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를 찾아서 - 인간의 기억에 대한 모든 것
윌바 외스트뷔.힐데 외스트뷔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인간은 DNA의 산물이 아닙니다. 인간은 기억의 총합입니다."


- 박주영,「고요한 밤의 눈」중 p36, 다산책방, 2016.


작가가 부여하는 '인간에 대한 정의(definition)'는 이처럼, '기억의 의미'에 대한 최대치의 강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은 뇌 안의 뉴런들 사이의 회로이다. 무언가가 기억으로 저장된다는 것은 켜지거나 꺼지는, 뇌에서 신호를 점화하거나 안 하는 뉴런들의 새로운 연결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어떤 무늬가 생겨난다. (p46)


생물학적으로, 또한 의학적 의미에서의 '기억'이란 위와 같은 것이라 이 책은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 선의 연결 없이 wifi를 이용해 컴퓨터에서 '인쇄' 버튼을 클릭하면 옆 방에 위치하고 있는 프린터에서 문서가 출력되는 것에 여전히 한없이 신기해하는 저같은 일반 독자들에게, 


바다에 사는 생물과 우리 뇌 사이의 거리는 멀지만, 바다의 해마와 뇌의 해마 사이에는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새끼들이 바다에서 헤엄체는 데 위험이 없고 그들이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배에 알을 품는 해마 수컷처럼, 뇌의 해마 역시 무언가를 품는다. 그건 바로 우리의 '기억'이다. 해마는 기억이 크고 강해져서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지키고 꼭 붙잡아 둔다. 해마는 말하자면 기억을 위한 인큐베이터이다.1 (pp10~11) 


한때 무지하게 유행했었던, 인간의 뇌 속 '이 부분'을 이용한 영재 교육, 뭐 이런 광고에서 처음 보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해마'라는, (뭔가 포장마차에서 볶아져서 또는 마른안주류로 제공될 것 같은) 이름의 신체 기관을 통해, 우리 인간의 기억에 대한 원리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의도가 아닐까 (과학 문외한으로서)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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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단순히 '기억'이라 표현하는 것들이 사실은 여러 종류의 기억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라 이 책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2 이같은 의학적/생물학적/심리학적 지식의 습득이, 이 책을 읽는 일 목적이 될 수도 있겠으나 그 역시,   


에빙하우스는 기억은 우리 자신에 대해 특별한 의미가 없는 한 점차로 희미해짐을 증명하였다. … 기억 흔적은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해지는 것 같다. 기억을 서로 간의 연결점들의 형태로 붙잡아 두는 뉴런들이 점차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완전히 못이 박힐 때까지 지식을 암기하고 유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p251)


제 아무리 외워지지 않는 영어 단어라도, 15번을 소리내어 읽으면서 쓰면 인간의 뇌에 못이 박힌 것처럼 외워지게 된다라는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의 암기론에 따르듯 이 책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예의 제 머릿 속에서 잊혀지게3 될 것이고, 저에겐  이 책을 15번 쯤 읽고 암기할 의지가 또한 없기에 --- 지극히 사적인 관점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감상문을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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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경험은 지속적인 기억이 되기 전에 단기 기억에 저장된다. 전화번호를 찾아내서 누르는 동안 우리는 그 번호를 잠깐 동안 기억한다. 어떤 메시지를 들을 때나 세로운 단어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때는 몇 초 동안, 혹은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만 유지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 머릿속을 스치는 것들 중 일부는 선발되어 지속적으로 장기 기억으로 저장된다. (p15)


고등학교 시절, 제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갔던 '그녀'의 집 주소가 도대체 왜, 지난 33년 간 제 머릿 속에 '선발되어 지속적으로 저장'되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33년 간, 제가 그녀를 지속적으로 생각했었던 것도 아니었음에도 말이죠. 이처럼, --- 이 책이 저 개인의 차원에서 가지고 있는 '기억'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다 해소해준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인간의 뇌에도 해마 가까운 곳에 후신경구라는 게 있어서, 후각이 기억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p61) … 후각은 실제로 기억의 실마리로서 아주 중요하다. (p89)


홀로 탄 엘리베이터에 남아 있는 향수의 향에서, 예전의 여친을 떠올려 보게 되는 제가 뭐 그리 대단히 유별난 건 아니라는 일종의 위안 같은 걸 주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기억의 재구성  


여전히, 1998년 초여름 어느 날에 했던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란 말, 그것이 내포하고 있었던 '하지만 그 하이라이트는 내 생의 앞날에 반드시 더 높아질 것'이란 기대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는 제가 간직하고 있는, 저의 지난 20여 년간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이라는 게, 


"기억이 현재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라는 명제는 구체적으로 있었던 일, 즉 사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생각했던 바, 즉 의식에 대해서도 성립한다. 과거의 의식을 재현하는 데는 이미 현재의 의식이 개입한다. … 일종의 '아름다운 시절'의 이미지는 자기모순적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 과거를 아름다운 시절로 생각하는 태도와 짝을 이루는 것은 현재는 구질구질한 그 무엇이라는 태도이다."


- 류동민,「기억의 몽타주」중 pp148~152, 한겨레출판, 2013.


만족하지 못하는 '현재'에 대한 반발의 결과물임을 류동민 교수의 위 책에서 배웠었다면, 이 책「해마를 찾아서」로부터는 


기억은 우리가 했던 경험, 다시 불려오고 다시 조합되었던 경험들의 작고 수많은 조각으로 구성됩니다. 기억이 아주 새로울 때에는 접근이 아주 쉽지요. 하나하나의 사건이 그대로 눈앞에 보이고, 아직도 해마에 존재하지요. 기억이 점점 낡아 가면서, 즉 옛일이 되면서, 조각조각으로 나뉘어 뇌의 다른 곳에 저장됩니다. 그것들을 다시 꺼내 오려면 재구성이 더 많이 필요해지지요. (p54)


2019년 6월 15일 현재, 제게 남아 있는 지난 20여 년간에 대한 기억이란 것이 어쩌면 ---  제가 원했던 방향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실제 이상으로 '현재는 구질구질한 그 무엇이라는 태도'를 점점 더 견고하게 하였고, 그 결과로 저의 현재를 더더욱 구질구질한 것으로 만들어 내는 '기억의 재구성'을 만들어 냈던 것이 아니었을까란, 그것이 의식적이었건 무의식에서였건에 관계 없이 여하한 '의도'에 의해 안좋은 방향으로 재구성되었을 수도 있다라는 점이, 이 책이 제게 준, 위안으로서의 가르침입니다.  



【 기억의 오류 】

"모든 기록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아닌 타인을 위해서 한다. … 하지만 기록은 기억을 완전히 대신하진 못한다."


- 박주영, 위의 책 pp62~64.


「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이야말로, '기록이 기억을 완전히 대신할 수 없음'에의 전형을 보여주는 책입니다.4 --- "자서전적인 문학에서는 기억이 자료들보다 더 유효성을 가지며, 개인적인 경험이 객관적인 사실보다 더 진실로서의 가치를 누린다. 창조적인 곡해를 모두 포함하는 기억이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p95)란 이 책 속 구절 또한 의도적 오류가 우리의 기억 속에 내재하고 있을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지요. 허나 더 놀라운 것은,


기억은 … 계속해서 같은 작품이 매번 새로 무대에 올려지는 극장과 비교할 수 있다. 어느 공연에서는 여주인공이 붉은 곳을 입고, 다른 공연에서는 푸른 옷을 입는다. 때로 배우도 일부 교체되고, 심지어는 중요한 부분에서 줄거리가 바뀌기도 한다. 때로는 우리가 실제로 경험한 일이 상연되고, 때로는 우리가 어디서 찾았거나 상상한 일이 상연된다. 기억의 극장에는 이상한 혼동이 자주 생긴다. (p148)


일종의 편집본5인 우리의 기억이란 것이, 그 편집의 과정에서 의도적인, 때로는 의도하지 않은 오류가 개입됨으로 인해 실제와는 다른 모습으로 재현되게 되고, 그것이 훗날 또 재편집되어감에 따라 --- "우리가 경험했다고 믿는 게 언제나 사실인 건 아니다. 티끌만치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p147)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라는 점이었습니다. 이처럼 실제와 다른 모습으로 남게 되는 기억을 '허위 기억'이라 하는데, 


허위 기억은 … 환상에서 시작하여 기억을 거쳐 어느 순간 현실로 인식된다. '사실'이라고 쓰인 딱지를 자신에게 갖다 붙이고, 박새 새끼를 둥지에서 밀어내고는 크고 뚱뚱한 뻐꾸기로 자라난다. (pp151~152)


소개팅 해줄 테니, 좋아하는 스타일을 말해달라는 말에, 그저 특정 향수를 사용하는 여자면 좋아~란 대답을 했었었던 건 확실하나, --- 홀로 탄 엘리베이터에 남아 있는 그 향수의 향으로부터 특정의 한 사람만이 떠오른다는 건 어쩌면, 그 사람을 너무도 좋아했었었기에 그녀가 사용했던 향수의 향마저도 제가 좋아하게 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이제까지의 제 기억이 앞뒤가 바뀐 채 존재해왔었을 수도 있다라는, 뭐 그리 중요하지는 않은 '허위 기억'의 일례가 있는 반면, 


범인에 대한 기억은 점차 혐의자에 대한 기억으로 대치되었다. … 기억이 원래 그렇게 작동할 뿐이다. 기억은 생물이고 유기적이며, 이미지를 살아나게 한다. 새로운 요소들이 들어오면 원래의 기억과 하나로 엮여 들어가는데,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우리의 상상력 뿐이리라. (p188)


일반인을 배심원으로 참여시키는 미국의 사법 체계의 경우와 같이, 그들의 '허위 기억'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도 있다는, 매우 중요한 실례6와 같이, 전혀 생각지 못했던 현실적 위험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생물학/의학/심리학에 관심이 없는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쓰여진 이 책은 나름 적잖은 의의를 지닐 수 있다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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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웠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이. 기억의 죽음은 육체의 죽음보다 구체적인 공포였다. … 기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것을 잃어가고 있는 나는 뼈저리게 실감한다. 기억은 결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확인하는 것이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소중한 약속이 되기도 한다. … 기억이 사라져도 나의 지난날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잃은 기억은 나와 같은 나날을 보낸 사람들 속에 남아 있으니..." 


- 오기와라 히로시,「내일의 기억」중 p256, 예담, 2006.


"기억은 대뇌피질의 어려 곳에 저장되어 있지만, 서로 다른 경험들을 조정하고 온전한 기억으로 종합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바로 해마이다"(p209)라고, 그리고 또한 우리의 모든 기억에는 의도한/의도되지 않은 오류가 있음을7, 이 책「해마를 찾아서」속 생물학과 의학은 말해줍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삶이 의미 있는 까닭은 그것이 한 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아툴 가완디,「어떻게 죽을 것인가」중 p364, 부키, 2015.


단순히 자서전 기술에 사용될 자료로서의 역할이 아닌, 그 모두의 총합이 삶 자체를 규정지어 낼 수 있는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은, 생물학이나 의학이 설명해주지 않/못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라, 저는 여전히 믿습니다. 


저의 지난 20여 년에 대한 기억이 속상하고 아쉽기만 하다 하여도, 속상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내내 편집해가는 것이 아닌, 그저 그러한 과거 모두가 현재의 저를 있게 해주었다라는 점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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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서가 아니다, 잘나서가 아니다,

다만 너이기 때문에, 네가 너이기 때문에

보고싶은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또 안쓰러운 것이고 끝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히는 것이다. 


이유는 없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네가 너라는 사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가득한 것이다.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


- 정밀아, <꽃>


이 가수의 목소리를 참 좋아합니다. 멜로디마저 참 좋은 이 노래의 가사가... 어쩌면 이렇게, 저의 과거에 대한 이제까지의 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 걸까요. 저의 과거가 저를 만들어 주었다라는 점, 그건 사실 너무나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가득한 것'이라는 것까지도... 


이 책을 읽고 난 후, 이렇게나 절묘하게 깨닫게 되네요.



※ 함께, 읽어보길 권하여 보는 책들  

- 류동민 : 기억의 몽타주

- 아툴 가완디 : 어떻게 죽을 것인가

오기와라 히로시 : 내일의 기억

- 리사 제노바 : 「스틸 앨리스



 




 

  1. "술을 마시다가 어느 순간부터 술이 깰 때까지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필름이 끊겼다’고 한다. 이는 알코올의 독소가 뇌에서 기억의 입력을 담당하는 해마의 작용을 방해하여 기억정보가 입력되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알코올은 해마의 글루탐산성 신경세포의 활성을 억제해 기억을 방해한다. 그러나 뇌의 다른 기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다. 단지 그 순간의 기억만 사라지는 것이다.한 해에 두 차례 이상 필름이 끊기면 의학적으로는 넓은 의미의 알코올 중독에 해당한다." - <기억을 만드는 해마> 중, 브레인 Vol 30, 2011.11.
  2. "의미 기억은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고 아는 것들, 이야기들이다. 사건 기억은 우리가 과거로 여행을 할 때 경험하는 것, 일어났던 일이다." (p108)
  3. "사실 이것은 현명한 일이다. 그럼으로써 뇌에는 공간이 생기고 새로운 기억들을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p251)
  4. "알베르트 슈페어가 메모광(狂)이었다라는 사실이 곧! 그가 기록해놓은 엄청난 양의 메모들이 객관적이다라는 것과는 동치될 수는 없다라는 거죠.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슈페어가 표현한 '어린아이 특유의 동정심'이라는 것 역시 특정 시대의 특정 국가에서 태어난 특정 연령의 특정 성별의 한 개인이 지닌 (다시 말해, 객관적 확인이 불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나는 경험한 일들을 서술하며 지금 이 순간 과거의 경험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나의 입장도 밝혔다. 작업 내내 과거를 왜곡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p11)란 슈페어의 고백은 외려, 자신의 주관적 판단을 이 기록 속에 개입시켜 놓았다란 일종의 선언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그의 일방적 기록을 읽어내고 해석해냄에 있어, 우리는 '왜곡'과 '주관의 개입'을 가려낼만한 장치를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죠. 결론적으로, 이 책 속의 기록들은 기본적으로 일 개인의 편향된/되어있다라 의심되는 기억에 의존한 기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을 읽고 썼던 감상문 중.
  5. "기억은 구성적이어서, 우리 경험의 단편들을 꺼내고, 일어난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는 그림 틀을 꺼낸다." (p96)
  6. "미국 대법원은 허위 기억이 무엇인지, 그리고 미국에서 배심원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일반 시민들이 얼마나 왜곡에 약하고 쉽게 변하는지를 모른다는 점을 인정했다."(p178)
  7. ​"우리의 기억이 우리에게 진실을 제공한다고 신뢰할 수 있을까? 기억은 언제나 구성적이며, 우리 기억 안에는 오류와 결함이 있을 것이다. 기억과 허위 기억의 차이는 허위 기억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얼마나 틀리냐는 것이다. 모든 기억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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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전략 논쟁사 - 100년의 혁신을 이끈 세계 최고 경영구루의 50인의 경영전략
미타니 고지 지음, 김정환 옮김, 김남국 감수 / 메가스터디북스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경영전략 논쟁사」는 앞서 읽었던「전략수립의 신」의 2장 1절, '전략은 어떻게 변해왔는가?' 속, 단 7페이지1로 기술되어 있는 내용을 무려, 450여 페이지에 걸쳐 설명해주고 있는 책입니다.2 책의 영문 원제는3 '50 Giants of Strategy' 이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132명, 책은 72권, 회사는 110개사였다. 대략 20세기 초엽부터 시작된 100년의 경영전략 역사를 살펴보며 그 과정에서 출현한 90여 개의 경영전략 콘셉트를 소개했다. 그 배경, 그리고 흐름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함께. (p443)


살벌한 (50명을 뛰어넘는) 수의 인물들과 이론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내용과 실물의 적지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 이 책은, 경영학에 대한 매우 기초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는 저에게도, 그 어느 문학작품도다도 훨씬, 흥미롭고 속도감있게 읽혀졌습니다.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경영전략 이론의 변천사라 할 수 있겠으나, 넓게 보자면 경영학의 학문적 흐름, 더 나아가 (비록 미국이 주된 무대이긴 하나) 경제와 산업의 흥망성쇠를 다룬, 매우 흥미로운 역사책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완벽하게 수행해주고 있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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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과거'를 되돌아볼 때 우연을 싫어하며 필연을 좋아한다. 미래에 대해서는 '확률적', 즉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우연이 좌우함을 알면서도 어째서인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은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현재의 자신이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결론(과거와 현재의 연결)에 대해 제멋대로 이유를 만들어 그것을 필연으로 해석하고 만다. …… 요컨대 인간은 현재와 과거를 필연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동물이다. …… 것이 후광 효과(Halo effect)이다. 우리는 실적이 좋은 기업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훌륭하다고 믿는다. 조직도, 문화도, CEO도 전부. 인간은 결과에 현혹되어 과정을 망각하는 생물인 것이다.(pp355~357) 


'병 나음받은 자의 간증'이라 제가 적었던 내용과 거의 비슷한4, 말하자면 '살아남은 자가 강한5 자'라는, 오로지 결과만을 중시하는 논리에 대한 (일종의) 비판으로도 이해될 수 있는 인용문입니다. ('정확한' 예인지에 대한 자신은 없습니다만) '쉬운' 예로, 토너먼트에서 A조 1위를 차지한 팀이 B조의 꼴찌팀보다 '반드시' 강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처럼 --- 비록, 현재의 경영학 이론들이 과거 이론들의 부족한 점들을 보완 혹은 반박하는 과정에서 탄생되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현대의 이론들만 알면 된다라는 사고(logic)는 누구든 쉽게 수긍하기 어렵듯, 저자 미타니 고지는 '오리지널의 힘!'6과 '역사는 반복된다?'7라는 두 가지 이유로, 우리가 과거 이론들의 변천사에 대해 반드시 학습하여야 함을 설득하고 있지요. 그리하여/그렇게...


이 책을 읽으면서, 다 읽고 난 지금 제가 느끼는 바는 --- 이전에 읽었던 세 권의 경영 전략 관련 책들의 감상문을 죄 지워버리고 싶다,라는 것입니다. 오리지널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들에 대한 지극히 간략한 설명만 읽고 얻었던 그 피상적이고 얄팍한 지식을 바탕으로 쓴, 그럼에도 '배움'과 '깨달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었던 것에 대한 창피함 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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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십 년 사이의 경영 전략사()를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하면 '1960년대에 시작된 포지셔닝파가 1980년대까지 압도적인 우세를 자랑했지만 이후는 케이퍼빌러티(조직·인간·프로세스 등)파의 우세'라고 할 수 있다. 아주 단순하다. …… 포지셔닝파는 '외부 환경이 중요하다. 이익이 나는 시장에서 이익이 나는 위치를 차지하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8라고 단언하며, 케이퍼빌러티파는 '내부 환경이 중요하다. 자사의 강점을 보이는 곳에서 경쟁하면 승리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9 그리고 서로 '저쪽의 전략론은 기업을 망칠 뿐이다'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pp6~7) 


저자의 표현대로,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위와 같습니다. 이러한 뼈대를 바탕으로 각 이론들에 대한 배경과 설명이 곁들여져 있으며, 이론의 중대한 변천에 기여한 여러 인물들의 주장이, 너무도 적절하게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450여 페이지의, 책장에 꽂아놓기에도 무지 있어보이는 (하물여 제목마저도 있어보이는!) 하드커버로 된 한 권의 책이 되어 있지요.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감상문을 쓰는 건, 제 능력 밖의 일이기도 하거니와, 그다지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직접 읽어보시길 강력히 추천해드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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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연구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게 해준 것은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어떤 입문서였다."


- 이토 고이치로,「데이터 분석의 힘」중 p224, 인플루엔셜, 2018.


저자 미타니 고지는 독자들이 이 책을 '①교과서처럼 이용, ②사전처럼 이용, ③백과사전처럼 이용, ④이야기책으로 읽기'와 같은 방법으로 각자의 효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적고 있습니다. 다 읽고 난 지금, 적어도 저에게는 위의 네 가지 모두의 방법으로 내내 이용될, --- 이 책에서 알게 된 좀 더 전문적인 책들을 읽기10 전 복습의 용도로, (이 가능성이 극히 낮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현실 업무에서의 응용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적잖이 사놓은 경영 전략 관련 책들을 읽고 난 후의 분류를 위한 용도 등등, 정말이지 손때가 묻을 정도로 애용하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다만, 


이런 책이 (혹 제가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통계학에서도 그러하였듯, 일본에서 발간되었다라는 점이, 한없는 부러움을, 한편으로는 국내 학계/출판계에 대한 (비난 깃든) 아쉬움을 안겨주기는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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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is obvious. Once you know the answer. (p354)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국내에는「상식의 배반」11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던 던컨 와츠의 책 원제입니다. --- (이 책,「경영전략 논쟁사」를 포함하여) 경영학 책과 HBR, DBR 등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례 article 등 또한 어쩌면, 이미 알려져 있는 답(경영 성과 등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그것을 (사후적으로) '해석'하는 내용들일 수도 있다라는 (경영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일 수도 있을) 생각을 해보게도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자(管子)는 '오늘날의 일에 의아함이 있으면 옛일을 살펴보고, 훗날의 일을 모르겠으면 과거를 돌이켜보라'고 했다. 과거는 시대를 초월해 현재의 미래의 물음에 지표를 제시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교훈을 거울삼아야 한다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강조되었던 바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과 교훈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며 모든 경우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황석공은 옛일을 모조건 따라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옛일을 헤아리되(推古) 오늘날의 상황에 맞는지 따져 물어볼(驗今) 것을 강조하였다. 과거의 경험을 더듬어보아 오늘날에 적용이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작은 것에 얾매이지 않을 수 있다. …… 과거의 경험과 교훈은 참고가 될 뿐이지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 과거에 눈을 돌려보면 무수히 쌓여 있는 수많은 지식과 지혜를 만나게 된다."


- 황석공,「소서 : 삶의 근원은 무엇인가」중 pp102-103, 동아일보사, 2015.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저의 한계는, 기존의 것을 온전히 이해하여 유용하게 적용해볼 궁리라도 해야하지 않겠냐는 쪽을 결국엔 선택하게 하네요. 오랫만에 저에게 새로운 학문에의 지적 도전이라는 자극을 준 한 권의 책을 만날 수 있어 무척이나 즐거웠었던 6월의 시작이었습니다.      



※ 읽어 본, (감상문은 지워버리고 싶은) '경영 전략'에 관한 책들 :개싸움판에서는 고양이가 돼라」,「프라이싱 전략」,「전략수립의 신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지금 이 블로그에 와있는 당신에게마저 여하한 구실로라도 '나를 아는' 이란 형용사를 붙여 --- 꼭 한번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은 책들의 제목 앞에 ★표시를 붙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시이겠지만 가끔은, 타인의 주관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1. pp49~55.
  2. 물론 이 책에도 한 문단으로 된 요약(pp6~7), 3페이지로 된 요약(pp7~9), 그리고 조금 더 긴 요약문(pp399~406)이 있습니다.
  3. 일어판 원제는 '經營戰略全史'.
  4. 차이가 있다면, 병 나음받는 자는 그 결과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신(God)의 덕분으로 돌린다는 것이겠죠.
  5. '병 나음받은 자'에게는 '믿음이 신실한 자'가 되겠지요.
  6. "경영 전략론은 … 만들어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전해지지는 않는다. 평소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며, 그조차도 오해일 수 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다."(p10)
  7. "물론 역사 자체가 반복되지는 않는다. … 역사 공부의 진짜 가치는 '비슷한 상황에서도 다양한 일이 일어날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데 있을 것이다."(p11)
  8. '포지셔닝파'의 대표 인물인 마이클 포터의 주장은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전략이란 코스트 리더쉽을 선택할지 차별화를 선택할지 양자 택일을 해야 하는 어려운 트레이드오프의 개념. … 케이퍼빌러티는 아무리 발전시켜도 금방 경쟁자가 모방 … 케이퍼빌러티의 역할은 기업의 독자적인 포지셔닝을 뒷받침하는 것"(p250)
  9. '케이퍼빌러티파'의 대표 인물인 제이 바니의 주장은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경영의 질이나 능력은 케이퍼빌러티(기업 능력) … 같은 업계에서 같은 전략을 구사해도 실적은 기업마다 다릅 … 그러니까 이건 포지셔닝의 문제가 아니라 케이퍼빌러티의 문제 … (이것이 바로) 자원 기반 전략(Resource Based View)" (p252)
  10.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저자 또한 인정하고 있듯, '깊이 있다'라고 표현하기엔 힘들 것 같습니다. --- "나는 무엇보다 알기 쉽고 재미있게 쓰고자 노력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알기 쉽게 쓰려고 내용을 간략하게 줄이면 내용이 부정확해질 수 있다. 또한 재미는 학술서에서 터부시되는 제공 가치일 것이다. 그러나 알기 쉽고 재미있게 쓰지 않으면 독자 여러분에게 내용이 전해지지 않는다." (p13)
  11. 생각연구소, 2011. (현재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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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수립의 신 - 경영에서 마케팅까지
박경수 지음 / 더난출판사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경영 전략의 핵심은 우선 자신의 역량을 기초로 주어진 환경에서 가장 적합한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 … 경영 전략의 본질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게 아니다. 복잡하게만 보이는 경영 현상을 쉽게 파악해 가장 적절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게 핵심이다."


- 문휘창, "전략의 기본은 무엇인가?", DBR October 2009, Vol. 42.


제가 읽은 첫 번째 경영 전략에 관한 책이었던 레오나드 셔먼의「개싸움판에서는 고양이가 돼라」를 (그 개싸움판같은 번역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흥미롭게 읽었었습니다. 허나, '경영 전략'이라는 학문 분야, 크게는 '경영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없는 상황이다 보니 그 책을 완벽하게 이해했다라고 말할 자신은 없더군요. 그렇게 뭔가 경영학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은 갖추고 싶다란 바람()이 생겨났고, 곧이어 읽었던「프라이싱 전략」을 통해서는, 그러한 바람이 그저 지적 욕심에서 그쳐서는 안되겠다라는 걸 깨닫게 되었었죠. 그래서 선택한 책이 바로 --- (제목은 좀 껄끄러운) 이 책,「전략 수립의 신」이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략가다운 면모를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전략의 이론과 실무적인 수립 방법을 다루고 있다. (p6)


곱셈과 나눗셈을 할 줄 안다 하여, 모두가 다 미분과 적분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듯, "전략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해서 전략을 잘 수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p18)라고는 하지만, 일단 곱셈과 나눗셈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나야 미분과 적분의 원리를 적어도 이해는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영 전략'이란 것이 뭔지는 알아야, 그 후에 밥을 짓듯 죽을 쑤든 할 수 있을테니 말이죠. 


………………………………………………………………………………………


하버드 대학교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전략을 '차별화된 활동을 통해 독특하고 가치 있는 포지션의 창출'이라고 정의한다. … 경영사가인 알프레드 챈들러는 '기업의 장기적 목표 및 목적을 정하고, 그에 필요한 행동을 선정하고, 목표 달성에 필요한 자원을 분배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종합해보면, 전략은 경쟁우위를 획득하기 위한 차별화된 활동과 포지셔닝, 그리고 이를 위한 효율적 자원 배분이라고 할 수 있다. (pp 17~18)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知彼知己, 百戰不殆)"1란 손자의 가르침은, '적'의 개념을 경쟁기업으로 설정하든, 혹은 고객으로 설정하든지에 상관없이2, 현대의 기업들에게도 여전히 적용되는 전략의 시발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외부환경 분석 - 내부역량 분석 - 방향 설정 및 전략 수립''이라는 순서로 '적을 알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의 경영학적 설명해주고 있지요.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외부환경 분석'은 다시 '거시환경분석'3과 '미시환경분석'으로 나뉘어질 수 있으며, 'PEST'4는 거시환경분석을 위한 도구라는 것을, '5 Forces Model'5은 미시환경분석을 위한 도구라는 지식을 '배우게' 됩니다. 이는「지금 당장 경영전략 공부하라」와 같은 책에서도 '읽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만 --- 단순한 모델의 나열이 아닌, 각 모델이 어떠한 필요성에 의해 사용되어지는가에 대한 '유기적 연결'에 대한 부분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라는 점이, 이 책이 지닌 유용함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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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 이 시대를 관통한 단 하나의 표어는 '생존'이었다. …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것인가의 문제는 공론의 화두였다."


- 손자,「손자병법」중 p5, 휴머니스트, 2016.


국가의 생존을 위해「손자병법」이 쓰여졌던 것과 같은 이유로, 이 책의 저자 또한 "전략의 본질은 … 궁극적으로는 한 기업이 어떻게 사업을 영속성 있게 유지하느냐다"(p27)란 말로 현대 기업에게 경영전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 '전략'이란 것은 결코 정적인 것이 아니며, 전략에도 "변화와 적응"(p55)이 필요함이 어쩌면, 전략 수립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다라는 점6 또한 강조하고 있기도 하지요. 


하나의 생명체로서의 전략은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 …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그 적응 속에서 전략은 의미를 갖는다. (p232)


그러나! --- 상황에 맞는 전략의 적용, 또는 우리 회사의 전략을 수립하고 현실에서 적용할 때엔 예의 "적을 알고 나를 알면(知彼知己)"이란 옛 경구를 여전히 잊어서는 안된다는 다음과 같은 실례에서처럼, 


"​현대자동차는 미국에서 아시아 금융위기 직후에 10년간 또는 10만 마일까지 워런티를 보장했고 이것으로 미국 소비자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이 전략이 현대자동차에 엄청난 혜택을 준 이유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 사람들은 현대자동차를 크게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만 마일까지 워런티를 보장할 정도로 자신이 있다면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사보자'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지만 도요타는 똑같은 전략을 구사할 수 없었다. 미국 소비자들은 이미 도요타는 품질에 큰 문제가 없는 좋은 차로 인식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워런티 기간을 틀린다는 것은 오히려 구매자들에게 '도요타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 이승현, "현대차의 10년 보장은 품질자신감! 도요타가 했다면 위험시그널?", DBR March 2013, Vol.124.


미분과 적분을 할 수 있기 위해선 곱셈과 나눗셈에 대한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나, 곱셉과 나눗셈에 대한 지식을 완벽하게 습득하였다는 것이 곧바로 미분과 적분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듯, 이 한 권의 책이 알려주고 있는 전략 이론들을 완벽하게 습득하였다 하여, 그것이 곧 나를 '전략 수립의 신'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으리란 것쯤은 모두가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IMF 시절, 경쟁사들이 모두 움츠리고 있었을 때 오히려 공격적인 영업을 펼쳐 커다란 성장을 이루어낸 회사에게 '역발상의 성공'이란 찬사를 보낼 수 있는 것은, 그 기업이 결국 성공했기 때문인 것이죠. 그 당시에 똑같이 공격적인 영업을 펼쳤으나 실패를 맛보아야 했던 기업들에게는 '무리한 확장'이나 '미숙한 경영자'란 비난이 쏟아질 뿐입니다. 이처럼 --- 과거의 경영 사례에 대한 분석은 어쩔 수 없이, '병 나음 받은 신자의 간증'과 같은 결과론적 평이 될 수 밖에 없다라 생각합니다. 허나, 

우리가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던 경쟁자가 사라졌다고 해서, 시장 자체가 블루오션 같은 멋진 신세계가 다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p244)

병 나음 받은 신자는 최소한 그와 같은 병 나음을 받기 위해 신에게 간절히 기도라도 했었듯, 성공이나 실패라는 사후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역시 우리 스스로이기에 --- 멋진 신세계가 저절로 다시 만들어지지는 않을 수 있다 하여도, 나의 생존을 위한 미래의 전략7은 어쨌든 반드시 필요하겠지요. 허나, 

"전략은 곧 실행"(p203)이란 저자의 강조처럼, 제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되어 수립된 전략일지라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실행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모든 게 다 허사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점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께서 나에게, 로또 1등 당첨의 행운을 선물하려 하셨어도, 정작 제가 로또를 구입하지 않으면 신의 선물은 결국 제게 주어지지 못하듯 말입니다.  

"좋은 정책을 만들어 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책이 효과가 있으려면 제대로 실행이 되도록 관리해야 한다."

토마스 T. 네이글 · 존 E. 호건 · 송기홍,「프라이싱 전략」중 p257, 거름, 2006.


 ※ 읽어 본, '경영 전략'에 관한 책들 :개싸움판에서는 고양이가 돼라」,「프라이싱 전략




  1. 손자,「손자병법」중 p94, 휴머니스트, 2016.
  2. "여기서 적을 경영적으로 해석하면 경쟁기업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을 소비자로 파악할 때 더 중요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비즈니스에서는 소비자가 기업이 제공한 제품이나 서비스의 좋고 나쁨을 판단해 구매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최후의 심판권을 가지게 된다. 기업이 아무리 새로운 경쟁자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더라도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이 아니라면 결국은 실패하게 된다. 전쟁에서 적을 아는 것이 승리를 위한 전제조건이라면 경영에서는 소비자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 문휘창, "제로섬 전쟁 VS 윈윈경영, 창조적 통찰의 효용은 같다.", DBR July 2012, No.109
    이 책의 저자 또한 손자의 구절에 등장하는 '적'의 개념을 명백하게 고객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 "모든 전략의 핵심은 고객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 구매한 것, 실제 구매한 고객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p133)
  3. "전략을 수립한다고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 환경분석은 전략 수립의 기본이다. 환경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전략이 방향성을 잃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분석의 첫 단계가 바로 거시환경분석이다." (p87)
  4. "PEST는 Political, Economical, Social, Technological의 약자다." (p87)
  5. "산업구조분석은 시장의 판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 시장의 판을 파악하기 위해 보통 5가지 측면에서 산업 내 요인들을 검토한다. 크게 2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산업 내부 관점에서 산업 내 경쟁강도, 공급자 교섭력, 구매자 교섭력에 대한 검토이다. 다른 하나는 신규 진입자의 위협, 대체재의 위협 등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산업의 외부 관점이다.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이 5가지 요인에 대한 분석을 우리는 5 Forces라고 한다. 5 Forces 분석은 … 산업의 구조분석을 통해 산업에서 어떻게 경쟁할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도구이다." (pp 93~94)
  6. "한 기업이 쇠락의 길을 걷는 이유 중 하나는 역량이 없어서도 아니고 경영자가 똑똑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환경이 변했음에도 그 환경에 맞는 전략적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p21) …… "몰락한 기업들이 전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상황에 맞는 전략이 미흡했을 뿐이다."(p247)
  7. "전투는 죽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 전투를 하는 것이다. 죽고 싶지 않아 남을 베는 것이다. … 남의 칼에 죽지 않기 위한 방법은 단 한 가지, 내가 죽기 전에 죽이는 것뿐이다. 이제는 그 길 밖에 없다." --- 아사다 지로,「칼에 지다 (상권)」중 p236 & p312, 북하우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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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 시공을 초월한 전쟁론의 고전 명역고전 시리즈
손무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1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고전 classic'이라 칭하는 문학 작품들에 대해, "시대를 초월하여 늘 현재와 소통하는 문학"1이라 규정하는 것이 (문학 전공자가 아닌 제가, 이제까지의 독서로부터 얻은 경험상) 가장 합당한 정의(definition)라 생각합니다. 이는 결국, --- '시·공간을 초월하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대한 옛 사람들의 서술/묘사가 (앞으로는 어찌될 수 단언할 수 없으나) 적어도 현재에까지에는 잦은 예외 없이 잘 들어맞는다라는 것이겠지요. 그러하기에, 


'1813년 영국에서 발표된' 제인 오스틴의「오만과 편견」이란 작품이, 2014년의 대한민국과는 하등의 시대적·공간적 공통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라난 2014년의 저에게와 2019년 현재까지 여전히, 아마도 2019년의 당신이 지금 그 작품을 읽는다 하여도 역시나, 잊혀지지 않는 감탄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 작품을 '고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겠지요. 허나!!! --- 이와 같은 설명은 어쩌면, 앞뒤의 논리가 뒤바뀐 것일 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이야기는 딱 두세 가지밖에 없다. 그 이야기들이 마치 전에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인 양 강렬하게 계속 되풀이된다. 지난 수천 년 동안 다섯 가지 음조로 똑같이 노래해왔던 시골의 종달새처럼 말이다."


- 미히르 데사이,「금융의 모험」중 p315, 부키, 2018.


원래부터 인간의 본성이란 것이, 우리가 칭하는 '오래 전'이란 시기부터 현재까지의 시간 동안에는 변할 수가 없는, 진화의 전체 과정 중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찰나와 같은 매우 짧은 시간이기에, 1813년 영국의 여성 작가가 만들어 낸 문학작품으로부터 2014년 대한민국의 남성 독자가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공감과 감탄을 하였었다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닐 수도 있다라는 추론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 이런 추론을 불합리하다라 판단하지 않는다면, --- "인간은 절대로 유일무이한' (분할 불가능한) 개인individual'이 아닌 복수의 '(분할가능한) 분인 dividual'"2이란 히라노 게이치로의 2015년 엣세이는, 1886년 역시나 영국에서 발표되었던「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반복된 내용이라 보아도 되는 겁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자면, 


………………………………………………………………………………


「손자병법」의 전략 전술은 전쟁 뿐 아니라 인간관계에 두루 응용이 가능한 처세서로도 손색이 없다. 적어도 손자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다수의 라이벌을 상대로 살아남는 법이다. 싸워서 이기는 방법뿐만 아니라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동시에 가르쳐준다." (pp29~30) 


(무려!) 기원전 500년 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그러하기에 --- 현재의 전쟁과는 형태도 방법도 무기도 군사들의 능력도, 그 무엇 하나 비교가 되지 않을 시절에 쓰여진 전쟁서를 여전히 연구하고 있는 것이 딱히 이상하다거나 신기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됩니다. 


손자가 말하는 병법은 기본적으로 일종의 심리전이며, 전쟁은 사람과 사람이 우선 상대하는 것이기에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고 감정적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요체이다. (p98)


제 아무리 현대의 전쟁이, 컴퓨터 모니터 상에서 벌어지는 게임과 유사하다고 하여도 결국 승리의 최종 확정은 무기가 아닌 사람(보병)에 의해 결정지어진다라는 점에서 보자면, 손자 시대의 전쟁이나 지금의 전쟁이나 그 핵심 자체는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승리한 군대와 패배한 군대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국가의 경제 기초와 군사력 등의 객관적 요소의 차이이며, 이를 비교·분석한 뒤에 비로소 승리를 점칠 수 있으며 전쟁이 나설 수 있다는 것이 손자의 기본 입장이었다. …… 손자는 전쟁과 경제·정치가 대단히 깊은 관계에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pp22~25)


기원전인 춘추전국시대의 전쟁이나, 지금도 지구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 전쟁과 기본적인 승패의 맥락에는 변함이 없는 겁니다. 이처럼,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 '고전'을 읽는다라는 건 물론, (일종의) '지식의 창조자' 또는 '보편적 감정을 표현해 낸 자'라는 위대함이 우선이겠으나,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기보다는 '이렇게나 오래 전 시절에 이런 이야기를 이미 했었단 말이야?'란 놀라움을 갖게 되는 행위(일 뿐이)라 하여도, 고전이 지니고 있는 크나큰 가치가 훼손되는 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사회의 모든 문제에 적용해도 될 만큼 보편적인 내용들 (p7)


우리가 고전 읽기에 있어 더욱 신경 써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위와 같은 기본적인 한계(?)를 재확인하는 것이 아닌, 그렇다고 현대의 전쟁에 「손자병법」에 쓰여져 있는 전술·전략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교조적 적용도 아닌, 심지어 고전에 쓰여져 있는 문구를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지식을 멋지게 포장하는 것도 아닌,


"나라도 망하고 기업도 망하는데, 절대로 망할 것 같이 않은 집단이 있다. 종교집단3이다. … 기업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는데, 왜 종교는 망하지 않는 것일까?"


김상근, "불멸의 조직 만드는 5가지 비법, 수천 년 지속된 종교에서 배우다", DBR, July 2016, No.205.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혹은 관심 가지고 있는 분야에의 응용을 위한 핵심 insight의 발견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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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不可勝在己 



"성공한 기업들은 본질적으로 그들이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 자체가 고객들과 가치 있는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의 상품과 서비스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뭔가 계속 잘 안 되고 있다면, 거의 대부분의 이유는 아주 심플합니다. 바로 그만큼의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 강민호,「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중 p45, 와이비, 2017. 


21세기 대한민국의 어느 마케팅 전문가가 단언한 위 문구는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어느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게는 하여야 한다.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p124)란 기원전 손자의 병서 속 구절을 현대의 경영학에 응용한, 다시 말해 --- 이전에는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닌,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종달새의 다섯 가지 음조들' 중 하나를 새로운 분야에서 찾아해 낸 좋은 예들 중 하나가 됩니다. 한 가지 예를 더 찾아보자면, 



【 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손자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을 최상의 전략으로 보았으며, 이것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모공>편을 만들었다. …… <모공>편의 핵심은 마지막 문장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원칙으로 요약할 수 있다. (p94)4

이 책을 읽기 전의 제가 그러했듯, '지피지기면 백전백승'5이란 구절이「손자병법」속 문구라 대부분 오해하지만 사실 그러한 구절은 적어도「손자병법」속에는 존재하지 않더군요. 오히려 손자는 말하기를,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잘된 것 중에 잘된 용병6이 아니며,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용병이 잘된 것 중의 잘된 용병이다. (p95)


춘추전국시대에도 그러했었고, 지금도 그러하듯, 전쟁이란 일단 발생되고 나면 최후의 승리가 누구의 것이 되든 관계 없이7, 해당 전쟁에 참여한 국가뿐만이 아닌 참여하지 않은 국가들에게도 또한 명백한 피해를 가져온다는 점은 분명합니다.8 이런 점에서 보자면, 


"가격경쟁의 궁극목표는 '가격경쟁을 하지 않는 것'이다."


- 주우진, "가치 창출의 가격 전략", SBL Column 2015.01.27.


현대 경영학의 가격이론이 제시하는 궁극목표 또한 싸움을 통한 승리가 아닌,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용병'을 지향한다라는, 예의 '종달새의 다섯 가지 음조들' 의 일 변주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처럼, 고전이 품고 있는 의미를 현대적인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 고전이 지니고 있는 현대적인 의미라 할 수 있겠으나,


고전은 고전답게 읽어야 한다. 이 책을 현대 경영의 시각에서 권모술수라는 측면에 과도하게 결부시켜 읽지 말라는 말이다. 구절 하나로 전체의 뜻을 재단하는 식의 단장취의(斷章取義)는 고전의 큰 세계를 이해하는 게 걸림돌이 될 뿐이다. (p32)


"서구의 근대화는 … 토론과 대화로 정신을 설득하는 관념론적 과정이 아니라, 감시와 처벌의 채찍으로 신체를 길들이는 유물론적 과정이었다"란 미셸 푸코의 설명을 앞뒤 다 잘라낸 뒤, "서구의 근대화도 어차피 감시와 처벌, 군대식 훈육의 결과였다"라 악의적으로 치환시켜 (박정희로 상징되는 근대화 주역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근대화의 폭력성'과 같은9 (의도된 것이든 의도되지 않은 것이든 관계 없이) 오역을 이 책의 역자 김원중은 또한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전쟁에서는 방법론에 상관없이 무조건 이기는 것이 최종 목적이지만 경영의 목적은 가치창출을 통해서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최종 목표라는 매우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문휘창, "제로섬 전쟁 VS 윈윈경영, 창조적 통찰의 효용은 같다", DBR, July 2012, No.109


"전쟁은 인간뿐 아니라 재산과 자연자원을 파괴한다. 승자는 패자의 자원을 차지하므로 전쟁은 자원 재분배의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승자 역시 전쟁으로 인한 일정한 대가(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전후 결과는 항상 마이너스가 된다. 따라서 전쟁은 본질적으로 가치파괴(value destruction)란 특성을 가진다. 반면 경영 활동의 본질은 가치창출(value creation)이다.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관련 기업과 협력하고, 주주에게 이윤을 줌으로써 가치를 창출한다." 


- 문휘창, "전략의 신, 경영의 대가와 만나다"10DBR, August 2013, No.134


명백히, 물리적 전투를 상정하고 쓰여진 이 책「손자병법」속 insight를, 경영뿐만이 아닌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지요. 그러나 또한 --- 그러한 우()를 범하지만 않을 수 있다면!  


춘추전국시대 … 이 시대를 관통한 단 하나의 표어는 '생존'이었다. …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것인가의 문제는 공론의 화두였다. (p5)  


춘추전국시대와 마찬가지로, 경쟁이란 것이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삶의 기제가 되어 있는 현 시대를 살아가야만 한다면, 그렇게 '삶이 곧 전쟁'이란 말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진다면, 그리하여 --- 경쟁에서 어쨌든 이겨내길 원한다면, 이 책의 구석구석에서 자신의 상황에 맞는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자세한 내용까지를 적지는 못하겠습니다만, 저의 경우엔 


군주 된 자는 노여움으로 군대를 일으켜서는 안 되고, 장수 된 자는 화가 난다고 전투를 해서는 안 된다. 이익에 들어맞으면 움직이고, 이익에 들어맞지 않으면 멈추어야 한다. 분노는 다시 즐거움이 될 수 있고 성냄은 다시 기쁜이 될 수 있지만, 망한 나라는 다시 존재할 수 없고죽은 자는 다시 소생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전쟁에 신중하고, 훌륭한 장수는 전쟁을 경계해야 한다. 이는 나라를 안전하게 하고 군대를 온존하게 하는 이치이다. (p310) 


13편 중 12편의 마지막에 실려 있는 '安國全軍之道'란 구절이 참으로 맘 아프게 읽혔었습니다. 왜 이제야 이 글을 만날 수 있었던 걸까, 좀 더 일찍 이 글을 만나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보았었더라면, 또 다른 모습의 삶을 지금 살아내고 있지 않을까... 뭐 그런 (가져봐야 쓰잘데기 없는) 아쉬움 말이죠. 



 ※ 읽어 본, 중국의 고전 :소서(素書) - 삶의 근원은 무엇인가







  1. 민음사 <모던클래식 시리즈> 소개말 중.
  2. 히라노 게이치로,「나란 무엇인가」중 pp47~48, 21세기북스, 2015.
  3. "보편종교(universal religion)라 불리는 세계 5대 종교, 즉 그리스도교, 불교, 유교, 힌두교, 이슬람"
  4. '적'의 개념을 경쟁자가 아닌, 소비자로 상정하여야 한다는 주장 또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 "여기서 적을 경영적으로 해석하면 경쟁기업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을 소비자로 파악할 때 더 중요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비즈니스에서는 소비자가 기업이 제공한 제품이나 서비스의 좋고 나쁨을 판단해 구매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최후의 심판권을 가지게 된다. 기업이 아무리 새로운 경쟁자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더라도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이 아니라면 결국은 실패하게 된다. 전쟁에서 적을 아는 것이 승리를 위한 전제조건이라면 경영에서는 소비자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 문휘창, "제로섬 전쟁 VS 윈윈경영, 창조적 통찰의 효용은 같다", DBR, July 2012, No.109
  5. "2·27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한 조경태 의원이 안보위기·경제파탄을 야기한 현 정권을, 더불어민주당을 가장 잘 아는 자신이 나서서 심판하겠다고 자처했다. 조 의원은 18일 오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 권역 합동연설회에서 '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며 '누가 문재인정권과 민주당을 가장 잘 아는 정치인이냐'라고 당원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 '조경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민주당 심판 자처', 데일리안 인터넷판, 2019.02.18. 중
  6. "'용병用兵'이란 '군대를 사용하는'이라는 의미이다"(p76)
  7. "전쟁이란 일어났다는 자체가 양측의 손실" (p88)
  8. "A war on the Korean Peninsula, no matter who starts it, will be costly for the global economy. Shipping lanes will be disrupted, exports from China will slow, and interest and insurance rates will rise, making commerce more costly everywhere. South Korea, which ranks in the top 10 globally in both exports and imports, will suffer the most, with lives lost and capital destroyed. Taken together, these effects might subtract, say, half a percentage point from world GDP, or about $350 billion." --- <The Economics of Was with North Korea : Would fighting Kim Jong Un be worth it?> by Daniel Altman, April 15, 2013,『Foreign Policy』
  9. "고전의 텍스트는 인용자의 정치적 의도와 맥락에 따라 자주 인용되면서 원래 텍스트와는 별개의 생명력을 갖고 살아 움직일 수 있게된다" --- 류동민,「경제학의 숲에서 길을 찾다」중 pp37~38, 충남대학교 출판부, 2009.
  10. 이 article에서 저자 문휘창 교수는 "<손자병볍> 13편의 각 편의 핵심 주제와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의 경영이론을 연결신킨 결과 놀랍게도 포터의 중요한 경영이론들이 '누락되거나 겹치는 부분 없이(No missing and no overlapping)' 모두 관련됐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현대 경영학 이론에 대한 제 무지의 소산이겠습니다만, 어찌되었든 좀 지나친/과장된 자의적 연결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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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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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어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견딜 수 없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 김훈,「개」중 pp182~183, 푸른숲, 2005.

딱히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의 소설은 아니었더랬습니다만, 또한 인용해 놓은 위 세 문장이 그 소설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어쨌든, --- 작가 김훈의 장편소설「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지금의 제 삶을, 어쩌면 우리들 대부분의 삶들이 이러하지 않을까하는, 뭔가 짠한 생각을 (읽을 당시에도 그러했으며, 심지어는 지금도 여전히) 지워낼 수 없더군요. 견딜 수 없는 것을 어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허나 그렇다고 그것을 견딜 수 없다면 또 어찌할 것인가, 


아, 이거 참, 정말...


………………………………………………………………………………… 


(문학 전공자가 아닌 저이기에) 소설의 대표값이란 결국 줄거리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라 생각하게 됩니다만, 한 편으로 그 대표값이란, 적어도 겉으로 보여지는 대표값이란 어찌 보면 --- 작가가 해당 소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감싸고 있는, 일종의 포장지일 수도 있겠다란 생각을 갖게해 준 작품들도 꽤 있었습니다. 얼핏 꼽아지는「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라든가,「위대한 개츠비」등이 저에겐 그러한 소설들이었지요.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이 작품,「공무도하」의 (예의 포장지에 불과할 뿐인) 줄거리 속에 난무하고 있는 우연한 인간 관계의 얽힘이라든가, 그 폭의 좁음 등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도 않으며, 심지어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러한 우연과 좁음은 324페이지라는 한정된 지면 속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세계관을 펼쳐 놓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제약 조건하 최적의 결과물이기 때문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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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1.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 (p35)


적어도 제가 이해하는 바의, 이 소설을 통해 작가 김훈이 표현하고 있는, 표현하고자 하는, 이 세상에 대한또한 인간에 대한 관점은 이러합니다. 비루하고 치사하며 던적스러운 온갖 군상2들이 서로 모여, 


바다사자의 앞지느러미는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렸고, 바다사자의 뒷지느러미는 일어설 수 없는 몸을 일으키려고 바닥을 치며 몸을 뒤틀었다. (p230)


이루어 낸다는 것이 실은 가능하지 않은, 어쩌면 심지어 존재하지조차 않는 무언가를 희망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 희망을 여전히 희망으로 갖고 이루어내려 살아가기에 (결과적으로) 그 삶은 비루하고 치사하며 던적스러워질 수 밖에 없다라는,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다 생각됩니다. 너무 비관적인 이해일까요? 다행히도,  


"태어나보니, 나는 개였고 수놈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기는 소나 닭이나 물고기나 사람도 다 마찬가지다. 태어나보니 돼지이고, 태어나보니 사람이고, 태어나보니 암놈이거나 수놈인 것이다. (p10) …… 나는 수컷으로 태어났으므로 수컷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원해서 그렇게 된 일은 아니었다. (p150)


- 김훈, 위의 책 중.


작가는 그것이 당신 / 우리의 탓만은 아니라 말해줍니다. 나와 당신으로 이루어지는 '우리'만이 그렇게 비루하고 치사하며 던적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수많은 '우리'들이 모여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전체 구성원들 모두가 그렇게 - 이 이유가 원래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이기에 이런 세상이 된 것인지, 혹은 원래 세상은 이렇기에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이렇게 되어버릴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든지에 상관 없이 -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창야에서 사람들은 남들과 같은 말을 하고, 말의 흐름에 동참함으로써 안도했고, 그 안도감 속에서 소문은 소문의 탈을 쓴 채 믿음으로 변해갔다. (p161) …… 방조제가 들어서기 전에는 삶이 건강했고 평화롭고 충만했다고 말할 때, 그들은 그 말의 대부분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고 우겨대는 더 큰 거짓이 작은 거짓을 눌렀다. 그들의 말 속에서 방조제 이전의 삶은 늘 평화롭고 충만했다. (p241)


굳이 무엇이 진실인지를 캐묻지 않고 또한 알고 있지 않다하더라고, ---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렇게 묻지 않고 알고 있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놈의 세상, "신문에 쓸 수 없는 것들, 써지지 않는 것들, 말로서 전할 수 없고, 그물로 건질 수 없고, 육하(六何)의 틀에 가두어지지 않는 세상의 바닥"(p125)에 두 발 딛고 살아가는 데에는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라는, 더 도움이 된다라는 걸, 서로서로 묵인하고 있으니, 이 세상을 통째로 바꾸어버릴 수 있기 전에는 이런 세상에 속해 살아가고 있다라는 사실에 자책하거나 그리 슬퍼하지 말하는, 위로 아닌 위로... 뭐 그렇게, 이 소설의 의미가 저에겐 받아들여지더군요. 그러하기에,


마치, 일 년치 주간지를 한데 모아 읽고 있는 듯한, 사건과 사고가 쉴 새 없이 이어져 서술되어 있는 이 작품 속에서 작가는 이러한 '고의적/의도된 무지'가 "추적할 수 없고 전할 수 없는 세상"(p218)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비정상적은 아닌) 삶의 방식임을, 그러한 반복의 형식을 빌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 "죽은 애가 개 주인이야. 그러니 아무 일 없는 거지. 조용한 거야." (p65)

● "쥐를 사살할 때 분대가 일제히 지향사격을 했으므로 탄도가 뒤엉켜 누가 쏜 총알이 어느 부위를 맞혔는지 밝힐 수 없었다. 해안대대 죽은 자들의 침묵에 안도했다. 그들의 침투와 이동경로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p79)

● "환경전문지 기자가 물었다. 공룡의 시력과 청력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고생물학자가 대답했다. 연구된 범위 안에서 질문해주십시오." (p147)

● "경찰서 수사과장은 정보입수경위는 본래 밝힐 수 없고 또 물어서도 안 된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p161)

● "어류의 생태와 능력을 인간이 모두 다 알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p174)


………


"댐 잇! 페이 노 어텐션!" (p52)


………………………………………………………………………………… 

결국 /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렇게 ……… 


노목희는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눈 앞의 문정수를 바라보았다. (p128) 


적어도 이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작가 김훈의 시선은 이러하다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시선이 그의 일반적인 시선이지 않을까 싶은, 그러하기에 --- "소통은 끌어안고 뒹굴어야 가능한 것이 아니고, 독립된 이성을 가진 개체들이 적당히 아름다운 거리에 떨어져 있을 때, 소통이 가능하다. 여러분과 다른 생각일지는 몰라도, 군중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구호를 외치고 뒤엉키는 건 소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3라는 작가의 말이 가능하지 않나 싶기도 하지요.  



물론,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눈 앞의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으로) 옳다라 말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단지 그러한 시선을 견지하는 것에 동의하느냐의 여부가, 이 작품에 깃든 작가 김훈의 세계관에 동의를 하느냐와 연결될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호·불호에까지도 연결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볼 뿐입니다. (다시 한 번 더) 물론, --- 저는 이러한 김훈의 세계관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지요. 아주/매우 전적으로!!!


새들은 지상의 그 어느 곳에서도 신호를 보내오지 않았다. 기자들이 방조제 도로 위에 설치된 조류 탐지 안테나 주변에 몰려와 돌아오지 않는 도요새의 행방을 취재했다. 새들이 신호를 보내오지 않았으므로 취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자들은 취재가 불가능한 사정을 취재해서 송고했다. … 기사는 아무 것도 전하지 않았고, 새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신호는 접수되지 않았다. (pp227~228)


접수되지 않는 신호에, 소설 속 미군처럼 "댐 잇! 페이 노 어텐션!"의 무대응으로 대응할 것이 아닌, 그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일종의 '반응'을 내야 한다는 (뭐랄까) 이런 시대를 독자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작가로서의 의무 같은 것이, 혹은 그러한 '반응'을 보내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이, 작가 김훈으로 하여금 이 소설을 쓰게 하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 봅니다. 딱히 '행복한'이란 형용사로 표현할 수 있는 등장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행복하지 않은 사회가 아닌, 행복하지 않은 사회이기에 그 속에서 살아가고/내고 있는 모두가 행복하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일종의 (자기 최면스러운) 위안이나마 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건 마치, 


"나는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서 짖기로 했다. 짖고 또 짖어서, 세상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눈부시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 인간이 인간의 아름다움을 알 때까지 나는 짖고 또 짖을 것이다."


- 김훈, 위의 책 중 p6.


한 마리의 '개'로 분신했던 작가가 인간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바로 그 메시지와 동일한 바로 그것이 아닐까... 뭐 그런 추측말입니다. 


………………………………………………………………………………… 

 

"님아 강을 건너지 말랬어도 / 기어이 건너려다 빠져 죽으니 / 어찌하랴 님을 어찌하랴"


- 여옥의 노래


우리 역사상 최초의 문학작품이라 배웠었던 기억이 나는, 이름 모를 백수광부(白首狂夫)의 아내 혹은 여옥이란 여인이 지었다는 고대 가요를 이 작품의 제목으로 쓴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 소설을 다 읽고나니 더 궁금해졌습니다. 연애소설이 아님이 틀림없는 이 작품에 도대체 왜... 그러다 문득, 


노래의 화자인 여옥은 님을 죽게한 '강'과, 굳이 그 강에 들어간 '님' 중 누구를 원망했었을까, 혹 그런 선택을 한 님을 사랑한 '자신 스스로'를 원망한 것은 아니었을까란 의문이 들더군요. 이에 대한,


제멋대로의 이해/해답을 적어보자면, 이 작품의 제목을 '공무도하'로 삼은 작가 김훈은 아마도 --- 제 3자적 관점에서 '님'과 '여옥'의 관계를 원망했던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가져 봅니다. '님'과 여옥이 연인 관계가 아니었다면 최소한, (측은지심의 인류애적 뭐시기는 애초에 차지하고)  (치기어린?) 백수광부의 익사에 대한 여옥의 슬픔은 아예 존재하지/생겨나지 않았었을테니까요.4 그렇지 않고서는,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 나는 그 관계의 윤리성과 필연성을 불신한다. (p325)


뭔가 섬뜩한 느낌마저 선사하는, 책의 마지막에 실려 있는 <작가의 말>에 등장하는 위 혐오와 불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읽어본, 작가 김훈의 작품들 :」·「남한산성」·「칼의 노래」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지금 이 블로그에 와있는 당신에게마저 여하한 구실로라도 '나를 아는' 이란 형용사를 붙여 --- 꼭 한번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은 책들의 제목 앞에 ★표시를 붙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시이겠지만 가끔은, 타인의 주관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1. "하는 짓이 보기에 매우 치사하고 더러운 데가 있다." - 네이버 국어사전
  2. "떼를 지어 모여 있는 많은 사람" - 네이버 국어 사전
  3. 같은 뉘앙스의 구절을 이 작품 속에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관리청 주무 이사관은 보충설명에서 존재와 존재가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을 때 도시의 품격은 유지되는 것이며, 이 떨어짐은 전체의 실용성과 개별적 존재의 품격을 동시에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p266)
  4. 에피톤 프로젝트의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속 노랫말 - "나 그대가 아프다 / 나 그 사람이 미안해, 나 그 사람이 아프다" - 도 결국은 '사랑'이라는 관계에서 비롯된 아픔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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