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한창 인기 있을때 한 팟캐스트방송에서 남성 출연진들이 유일한 여성 출연자에게 물었다.
"이정도로 대단한 책인가요?"
"에이 현실이랑 달라요. 너무 과장했네. 특수한 경우죠."
이부분을 듣다가 어? 여자들이 다 공감할만한 이야기는 아닌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연예인들의 결별 혹은 이혼소식 같은 가쉽성 뉴스를 보다가 어머니가 한마디 거든다.
"저저. 내가 알아봤지. 여우 같더니만, 기가 세니까 그렇지." 등등의 말.
어? 어머니는 어째서 당신이 여자이면서 여자 편을 안들지? 왜 가부장적인 발언를 하실까?
(꼭 여자라서 여자 편을 무조건 들라는 말은 아니고 동성이면 더 감정이입이 더 잘 될거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이 책 『여자는 인질이다』를 읽으며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살아남기위해' 여성들은 남자에게 유대감을 느끼고 남자의 시각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자는 마녀사냥의 역사는 물론, 세계 다르 곳에서 벌어진 비슷한 선례를 의식하며 살아간다. 남자는 여자를 죽일 수 있으며, 여자를 사회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폭력을 쓸 수 있고, 정말 사소한 것마저 여자를 죽이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현실이 우리 의식 깊이 새겨져 있다. 다시 말해 역사적으로 보면 여자가 '죽어도 싼 년'이 되기는 너무도 쉽다.
(p.192~193)
강남역 살인사건을 필두로 최근부터 사회적인 이슈가 된 여성을 상대로 한 사건들은 범행동기가 진짜 '여성'이라는 이유였다. 그리고 이것이 최근에 벌어진 것도 아니다, 늘 있어왔다. 가정의 문제, 혹은 연인의 문제라는 그림자에 숨어버려 제대로 부각조차 되지 못했다.
이 책은 우리가 대부분이 알고 있을 '스톡홀름 증후군'의 실제 사건인 1973년에 일어난 스톡홀름 인질사건을 통해 보여진 남자의 폭력이 사랑하는 관계에서 생각보다 얼마나 왜곡되어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나름 친절이라고 여자들에게 베풀었던 것이 '친절'이 아니었음을 오만이었음을 느꼈을땐 머리에 망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여자를 보호하려는 행동은 폭력적인 행동과 서로 모순되는 듯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호와 폭력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남자가 여자를 보호하려 든다는 것은 남자가 여자에게 악의를 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쩌면 테드 번디가 여자를 차 세워둔 곳까지 데려준 건 여자에게 얼마나 절실히 보호가 필요한지 알았기 떄문일 수 있다. 남자가 보호 행동을 하는 기저에는 여자를 대하는 남자들의 저열한 태도와 행동에 느끼는 동질감이 자리 잡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레이디 퍼스트'와 기사도 정신이 시작되며, 남자가 여자에게 사소한 친절을 베푸는 것도 모두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을 수도 있다.
(p. 259)
남자가 여자에게 베푸는 친절이 말 그대로 그저 친절이라면, 다른 남자나 여자가 본인에게 같은 친절을 베풀어도 남자는 기뻐해야 할 것이다. 다른 남자나 여자가 담뱃불을 붙여주거나 의자를 빼서 앉혀주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소득, 명예, 권력, 심지어 자시느이 자아까지도 파트너에게 의탁하는 데 불만이 없을 것이다. 밤에 차 세워둔 곳까지 데려다주겠다는 남자나 여자가 있으면 뿌듯하고 자랑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가? "남자가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일은 누가 자신을 여자로 -아니면 여자처럼- 보거나 대하는 일이다."
(p.277)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현실을 발견했을때 머리 속이 잠시 하얘진다. '지금껏 내가 살아왔던 실제가 그저 한면만 바라봤던거야?' 책을 본 뒤로 겪게되는 현실을 마주할때 두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어떻해야 해야될까? 그냥 무시하고 예전처럼 없었던 일처럼 살면 편한데 라고 생각해본 적도 있다. 내가 잘나서 여성주의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호기심 반으로 시작했던 이 읽기들이 이제는 별생각없이 누려왔던 '일상'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뉴스보다가도, 예능을 보다가도, 팟캐스트 방송을 듣다가 글을 읽다가 등등 '어? 이건.. 아닌데?...' 많은 여성들이 실제 공포를 느끼는 현실에서 나는 아직 겨우 그런 사소한(?)불편함을 느끼고 혼잣말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왜 같은 곳을 살면서 한쪽은 늘 일방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살아야 하는 걸까? 연인관계, 사랑하는 관계에도 동등한 관계가 아니었음을. 이 왜곡된 현실을 직시하는 것부터 출발하자. 생물학적 남성인 내가 성평등을 향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앞으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여러 책을 읽고, 앞으로도 더 읽으면서 고민해봐야겠다.
여성학 수업에서 모든 여자가 이런 순간을 겪는다고 설명하면, 남학생들은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여자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도 안 된다는 어투로 정말 이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이 있냐고 묻는 남학생이 매년 한 명씩 나온다. 그럼 여자 학생들은 "지금 장난치는 거지?"같은 말로 반응하며 놀란다. 남학생들이 충격을 받는 만큼이나, 여자 학생들도 남자들은 이런 경험을 아예 알지도 못한다는 데에 충격을 받는다. 여자의 삶은 항상 공포가 자리하는데, 남자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대화다. 이 지점에서 가부장제 사회가 여자가 아닌 남자로 살아간다는게 무슨 의미인지 극적으로 드러난다. 한 성별에게 큰 공포로 가득한 삶이, 다른 성별에게는 공포가 없는 삶이 당연하게 생각되고 있다.
(p. 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