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리의 생활 좌파들 - 세상을 변화시키는 낯선 질문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7월
평점 :
한국 좌파들의 공통점은 '매우 격렬하게' 좌파 노릇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좌파로서의 삶이 격렬한 만큼이나, 어느 한순간 좌파 되기를 내려놓고 다른 길을 떠나는 자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좌파 노릇이라는 것이 한때의 신념이었고 직업이었으며 동시에 직장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 마치 인생에서 감당해야 할 할당량의 좌파 노릇이라는 게 있는 것처럼. (7)
'386세대'라는 (조어(助語)의 시작은 그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국엔 일종의 fancy한 브랜드로 변질된/시킨) 이들이, '현실정치'라는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은, 이 책의 저자 목수정이 (위의 인용문에서) 짚어 내고 있는 바로 그! 한국 좌파들의 공통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례(實例)라 생각합니다. '대놓고 좌파 노릇을 하는 것이 거의 순교자적 의지를 요하는 것이 되어가는 한국 사회'(p7)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로 제가 좌파를 경멸했었던 건 아닙니다. 단지! ---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본다. 난 그들에게 신앙을 전하지 않는다. 그저 크리스쳔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려 노력할 뿐이다"란 LA 다저스의 투수 커쇼의 신념, 저 역시 '신념은 본질적으로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라 생각하고 있는 그 모습을, 대한민국의 좌파 (혹은 좌파라 불리우고 있는 이)들에게선 볼 수 없었었기 때문입니다. 타인들에게는 기독교 신앙을 전도하면서, 정작 자신은 쾌락과 탐욕의 생활을 하고 있는 (일부) 목회자들처럼, '독재타도'를 외치며 등장했었던 그들이, '386세대'라는 브랜드의 정치인이 되어선 정작 '작은 영역에서의 (또다른 형태의) 독재'를 행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 그들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좌파로서 한때를 산다는 것'이 (좀 심하게 표현해보자면) 일종의 '구직활동'에 지나지 않았었음을 스스로 보여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이죠.
저자 목수정은, 자신이 프랑스에서 목격했던 좌파들을 '걸치기 편한 옷마냥 좌파의 생각을 걸치고 누리고 있는 이들'(p7)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생활좌파'들 15명과의 대화/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 「파리의 생활 좌파들」입니다.
………………………………………………………………………………
"사회적 정의(正義)를 실천하는 데 노력하는 사람들"(p215)이라 집합에 당신은 포함되기를 거부합니까?란 질문에 거부한다!란 대답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 확신합니다. 실제로 '실천의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을/못할지라도, 위의 집합이 내세우는 슬로건이 옳지않다라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 자! 시작은 이러합니다.
·
·
·
"좌파는 ①부(富)를 나누고 사람들 사이의 평등을 말하는 사람들 아닌가. 그리고 좌파는 ②사회적 약자, ③자본을 갖고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편에 서고 ④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데 노력하는 사람들 아닌가. 난 그렇게 믿어왔다."(p215)
이 책에 등장하는 '파리의 생활 좌파들'이 건넨, '좌파란 무엇인가'에의 대답 중, 제 생각에 가장 기본적이라 여겨지는 정의입니다. ④번에 국한하자면, 100%에 가까운 사람들로부터의 동의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 ②번 역시 '인간애(愛)'의 발현 차원에서 얼마든지 받아들여질 수 있겠는, 하지만! --- ①번은 자칫하면 (재산의 사유(私有)를 부정하는) '공산주의'로, ③번은 결국엔 '자본주의의 타도'라는, 뭔가 무시무시한 구호로 이어질 수 있는 기미가 보이기도 하지요. 실제로!
"내게 극좌파란 반자본주의자가 되는 것, 그리고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p237)
란, '좌파의 정의(定義)' 역시 예의 이 책엔 등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자! 그렇다면 대한민국 땅에서 살아가고/내고 있는 우리들에겐, 프랑스의 '생활 좌파들'과 같은 "오색찬란한 색깔의 좌파가 공존"(p7)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
·
·
"인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놓지 않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p168)이라는, 흡사 고삐리들의 연애 편지에서나 보여질 듯한 문장으로 표현되고 있는 '좌파의 정의(定義)'는 사뭇 로맨틱하기도 합니다. "좌파와 우파는 돈에 부여하는 가치의 우선순위에 따라 구분되는 것 같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에 우선순위를 둔다"(p44)란 문장 역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태어났으며, 자라나 왔고,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우리에게 뭔가 '나도 그러고 싶어!'란 아련한 소망을 안겨주는 문장이지요. 조금만 더 나가보자면 --- "좌파란 보다 평등하고 보다 차이를 존중하는 사회로 세상을 변혁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p190)란 정의 역시 고등학교 국민윤리 교과서에서 본다한들, 전혀 놀랍지 않을만한 문구입니다. 물론!!!
"좌파는 익숙해지는 걸 거부하는 사람이다.(p111) …… 그렇게 해야만 계속해서 새롭게 태어나고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다. 그건 계속해서 젊게 존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젊은 정신만이 활동가로서 우리를 살아가게 해준다"(p113)
처럼, 처음 읽어본 순간에는 선뜻 동의할 수 없는 '좌파의 정의'도 역시 이 책 속엔 담겨져 있습니다. 이 정의가 'become 보수주의자'에의 저항이라면 일견 이해될 수 있겠으나, "너희는 늙어보지 못했지만, 우리들은 젊어도 봤다"란 말엔 사뭇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가장 먼저 제 머리 속에서 떠올랐었었지요. 그러나 ---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결국엔 제가 지나온/현재의 제 삶의 방식에 '만족'이 아닌 '반성'을 하도록 만들어 준 시작 역시 바로 이 문장이었었다라는 걸 알게 됩니다.
'진보' 혹은 '좌파'라 불리우는 사람들의 주장 자체에는 별 하자가 없다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뭔가 지나치게 이상적(idealistic)한 면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 그들 '좌파'가 말하고 있는, 기본적인 바들에 동의하고 그렇게 실천하고 싶다,란 생각을 분명 가지고 있어왔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현실이 …"란 접미어는 항상 그 생각을 단지 '생각의 수준'에만 항상 머물게 하여 왔음 역시 털어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방학'이란 단어의 본질적 의미완 상관 없이, 오히려 정반대로, 학원이 제시하는 '10 to 10'이라는 스케쥴에, 예의 '현실이 다들 그러하니'란 방패 뒤에 숨어, 내 아이를 구해내려는 시도 자체를 아에 포기한 채, 그 속으로 구겨넣어버렸던, 이처럼 그에 대한 반성문스런 문장마저 사실 지금 나의 아이가 들어가 있는 학원의 1층에서 쓰여지고 있다란 이 '이겨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하여 나는 (그리고 어쩌면 그러하고 있을 당신도 역시!)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를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는 행동을 스스로에게 먼저 설득할 수 있겠느냐, 그리곤 그것이 확신이 되어 나의 주위까지도 설득하고 함께 변화하도록 이끌어낼 수 있겠느냐하는 실마리를 이 책 속 여러가지 '좌파의 정의'는 제게 보여주고 있었었지요.
·
·
·
"좌파는 시간을 갖고 삶을 음미하며, 이른바 개발과 발전이라는 강박으로부터 삶을 되찾아오는 싸움을 한다. 또한 좌파는 끊임없이 세상의 구조, 세상이 굴러가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수에 맞서 소수를 대변하며, 지속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삶의 조건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자신을 일깨우고 탐구하는 사람들이다.(p79)
(용기의 부족에서건, 심정적 동의가 없어서건 간에)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서 있지 아니하여도, 봄이 되면 으례 연례적으로 TV 뉴스에 등장하는 뻘건 띠를 머리에 두른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아직은? 여전히?)그다지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다하여도, (여전히 마음 속에선 경제학이 내 사랑의 일 대상이기에)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사뭇 '극복의 대상'으로 설정할 수는 없다 하여도, '현실이 그러하기에'란 방패를 여전히 나의 손에서 놓을 수 없기에 나의 아이로 하여금 올 여름방학에도 예의 '10 to 10'의 학원 스케쥴을 감내해야 한다라 강요하게 될지 모른다 하여도!!!
"나의 의지는 낙관적이지만 나의 지성은 비관적"(p208)
비록 현실을 방패삼고 있는 나의 지성은 비관적일지라도, 의지만큼은/의지라도 낙관적임을 말할 수 있는 건, "이 모든 모순의 구조를 인지하고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p239)란 설득에까지 차마,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겠기에 --- 큰 산불에, 작은 나뭇잎에 물을 떠다 그 불 위에 끼얹은 한 마리의 벌새(Colibris)에게 건네진 '너, 그래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거 알아?"란 신(神)의 조롱에 대해 "나도 알아.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p203)란 대답, "각자 자기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이 되면 세상은 비로소 바뀔 수 있다"(p203)란 이, 이 아주 작은 용기만을 필요로 하는 '생활에서의 실천'이 언젠가는, 아마도, 어쩌면, 부디!!!
좌파는 추락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좌파는 자신들이 수호해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철저히 아는 사람들, 그 권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기억하고 그것을 지킬 무기를 단단히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의 존엄을 송두리째 부숴버리려고 달려드는 세력이 나타날 때마다 최전방에 선다. 그런 좌파들이 세상의 다수였던 적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좌파로 불리는 것이다. 그들이 다수가 되는 순간 우파로 불릴 것이다.(pp151-152)
당장, 나의 아이가 '10 to 10'의 올 여름방학을 보내는 것부터 막아낼 수 있는 아버지가 될 수 있는 자신은 없으나 - '나의 의지는 낙관적이나 나의 지성은 비관적이다' --;; - 올 겨울방학엔 어쩌면!, (이 표현이 사실, 저의 '무능 혹은 자신감의 결여, 책임의 회피' 등을 의미한다란 걸 충분히 감내하면서도) 아주 길게 보자면 나의 손자는 내 아들의 혹은 대한민국 사회의 거부로 인해 '10 to 10'의 방학을 보내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는, '지금의 좌파가 결국 우파가 되는 세상'에의 희망을 가져 보기로 합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나의 아이가, "각자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면서 살 수 있도록 서로 지지해"(p34)주는 반려자를 만나, "재미있는 일을 마음껏 하면서 사는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p34)는 세상을 살아볼/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으로, 아비 세대의 유산(遺産)을 삼아 보고 싶습니다.
세상을 변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이해해야 할 한 가지는 세상을 바꾸기 전에 자기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 스스로를 변혁할 수 있어야 세상도 변혁할 수 있다.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든 이유는 개개인이 자신을 변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존재의 감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 힘든 것이다.(p73)
'실천에까지의 좌파'가 되기엔 여전히 보수적 사고의 잔향이 짙으며, 이론적 지식도, 심정적 확신도 부족하기에 저의 정치적 성향을 어디 가서 '좌파!'라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 생활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시작해보는, 그리하여 언젠간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려!!!) 나무 젓가락 없이 짜장면을 먹고 있는 '생활 좌파'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 '나의 의지는 낙관적이나 나의 지성은 비관적이다.' --;; - 그러한 가능성만큼은 오색찬란하게 상상하고 노력해가는, 그런 'wanna be 좌파'정도라고는 (다시 한 번 더) 언젠간!!! 되어 있지 않을까... 라 소박히 소망해 봅니다.
덧> 이러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의 '현실적' 발현은 (직접 그 곳에 뛰어들지 않는 한) 결국엔 투표행위 밖엔 없는 것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의 민주주의 정치체제이겠지요. 대한민국의 진보 정당들 역시 '구호의 잔치'만으로 세월을 보내왔다라 생각합니다만, 굳이 그들을 위한 변명을 꺼내어 보자면 --- 그들에겐 세상을 변화시킬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세력'이란 것이 단 한 번도 없었었노라고, 그러하기에 우선은 그 '세력'이란 걸 만들어 손에 쥐기 위해 이상(理想)이 아닌, '현실적'으로 달콤한 사탕들을 선거 때엔 내세울 수 밖엔 없는 것이라고, 이제 한 번쯤은! 그들에게 그 '현실적 세력'이란 걸 좀 주고나서나 그들의 행태를 지지/비판/반대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하는 생각이, 투표를 4일 앞둔 이 시점에 제 맘 속에 자리잡고 있네요. 어쩌다보니!!! --- 제가 살고 있는 동네가 이번 총선에선 선거구가 격전!의 '고양 갑'으로 바뀌어 있더라는. ^^
※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들
- 강수돌 外 著, 「리얼 진보」
- 유시민 著, 「국가란 무엇인가」
- 목수정 著,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에티엔 드 라 보에시 著, 목수정·심영길 共譯, 「자발적 복종」
- 류동민 著,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 「리얼진보」에서 김상봉 역시 '진보'와 '개혁'을 "자본주의 극복에의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로 구분짓고 있지요.
- 솔렌의 아버지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참여를 허락하는 자신의 물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 결국 혁명도 부르주아들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었다. 그러니 너는 공부를 계속해야 하고 너 자신도 부르주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결국 그러한 물적 토대를 가지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싸워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하게 된다는 것. 솔렌은 그리하여 사회 혹은 부르주아라고 하는 사고의 틀, 그 완전히 조직된 감옥에 갇히기 전에 자신을 둘러싼 모든 틀을 다 깨부수기를 희망한다.(p114)
- 제2회 '서울노인영화제'에 출품되었던 권오운 감독의 <나의 생활>이라는 영화중 한 대목
-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