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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평점 :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아담과 하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첫 아들인 카인은, 최초로 잉태에 의해 태어난 인간이지요. 그런 카인이 자신의 동생 아벨을 죽인 살인자가 된다라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 기독교 신자인 저에게 뿐 아니라,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예의 뭔가 하나님의 계획이 불완전한 것이 아니었었나?라거나, 혹은 모든 미래를 알고 계신다는 그 분의 정의(定義)와는 들어맞지 않아 보이기만 합니다. 암튼!!!
『예수복음』을 통해 기독교의 근본교리에 대해 정면으로 '인간으로서 가져볼 수 있는 의문' - 하나님은 과연 절대 선(善)인가, 절대 선이라는 것이 과연 유일한 존재로 성립가능한 것인가 - 을 던져주었던 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이 작품 『카인』을 통해 또 다시 제기하고 있는 '인간으로서 가져볼 수 있는 의문'들은 예의! 기독교 신자인 저에게도 너무나 진지한 흥미를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어쩌면 ---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전하고자 하려는 기독교가 반드시 답해내어야만 하는 것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안겨 주기도 했습니다. (만약 이 작품에 대해 기독교가 '뭐 이딴 책을 읽고 그래?'라 반응한다면 그건 --- 내 믿음과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나의 믿음을 전하고자 하는 기독교의 노력과는 스스로 모순을 일으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이 '불신지옥, 예수천국'만으로 타인의 믿음을 바꾸어낼 수 있는 세상은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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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동산에서의 창조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다들 알고 있듯이,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다는 이유로 에덴동산에서 쫒겨나게되지요. 이때의 장면을 묘사한 "냄새나는 동물 가죽을 입고 휘청거리는 다리로 비틀거리며 걷는 아담과 하와는 처음으로 직립한 오랑우탄 두 마리와 비슷해 보였다"(pp20-21)라는 문장은 어쩌면 작가가 창조론을 부정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쓰여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갖게도 해줍니다. 물론 성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라 쓰고 있으나, 이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와 과연 현재 인류의 모습과 동일할 것이라하는 것에는 아무래도 의문부호를 달 수 밖에는 없지요. 더 크게 보자면 --- 어차피 창조하실 꺼라면, 그냥 iphone 6S로 시작되는 세상을 창조하실 것이지 문명 제로의 세상을 창조하셨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기독교는 진화론에 대해서도 충분히 친절한 입장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싶다는 겁니다. 암튼!!!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에 대해 여호와는 "너는 선과 악 사이에서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악을 택했으니 대가를 치러야 한다"(p40)라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해 카인은 강하게 저항을 하지요. "망을 봐주려고 자리를 뜨지 않은 사람도 실제로 포도밭에 들어가는 자와 마찬가지로 도둑입니다."(p40) --- 이렇게 카인이 하나님의 전지(全智)함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자 도전을 한다라는 것이 바로 이 작품 전반의 스토리가 전개되는 방식입니다.
카인은 '에덴의 동쪽'인 놋 땅으로 쫒겨나지만 여호와는 카인에게 누구라도 그를 죽이지는 못할 것이라는 보호의 울타리를 쳐줍니다. 왜 그러했을까요? 이에 대한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해석은 예의 도발적입니다.
아벨의 죽음에 대한 우리의 공동 책임에 기초한 약속이라고 하자. 그러니까 이 책임에서 주의 몫을 인정한다는 겁니까. 그래, 인정한다, 하지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이것은 하나님과 카인 사이의 비밀이 될 것이다.(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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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작가는 카인이 성경 속 여러 사건들의 참가자가 된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 ①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는 순간, ②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③시나이 광야에서의 우상숭배, ④욥의 시험, 그리고 마지막으로 ⑤노아의 방주 등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성경 속 사건들입니다. 그 사건들의 마지막에 작가는 카인의 입을 빌어, 이 사건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아주 강하게 비난하고 있지요.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하셨다라는 것에 대해 카인은 말합니다. --- "여호와가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데, 왜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신뢰해야 하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습니다"(p163) 이러한 믿음의 불평등함은 결국 카인으로 하여금 신이 인간을 대상으로 지니고 있(다고 말해지)는 권리에 대해서까지 의문을 던지게 합니다.
하나님이 단지 하나님이라는 이유로 그의 신자들과 사생활을 지배하고, 규칙, 금지, 금제를 비롯한 다른 터무니없는 것들을 세울 권리가 있다는 이상한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겁니까.(p191)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하나님의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시험(test)의 극치로 '욥'의 이야기를 들고 있습니다. --- 『예수복음』에서 주제 사라마구는 하나님의 선함은 절대선이 아닌, 사탄이라는 악의 존재가 있기에 성립된다라 말했었지요. 사탄이 회개하고 악으로서의 역할을 그만두겠다라 했음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선함을 세상에 보여줄 도구로서 악의 존재를 필요로 했기에 그 사탄의 청을 거절한다라는 겁니다. 이러한 인식은 이 작품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全智)함에 의해) 욥이 끝내 자신을 향한 믿음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사탄으로 하여금 욥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을 허락하셨었지요. 작가는 이것을 '선과 악 사이의 암묵적 공모'(p167)라 명시하며, 사탄, 그러니까 악의 존재는 하나님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는 (『예수복음』에서와 같은) 주장을 합니다. (카인은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이 내기에서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욥에게 과연 무슨 죄가 있었던 것일까,라는 의문을 던집니다. 이에 대한 다른 책의 대답은 역시나 애매하게 끝맺음하고 있더군요. --- "왜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가?" 구약성서 욥기의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부자이면서도 고결한 품성을 가진 욥은 신의 시험을 받는다. 신이 사탄에게 시켜 욥에게 온갖 종류의 고통을 준 것이다. …… 신은 선한 사람들이 왜 고통을 받는지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 신은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다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나를 믿어라"는 식으로 말한다. - 『교양인을 위한 바이블 키워드』,p420.)
사탄이 여호와의 또 다른 도구에 불과한 것처럼 보여요,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넣고 싶어 하지 않는 더러운 일을 하는 도구 말이에요.(p169)
카인에게 (즉, 작가 주제 사라마구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독재는 악한 것 보여지게 됩니다. 우선! --- 모세가 40여일 간 시나이 산에 올라가 있던 사이, 사람들은 황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었고, 하나님은 이들을 가혹하게 죽이라 명령하시지요. 결국 삼천 여명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는데, 이를 카인은 '그의 사악함을 명백하고 논란의 여지없이 보여주는 증거'(p122)라 말하지요.
단지 황금송아지를 만든 것에, 그런 경쟁자로 여겨지는 존재를 만든 것에 여호와가 분노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삼천 명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형제를 하나 죽였는데 여호와는 나를 벌했다, 정말 알고 싶은데, 이 모든 죽음에 대해 누가 여호와를 벌할 것인가, 카인은 생각했다. 루시퍼가 하나님에게 반역한 것은 정말 옳은 일이었다, 그가 질투 때문에 그리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틀렸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악한 본성을 인식했을 뿐이다.(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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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이후 열 세대 안에 하나님이 만든 세상은 알아볼 수 없게 됐다. 모든 종류의 죄가 넘쳐 온 땅은 "포악함이 가득"했다(창 6:11). 사람들의 마음은 물론 행위도 타락했다. 이것이 비극이었고 하나님은 인간을 만든 일을 비통해했다. 수 세대 동안 인내한 하나님은 대홍수를 일으켜 세상의 모든 인류를 쓸어버리고 새로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 하리니"(창 6:7).
- 『The illustated BIBLE』, p42
하나님께서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신 것일까요? 쉽게 말하자면, 다시 새 판을 짜겠노라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카인은 "정말로 지금 인류를 멸하고 나면, 그 다음에 나오는 인류는 똑같은 오류, 똑같은 유혹, 똑같은 어리석음과 범죄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p189)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리하여 결국!
그는 하나님의 계획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를 실행에 옮김으로써, 저항을 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 하나님의 악함에 대한 그의 투쟁은 완전한 승리를 거두게 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승리의 변(辯)을 하나님께 통고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맺음되고 있지요.
한 인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인류는 없을 것이고,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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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의 역사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오해의 역사이니, 하나님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p1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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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은 이처럼 의외로 단순합니다. 하지만! --- 이해하지 못함의 표현을 신께서 분노로 표출하신다 할 때, 우리 인간도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신을 이해하지 못함(혹은 이해할 수 없음)을 표출해낼 수 있다라는 매우 과격하고 도발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지요.
성서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면, 사뭇 이해하기 쉽지 않은 혹은 오해로 귀결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주제 사라마구 특유의 마침표와 쉼표만이 사용된 문장들 역시 처음으로 그의 작품을 접하는 독자에게는 낯설 것이겠구요. 물론! 저처럼 주제 사라마구의 믄장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겐, 다시 한 번 여지없이 짜릿한 재미를 선사해준다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없게 된 지금, 과연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신(神)을 만났을까요?
※ 읽어본 성서에 관한 책들
- 크리스틴 스웬슨 著. 『가장 오래된 교양』
- 나가오 다케시 著, 『유쾌한 성경책』
- 공병호 著, 『공병호의 성경 공부』
- 칼릴 지브란 作, 『사람의 아들 예수』
-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이 바친 동물의 제사는 받으시고, 농작물을 바쳤던 자신 카인의 제사는 받으시지 않았다는 분노에 그가 아벨을 죽였다라 성경은 쓰고 있습니다. 이에 관해, 그러니까 왜 카인의 제사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벨의 제사보다 못했다라는 것인지, 왜 하나님이 카인의 제사는 받으시지 않았던 것인가에 관해선, 성경을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저이기에 잘 알 수 없습니다. 『가장 오래된 교양』은 이에 대해 '아벨은 가장 기름진 최상품을 하나님께 드린 데 반해 카인은 그냥 갖고 있던 것을 드렸'(p503)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소개하고 있으며, 『교양인을 위한 바이블 키워드』에서는 '이슬람 전설에 따르면 카인과 아벨은 각각 쌍둥이 누이가 있었는데 신이 카인에게 아벨의 쌍둥이 누이와 결혼하라고 명하자 카인이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쌍둥이 누이와 결혼했다고 전한다. 그 때문에 신이 카인의 제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p496)라는 이설(異說)을 소개하고 있더군요.
- 하나님.
- '어느 날, 현재에서 현재로,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하는 식으로 또다시 그 갑작스러운 시간 여행을 하다가'(p107)
-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헌신은 궁극적인 시험을 통과했다. 그는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하나님을 신뢰하여 하나님이 약속한 바로 그 자녀도 아끼지 아니하고 기꺼이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The Illustrated BIBLE』, p59)
-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자였고 흠 없는 삶을 살았으며 행복한 대가족을 이루었다. 어느 날 사탄이 다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의 회의에 참석해서 '고소인'역할을 맡았다. 그는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유는 단지 이익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욥 1:9)라고 묻는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시험해보라고 허락해주는데, 욥의 목숨만은 남겨둔 채 인생의 모든 좋은 것을 빼앗아보라는 것이었다. …… 사탄이 계속 조르자 욥의 신실함을 믿은 하나님은 사탄에게 그의 건장도 시험해보라고 허락했다. 그래서 욥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욥 2:7) 종기가 나서 괴루움을 겪게 됐다.(『The Illustrated BIBLE』, pp188-189)
- "왜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가?" 구약성서 욥기의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부자이면서도 고결한 품성을 가진 욥은 신의 시험을 받는다. 신이 사탄에게 시켜 욥에게 온갖 종류의 고통을 준 것이다. …… 신은 선한 사람들이 왜 고통을 받는지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 신은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다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나를 믿어라"는 식으로 말한다.(『교양인을 위한 바이블 키워드』,p420)
- 그러하기에 이 작품에 ★을 붙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그럴 수가 없었다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