더불어 몇 개의 옮긴이 주를 빼면 어떠한 각주와 미주도 찾아볼 수 없는데, 방해받지 않고 글에 집중할 수 있어 아주 좋았다. 또한 술술 읽히는 번역은 역자들의 노력을 생각하게 한다.
실존 인물들은 작가의 손끝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엄청난 연구에 바탕한 고증, 로마의 생활상을 충실히 재현한다. 매컬로는 20년이 가까운 세월을 투자해 《마스터스 오브 로마Masters of Rome》 7부작을 완성했다. 《로마의 일인자The First Man in Rome》는 이 시리즈의 1부이며, 도시국가 로마에서 제국 로마로 발돋움하는 시기를 다루고 있다.
가장 뛰어난 자가 로마의 일인자는 아니었다. 지위와 기회가 동등한 자들 사이에서 제일가는 자가 로마의 일인자였다. 34쪽
〈로마의 일인자〉가 되려면 정원 300명인 원로원에 들어가야 한다. 〈자격〉을 갖춘 이들- 〈지위와 기회가 동등한 자들〉만이 입회할 수 있다. 혈통과 재력을 갖췄더라도 능력까지 갖춘 인물들은 적다. 1부가 시작될 때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조건이 한 가지씩 부족하다.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신진 세력으로, 군 통솔력과 정치적 식견이 뛰어난 재력가지만 라티움 출신이다. 유력가문인 메텔루스에 밉보여 집정관 선거엔 출마도 못하고 있다. 그는 뼛속까지 군인으로, 군 지휘권을 위해 집정관이 되려한다.
술라는 파트리키지만, 가문이 몰락한 탓에 빈민가인 수부라에서 자라났다. 아름다운 외모의 그를 탐하려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타고난 권리를 행사하게끔 도와줄 손길은 없었다. 그는 방만한 생활 중에도 야망을 버리지 않는다.
이들은 카이사르 가문과 연을 맺으며〈로마의 일인자〉가 될 기회를 잡게 된다. 모범적인 경력과 능력을 갖춘 마리우스는 〈혈통〉만이 출세의 장애물이다. 카이사르의 힘을 얻지만 이탈리아 촌놈이라는 이미지는 떨쳐낼 수 없다. 반면 술라는 〈재력〉을 갖추자 마리우스보다 유리한 출발선에 선다. 도덕적 결함과 범죄 행위, 방만한 행동을 덮을 수 있는, 고귀한 혈통이기 때문이다. 두 인물은 각각 집정관과 그 재무관으로 선출되는데 그 과정이 아주 흥미진진하다.
카이사르 가문은 로마 건국에서부터 이어 내려온 유서 깊은 가문이다. 하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명성을 잇기는 힘든 상황. 이들이 혼인을 통해 재력과 권력을 공고히 하고 로마 최고의 가문으로 발돋움하는 것을 보면서, 익히 알려진 ‘그 카이사르’가 등장할 때를 기다리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메텔루스를 비롯한 의원들의 무능력을 <외부적 시각>으로 지켜본 마리우스가 어떤 개혁을 할지!
로마인들의 생활 깊숙이 관여하는 〈점술〉과 〈예언〉, 그리고 〈예감〉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술라가 율릴라로부터 〈풀잎관〉을 받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상징이다. 2부의 제목도 《풀잎관Grass Crown》이며, 마리우스도 시리아의 점술가로부터 예언을 듣는다. 카이사르와 마리우스, 마리우스와 술라가 서로에게 느낀 직감도 마찬가지다
1부의 주인공으로 여겨지는 마리우스와 술라는 나이차이로 보나, 정치력으로 보나 다분히 그리스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성적인 함의는 없다. 예언을 고려하면, 그들이 앞으로 정치적 라이벌로 성장할 것이 예견된다. 마리우스는 닥쳐온 아프리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그리고 술라는 마리우스 밑에서 얼마나 성장할까? 술라가 자유로운 세계를 상징하는 메트로비오스를 갈망하는 모습은, 그에게 펼쳐질 고난을 예상하게 한다.
마리우스가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하는 장면, 카이사르가 율릴라를 훈계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처지도 생각해볼만 하다. 또 보험 역할을 하는 <지참금>에 대한 것도 흥미롭다.
매컬로는 2천년을 뛰어넘어,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을 창조했다. 로마사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정치와 생활상은 문장 속에 녹아들어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등장인물들이 욕망을 이루기 위한 권모술수, 함께 보이는 개인적 면모들은 매력적이다. 탄탄한 고증 위에 쌓은 창작이 주는 매력을 지닌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는 읽고, 소장할 가치가 있다.
생각보다 열린, 또 닫힌 사회인 천년제국 로마. 《로마의 일인자》가 되려는 인물들의 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진정한 리더〉를 찾는 이 시대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위대한 운명이오,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타는 그의 복잡한 손금을 집어삼킬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대단한 손이야! 세상을 제 마음대로 주무르는 손이군. 두뇌선도 대단해! 두뇌선이 당신의 마음을 지배하고, 당신의 인생을 지배하고, 세월의 유린을 제외한 모든 것을 지배해. (...) 올해가 지나면, 그러니까 내년 초에 당신은 집정관이 돼……. 그리고 여섯 번 더 집정관이 될 거요……. 당신은 총 일곱 번 집정관이 되고, 사람들은 당신을 로마 제3의 건국자라고 부를 거요. 당신은 사상 최대의 위기에서 로마를 구해낼 거니까!” 398-399쪽
“당신은 위대한 여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군. (...) 그녀의 조카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로마인이 될 거요.” 3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