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경영전략 논쟁사」는 앞서 읽었던「전략수립의 신」의 2장 1절, '전략은 어떻게 변해왔는가?' 속, 단 7페이지로 기술되어 있는 내용을 무려, 450여 페이지에 걸쳐 설명해주고 있는 책입니다. 책의 영문 원제는 '50 Giants of Strategy' 이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132명, 책은 72권, 회사는 110개사였다. 대략 20세기 초엽부터 시작된 100년의 경영전략 역사를 살펴보며 그 과정에서 출현한 90여 개의 경영전략 콘셉트를 소개했다. 그 배경, 그리고 흐름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함께. (p443)
살벌한 (50명을 뛰어넘는) 수의 인물들과 이론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내용과 실물의 적지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 이 책은, 경영학에 대한 매우 기초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는 저에게도, 그 어느 문학작품도다도 훨씬, 흥미롭고 속도감있게 읽혀졌습니다.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경영전략 이론의 변천사라 할 수 있겠으나, 넓게 보자면 경영학의 학문적 흐름, 더 나아가 (비록 미국이 주된 무대이긴 하나) 경제와 산업의 흥망성쇠를 다룬, 매우 흥미로운 역사책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완벽하게 수행해주고 있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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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과거'를 되돌아볼 때 우연을 싫어하며 필연을 좋아한다. 미래에 대해서는 '확률적', 즉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우연이 좌우함을 알면서도 어째서인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은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현재의 자신이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결론(과거와 현재의 연결)에 대해 제멋대로 이유를 만들어 그것을 필연으로 해석하고 만다. …… 요컨대 인간은 현재와 과거를 필연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동물이다. …… 이것이 후광 효과(Halo effect)이다. 우리는 실적이 좋은 기업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훌륭하다고 믿는다. 조직도, 문화도, CEO도 전부. 인간은 결과에 현혹되어 과정을 망각하는 생물인 것이다.(pp355~357)
'병 나음받은 자의 간증'이라 제가 적었던 내용과 거의 비슷한, 말하자면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는, 오로지 결과만을 중시하는 논리에 대한 (일종의) 비판으로도 이해될 수 있는 인용문입니다. ('정확한' 예인지에 대한 자신은 없습니다만) '쉬운' 예로, 토너먼트에서 A조 1위를 차지한 팀이 B조의 꼴찌팀보다 '반드시' 강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처럼 --- 비록, 현재의 경영학 이론들이 과거 이론들의 부족한 점들을 보완 혹은 반박하는 과정에서 탄생되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현대의 이론들만 알면 된다라는 사고(logic)는 누구든 쉽게 수긍하기 어렵듯, 저자 미타니 고지는 '오리지널의 힘!'과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두 가지 이유로, 우리가 과거 이론들의 변천사에 대해 반드시 학습하여야 함을 설득하고 있지요. 그리하여/그렇게...
이 책을 읽으면서, 다 읽고 난 지금 제가 느끼는 바는 --- 이전에 읽었던 세 권의 경영 전략 관련 책들의 감상문을 죄 지워버리고 싶다,라는 것입니다. 오리지널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들에 대한 지극히 간략한 설명만 읽고 얻었던 그 피상적이고 얄팍한 지식을 바탕으로 쓴, 그럼에도 '배움'과 '깨달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었던 것에 대한 창피함 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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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십 년 사이의 경영 전략사(史)를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하면 '1960년대에 시작된 포지셔닝파가 1980년대까지 압도적인 우세를 자랑했지만 이후는 케이퍼빌러티(조직·인간·프로세스 등)파의 우세'라고 할 수 있다. 아주 단순하다. …… 포지셔닝파는 '외부 환경이 중요하다. 이익이 나는 시장에서 이익이 나는 위치를 차지하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라고 단언하며, 케이퍼빌러티파는 '내부 환경이 중요하다. 자사의 강점을 보이는 곳에서 경쟁하면 승리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서로 '저쪽의 전략론은 기업을 망칠 뿐이다'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pp6~7)
저자의 표현대로,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위와 같습니다. 이러한 뼈대를 바탕으로 각 이론들에 대한 배경과 설명이 곁들여져 있으며, 이론의 중대한 변천에 기여한 여러 인물들의 주장이, 너무도 적절하게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450여 페이지의, 책장에 꽂아놓기에도 무지 있어보이는 (하물여 제목마저도 있어보이는!) 하드커버로 된 한 권의 책이 되어 있지요.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감상문을 쓰는 건, 제 능력 밖의 일이기도 하거니와, 그다지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직접 읽어보시길 강력히 추천해드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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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연구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게 해준 것은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어떤 입문서였다."
- 이토 고이치로,「데이터 분석의 힘」중 p224, 인플루엔셜, 2018.
저자 미타니 고지는 독자들이 이 책을 '①교과서처럼 이용, ②사전처럼 이용, ③백과사전처럼 이용, ④이야기책으로 읽기'와 같은 방법으로 각자의 효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적고 있습니다. 다 읽고 난 지금, 적어도 저에게는 위의 네 가지 모두의 방법으로 내내 이용될, --- 이 책에서 알게 된 좀 더 전문적인 책들을 읽기 전 복습의 용도로, (이 가능성이 극히 낮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현실 업무에서의 응용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적잖이 사놓은 경영 전략 관련 책들을 읽고 난 후의 분류를 위한 용도 등등, 정말이지 손때가 묻을 정도로 애용하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다만,
이런 책이 (혹 제가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통계학에서도 그러하였듯, 일본에서 발간되었다라는 점이, 한없는 부러움을, 한편으로는 국내 학계/출판계에 대한 (비난 깃든) 아쉬움을 안겨주기는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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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is obvious. Once you know the answer. (p354)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국내에는「상식의 배반」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던 던컨 와츠의 책 원제입니다. --- (이 책,「경영전략 논쟁사」를 포함하여) 경영학 책과 HBR, DBR 등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례 article 등 또한 어쩌면, 이미 알려져 있는 답(경영 성과 등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그것을 (사후적으로) '해석'하는 내용들일 수도 있다라는 (경영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일 수도 있을) 생각을 해보게도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자(管子)는 '오늘날의 일에 의아함이 있으면 옛일을 살펴보고, 훗날의 일을 모르겠으면 과거를 돌이켜보라'고 했다. 과거는 시대를 초월해 현재의 미래의 물음에 지표를 제시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교훈을 거울삼아야 한다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강조되었던 바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과 교훈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며 모든 경우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황석공은 옛일을 모조건 따라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옛일을 헤아리되(推古) 오늘날의 상황에 맞는지 따져 물어볼(驗今) 것을 강조하였다. 과거의 경험을 더듬어보아 오늘날에 적용이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작은 것에 얾매이지 않을 수 있다. …… 과거의 경험과 교훈은 참고가 될 뿐이지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 과거에 눈을 돌려보면 무수히 쌓여 있는 수많은 지식과 지혜를 만나게 된다."
- 황석공,「소서 : 삶의 근원은 무엇인가」중 pp102-103, 동아일보사, 2015.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저의 한계는, 기존의 것을 온전히 이해하여 유용하게 적용해볼 궁리라도 해야하지 않겠냐는 쪽을 결국엔 선택하게 하네요. 오랫만에 저에게 새로운 학문에의 지적 도전이라는 자극을 준 한 권의 책을 만날 수 있어 무척이나 즐거웠었던 6월의 시작이었습니다.
※ 읽어 본, (감상문은 지워버리고 싶은) '경영 전략'에 관한 책들 :「개싸움판에서는 고양이가 돼라」,「프라이싱 전략」,「전략수립의 신」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지금 이 블로그에 와있는 당신에게마저 여하한 구실로라도 '나를 아는' 이란 형용사를 붙여 --- 꼭 한번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은 책들의 제목 앞에 ★표시를 붙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시이겠지만 가끔은, 타인의 주관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