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의 2월의 도서는 『보이지 않는 가슴』이다. 이 책 제목은 영문명으로 봐도 알 수 있듯 경제학 용어중 가장유명한 용어인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를 패러디했다. 

2월초에 이 책을 읽는 초반만 하더라도 '돌봄경제학이라.... 금방 읽겠다' 라고 호기롭게 시작했건만 시험공부에 잠시(?) 몰두하느라 도중에 읽다가 손을 놓기도 알라딘에도 거의 접속하지도 않은채 시험치고 왕창 읽어야지했는데 예상치못한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바람에 시험도 미뤄지고 2월 마지막주를 맞이 했다. 겨우내 다읽고 쓰려고 책상에 앉으니 2월 마지막날...;;; 사실 글도 자주 썼어야했는데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이제 하나 쓰고 있다. 


주류경제학을 한창 배울때 뭐가 보이지 않는 손이지? 수요-공급 그래프를 그리거나 문제로 접한 경제학은 뭔가 그럴듯하게 보였으면서도 뉴스기사 사회면에서 접하는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움직이는게 다가 아닌거 같다고도 생각했었다. 진짜 자유시장이라는 환경은 실현되기는 하는걸까? 

 

보이지 않는 손이란 경쟁 시장에 존재하는 수요와 공급의 힘을 뜻한다. 보이지 않는 가슴은 사랑, 의무. 호혜 같은 가족 가치를 뜻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성취에 관한 것이라면 보이지 않는 가슴은 돌봄에 관한 것이다. 손과 가슴은 서로 의존하는 관계지만 서로 갈등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p. 29)


저자인 낸시 폴브레교수는 주류경제학에서 가장 먼저 주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경제활동이 돌아간다는 믿음은 각자의 가정의 돌봄의 영역을 '누가' 담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가정하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경제학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선 크게 관심을 가져본적이 없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트리클 다운' 이론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스미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경제 성장에 기여하여 만인을 이롭게 할 것이며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깐만 생각해 보자. 식탁을 차렸던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빵 굽는 이가 아니라 보통 아내나 어머니들이다. 아내나 어머니들도 이기심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는 것일까? 스미스가 이 생각을 떠올렸다면 경악했을 것이다. 이기심은 오직 시장이라는 비인격적인 세상에만 적당한 개념이다. 그가 믿는 도덕 감정은 가족과 가정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다. 스미스는 타인에게 제공하는 어떤 서비스 노동이건 (분명히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생산적이지 않다고 보았다.

(p. 38~39)


나도 위 문장을 경제학 원론에서 본적이 똑똑히 기억이 나지만 안타깝게도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사람이 당연하게도 '여성'인지를 인지하지 못했다. 어머니나 아내가 이기적인 행동으로 식탁을 차릴까? 이러한 이유로 볼때 이기심으로만 경제가 돌아가지 않고 당연히! 가정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희생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왜 여성이 가정과 돌봄을 책임진다고 가정했던가. 앞서 읽었던 여러 여성주의 책에서도 보았듯이성의 변증법』은 생식의 독재의 관점에서『반사회적 가족』은 모성의 독재의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부여당했던 여성의 역할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어느 때든 비용과 이득을 고려하기 마련이고, 선택의 결과는 누가 비용을 지불하고 누가 이득을 누리는가에 맞물려 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따르는 비용을 일방적으로 부담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자식을 많이 낳는 것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나아가 여성이 양육 전문가가 될수록 여성은 남성에게 더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아버지들은 대체로 가족을 돌보는 데 따르는 책임과 더불어 권력을 획득한다. 생물학적인 차이에서 생기는 노동 분업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통제의 기초를 제공한다. 그러한 통제는 평등 사회가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의 손을 들어준다.

(p. 34)


경제학 특히 주류경제학은 특화를 통한 효율성을 엄청 좋아한다. 

다 할 필요없이 잘하는 것만 집중해서 그것만 하자. 그리고 혹시 다른 것이 필요하다면 교환을 통하면 된다.

성 역할도 마찬가지 였다. 산업화가 이뤄진 현대로 넘어오면서부터 자본주의 하에서도 보다 더 남성은 노동만 여성은 가정만의 형태가 고착화되었다. 고전경제학의 논리인 특화를 통한 효율성이 가정내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화를 통한 효율적 경제활동이라는 것이 일견 합리적인것 처럼 보이지만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부여했을 따름이며 전혀 수평적인 구조가 아니고  남성지배적인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여성이 생물학적인 이유로 출산을 독점한다고 하더라도 모성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다던가 육아를 잘하게 태어난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후 여권운동의 흐름 속에 겨우 여성들도 가정을 벗어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회가 그렇게 쉽게 기득권을 포기했을까? 여성이 다수 종사하는 노동시장은 기존 사회에서 부여한 성역할의 범위 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간호나 돌봄시장이라할지 청소라 할지 가정에서 해왔던 것의 연장선상에서 분야였다. 그러면서 노동분업이 일어났다. 남성이 다수 종사하는 노동시장과 여성이 다수 속해있는 노동시장으로 나눠진것이다. 이는 성별 임금격차를 설명해주는 하나의 부분이라고 봐도 좋다. 


'분리 영역'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여성들이 역사적 사명에 몰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19세기 말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알프레드 먀셜은 노동 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힘이 지닌 효율성을 찬양했다. 그는 노동 시장에서 여성에게 높은 임금을 주면 아내와 어머니의 의무에 소홀하게 만들 수도 있음을 분명히 경고했다.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로서 학위 과정에 여성을 입학시키기를 거부하기도 한 그는, 여자들이 아이들보다도 자신들의 능력을 발전시키는데 더 몰두할까 봐 염려했다고 한다. 그는 영국의 출산율 감소를 아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였고 "여성이 남성을 닮아가려는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고 여성을 탓했다. 

 분리 영역이라는 독트린은 여러 이유로 경제학자들을 사로잡고 있었더. 분리 영역을 상정하면, 도덕성의 원칙을 강변하면서 사랑과 이타심을 분석할 책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가정이라는 공간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의 경제적 측면을 연구할 필요가 없었다. 더 편리한 것은 분리 영역은 여성은 이타적이어야 하는데 남성들은 왜 이기적이어도 되는가를 쉽게 설명해 주었다. 남성들에게는 양쪽 세계에서 최대의 것을 얻어내는 편한 방법이었다.

(p. 42~43)


자신들이 기득권을 쥐고있으면서도 출산율 하락만큼은 무섭게 다가오나보다. 하지만 더더욱 여성 탓만 했지만 말이다. (요즘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보이는 것은...ㅜㅜ)

경제학에서 강조하는 이기적인 인간이 왜 남성에게만 더 해당이 되는지는 이해가 안간다. 남성은 원래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래도 되는 거고 여성은 모성의 신화로서 가정적인.. 이타심을 가진 생물인데 남자를 닮아가면 안되지라며 훈계하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가부장제는 단순히 남성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수단만이 아니었다. 가부장제는 돌봄 노동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여성에게 가족과 공동체 구성원을 향한 이타주의를 주입함으로써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복수의 논리를 최소화하는 데 보탬이 되었다.

(p. 52)


이 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경제학자인 저자는 미국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교육, 보건, 보육 등을 맡겨놨더니 경쟁적인 흐름이 서비스의 질을 악화시키고 이는 곧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그동안 가부정적인 질서 하에 반강제적으로 '여성'에 의해 싸게 공급되었던 돌봄노동의 특징으로 인해 그 효과를 경제성장으로 다같이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경제학에서도 무한한 성장만 바라볼 것이 아닌 유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앞으로 이 돌봄노동을 '여성'만이 전담해서도 안되고 각각 가정차원에도 버거운 현실이다. 결국은 이 영역을 사회전체 혹은 국가에서 같이 고민하고 부담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강제적(?)으로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경제도 어느한쪽을 희생양삼아 성장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경제학계에서도 반성을 해야하고.. 나도 지난 경제학도(?)로서 반성을 하며 사회의 모순이 없어질 때까지 여성주의도.. 여러가지 책들도 열심히 읽고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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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3-01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 지난 경제학도의 글 잘 읽었습니다. 경제학도의 글이라서인지 같은 책을 읽고 풀어내는 게 확실히 저랑은 다른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경제학‘에 딱히 민감하게 반응했던 건 아닌 것 같거든요. 그런데 겟타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제학과 관련 지어 얘기를 하시네요. 이래서 같은 책을 함께 읽는 것이 재미있고 의미있는 것 같습니다.

또 좋은건 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다른 여성학 책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우리가 함께 읽었던 책을요. 사실 저는 보이지 않는 가슴 읽으면서 성의 변증법을 생각하진 않았는데요, 겟타님은 성의 변증법을 똭- 가져오시네요. 후훗.

읽느라 수고하셨고 글 쓰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3월 도서로 만납시다! 3월 도서는 일찍 시작해야 할 것 같죠? 내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휴...

블랙겟타 2020-03-02 18:21   좋아요 1 | URL
경제학도(?) 치곤 경제학을 싫어하는 사람이지요..(응?)
네. 쓰다보니 경제학에 좀 더 집중이된 듯한..
저도 한 권으로 같이 읽은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어서 좋네요.
2월엔 글을 많이 쓰지 못해..좀 그런게 있긴 한데요.. 하하 안그래도 3월 책 샀어요!

공쟝쟝 2020-03-01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류 경제학의 완전 승리 = 돌봄 사라짐 & 출산 거부 = 인류 멸망
ㅋㅋㅋ 반쪽짜리 보이지 않는 손의 최후 ㅋㅋㅋ

블랙겟타 2020-03-02 18:25   좋아요 1 | URL
주류 경제학에서 거들떠도 안보던 가사노동&육아 문제를 시대가 바뀌면서 억지로 논하다보니 제대로 될리가요..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