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부장제의 창조
거다 러너 지음, 강세영 옮김 / 당대 / 2004년 6월
평점 :
일시품절
여러 권의 여성주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 성평등이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큰 이유중 하나가 '가부장제'라는 무시무시한 제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부장제'라 한다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단어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는 유구한(?) 전통을 지니고 있는 유교 한스푼을 더 넣어 옛날 옛적부터 그냥 가부장제도 아니고 유교적인 가부장제가 이 땅에서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낯설지 않은 가부장제라는 것이 세계적인 제도(?)였다는 것을 안 것은 그렇게 오래지 않았다. 결국, 현대 자본주의에서도 가부장제란 유용한 제도였기 때문에 자본주의형으로 변형이 되어 아직까지 굳건하게 살아남았다.
한편, 자본주의는 특히 자신의 입맛에 맞는다면 모든지 자기 것으로 변형하여 어느정도 수용하는 특징이 있다.
최근의 자본주의하에서는 기계화와 고도산업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노동생산성으로만 성장하는 시대는 지나면서 오히려 기존의 자본주의하의 전형적인 체계였던 남성육체노동자-여성가사노동자의 모습이 어느정도 붕괴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가부장제의 붕괴로 이어진 것은 아니고 굳건한 가부장제의 흐름에 특이점이 온 상태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균열은 냈다고 볼 수 있지만서도.)
그렇다면 한국에서나 다른나라에서나 자리잡고 있는 이 '가부장제'는 언제 부터 시작된 것일까?
『가부장제의 창조』의 저자 거다러너는 가부장제가 역사적인 산물이라고 확신하며, 역사 속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답한다. 특히 역사를 공부해보면 전형적인 남성의 역사인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듯이, 사회의 기록된 대문자 역사를 보면 수천년에 걸친 관한 이야기가 오직 남성들에 의해서만 기록되고 그들의 말로써 얘기되어 왔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들의 관심은 대부분 남성들에 관한 것이었다.
(p. 29)
러너는 기존의 역사를 대문자 역사History와 기록되지 않은 과거인 소문자 역사history로 구분지어 여성의 역사는 이 소문자 역사로부터 재발견되고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했다.
양성간의 가부장적 관계의 모체는 경제·정치적 발전이 국가를 충분히 제도화하기 전에, 그리고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발달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처럼 초기단계에서도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의 이동은 여전히 매우 유동적이었고 최하계급에까지도 상향이동은 분명히 가능하였지만, 점차 특정 계급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이 세습되기 시작하였다.
(p. 130)
놀랍게도 역사적으로 살펴보니 가부장제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발달하기 이전에 이미 가부장적 관계의 모체로서 자리잡고 있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은 전통적 설명을 한층 더 강화시켰다. 프로이트에 있어서 정상적 인간은 남성이었다. 그리고 그의 정의에 의하면 여성은 남근(男根)을 가지지 못한 일탈적 인간이며 여성의 모든 심리적 구조는 이 남근결핍을 보상하기 위한 투쟁에 모아져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p. 38 ~ 39)
여성은 늘 남성에서 부터 해석되어져 왔다. 특히 프로이트는 이런 설명을 강화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남성이고 여성은 남근이 없는 결핍적 인간으로 해석하는데서 출발했으니 말 다했다..
남성이 가구와 혈통에 '속해 있었다면', 여성은 그들에 대한 권리를 취득한 남성에게 '속해 있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 쉽사리 주변인이 된다. 죽음, 별거 혹은 더 이상 성적 파트너로 소용이 없어짐으로써 남성의 보호를 잃게 되면, 여성은 주변적이 된다. 국가가 형성되고 위계와 계급이 확립되기 시작한 그 시점에, 남성은 여성집단에 있는 더 큰 취약성에 주목하였고 차이(difference)가 한 집단을 다른 집단과 분리 시키고 나누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음이 분명하다. 이런 차이는 성과 나이처럼 '자연스럽고' 생물학적인 것일 수도 있고, 감금과 낙인찍기와 같이 사람이 만든 것일 수도 있다.
(p. 139)
따라서 노예제는 처음 잉태된 시기부터 남성과 여성에게 뭔가 다른 것을 의미하였다. 일단 노예가 되면 남성과 여성 모두 다른 사람의 권력에 전적으로 종속되어 자율성과 명예를 상실하였다. 남녀노예들은 보상없는 노동을 하고, 종종 주인에게 개인적인 서비스를 해야 했지만, 특히 여성들에게 노예상태는 주인 혹은 주인의 대리인을 위해 성적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
분명히 계급억압은 결코 남성과 여성에게 같은 조건으로 간주될 수 없는 것이다.
(p. 156)
거의 천년 동안 '노예제'에 대한 관념은 '여성'이라는 바로 그 정의(definition)에 반영되는 양식으로 현실화되었고 제도화되었다. 이전 시기의 결혼교환에서 자신들의 성적·재생산 서비스가 사물화된 여성은 공적·사적 영역과의 관계가 남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간주되면서 그 시대의 막바지를 맞이하였다. 남성은 그 계급위치가 강화되고 재산 및 생산수단과의 관계에 의해서 정의되었다면, 여성의 계급위치는 성적 관계에 의해 규정되었다.
(p. 166 ~ 167)
역사적으로 남성에게 '속해 있었던' 여성은 남성집단에 비해 취약성을 가지고 있었고 남성들은 이 부분에 주목하였다. 이는 곧 구분짓는 데 사용될 수 있음을 의미하였다.
노예가 생겨난 시기를 살펴봐도 그렇다. 최초로 노예가 된 사람들 대부분이 여성임에도 역사가들은 이 사실을 가벼이 여겼다. 점차 여성을 넘어 남성 노예까지 생겨난 것도 사실이었으나 노예로서 받는 계급적 억압을 남성과 여성이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노예라면 공통적으로 노동력을 주인에게 종속되어있음은 물론이고 여성에게는 플러스 알파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결국 여성의 계급위치는 성적 관계에 의해 규정되었다.
함무라비법전은 국가권력의 한 측면인 가부장적 가족의 제도화가 시작되었음을 표시한다. 그것은 여성의 지위가 남성 가장의 사회적 지위와 재산에 의해 결정되는 계급사회를 반영한다. 빈곤한 평민의 부인은 그녀의 의지나 행동과 무관하게 남편의 지위변화에 의해 존중받을 만한 여성에서 채무노예나 매춘부로 바뀔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어떤 남성도 자신의 성적 행동 때문에 사회적 지위가 낮아지지 않는 데 비해, 간통 등 결혼한 여성의 성적 행위나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순결을 상실하면 그녀의 지위가 낮춰질 수도 있었다. 그 시대부터 지금까지 여성들의 계급적 지위는 항상 남성들의 계급지위와는 달리 정의된다.
(p. 248 ~ 249)
함무라비법전에서도 마찬가지로 가부장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여성의 지위가 남성 가장의 지위와 재산에 의해 결정되는 계급사회로 부터 출발되어 쓰여졌기 때문인데 결국 지금까지도 여성들의 계급적 지위는 항상 남성들의 계급지위와는 다르게 정의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서에서도 가부장제의 흔적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성서에서 성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은유는 남자의 갈비뼈로 창조된 여자에 관한 은유와, 신의 은총에서 인간의 타락을 초래한 유혹자 이브에 대한 은유이다. 이 두 은유는 여성의 종족을 신이 승인했다만 증거로써 2천년 동안 인용되어 왔다. 동시에 이들 은유는 그 자체만으로 성별관계에 관련된 가치와 실천을 정의하는 데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창세기와 같은 시적·신화적·풍습적 복합체에 대한 해석은 해석하는 사람의 욕구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라고 예상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해석의 전통이 지나치리만큼 가부장적이었다는 점과, 지난 700년 동안 여성들이 개인적으로 구축해낸 다양한 페미니스트 해석들이 그동안 굳건히 지켜졌고 신학적인 인가도 받았던 기독교신앙 이전의 오랜 전통에 대해 대항해 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p. 318 ~ 319)
남성들이 주요 설명체계 속에 우주와 신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서열화하기 시작했을 때, 여성의 종속은 이미 너무도 완벽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자연스럽게'보였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의 결과로, 서구문명의 주요 은유들과 상징들 속에 여성의 종속과 열등성에 대한 가정들이 통합되었다.
성서의 타락한 이브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훼손된 남성으로서의 여성이라는 개념과 함께, 우리는 본질, 기능, 그리고 잠재력에서 차이가 있는 두 종류의 인간-남성과 여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가정하는 두 개의 상징적 구성물들의 출현을 보게된다. "열등하며, 채 완결되지 않은 여성"이라는 이 은유적 구성물은 사실성의 힘과 생명을 취하는 방식으로 모든 중요한 설명체계 속에 각인되게 되었다.
(p. 368)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런지 성서에도 가부장적 요소가 있다는 것이 감흥을 불러일으킬 정도는 아니었지만 자세히 이정도로 쓰여져 있을 줄은 몰랐다. 성서에 여자의 탄생부터 남성의 갈비뼈로 시작되었다는 유명한 은유와 신의 은총으로부터 인간의 타락을 부추긴 인물로서의 이브를 묘사하고 있는 것은 이후 성별관계 정립에 있어 그 어느 것보다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
이 책『가부장제의 창조』는 가부장제의 기원과 전개를 역사적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남성인 사람이 읽어나갔기 때문에 여성독자가 읽었을 때의 그 것과는 완벽히 같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성의 눈으로만 바라봤기 때문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소문자의 역사 history를 살펴보는 것은 충격과 놀라움의 연속이다.
역자는 "가부장제는 역사적 산물이며, 그러므로 역사를 통해 종식될 수 있다는 러너의 기본전제를 받아들인다면,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성서시대를 통해 형성되고 공고화된 가부장제의 역사이자 여성과 남성의 역사에 대한 면밀한 탐구와 이해는 그것이 어느 장소와 어느 문화에서 일어난 사실에 대한 것이든 우리의 현재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고 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실패하고 오류를 범했는지도 배울 수 있다.
(p. 455)
우리가 기존의 History가 아닌 history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