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거시사)을 씨줄로 하고 당시 사형집행을 맡았던 상송이라는 인물의 체험(미시사)을 날줄로 엮은 역사교양서다. 소재도 흥미롭지만 의외로 우리의 상식을 배반하는 사실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저자의 글솜씨(번역도 훌륭하다)가 만만찮아서 무심코 집어든 책을 단숨에 읽어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 이 책의 원서를 찾아보니 일본 유명출판사 중 하나인 집영사에서 신서로 2003년에 나왔었다. 저자는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시기의 문화사 연구가라고 한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했지만 정통 역사서는 아니다. 곳곳에 저자가 소설적 기법을 사용(그렇다고 역사를 왜곡한 것은 아니다!)했기 때문인데, 그것은 저자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할 목적으로 사용한 일종의 의도적 장치로 보인다는 측면에서 되려 미덕이 될 수도 있겠다.

사형집행인(우리말로는 망나니가 되겠다), 기요틴, 사형제도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해본다.
저자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라면 사형제도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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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론
가와카미 하지메 지음, 송태욱 옮김 / 꾸리에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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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전 사람이 묻는다. 왜 아직도 많은 사람이 가난한가˝

이 책 저자인 가와카미 하지메는 근대 일본 경제학의 전기를 마련한 윤리적 마르크스 주의자라고 한다. 지금껏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던 경제학자인 가와카미 하지메가 쓴 이 책은 ‘빈곤분야‘에서 나름 고전으로 평가된다고 하는데, 내가 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은 것은 고 노회찬 의원이 쓴 추천사에 다음과 대목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진실로 두려운 것은 빈곤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게 하고 사회적 약자들마저 서로를 적대하게 만드는 현실이 도래할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사회는 물질적으로는 점점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그만큼 불평등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당연한듯 향유하고 있는 물질적 풍요로움이 다른 사람의 희생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불편함을 느낄 사람들이 우리 중 얼마나 될까.

한국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태어나자마자 균질적인 하나의 목표(명문대 진학, 대기업 취직 등등)만을 위해 전력질주한다. 경쟁에서 도태하면 재기하기가 극히 어렵다는 것을 여러 의사체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우리는 남들을 배려할 여유가 없다.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쟁취할 전리품(부, 명예, 학벌 등등)과 패배한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할 멍에(빈곤, 실업 등등)를 우리는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자유주의를 맹목하는 어떤 경제철학은 경쟁의 과정과 원인보다는 결과만을 주목하여, 경쟁의 결과가 어떤 것이든 국가와 공동체의 책임은 면제하고 개인에게 오롯이 책임을 지운다. 이 시스템의 개인은 모든 불행이 스스로의 탓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체념한다.

100년 전, 일본의 경제학자가 던졌던 ‘왜 많은 사람은 가난한 지’에 대한 물음에 우리가 적절하세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면, 혹은 물질적으로는 행복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은지를. 어쩌면 개인의 빈곤과 불행의 진짜 이유가 사회의 무능과 우리의 무관심 때문은 아닌지에 대해서 성찰할 필요가 있다

빈곤의 이유와 극복방안에 대한 입문서로 가와키미 하지메의 이 글은 지금도 읽고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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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교전쟁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종교를 앞세워 치르는 전쟁이니 만큼 전쟁의 목적은 신의 이름으로 신성시되고, 전쟁 중에 범한 범죄는 신에 의해 용서받는다(고 믿는다).

2.
대체로 종교전쟁이 여타 전쟁보다 잔인하고 야만적인 형태를 띄는 이유는 신에 의한 용서와 구원이 미리 약속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교도를 더 많이 죽이면 죽일수록 그것은 천국에 이르는 지름길이므로, 종교전쟁은 ‘관용‘과 ‘배려‘가 자리잡기 어려운 ‘증오‘와 ‘배척‘의 공간이 되어, 이교도는 ‘교화‘하거나 ‘절멸‘해야 하는 대상으로서만 존재하게 된다.

종교전쟁은 신에 의해 정당성이 이미 획득되었으므로 전쟁 중에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양심의 가책도 느낄 필요도 없어진다.

3.
과거의 종교전쟁이 신을 노골적으로 앞세운 것이었다면, 현대의 종교전쟁은 신을 세련된 방식으로 은폐한다. ‘인권‘, ‘평화‘, ‘보편‘의 이름으로...그리고 한켠에는 ‘경제적 이익‘이 있다.

현대의 종교전쟁은 신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은밀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현대의 종교전쟁이 오히려 과거의 종교전쟁보다 위험할 수 있는 것인 바로 이 때문이다. 실상 자신은 (다른 신을 믿는다는 이유로) 타종교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스스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인권‘,‘평화‘, ‘보편‘ 등과 같은 가치 등의 이유를 들며 스스로의 종교가 우월하다는 인식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4.
인간은 십자군 전쟁 이후 10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과연 얼마만큼 인식의 진보를 이루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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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 실종자
레알 고부 지음, 양혜진 옮김, 프란츠 카프카 원작 / 이숲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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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버림받는다. 세 번씩이나. 그것도 모두 납득할 수 없는 이유들로. 버림을 받으면서도 그는,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웅변하듯, 아무렇지 않다. 실은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침묵했던 것이었을게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면서 아메리카에 발을 디뎠던 많은 사람들은,카프카가 살았던 그때에도, 아메리카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아메리카가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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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
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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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언젠가 글쓴이를 만났을 것이라는 괜한 망상을 할 때가 있다. 그는 나를 전혀 모르지만 나는 그를 매우 잘 아는 것처럼 느끼는 때, 그를 무척이나 많이 알고 있다고 막무가내로 우기고 싶은 때 말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이런 나의 무례는 내 탓이 아니라 이토록 끈적한 친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도록 멋들어지게 글을 쓴 작가에게 돌려야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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