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 로또부터 진화까지, 우연한 일들의 법칙
데이비드 핸드 지음, 전대호 옮김 / 더퀘스트 / 201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다가 경찰에게 걸리면 벌칙금을 내야 하지요. 근데 이게 가만 생각해보면 --- 내가 불편해서 안전벨트 안매고 운전하다가 길 옆 벽을 들이박아 (나 혼자!) 다쳤을 때, (따라서) 이게 뭐 누구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1, 그렇다고 안전벨트 매고 똑같은 사고가 났을 때 국가에서 '안전벨트 착용하라 해서 착용했는데도 다쳤으니 미안해!'하면서 치료비를 대주는 것도 아니고2, 그래 '대체 왜 법으로 (불편함을) 강제하고 (그것도 모자라) 범칙금까지 부과하는 거냐?'라고 경찰관에게 묻는다면 과연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있는걸까요? 아마도 '우리 경찰은 법집행기관(law enforcement)이지, 입법기관(law maker)가 아니니 그런 걸 우리에게 따지지 마라!'라는 답변 정도가 아닐까요?

​(범칙금의 부과같은 걸 설명하는 데에까지 '법철학' 같은 게 필요한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건 안배웠으니 모르겠고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경제학적 논리로 생각해보자면 --- 국가가 일 개인의 안위를 걱정해 안전벨트 착용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본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두에게 안전벨트 착용을 강제한다,라 이해가 됩니다. (즉, '당신의 목숨은 하나 뿐입니다'라는 표어로 마치 국가가 개인의 안전을 걱정해주는 듯 보여지지만 사실 '대한민국에게 인적자원은 단지 5,100만 명 뿐이기에'라는 게 진짜 이유죠. 많이 다치고 죽어가다 보면 게 중엔 정말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을테니까요.) 이 논리는 마약 복용 금지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되지요.3 이처럼, 뭔가 내가 규제를 당한다 할지라도, 그 규제의 이유를 알고나 당하면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덜해지듯이! (진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란 제목의 이 책은 '통계학적 사고(思考)'에 관한 소개를 해줌으로써4 --- 흔히 '지극히 일어날 확률이 낮은 것'의 대명사격으로 언급되곤 하는 '걷다가 번개맞는 사고'가 분명 지구상의 누군가에게는 일어났었고, 앞으로도 분명 일어날 것이듯 (지구 위 어느 곳에선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리 상상해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p10)들이 때때로 그러나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부디 당황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게다가 기실 그 사건들은 천지개벽할 '우연'이 아닌, 다 나름의 이유를 지니고 있다5라 말해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저자 데이비드 핸드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우주의 작동에 불규칙한 면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우리는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고, 그 인과관계를 확립하고, 또 배후에 있는 규칙을 이해하기를 원한다. …… 만약 일어날 법하지 않는 사건을 예측할 수 있거나 나아가 통제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위력을 지닌 셈이다.(p28) 

​마치 영화 <Minority Report>에서 보여졌던 바로 그 '엄청난 위력'이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것인 양 이야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저자가 그런 식으로의 '예측과 통제'를 원하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어쨌든 --- "우연의 바탕에 깔린 '원인'들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원인들을 조작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p19)란 의문이, (최소한) 이 책의 초반부에서만큼은 저자가 독자들에게 던져주고 있는 가장 핵심적 메시지로 꼽아져야 한다라 생각합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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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던지기 20번을 해 각 던지기마다 앞·뒷면으로 돈내기를 가르는 게임을 한다 치죠. 19번의 시도에서 앞면이 2번, 뒷면이 17번 나왔다할 때, 20번째의 시도들에서는 '평균적인 확률 1/2로 비추어 보아' 뒷면이 나올 확률이 더 크다!라는 쪽에 돈을 거는 것은 과연 옳은 추론일까요?

통계학을 배운 사람일지라도 일상적/상식적 사고에 의해 순간 '그렇다'란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앞서 19번의 시도에서 뒷면이 17번이나 나왔다는 건 분명 '일어날 수 없는 일'로 여겨지며, 따라서 이 기이한 결과를 결국 '일어나야 하는 일'로 되돌리기 위해선, 간단히 말해 (이 법칙을 알건 모르건) '대수(大數)의 법칙7 Law of Large Numbers(LLN)'에 따르면 '그러하다'라 판단하는 것이 맞는 것처럼 보이니까요.8 그러나!!! --- LLN이 '평균적인 확률 1/2'를 근거로 이 20번째의 시도에서 뒷면에 베팅을 하는 것이 통계학적으로 옳다,라는 걸 의미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1번째 부터 19번째의 동전 던지기가 그러했었듯, 20번째의 동전 던지기 역시 그 이전의 동전 던지기(의 결과)와는 완전하게 독립된 사건(event)이기 때문이지요.9 그렇다면 LLN이 의미하는 바는 대체 무엇일까요?


한 집단에서 무작위로 뽑은 표본들의 평균은 표본들의 개수가 많을수록 집단 전체의 평균에 더 접근할 개연성이 높다.(p231)

즉, 앞서 19번의 시도에서 앞면이 많이 나왔다라는 결과가 '20번째 던지기에서 뒷면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는 추론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라는 것일 뿐이며, LLN이 말해주는 진짜 의미는 단지! --- 전체적으로 "동전 던지기의 총 횟수가 증가함에 따라 (이론적 예측과 어긋난 앞서의 결과들이) 희석되어 미미해진다"(p68)라는, 단지 '개연성이 높다'라는 것 뿐인, 매우 애매모호한 조언이라는 겁니다. (동전 던지기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수학'이 아닌, '통계학'이라는 걸 명심할 것!) 이제 일상에서, 때로는 매우 중대한 판단의 순간에서조차 우리가 자주 혼동하게 되는 또 하나의 경우를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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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이 속담이 '떨어지느냐 마느냐의 임계점(臨界点) 상태에 있는 배가 달려있는 가지 위에 앉아있던 까마귀가 휙~하고 날아오르는 순간 그 반동으로 인해 배가 떨어졌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 다는 전제하에) 하늘을 보니 까마귀가 막 날아오르기 시작하자(A), 저쪽에 있는 배나무에서 배가 떨어지더라(B)라는 동시적 발생이 전국 각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랜 세월동안 보여졌었었기에 무려! 속담의 경지에까지 이르르게 되지 않았을까라 생각합니다. 정말 --- 까마귀가 날자마자(A) 배가 떨어지는 것(B)간엔 모종의 관계가 숨어 있는 것일까요? 

 

한 사건에 이어 다른 사건이 일어나는 일이 놀랄 만큼 자주 반복되더라도, 첫째 사건이 둘째 사건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통계학자들은 이를 '상관성은 인과관계를 함축하지 않는다'라는 경구로 표현한다. …… 시간적 선후 관계는 인과관계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p32)

다시 말해, A라는 사건(event)과 B라는 사건 사이에 일종의 '상관관계'(correlation)'가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심지어는 실제 A와 B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반드시 둘 사이에 '인과관계(causation)'까지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미처 인지해내지 못한 데서 오는 오류라는 겁니다. 이러한 '인과관계(causation)과 상관관계(correlation) 간의 오해'가 극대화되는 경우가 바로 '나비효과'이지요.10 예를 들어,

​'경기(景氣)가 안 좋으면 여성들이 입는 치마의 길이가 짧아진다'라는 속설11을 보죠. 이것이 꽤나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한 관찰의 결과이기에, (그 연관관계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두 요인들을 하나의 문장으로 엮어낼 수 있는 일종의 '상관관계'가 성립된다,라 말할 수는 있을지언정 이 둘 간에 '인과관계(causation)'가 존재한다고, 즉 경기가 안좋아지는 것이 치마의 길이를 짧아지도록 초래(cause)했다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겁니다.12 만약 이게 성립한다면 극단적으로 말해, 대한민국의 경기가 안좋아졌을 때 우린, 음흉한 현재의 재경부 장관을 성욕(性慾)을 초탈한 사람으로 바꾸면 되는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가지게 되는 것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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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에서 --- 자신이 '우연의 법칙13(improbability principle)'이라 명명(命名)한 커다란 틀 속 일련의 법칙들을 이용해, 우리가 흔히 '일어날 법 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어!'라 말하곤 하는 현상들이 기실 우연의 결과가 아닌,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음 혹은 그러할 수 밖에 없음이라는 걸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우선!


저자는 '사건의 확률(probability)'를 "사건이 일어날 법한 정도 또는 사건이 일어날 법하다는 믿음의 강도"(p62)라 정의하며, 이 책에선 "개연성이 매우 낮은 사건, 즉 확률이 0에 가깝지만 완전히 0은 아닌 사건14"(p63)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실제로 발생했었던 '확률이 0에 가까운 사건들'의 적잖은 예들을 들며, 저자는 예의 "개연성이 극히 낮은 일 … 들은 전혀 예측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예상할 수 있고 예상해야 마땅하다. 그런 일들을 설명하기 위해 … 필요한 것은 확률에 관한 기본 법칙들뿐이다"(p57)라는, 노골적으로 이 책의 마케팅을 위한 멘트로 이 책을 시작하고 있기도 하지요.


저자가 '우연의 법칙'이라는 한 이름으로 묶어 낸, '일어날 법 하지 않은 일들의 발생'을 설명해주는 다섯 가지의 법칙들은 다음과 같습니다.15


① 필연성의 법칙(law of inevitability) :  무슨 일인가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사실.16

아주 큰 수의 법칙 : 아주 많은 기회가 있으면, 아무리 드문 일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17

선택의 법칙 : 당신이 사후에 선택한다면 확률을 마음대로 높일 수 있다.18

확률 지렛대의 법칙 : 상황의 미세한 변화로 미미한 확률이 엄청나게 높은 확률로 바뀔 수 있다.

충분함의 법칙 : 일치한다고 간주할 만한 사람들의 범뮈와 사고들 사이의 시간 간격을 확장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기묘한 우연의 일치인 듯한 사건을 목격할 확률을 때로는 아주 큰 폭으로 증가시킨다.

결론만 말해보자면 --- 저자는 이 다섯 가지의 법칙들 중 하나만 작동해도 "한 사람이 여러 번 로또에 당첨되는 일, 금융위기, 예지몽"(p277)등이 일어날 수도 있으나, 이 법칙들이 함께 엮여서 작동할 때 진정함 힘이 발휘된다라고, 즉  '걷다가 번개를 맞은 사람이, 두 주 연속 로또에 당첨되고, 2년 터울의 네 딸들이 모두 8월 3일에 태어나는 일'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라 말해주고 있습니다...만!!!


뭐 그렇다 믿어주기로 하려해도 선뜻 믿어지지 않는, 천지개벽할 우연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우연한 일들의 법칙19"이다라는 게 결코 이 책을 통해 (출판사는 그렇게 마케팅을 하고 싶었겠으나) 저자가 하고 싶은 주장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럼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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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212-213에 실려 있는 '검사의 오류(prosecutor's fallacy)'에서 잘 설명되어지고 있듯 "확률에 대한 직관적 이해가 부정확"(p210)하기 때문에 우리의 혼란/혼동이 시작되는 것이며, 잘못된 판단/결론을 내리게 되는 거라는, 즉! --- 사회 현상들에 대한 판단에 있어 아주 많은 경우, 확률(좀 더 넓게 보자면 통계학)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하며, 이것만이 아니라 사회 현상의 기저에 깔려 있는 논리적 구조를 알 수 있어야만 정확한 이론(理論)의 적용이 가능한 것이라는, 한 마디로 '조금만 알고 나면 별 놀랄 일 아니고, 좀 더 많이 알고 있다면 꽤 정확한 예측도 할 수 있게 된단다'로 이 책을 정리해 낼 수 있다 생각합니다. 여기까지가 이 책이 지닌 장점이라면!


저자는 통계학의 배후에도 매우 정교한 이론(theory)들이 자리하고 있다라 설명을 전개해가고 있습니다만, 기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법칙들'은 2학기짜리 통계학 수업 내용 속에 모두 다 들어있는 것들이지요. 경제학에서도 그러하듯, 기본적인 가정(假定)들을 조금씩만 완화시켜 놓고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뭔가 되게 멋있고 심오한 내용으로 들리는 것처럼 --- 이 책에 담겨 있는 저자의 주장들 역시 딱히 새로운 것이 아닌, 기본적 확률론/통계학의 서술 그리고 적절한 분량으로 가미된 '가정의 완화'를 통한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설명'들이 전부일 뿐이라는 건, 어쩌면 대중교양서가 지닌 근본적 한계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도 됩니다.20 어쨌든!!!

책의 한국어 판 제목관 달리, 통계학/확률론의 근원적 한계는 예의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한다'라 말하는 것이 차리리 솔직한 의견이다라는 걸 보여주는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 수학과 통계학의 가장 근본적 차이점, (단지 차이점일 뿐 이것이 두 학문분야간의 우열을 말하는 건 절대 아닌)이기도 하겠구요.


※ 통계학에 관한 꽤 괜찮은 일반 입문서 : 최제호 著, 「통계의 미학」, 동아시아 刊, 2007.





 

  1. 안전벨트의 착용여부는 전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위함이지, 설혹 차량 대 차량의 충돌이 발생했다 해도 내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 해서 상대방 차량의 탑승자의 상해 정도가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요.
  2. 물론, 의료보험혜택이란 게 있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내 돈이 들어가 있는 것이니 국가의 선심(善心)과는 거리가 좀 있지요.
  3. 전인권 C가 제 아무리 '내가 골방에서 혼자 대마초 피우고, 그로 인해 영감이 떠올라 좋은 노래를 작곡해내는데, 왜 감방엘 가야 하느냐?'라 묻는 것 자체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지만, 국가가 국민 전체를 상대로 그처럼 각 개인의 사정을 보아가며 법을 적용할 수 없기에 그냥 일괄적으로 '대마초 피우는 사람은 감방행!'이란 기준을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대마초 피우고 깽판 치는 사람들이 명곡을 작곡해내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말입니다.
  4. 이 책이 통계학 교과서는 절대 아니나 어느 정도의 통계학 지식을 지니고 있는 독자에게,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보다는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꺼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만, 사실은 '통계(학)'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사고(思考)'의 방식(way of thinking)을 배울 수 있는 것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합당하다라 생각합니다.
  5. 맞는 이유라도 알고 맞으면 덜 억울하지 않겠니, 뭐 이런 거죠.
  6. 다만, 책을 다 읽고나서 되돌아볼 때, 과연 그 정도 수준 - 원인들을 조작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는 - 에 도달한다는 것이 본질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들기는 하더군요. 이 책에 대한 저의 생각을 미리 말해보자면 --- '신도 주사위를 던진다!'
  7. 이 책에선 '큰 수의 법칙'으로 번역되어 있더군요. 이 책이 통계학 교과서가 아님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이지요.
  8. "우연한 사건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사건도 모종의 규칙성을 띨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은 만만치 않은 지성의 도약을 요구한다. 동전 던지기에서 앞면과 뒷면 중에서 무엇이 나올지는 전혀 모르더라도 동전을 1,000번 던지면 500번쯤 앞면이 나옴을 깨닫는 것은 엄청난 개념적 진보다. 이 깨달음은 중력이 모든 물체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보편적인 힘이라는 깨달음에 못지않는 지적 발전이다. 이 지적인 진보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우연한 사건의 속성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예컨대 동전 던지기를 하는데 처음 열 번의 시도에서 앞면이 뒷면보다 더 많이 나온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다음 시도들에서는 뒷면이 더 많이 나와서 균형이 회복되리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이 생각을 틀렸다. 이 오해는를 워낙 만연해서 '도박꾼의 오류 (gambler's fallacy)'라는 명칭까지 얻었다."(67)
  9. 즉, 그 이전의 던지기에서 어떠한 결과가 나왔었든 20번째의 동전 던지기는 그 이전의 결과들과 완벽하게 무관하다는, 그러니까 20번째의 동전 던지기에서도 여전히 앞면이 나올 확률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각각 1/2인 것입니다.
  10. "나비효과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나비의 날갯짓이 허리케인의 원인이라고 서술한다면, 이는 '인과'개념을 지나치게 확장하는 처사일 것이다. 나비의 날갯짓과 허리케인을 연결하는 사슬은 엄청나게 많은 중간 사건들의 사슬을 포함한다."(pp93-94)
  11. 이 책에서 저자는 제가 선택한 단어 '속설'을 '미신, 종교, 예언'등으로 세분화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12. "실재(實在)하는 인과관계를 반영하는 패턴과 그렇지 않은 패턴을 구분하는 능력 … 과학은 이 능력을 키우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일 따름이라고 할 수 있다. … 우리 눈에 띄지만 어떤 원인도 없고 단지 우연인 패턴은 보통 미신의 기반을 이룬다. 미신이란 실재로는 없는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예컨대 도박판에서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입맞춤을 하면 6이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는 믿음 … 은 미신이다."(p30) …… "일단 형성된 미신은 저절로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 사람들은 자신이 품은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와 사건에만 주목하고 반례는 무시하곤 한다. 이런 경향을 일컬어 '확증 편향 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예컨대 내가 검은 고양이를 본 다음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는 사실을 검은 고양이를 보면 불길하다는 증거로 간주하면서, 검은 고양이를 보고도 넘어지지 않은 경우들은 무시하는 것이 확증 편향이다."(p34)
  13. "이는 우리가 예상 밖의 일을 예상해야 함을 알려준다."(p10)
  14. "불가능성과 가능성의 경계에 위치한, 정말로 흥미로운 사건"(p63)
  15. 각 법칙에 대한 개괄적 내용은 각주로 돌리겠습니다.
  16. "만일 당신이 가능한 모든 결과들의 목록을 완전하게 작성한다면, 그 결과들 중 하나는 반드시 나타난다. 그러나 가능한 결과들의 목록에 등재된 결과 중 하나가 반드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 그 결과가 어떤 것일지는 모른다."(p99) …… "이 법칙에 따르면 가능한 결과들 각각이 발생할 확률은 아주 작더라도, 그 결과들 중 하나는 확실히 발생한다. 필연성의 법칙은 개연성이 극히 낮은 사건을 확실한 사건으로 만든다."(pp277-278)
  17. "아주 큰 수의 법칙은 기회들의 개수가 아주 많으면 아무리 이례적인 일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당신이 주사위들을 한 움큼 쥐고 던지기를 충분히 오래 반복하면, 언젠가는 모든 주사위에서 6이 나올 것이다. 한 움큼의 주사위들을 한 번 던졌을 때 모든 주사위에서 6이 나올 확률은 아주 낮더라도, 충분히 많은 기회가 주어지면 그 사건의 발생은 거의 불가피해진다."(p278)
  18. pp104-106에 등장하는 '주식으로 돈 벌기'가 가장 극명한 예.
  19. 이 책의 제목 앞에 붙어있는 문구.
  20. 예를 들어, 초중급 통계학에서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으로 사용되고 있는 '중심극한정리(CLT : Central Limit Theorem)'의 가정을 완화시켜 '확률 지렛대의 법칙'이란 것이 결국 '예외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예외가 아니다'라 설명하는 방식처럼,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다섯 가지의 법칙들을 하나하나 곰곰이 따져보면 결국엔 우리가 '우연'이라 생각하는 것의 정의(定義)와 저자가 제시하는 우연의 정의가 혹 다른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에 이르르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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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 신경숙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9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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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어제 어느 동네에서 얼마짜리의 어떤 메뉴로 저녁을 먹었는가가 나도 모르게 문득 궁금해지게 되는,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나의 오늘 하루엔 어떤 일이 있어났었으며, 그로부터 나는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되었던가를, 혹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란 어떠한 각도로 자리잡고 있는가 등등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은연중에, 때로는 심지어 뭔 의무감스런 의도로 보여주고 싶다,란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 --- 이러한 '관음증과 노출증' 그리고 그 둘의 적절한 비율의 결합이야말로 제가, 그리고 당신이 여전히 이 곳, 블로그란 곳에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고 이웃을 맺고 클릭을 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라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문학 작품이란 것이 독자 스스로 '자신의 일상적인 경험과 상상력에 기초해1' 그것을 읽어 내고, 그것을 통해 '자기가 일상에서 느껴온 것들을 찾고 싶어'하며, 결국엔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어떤 생각과 감정을 일깨'우게 된다라는 관점이 문학에서의 (일종의/제 표현대로의) '관음증'을 표현하고 있다라면,


어느 시절에나 은밀한 비밀들이, 그 시절에 살아가고 있었던 게 아니라 죽어가고 있었다 해도 겨운 추억들이, 지독한 악취가 끊이지 않는 골목에서도 포동포동하고 푸르스름한 눈빛을 한 아이가 자라고 있듯이, 피로한 푸른 작업복 속에서도 우리들의 가슴이 흰 토란같이 단단해졌듯이, 어느 시절에나 은밀한 추억들이.(p261)

이러한 일 개인의 은밀한 비밀과 추억들을 털어놓게만 되는/털어놓고 싶다란 마음이 드는, 그리하여 작가 스스로의 표현대로 "이 글을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p11,p511)로라도, 이러한 표현을 한 작품의 시작과 끝으로 적어놓았을만큼의 주저스러움을 결국엔 이겨내고, 그 비밀과 추억들을 세상에 털어놓게 되는 건 아무래도 '문학'이란 것이 작가/인간에게 강요하는/유혹하는 '노출증'의 일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뭐, 관음증이나 노출증 같은, 뭔가 야사시한 표현이 저의 한계인 반면! --- 이 작품 「외딴방」의 작가 신경숙의, 추측컨데 그녀가 이 작품을 통해 펼쳐놓는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 속 시대를 살았던 혹은 살지 않았던 모든 독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굳이 꺼내어 놓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라 생각되었던 표현은 이러하지요.

 

 

 

 

 


미래소설이나 가상소설이라고 처음부터 작정을 해둔 게 아니면 글쓰기는 결국 뒤돌아보기 아닌가. 적어도 문학 속에서는 지금 이 순간 이전의 모든 기억들은 성찰의 대상이 되는 거 아닌가. 오늘 속에 흐르는 어제 캐내기 아닌가. 왜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지금 내가 여기에서 무얼 하려고 하는지 알기 위해서.(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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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으로 걸어들어간 건 열여섯이었고 그곳에서 뛰어나온 건 열아홉이었다. 그 사 년의 삶과 나는 좀처럼 화해가 되지 않았다.(p76) …… 나는 침묵으로 내 소녀 시절을 묵살해버렸다. 스스로 사랑하지 못했던 시절이었으므로 나는 열다섯에서 갑자기 스물이 되어야 했다. 나의 발자국은 과거로부터 걸어나가봐도, 현재로부터 걸어들어가봐도 늘 같은 장소에서 끊겼다. 열다섯에서 갑자기 스물이 되거나 스물에서 갑자기 열다섯이 되곤 했다. … 오랫동안 나의 소녀 시절이 나에게 남긴 가족 이외의 타인과의 관계는 무(無)였다. (p509)

"어서 이 무료한 고장을 떠나 도시의 큰오빠에게로 가는 것. 거기에서 누군가를 만나 그로 하여금 너를 알게 돼서 기쁘다는 말을 듣는 것"(p13)이 꿈이었던, 일견 평범하다 말할 수 밖에 없는 열여섯 살의 한 시골소녀가, 그로부터 열여섯 해가 흐른 뒤 되돌아보는 자신의 열여섯 살부터 4년 간의 기간을 위와 같이 말할 수 밖엔 없다라는 건 결코 평범하다 말해질 수 없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그 시절을 살아온, 대부분의 소년, 소녀, 청년들, 그리고 성인들 모두에게 '그때 그 시절'이라는 게 평범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 일반적으로 일컬어질 수 있겠는 '평범할 수 없었던 그때 그 시절'의 의미가 아닌!!!

서로 다른 친구를 사귀면 토라지고 나뭇잎 같은 거 말려서 그 뒷면에 그애의 이름을 써넣고, 자전거 하이킹도 가고, 밤새 편지를 써서 그애의 책갈피에 몰래 끼워넣고 …… 내게는, 그리고 내게 전화를 걸어온 그녀들에겐, 그런 시절이 없었다. 토라질 틈도, 나뭇잎을 말릴 틈도 우리들 사이엔 없었다. 우리들 사이엔 봉제공장, 전자공장, 의류공장, 식품공장 들의 생산부 라인이 존재했다.(p23)

위와 같은 의미로서 '그런 시절이 없었'던 그녀들이, 여기에 더해 --- 경주로의 수학여행을 가서 서로에게 느꼈던 다음의 감정 역시, '그때 그 시절'을 살았던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곧 어색해진다. 햇빛 때문이다. 저녁에만 형광등 불빛 아래서만 보던 얼굴을 환한 햇빛 아래서 마주친 어색함. 낮에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우리들은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몰라 어색하게 천마총이나 보고 있다. 첨성대나 보고 있다. 경주의 남산에나 오르고 있다.(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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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자신인) 소설 속 화자(話者)는 자신의 과거를 단순히 연대순으로 서술하지 않고, '그때 그 시절'인 과거와 여전히 '그때 그 시절'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현재를 왔다갔다 합니다. 그렇다고 시·공간을 넘나드는 화려한 서술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작품 속에 담겨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 소설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화자 스스로의 문체, "단문. 아주 단조롭게. 지나간 시간은 현재형으로, 지금의 시간은 과거형으로. 사진 찍듯. 선명하게."(p46)라는 기조는 (적어도 3부의 중반 무렵까지는) 계속 이어지지요.2 암튼, 이와는 별개로,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가장 커다란 매력은 바로! 

화자(話者)의 '그때 그 시절' 이야기 속에는, 결국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표현해내고자 했던 이야기들 속에는, 독자들에게 '그때 그 시절'에 대한 그 어떠한 가치판단을 요구함이 전혀 들어있지 않다라는 점이었습니다. 심지어! --- 화자 자신마저도, 그러므로 작가 자신마저도 '그때 그 시절'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고 있지 않다라고 여겨지기도 하지요. 그저!

"이보다 더 일할 수는 없어. 하루는 24시간뿐이니까. … 이다음에 마당이 있는 이층집에서 살 수 있을까? 예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pp175-176)라는 현실과 (아마도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소망을 지니고 있는 희재 언니나, 하루에 캔디 이만 개를 포장해야하는 안향숙이나, 스물여섯의 나이에 야간고등학교엘 다니게 된 김삼옥에게 "교복은 너무 소녀스럽고 그녀의 얼굴을 너무 피로에 젖었다"(p159)란 느낌을 받았었던 화자는, 자신 역시 컨베이어 앞을 떠나도 되는 오후 다섯 시를 사랑했었던 1979년 그때를, 그때의 그녀들은 그저 "살아가기 위해서"(p209) 각자의 꿈을 가지고 살아내었을 뿐이라고만 말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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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의 동터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 장 그르니에

"매일 잔업, 특근을 할 때가 나았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이 컨베이어가 돌아갈 때가"(p328)의 구절만으로, 작가의 시대정신을 비판할 독자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 사회 전체적인 혹은 구조적인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도 같았다,고.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고"(p209) 털어놓는 화자 개인이 그렇게 이후 그녀가 살아오며 이루어낸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었던 '그때 그 시절'을 살아낸 그런 이야기이지요. 그러하기에!


나는 그런 것들3보다는 그때 연탄불을 잘 타고 있었는지, …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 그때 내가 정말 싫었던 건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 뭇국을 끓이려고 사다놓은 무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이었어. 눈이 내린 아침에 수돗물을 틀었을 때 말야, 물이 얼지 않고 시원스럽게 나와주면 너무 좋았고, 안 그러고 얼어서 나오지 않으면 너무 싫고 그랬어.(p245)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라든가, '그건 옳은 태도가 아니다'란 비판을 받게된다 해도 전 --- 이 작품을 읽어가는 동안만큼은 결코! 작가 신경숙과 '표절'이란 단어를 함께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의도적 외면때문이 아닌, 그저 읽다보니 빠져들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엄마를 부탁해」에선 '엄청난' 감흥이 아닌, '오래 갈 듯한' 감흥만을 느낄 수 있었던) 신경숙이란 작가를 「외딴방」만의 작가로 대하게 되었었기 때문이지요.

독자에게 작가가 대놓고 요구하는, 심지어 강요하기까지 하는 메시지는, 설혹 그것이 백번 옳다라 하여도 예의 적잖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아무 것도 강요하는 것 없는 이 작품은 오히려! --- 1960~70년대 한국의 발전이 정녕 일 개인의 리더쉽 덕분에가 아닌, 수많은 민중들의 희생과 그러한 희생을 그래도/그나마 말없이 감내하고 이겨내 준 대한민국의 저력 때문인 것이었노라는 생각이, '세상의 어느 독재자가 시바스 리갈을 마시느냐4'라 말하는 장하준에게, 그가 시바스 리갈을 마셨었던 건 검소해서도, (장하준의 주장처럼) '자본가의 소비를 규제하기 위해서'도 아닌 단지! 그가 지니고 있었던 입맛의 수준이, 취향이 그러했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라고, 이 작품을 읽기 이전에는 가지고 있지 못했던 이러한 대답들이 이 작품을 읽음으로 해 비로소 생겨나게되었다라는 바로 이 점!  이 점이야 바로 이 작품 「외딴방」이 지니고 있는 가장 위대한 장점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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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일러주었네. 나는 난쟁이보다 더 크지 않고, 거인보다 더 작지 않음을, 나는 모든 사람이 만들어지던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음을." - 칼릴 지브란

자신만큼은! 특별한 재료로 만들어진 인간이라 생각했었던 지도자들을 가졌었던/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과거를 살아왔었고 또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어 주는 작가 신경숙의 "우리가 그 집에 살았을 때라든지, 혹은 옛날에 우리가 닭을 길렀을 때,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인다. 이 글 속에 그런 행복이 잠겨 있었으면, 하는 희망이 생긴다."(p471)는 소박한 바램은 정녕!!! --- 지난 일년 여간의 제 개인사(史)와 어울려, 심각하게 뭉클한 무언가를 제게 안겨주었더랬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저 역시! 'OO했었던 그때와 이때'를 행복하다라 말할 수 있을만큼 행복해질 수 있을 꺼라 믿어봅니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마치 전쟁과도 같고, 어쩌다보니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해왔었다 해도, 결국엔 참아낸 '그때 그 시절의 그들'처럼, 저 역시... 참아내고 참아내다보면 언젠간, 이기는 순간의 보람을 맛볼 수 있겠지,하는 희망을 예의 굳건히 믿어봅니다. (마무리를 지으려다보니, '글쓰기란 결국 뒤돌아보기이며 오늘 속에 흐르는 어제 캐내기'란 작가 신경숙의 표현 그대로...를 제가 따라하고 있군요. --;;)

 

※ 읽어 본, 작가 신경숙의 작품 :엄마를 부탁해

※ 뭔가, 비슷한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있다라 생각되는 작품들

- 성석제 作, 「투명인간

- 이문열 作, 「아가(雅歌)

- 이청준 作, 「당신들의 천국


 

 

 

 

 

 

  1. 이하 문단 속 굵은 표시의 문장은 작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한국어판 개정판 서문 중에서 인용한 구절들입니다.
  2.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진면목은 3부에서 끝이 난다라 생각됩니다. 4부의 서술은 이해불가한 부분도, 좀 어지러운 서술들도 적잖이 보이더군요.
  3. 소설 속에서는 '12·12 사태의 진실'을 의미함.
  4. "그 시바스 리갈이라는 술 있잖아요? 박정희가 암살당할 때 마셨다고 해서 유명해진. 전 그 술이 엄청나게 좋은 술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영국에 가보니까 가장 싼 술입니다. 도대체 세계 어느 나라에서 종신 독재자가 시바스 리갈을 마십니까?" - 장하준·정승일 共著 「쾌도난마 한국경제」 중 장하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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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생활 좌파들 - 세상을 변화시키는 낯선 질문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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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좌파들의 공통점은 '매우 격렬하게' 좌파 노릇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좌파로서의 삶이 격렬한 만큼이나, 어느 한순간 좌파 되기를 내려놓고 다른 길을 떠나는 자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좌파 노릇이라는 것이 한때의 신념이었고 직업이었으며 동시에 직장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 마치 인생에서 감당해야 할 할당량의 좌파 노릇이라는 게 있는 것처럼. (7)

'386세대'라는 (조어(助語)의 시작은 그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국엔 일종의 fancy한 브랜드로 변질된/시킨) 이들이, '현실정치'라는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은, 이 책의 저자 목수정이 (위의 인용문에서) 짚어 내고 있는 바로 그! 한국 좌파들의 공통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례(實例)라 생각합니다. '대놓고 좌파 노릇을 하는 것이 거의 순교자적 의지를 요하는 것이 되어가는 한국 사회'(p7)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로 제가 좌파를 경멸했었던 건 아닙니다. 단지! ---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본다. 난 그들에게 신앙을 전하지 않는다. 그저 크리스쳔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려 노력할 뿐이다"란 LA 다저스의 투수 커쇼의 신념, 저 역시 '신념은 본질적으로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라 생각하고 있는 그 모습을, 대한민국의 좌파 (혹은 좌파라 불리우고 있는 이)들에게선 볼 수 없었었기 때문입니다. 타인들에게는 기독교 신앙을 전도하면서, 정작 자신은 쾌락과 탐욕의 생활을 하고 있는 (일부) 목회자들처럼, '독재타도'를 외치며 등장했었던 그들이, '386세대'라는 브랜드의 정치인이 되어선 정작 '작은 영역에서의 (또다른 형태의) 독재'를 행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 그들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좌파로서 한때를 산다는 것'이 (좀 심하게 표현해보자면) 일종의 '구직활동'에 지나지 않았었음을 스스로 보여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이죠.   


저자 목수정은, 자신이 프랑스에서 목격했던 좌파들을 '걸치기 편한 옷마냥 좌파의 생각을 걸치고 누리고 있는 이들'(p7)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생활좌파'들 15명과의 대화/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 「파리의 생활 좌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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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정의(正義)를 실천하는 데 노력하는 사람들"(p215)이라 집합에 당신은 포함되기를 거부합니까?란 질문에 거부한다!란 대답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 확신합니다. 실제로 '실천의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을/못할지라도, 위의 집합이 내세우는 슬로건이 옳지않다라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 자! 시작은 이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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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는 ①부(富)를 나누고 사람들 사이의 평등을 말하는 사람들 아닌가. 그리고 좌파는 ②사회적 약자, ③자본을 갖고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편에 서고 ④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데 노력하는 사람들 아닌가. 난 그렇게 믿어왔다."(p215)

​이 책에 등장하는 '파리의 생활 좌파들'이 건넨, '좌파란 무엇인가'에의 대답 중, 제 생각에 가장 기본적이라 여겨지는 정의입니다. ④번에 국한하자면, 100%에 가까운 사람들로부터의 동의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 ②번 역시 '인간애(愛)'의 발현 차원에서 얼마든지 받아들여질 수 있겠는, 하지만! --- ①번은 자칫하면 (재산의 사유(私有)를 부정하는) '공산주의'로, ③번은 결국엔  '자본주의의 타도'라는, 뭔가 무시무시한 구호로 이어질 수 있는 기미가 보이기도 하지요. 실제로!

"내게 극좌파란 반자본주의자가 되는 것, 그리고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p237)


란, '좌파의 정의(定義)' 역시 예의 이 책엔 등장하고 있기도 합니다.1  자! 그렇다면 대한민국 땅에서 살아가고/내고 있는 우리들에겐, 프랑스의 '생활 좌파들'과 같은 "오색찬란한 색깔의 좌파가 공존"(p7)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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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놓지 않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p168)이라는, 흡사 고삐리들의 연애 편지에서나 보여질 듯한 문장으로 표현되고 있는 '좌파의 정의(定義)'는 사뭇 로맨틱하기도 합니다. "좌파와 우파는 돈에 부여하는 가치의 우선순위에 따라 구분되는 것 같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에 우선순위를 둔다"(p44)란 문장 역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태어났으며, 자라나 왔고,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우리에게 뭔가 '나도 그러고 싶어!'란 아련한 소망을 안겨주는 문장이지요. 조금만 더 나가보자면 --- "좌파란 보다 평등하고 보다 차이를 존중하는 사회로 세상을 변혁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p190)란 정의 역시 고등학교 국민윤리 교과서에서 본다한들, 전혀 놀랍지 않을만한 문구입니다. 물론!!!


​"좌파는 익숙해지는 걸 거부하는 사람이다.(p111) …… 그렇게 해야만 계속해서 새롭게 태어나고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다. 그건 계속해서 젊게 존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젊은 정신만이 활동가로서 우리를 살아가게 해준다"(p113)

처럼, 처음 읽어본 순간에는 선뜻 동의할 수 없는 '좌파의 정의'도 역시 이 책 속엔 담겨져 있습니다. 이 정의가 'become 보수주의자'에의 저항2이라면 일견 이해될 수 있겠으나, "너희는 늙어보지 못했지만, 우리들은 젊어도 봤다3"란 말엔 사뭇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가장 먼저 제 머리 속에서 떠올랐었었지요. 그러나 ---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결국엔 제가 지나온/현재의 제 삶의 방식에 '만족'이 아닌 '반성'을 하도록 만들어 준 시작 역시 바로 이 문장이었었다라는 걸 알게 됩니다.    

'진보' 혹은 '좌파'라 불리우는 사람들의 주장 자체에는 별 하자가 없다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뭔가 지나치게 이상적(idealistic)한 면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 그들 '좌파'가 말하고 있는, 기본적인 바들에 동의하고 그렇게 실천하고 싶다,란 생각을 분명 가지고 있어왔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현실이 …"란 접미어는 항상 그 생각을 단지 '생각의 수준'에만 항상 머물게 하여 왔음 역시 털어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방학'이란 단어의 본질적 의미완 상관 없이, 오히려 정반대로, 학원이 제시하는 '10 to 10'이라는 스케쥴에, 예의 '현실이 다들 그러하니'란 방패 뒤에 숨어, 내 아이를 구해내려는 시도 자체를 아에 포기한 채, 그 속으로 구겨넣어버렸던, 이처럼 그에 대한 반성문스런 문장마저 사실 지금 나의 아이가 들어가 있는 학원의 1층에서 쓰여지고 있다란 이 '이겨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하여 나는 (그리고 어쩌면 그러하고 있을 당신도 역시!)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를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는 행동을 스스로에게 먼저 설득할 수 있겠느냐, 그리곤 그것이 확신이 되어 나의 주위까지도 설득하고 함께 변화하도록 이끌어낼 수 있겠느냐하는 실마리를 이 책 속 여러가지 '좌파의 정의'는 제게 보여주고 있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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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는 시간을 갖고 삶을 음미하며, 이른바 개발과 발전이라는 강박으로부터 삶을 되찾아오는 싸움을 한다. 또한 좌파는 끊임없이 세상의 구조, 세상이 굴러가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수에 맞서 소수를 대변하며, 지속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삶의 조건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자신을 일깨우고 탐구하는 사람들이다.(p79)

(용기의 부족에서건, 심정적 동의가 없어서건 간에)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서 있지 아니하여도, 봄이 되면 으례 연례적으로 TV 뉴스에 등장하는 뻘건 띠를 머리에 두른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아직은? 여전히?)그다지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다하여도, (여전히 마음 속에선 경제학이 내 사랑의 일 대상이기에)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사뭇 '극복의 대상'으로 설정할 수는 없다 하여도, '현실이 그러하기에'란 방패를 여전히 나의 손에서 놓을 수 없기에 나의 아이로 하여금 올 여름방학에도 예의 '10 to 10'의 학원 스케쥴을 감내해야 한다라 강요하게 될지 모른다 하여도!!!

​"나의 의지는 낙관적이지만 나의 지성은 비관적4"(p208)

비록 현실을 방패삼고 있는 나의 지성은 비관적일지라도, 의지만큼은/의지라도 낙관적임을 말할 수 있는 건, "이 모든 모순의 구조를 인지하고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p239)란 설득에까지 차마,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겠기에 --- 큰 산불에, 작은 나뭇잎에 물을 떠다 그 불 위에 끼얹은 한 마리의 벌새(Colibris)에게 건네진 '너, 그래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거 알아?"란 신(神)의 조롱에 대해 "나도 알아.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p203)란 대답, "각자 자기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이 되면 세상은 비로소 바뀔 수 있다"(p203)란 이, 이 아주 작은 용기만을 필요로 하는 '생활에서의 실천'이 언젠가는, 아마도, 어쩌면, 부디!!!


​좌파는 추락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좌파는 자신들이 수호해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철저히 아는 사람들, 그 권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기억하고 그것을 지킬 무기를 단단히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의 존엄을 송두리째 부숴버리려고 달려드는 세력이 나타날 때마다 최전방에 선다. 그런 좌파들이 세상의 다수였던 적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좌파로 불리는 것이다. 그들이 다수가 되는 순간 우파로 불릴 것이다.(pp151-152)

당장, 나의 아이가 '10 to 10'의 올 여름방학을 보내는 것부터 막아낼 수 있는 아버지가 될 수 있는 자신은 없으나 - '나의 의지는 낙관적이나 나의 지성은 비관적이다' --;; - 올 겨울방학엔 어쩌면!, (이 표현이 사실, 저의 '무능 혹은 자신감의 결여, 책임의 회피' 등을 의미한다란 걸 충분히 감내하면서도) 아주 길게 보자면 나의 손자는 내 아들의 혹은 대한민국 사회의 거부로 인해 '10 to 10'의 방학을 보내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는, '지금의 좌파가 결국 우파가 되는 세상'에의 희망을 가져 보기로 합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나의 아이가, "각자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면서 살 수 있도록 서로 지지해"(p34)주는 반려자를 만나, "재미있는 일을 마음껏 하면서 사는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p34)는 세상을 살아볼/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으로, 아비 세대의 유산(遺産)을 삼아 보고 싶습니다.


세상을 변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이해해야 할 한 가지는 세상을 바꾸기 전에 자기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 스스로를 변혁할 수 있어야 세상도 변혁할 수 있다.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든 이유는 개개인이 자신을 변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존재의 감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 힘든 것이다.(p73)

'실천에까지의 좌파'가 되기엔 여전히 보수적 사고의 잔향이 짙으며, 이론적 지식도, 심정적 확신도 부족하기에 저의 정치적 성향을 어디 가서 '좌파!'라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 생활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시작해보는, 그리하여 언젠간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려!!!) 나무 젓가락 없이 짜장면을 먹고 있는 '생활 좌파'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 '나의 의지는 낙관적이나 나의 지성은 비관적이다.' --;; - 그러한 가능성만큼은 오색찬란하게 상상하고 노력해가는, 그런 'wanna be 좌파'정도라고는 (다시 한 번 더) 언젠간!!! 되어 있지 않을까... 라 소박히 소망해 봅니다.


덧> 이러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의 '현실적' 발현은 (직접 그 곳에 뛰어들지 않는 한) 결국엔 투표행위 밖엔 없는 것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의 민주주의 정치체제이겠지요. 대한민국의 진보 정당들 역시 '구호의 잔치'만으로 세월을 보내왔다라 생각합니다만, 굳이 그들을 위한 변명을 꺼내어 보자면 --- 그들에겐 세상을 변화시킬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세력'이란 것이 단 한 번도 없었었노라고, 그러하기에 우선은 그 '세력'이란 걸 만들어 손에 쥐기 위해 이상(理想)이 아닌, '현실적'으로 달콤한 사탕들을 선거 때엔 내세울 수 밖엔 없는 것이라고, 이제 한 번쯤은! 그들에게 그 '현실적 세력'이란 걸 좀 주고나서나 그들의 행태를 지지/비판/반대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하는 생각이, 투표를 4일 앞둔 이 시점에 제 맘 속에 자리잡고 있네요. 어쩌다보니!!! --- 제가 살고 있는 동네가 이번 총선에선 선거구가 격전!의 '고양 갑'으로 바뀌어 있더라는. ^^ 

 


※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들

- 강수돌 外 著,  「리얼 진보

- 유시민 著, 「국가란 무엇인가」

- 목수정 著,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에티엔 드 라 보에시 著, 목수정·심영길 共譯, 「자발적 복종

- 류동민 著,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1. 「리얼진보」에서 김상봉 역시 '진보'와 '개혁'을 "자본주의 극복에의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로 구분짓고 있지요.
  2. 솔렌의 아버지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참여를 허락하는 자신의 물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 결국 혁명도 부르주아들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었다. 그러니 너는 공부를 계속해야 하고 너 자신도 부르주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결국 그러한 물적 토대를 가지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싸워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하게 된다는 것. 솔렌은 그리하여 사회 혹은 부르주아라고 하는 사고의 틀, 그 완전히 조직된 감옥에 갇히기 전에 자신을 둘러싼 모든 틀을 다 깨부수기를 희망한다.(p114)
  3. 제2회 '서울노인영화제'에 출품되었던 권오운 감독의 <나의 생활>이라는 영화중 한 대목
  4.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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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진보 Real Progressive - 19개 진보 프레임으로 보는 진짜 세상
강수돌.구갑우.김상봉 외 지음 / 레디앙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보수주의자는 기존의 지배적 사유습성과 생활양식을 그대로 따르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의 삶에서 보수주의가 기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환경의 변화에 의해 강요당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모두 영원이 보수주의자로 살아갈 것이다. 보수주의는 특정한 계급의 독점적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다.

- 유시민 著, 『국가란 무엇인가』 중, 2011, 돌베개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기에, 게다가 '기존의 지배적 사유습성과 생활양식'을 벗어날 수 없었던 대학 1년생에게 '보수'라는 사고의 frame은 당연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보수'완 다른 방식의 사고체계, 이것을 '진보'라 부를 수 있다라면, 제가 처음으로 접했었던 '진보'는 바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내세웠었던 NL이었었지요. 학생운동이란 것에 발을 담그고 싶은 의도조차 없었었거늘 주워들은 바, 아무래도 NL의 터무니없는 주장들보다는 PD의 주장들이 그나마 현실합리적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만 예의! --- NL의 통진당은 박살이 나버렸고, 그나마 남아있는 PD 계열의 진보신당조차 이 놈의 현실정치 속에서 나름의 무언가를 하고 있다란 느낌을 그다지 강하게 주지도 못하고 있지요.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거기에 더해 이제까지 제가 가져왔던, 지켜왔던 사고(思考)와 생활방식이란 것이 혹 잘못 선택되었던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스스로 가지고 있는 요즈음이기에, 도대체 '진보'라는 사람들은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걸까하는 호기심에, '잘못된 첫 만남'일 수밖에 없었던 진보란 사고체계는 과연 어떤 삶을 우리에게 제시해줄 수 있는가하는 궁금증에 선택한 책이었습니다. --- 이 책 「리얼 진보」는 진보 신당 상상연구소가 펴낸 일종의 '대한민국 진보에 대한 안내서'이자 '자기 반성문'이더군요. 자! 스스로를 보수적이고 더욱 보수적이라 생각하는 제가 읽어 본 진보의 이야기는 과연 어떠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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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층의 이해관계에 맞추어서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자'(p63)는 정도로 보수(保守)를 정의한다면, 그러해봤더니 변하는 건 없고 예의 시간만 흘러가더라, 그러니 이젠 "현상을 까뒤집어보고 다른 각도에서 삐딱하게 바라보는"1 시도를 해보자, 그리하여 결국엔 "이미 신석기 말기부터 불평등해지고 전쟁을 다반사로 만들기 시작한 이 세상을 아주 근본적으로 바꾸어 보자는2"(p66) 궁극적 이상(理想)을 가지고 있는 진보(progressive) 혹은 좌파(left)적 사고(思考)는 뭔가 흠칫 주저하게 만드는 면을 가지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이제까지 지켜왔던 사고와 생활방식에 의심을 가지기 시작한 저에게 적잖이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김상봉은 이 책에서 진보와 개혁까지를 명확하게 구분짓고 있습니다.3 현실 정치로 보자면 (이 책이 발간되었을 당시의) 민주당은 개혁적이라 불리울 순 있지만, '자본주의 극복의 의지'가 없다라는 점에서 진보는 아니다4라 주장하지요. 진보는 "시장 자본주의를 그 내부로부터 해체하고 사회를 인본주의적 원리에 따라 재건"(p56)하는 것을 (1차적)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목표를 현실에 실행했었던 '소련식 공산주의'가 실패로 돌아갔다 하여 이러한 목표를 "불온시하거나 불가능한 일이라 단정"(p55)하는 것은 지나치게 억울한 멍에다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지요. (김상봉은 '소련식 공산주의'를 자본의 독재를 당의 독재로 대치한 또 다른 억압의 시작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5) 하지만!!!


이처럼 자본주의의 극복이 진보의 궁극적 목표는 아닙니다. 김상봉은 한국의 역사 속에서 기존 권력에 저항했던 대부분의 시도들은 단순히 기존 체제의 부정에서 끝맺음6되었었기에 성공할 수 없었었으며7, 이제 주어진 새로운 진보의 과제는 궁극적으로 "우리를 더불어 사는 삶으로 이끄는 만남의 현실적 조건을 확대해 나가는 것8"(p51)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딱히 부정하고 싶지 않은 이상을 지닌 '진보'라는 것이 도대체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에선 일정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박상훈은 이를 ​"진보의 정치적 무능력'때문이라 단정짓고 있습니다.9 여기에 더해지는 손호철의 시각은 진보 정치인들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예의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지점을 향하고 있지요.

진보 진영은 구체적으로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관념적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관념성이 아니라 급진성이 문제라고 생각하여, 관념성을 그대로 둔 채 우경화하기에 바빴다는 점이다. …… 대중이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는지를 읽기보다 대중에게 강의식으로 설교하고 가르치려고만 한 것 같다.(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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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반성과 함께, 이 책은 대한민국의 진보(좀 더 좁게는 '진보신당')가 제시하는 현실적 대안들을 경제,의료, 교육, 복지, 통일, 그리고 환경 등의 분야에 걸쳐 보여주는 각론으로 넘어갑니다. 예의! ---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자'는 보수적 사고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저에게 교육 부분의 대안들은 전혀 공감이 되질 않더군요. 솔직하게는 필자의 주장이 틀렸다!라 말하고 싶은 부분이 더 많았더랬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건강이 개인의 책임이라고 간주한다. 개인의 건강은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하고, 아프게 되는 것은 개인이 잘못해서 그렇다고 인식하여,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개인이 상당 부분을 부담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 현대 의료는 건강하지 않은 원인이 개인의 위험한 행동에 있다고 강조한다. 보통 만성질환의 발병 원인을 개인의 흡연, 음주, 운동을 하지 않고 체중 관리를 게을리 하는 것에서 찾는다. 그래서 건강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당연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개인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깊게 파고들어 가다 보면, 건강과 보건의료는 개인의 책임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즉, 모든 사람이 건강한 생활을 원하지만, 삶의 무거운 고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건강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다. …… 만약 비난하려면, 삶의 조건을 동등하게 해 주어야 한다.(pp177-178)

관심이 없었었기에 낯설어졌고, 낯설기에 더더욱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진보'라는 것은 이처럼! (마르크스의 주장들이 알고보니 시뻘건 색이 아니었었듯) 이제까지 우리가 평범하게 생각해왔었던, 정치색이 옅은/배제된 책들 - 바버라 에런라이크 著 「노동의 배신10」과 조은 著 「사당동 더하기 2511」 - 에서도 볼 수 있었던, 낯익은 주장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뿐만 아니라!

'증세없는 복지는 없다'란 지극히 당연한 한 마디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유승민을 잘라낸) 현재 대한민국의 보수완 달리, "조세를 통한 복지가 한국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증세는 분명히 거의 모든 계층의 증세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pp207-208)라는 자명한 주장을 진보가 하고 있었다란 걸 새삼 알게 되었었지요. 그러나!

"진보의 힘은 현실성, 실현가능성에 있기보다 '진짜 진보'를 꿈꾸는 상상력과 용기에 있다"(p11)는 진보 스스로의 판단이 마치 자기충족(self-fufilling)되기라도 하듯, '증세를 통한 복지의 확대'라는 진보의 주장은 노동계의 분명한 반대로 인해 현실화되지 못하고 맙니다.12 이러한 '진보의 딜레마'는 비단 국가정책의 차원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더군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예의 '진보의 딜레마'는 진보주의자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종이컵.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우회하는 기술적 대체물이다. 컵을 씻어야 한다면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 씻어야 하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여직원일수도, 후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수고를 고분고분 감내하려는 이들은 점차 적어질 것이고 이런저런 불만도 터져 나올 것이다. 그러면 '사소한' 문제로 갈등하기 싫은 공동체는 "돈도 얼마 들지 않는"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곤 한다. 돈이 많이 드는, 그래서 누군가의 일자리가 되는 해결책은 애초부터 고려 사항이 안 된다. 그러나 공짜는 없다. 그 비용을 치르는 것은 자연이다.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외면하는 순간, 울창한 산림을 잘려 나가기 시작할 것이다."(p288)13 

이처럼 각종 대안들을 제시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진보의 시각'으로 한국의 현실을 설명해주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러한 진보의 설명이란 것이 이제껏  제겐 비난의 대상이기만 했었던 현상들이, 단지! 저의 무지함으로 인해 비난의 대상이 되었었다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겁니다. 예를 들어 --- 위에서 증세를 통한 복지의 확대에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천명했던 민주노총의 경우, 왜 민주노총이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밖엔 없었었나 역시 진보의 시각은 다음처럼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있지요. 좀 길지만 이를 인용해 보자면,


​노동자가 기업에서 받은 소득을 '시장임금'이라고 한다면, 사회에서 받는 보육료 지원금, 기초노령연금 등은 '사회임금'이라고 부를 수 있다.(p223) …… 2000년대 중반 한국의 사회임금은 7.9퍼센트이다. 우리나라 가구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가계 지출의 92.1퍼센트를 직접 시장에서 벌어야 한다14는 이야기다.(p226) …… 한국에서는 왜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갈등하는가? 다양한 사회,정치적 요인이 있지만, 사회임금이 전체 가구 운영비에서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원인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 구조조정은 '가계 파탄'을 의미한다. … 최근 쌍용자동차 사태는 시장임금에만 의존해 사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구조조정에 취약한지, 이에 따른 사회적 가릉 비용이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낮은 사회임금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왜 초과 노동에 얽매이는지도 설명해 준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의 위기를 완화해 줄 수 있는 사회임금에 대한 기대가 없다. 일감이 있을 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어려움에 대비해 조금이라도 더 시장임금을 모아 두어야 한다. 종종 언론들이 한국의 노동자들이 지나치게 임금 올리기에 몰두한다15고 비판하지만, 노동자들이 시장임금에 목숨을 거는 건 척박한 현실에서 살아남으려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p227) ……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과도한 초과 노동, 격렬한 구조조정 비용은 역설적으로 낮은 사회임금에 대응해 노동자가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합리적' 경제 행위일 수 있다. 노동자 개인에게 이것을 탓할 수는 없다."(p228)

그럼에도 불구하고! --- 진보는 스스로의 희생까지도 전제한 사회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취약한 한국의 공공 재정 건실화에 노동자들에게도 부과될 증세를 "상위 계층들의 누진적 조세 책임을 이끌어 내는 지렛대 역할"(p230)로써 받아들이자는 것이죠. (최소한 이 책을 통해 만나본) 대한민국의 진보가 그리 무책임하거나 과격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반대는 대안으로 조직되어야 하며, 대안으로 반대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는 대안을 만들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이 되어야 한다."(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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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제가 소위 말하는 '촛불시위'란 것을 못마땅해했던 바로 그 이유를 이 책은 예의 (과거의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개혁세력의 명백한 실수라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 "요즘 오직 하나의 적이 문제라는 논리가 확산되고 있다. 그것은 이명박 정권을 파시즘, 독재,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하고 반대하기만 하면 한국 민주주의 과제가 일거에 해결될 듯 주장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악마화'라고 할 수 있다"(p88)는 이대근의 주장을 거쳐

이명박 정부를 '악마화'하고 반MB를 '신성시'해 MB에 반대하는 것 그 자체가 '민주'고 '진보'라고 착각하는 추세가 생겨나고 있다.(p330)

란 손호철의 지적은 그야말로 제 속을 뻥!하고 뚫어주었을 만큼 저의 생각을 기가 막히게 문장으로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16 (여기에 더해,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여전히 높게 유지되고 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MB를 악마화해 MB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치를 너무 낮춰 놓은 데에 기인한 점도 크다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란 분석은 그야말로 Two thumbs up!을 아니외칠 수 없더군요.)


​아무리 진보의 목적이 '인간답게 살기 위함'이라 할 지라도, 그리하여 "권력이 주어지고 말고 등등은 다 부수적 부분들"(p69)라 말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현실에선 엄연히 "정치가 필요하고 통치도 필요하며, 권력과 권위의 부여도 불가피"(p113)한 것이기에, 게다가 정당의 존재 이유가 '정권의 획득'임을 부정할 수 없기에, 진보 진영 (구체적으로는 진보신당) 역시 선거를 통한 권력의 획득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요. 이 책은 이처럼 이제까지 대중에게 '강의식으로 설교하고 가르치려고만' 해왔던 스스로의 과거를 이처럼 철저하게 반성할 뿐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이 대중교통 체계 개편 성과로 국가 운영을 위임받았듯이 진보 진영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당위적인 거시 담론보다 '지금 여기서' 진보적 모델 사례를 만들어 내 대중이 이를 체험하게 하는 일이다.(p238)

​라는 현실적 과제까지를 제시해놓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 앞으로 이렇게 노력할테니 우리를 좀 잘 봐달라!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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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의 사고(思考)와 생활방식에 근거한 (대략 지난 28년간의) 제 정치적 선택이 과연 무언가 변화 혹은 발전을 이루어냈느냐란 자문에 '그러하다'란 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 그 사고에 변화를 주어보자는 시도, 그리고 그에 근거한 현실에서의 정치적 선택을 한번쯤은 시도해봄직하지 않나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생각의 변화와 정치적 선택의 변신이 지금 당장, 혹 저의 생애에서 확실한 '다름의 결과'를 보여주진 못할지라도, 그리하여 또 하나의 '대략 28년 이후'에 (제가 살아있다면) 또 다른 혹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질지라도, 종원군의 세상에서만큼은 최소한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 실제 액셀레이터를 밟고 달리는 즐거움은 종원군 세대가 누릴지라도, 최소한 시동은 걸어놓으려는 노력! 이것만큼은 아비된 마음으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기에 말이죠.

 

▶ 짧은 한두 마디 : '나'에게! 이런 책을 읽게 만들어 준, 그리하여 새로운 선택에의 시도를 결심하게 만들어 낸 현 정권의 놀랍기만 한 class!!!

 


※ 본문에서 언급된 책들의 감상문

- 조은 著 「사당동 더하기 25

- 허태균 著, 「어쩌다 한국인


 

  1. 목수정 著,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중 pp289-290.
  2. "지금까지 '평화'라는 것은 이상(理想)으로 가끔 언표될 수는 있었찌만 실재(實在)한 적은 없었습니다. 전쟁이 아니면 전쟁 대비가 인간 사회의 '통례'가 됐습니다. ……평화는 여전히 꿈으로 남아 있고, 그 꿈을 버리지 않으려는 좌파들은 늘 '비현실적'이란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pp65-66)⁠⁠
  3. 김상봉은 '제3의 길' 노선 역시 진보라 불러울 수 없다라 주장하고 있지요. --- "'제3의 길'론자들은 우리 시대 지구 자본주의의 현실에 기존의 진보적 성취들, 즉 복지국가 등을 적응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금융화, 지구화는 결코 되돌리거나 가로막을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이며, 이제는 복지 제도도 시민들이 시장 경쟁에 뛰어들도록 준비시키는 데 주된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p32)
  4.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진보'였는가>라는 장(章)의 필자 이대근 역시 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①"한국에서는 자유주의 세력(liberal)과 진보 세력(progressive , left)을 뚜렷이 구분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극우 세력이 김대중 정부를 ‘진보 좌파’라 몰아 대고, 노무현 정부가 별다른 진보적 프로그램 없이 ‘진보’를 자처하면서 더욱 굳어졌다. 하지만 둘은 엄연히 그 기본 가치와 관점, 철학이 다르다.(p87)"
    ②"친노 세력은 노무현 정권의 성격을 진보로 재평가하고 있지만, 근거가 없다. … 친노 세력은 노무현 정권의 실제 정책보다는 그가 당초 목표로 제시했지만 실현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국가 운영 구상을 근거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노무현 정권 평가에 오류가 나타난다. … 노무현 정권을 진보 정권으로 규정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로 고통받았던 서민들을 희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진보적인 개혁을 포기하고, 그로 인한 실망이 깊어져 보수 헤게모니가 확산되게 기여해 놓고 퇴임 이후 진보주의를 연구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서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친노 세력이 이명박 정부를 반대하기 위해 진보 노선을 내세웠다는 것은, 이명박 정권 반대의 올바른 방향은 역시 진보적 대안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p96)
  5. "어느 누구, 어떤 집단도 그리고 무엇을 빙자해서건, 개인을 도구화해서는 안 된다는 명확한 자각이 없을 때, 정치는 쉽게 집단의 힘으로 개인을 억압하거나 약탈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새로운 진보는 그런 집단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정치 문화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어야 한다."(pp44-45)
  6. "지금까지 진보 운동은 자기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이었다.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저항해서 권리를 찾았고, 제3세계 민족들은 제국주의자들에게 저항해서 권리를 추구했고, 여성은 남성이 지배하는 지배하는 사회에 저항해서, 그리고 모든 소수자 운동은 다수 혹은 사회 주류에 저항해서 자기의 권리를 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보 운동이 벽에 부딪혀 온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내적으로 보자면 바로 그 이유, 즉 권리가 운동의 궁극적 목표가 되었던 데 있다. …… 단순히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그것을 되찾으려 하는 운동이 진보 정치 운동이라면 그것은 당파적인 계급 투쟁을 벗어나기 어렵다. 참된 진보 운동은 권리 찾기 운동이 모두를 위한 것일 때 정당성을 갖게 된다. … 따라서 참된 진보 정치 운동이란 어떤 특정한 계급이나 집단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권리 찾기를 뜻하는 바, 이런 문맥에서 보자면 진보 정치 운동이 추구해 온 정의란 어떤 사람도 부당하게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고 모든 사람 사이에 권리의 균형이 이루어진 상태이며, 평등이란 모든 사람이 동등한 기준에 따라 권리를 행사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처럼 진보 운동이 모든 사람을 위한 운동이라는 것이야말로 그것의 대중성을 담보하는 근거이며, 진보 운동의 현실적 힘도 이로부터 나오는 것이다."(pp57-58)
  7. 이러한 문제점은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다라 오건호는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 노동운동 진영은 국가와 자본을 향한 요구 투쟁에 집중해 왔다. … 그러한 방식에만 의존하는 것은 운동의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p239)
  8. "정치란 참된 자유와 만남이 실현된 나라를 향해 현실 국가를 끊임없이 지향하는 활동"이다.(p44) - 진보신당 강령 중.
  9. "필자는 우리 사회의 진보파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무능력에서 비롯된 바 크다고 생각한다. … 대다수 진보파들은 민주주의와 대중정치를 이해하고 그것에 적응하기 보다는 기존의 자신들이 견지했던 이념의 언어로 현실을 재단하고 대중을 계도하려는 태도가 강했다."(p103)
  10. "자기중심적인 중산층 특유의 시각으로 이들이 주거 문제를 접하는 방식을 보고 있자니 돈을 불합리하게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하지만 알고보니)가난한 사람들만 아는 절약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하기 때문에 추가로 드는 비용이 수두룩했다. 아파트를 구할 때 지불해야 하는 한 달치 집세와 한 달 집세에 상응하는 보증금이 없으니 결국 일주일 단위로 방을 빌리면서 엄청난 방세를 내야 한다. 가전제품이라고는 끽해야 전열기 하나밖에 없는 방에서 살아야 한다면 콩 스튜를 잔뜩 끓여 냉동시켜 놓고 일주일 동안 먹는다는지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주로 패스트푸드나 핫도그 또는 편의점에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스티로폼 용기에 담긴 수프 같은 걸 사 먹게 된다. 의료보험에 들 형편이 안되니 정기 검진을 받을 수 없고,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약도 구할 수 없고, 그러다 결국에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11. 금선 할머니 가족이 빈곤 문화 때문에 빈곤해졌다고는 할 수 없다. 적어도 그들 가족의 빈곤의 출발선은 아니다. 빈곤의 출발선을 할머니로 삼을 경우 할머니의 생활 양식에는 빈곤 문화로 꼽히는 절제 없음, 알코올 중독, 게으름 …… 심지어 성적 문란 그 어느 것 하나도 해당되지 않았다. 할머니의 빈곤의 시작은 한국 전쟁이었고 월남해서 집도 남편도 없는 상황에서 세 살, 여덟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혼자 생계를 해결해야 했던 스물여덟 살의 여성 가장에게 아무런 '과부대책'이 없었을 뿐이다. …… 아무리 일을 해도 돈을 모울 수 없었다. 할머니 자녀들은 특별한 범죄를 저지르지도 요령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빈곤 문화'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생활양식이 나타났다. 이들은 부모 대에 왜 월남해야 했는지에 대해 물어 본 적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 이를 역사의식의 결여라고 한다면 역사의식의 결여다. …… 결혼할 나이가 되어 여자를 보았는데 결혼식 올릴 돈이 없어 동거부터 했다. 혼전 임신해서 아이를 낳는, 이른바 미래에 대한 계획 부족이라는 '빈곤 문화'는 이들 계층에서는 일상적이다. 즉각적인 욕망을 지연할 동기 부여에 약하다고 빈곤 문화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당연히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청소년들은 가출, 성적 문란은 일상화되고 알코올 중독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나타난 빈곤 문화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할머니 가족뿐 아니라 사당동과 상계동에서 만난 가난한 가족들의 생활양식은 모두 가난의 원인이라기보다 가난의 결과였다. …… 이러한 빈곤 문화가 이들 가족을 빈곤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빈곤함이 그리고 빈곤의 재생산 구조가 이들 삶의 조건이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가난의 조건에 대한 보이지 않는 구조를 이들 가족이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체현하고 있다. …… 오스카 루이스의 <산체스네 아이들>의 서문에 '가난이란 어떤 적극적 의미까지 가지고 있어서 빈민들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구조이자, 방어 기제이다. 간단히 말해서 가난의 문화는 유난히 견고하고 지속적이며 대대로 전수되는 생활양식이다.'"(저자는 이를 '가난이 낳은 가난'이라 표현하고 있지요.)
  12. "조세를 통한 복지를 위해서는 민주노총 사업장의 노동자도 당연히 더 많은 근로소득세를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정규직 노동자가 조금 더 부담하고 사용자와 국가가 더 많이 부담하여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원하자는 아주 미약한 '사회 연대 전략'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거부했다. 민주노총은 위원장이 나서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민주노동당은 중앙위원회에서 통과되었는데도 민주노총의 공개적 반발에 이 사업을 전혀 추진하지 않았다."(p211)
  13. 예전에 나무 젓가락을 두고 저와 와인매냐님이 나누었던 농담스런 대화가 떠오르더군요. '환경 보호'를 위해 젓가락질을 잘 못함에도 불구하고 나무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으신다는 와인매냐님의 말에, 전 '경제 성장'을 위해 나무 젓가락을 사용한다라 응답했었었지요.
  14. "반면 OECD 회원국의 평균 사회임금 비중은 31.9퍼센트로 우리나라의 4배, 스웨덴은 48.5퍼센트로 6배에 달한다."(p226)
  15. "노동자들이 우선은 정규직 고용을 선호하지만 나중에는 비정규직이라도 좋으니 계속 '고용'되기를 바란다는 사실 … 생계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노조는 노동의 인간화나 경영의 민주화를 이루는 주체로서 모습을 더는 지키기 어렵게 되었다. 노조 또는 노조의 대의원들은 일자리를 유지하고 일거리를 더 많이 확보하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p259)
  16. 이와 관련하여선 허태균 著 「어쩌다 한국인」에서도 동일하게 지적되고 있었었지요.
    ① "설사 기계나 시스템의 잘못이라고 밝혀져도, 그렇게 만든 '사람'을 찾는 데 더 집중한다. 만약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날씨가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이 문제를 일으켰다면, 그것을 예측하고 대비하지 못한 사람을 찾는다."(p178)
    ②"우리의 분노는 나쁜 놈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놈이 충분히 처벌받는 것을 보면 정의가 실현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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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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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날의 햇살같은 단편 소설집. 이런 소설이면 정말로 잘 팔려야 한다."


책값보다 술값을 항상 더 많이 내곤 하는 일산의 서점 <미스터 버티고>의 사장님께서 붙여 놓으신 띠지의 (무려 궁서체로 쓰여진!) 문구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서점 사장님의 정말로 잘 팔려야 한다,라는 뭔가 비장미 느껴지는 멘트를 보고 거기에 일조를 아니할 수 없는 거잖아요? 252페이지 속의 한 권에 무려 40개의 작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 말 그대로의 '단편 소설집'입니다. 다 읽고나니 역시나 저 또한! --- 이 책은 '잘 팔려야 한다'란 수식어를 받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예의 '따뜻한 봄날의 햇살같은'이란 말이 그야말로 딱! 들어맞는 표현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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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타의 소설집이 그러하듯, 책의 제목인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란 제목의 소설이 이 작품집엔 들어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 책장을 덮고나면, 별 연관 없어 보이는 40개의 이야기들을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란 한 문장으로 요약해낼 수 있겠다,란 생각은 아마도 이 책을 읽은 누구에게나 찾아가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걍... 그냥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라 말해야 할 것만 같은, 뭐 세상살이란 게 나한테만 이런 게 아닌거로구나,쯤의, 결코 값싸지 않은, (황석영 作 「해질 무렵」스런) 작위적이지도 않은, 나만 손해보며 살고 있는 건 아니다류의 위로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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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좋겠다, 카드 값 걱정 안 해서 … 달은 좋겠다, 다음 달에도 그냥 달이어서 …"(<도망자> 중 p132)이란 문장은, 설혹 당신이 카드 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해도 충분히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란 자위(自慰)의 뜻을 온전히 전달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나는 그저 무언가를 다시 해보려고 했을 뿐인데. … 누구에겐 초간단 요리가 또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음을. … 아무도 그것을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초간단 또띠아 토스트 레시피> 중 p181)란 작가의 말은, 무엇인가, 때로는 매우 중요한, 하지만 대부분은 내 인생에 있어 의미있는 일은 아닌 무엇인가 앞에서 나 자신을 잠시나마 힐난하게 되는 나/우리들에게, 그런 경험은 누구나에게 다 있는 것이란다란 위로를 그냥 너무도 자연스럽게 건네어 주고 있지요. 네!


이 책 속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 이기호는 '강요하는 감동'이 아닌, 스스로 깨닫게 되는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작가라는 걸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뭐, 이제 저도 나이가 들 만큼 들어서인걸까요?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들에서 유달리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받게 되더군요.

"우리는 너나없이 고통 속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란다. … 고통 다음에야 비로소 가족의 이름을 부여받는 거야. … 그래서 가족이란 단어는 들으면 눈물부터 나오는 거란다. (<아아아아>중 p171)"에서의 설명을 "아빠, 이젠 애쓰지 않아도 돼요"(<이젠 애쓰지 않아도 돼요> 중 p216)란 한 문장으로써든가, 혹은 <봄비>나 <불 켜지는 순간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야말로 '강요함 없는' 감동을 선사해주고 있지요.

뭐 그렇다고, 이 책 속 소설들이 감동의 코드만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 "사랑이 어디 합의할 수 있는 거던가요?"(<벚꽃 흩날리는 이유> 중 p20)에서 부터 시작된 작가의 유난스럽지 않은 유머코드는 <두고 봐라>와 <개굴개굴>의 작품에선 기어코 저로 하여금 옆 자리에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정말로 깔.깔.깔!~터지는 웃음을 내지르게 해주었었죠. ('슈퍼맨이 돌아왔다'스런 설정의 이야기인 <개굴개굴>은 아들 셋 키우는 아빠라면 필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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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40개의 이야기들 속에 차라리!!! --- 이처럼 감동이나 유머만이 있었더라면 훨씬 더 좋지 않았었을까,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학계에 자고로 '문학'이라면 뭔가 좀 무거운 측면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스런 것이 있어서일까요? 작가는 "원칙이란 원래 가진 자들이나 지킬 것 많은 사람들이나 내세우는 것"(<사로잡힌 남자> 중 p221)과 같은, 결코 동의할 수 없는 가치관을 보여주기도 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노트북 켜놓고 쪽수와 문장을 함께 적어가며 읽어가는 전투모드의 독서가 아닌, 지하철에서라든가, 베개를 가슴팍에 깔고 엎드려서다던가, 혹은 지난 토요일의 저처럼 맥주에 위스키 마셔가며 페이지 수가 넘어갈수록 조금씩 알딸딸해져가는 뭔가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을' 분위기에서 읽으면 오히려! 그 만족이 훨씬 더 커지지 않을까 싶은, 만나보기 쉽지 않은 매력들로 가득한 작품들이라 생각합니다. 독자들에게 이런 감동과 즐거움을 주기 위해 작가는 편두통과 위장장애를 겪었었다라 쓰고 있거늘, 그의 그러한 고통들이 이처럼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다라는 점에서 작가 스스로도 만족해하지 않을까 싶네요.​(게다가 '잘팔리면' 인세도 두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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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날 수 있게 해주신, '맥주와 위스키가 있는 (물론 커피도 있는) 서점' <미스터 버티고>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날짜와 장소를 직접 적어달란 느닷없는(!) 손님의 요구에 이처럼 멋진 필체를 남겨주신 호의에 다시 한 번 더!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 <미스터 버티고> 사장님의 이 책에 대한 감상문 :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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