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뜻한 봄날의 햇살같은 단편 소설집. 이런 소설이면 정말로 잘 팔려야 한다."


책값보다 술값을 항상 더 많이 내곤 하는 일산의 서점 <미스터 버티고>의 사장님께서 붙여 놓으신 띠지의 (무려 궁서체로 쓰여진!) 문구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서점 사장님의 정말로 잘 팔려야 한다,라는 뭔가 비장미 느껴지는 멘트를 보고 거기에 일조를 아니할 수 없는 거잖아요? 252페이지 속의 한 권에 무려 40개의 작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 말 그대로의 '단편 소설집'입니다. 다 읽고나니 역시나 저 또한! --- 이 책은 '잘 팔려야 한다'란 수식어를 받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예의 '따뜻한 봄날의 햇살같은'이란 말이 그야말로 딱! 들어맞는 표현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

​여타의 소설집이 그러하듯, 책의 제목인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란 제목의 소설이 이 작품집엔 들어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 책장을 덮고나면, 별 연관 없어 보이는 40개의 이야기들을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란 한 문장으로 요약해낼 수 있겠다,란 생각은 아마도 이 책을 읽은 누구에게나 찾아가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걍... 그냥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라 말해야 할 것만 같은, 뭐 세상살이란 게 나한테만 이런 게 아닌거로구나,쯤의, 결코 값싸지 않은, (황석영 作 「해질 무렵」스런) 작위적이지도 않은, 나만 손해보며 살고 있는 건 아니다류의 위로랄까요?  


·

·

·

 

 


"별은 좋겠다, 카드 값 걱정 안 해서 … 달은 좋겠다, 다음 달에도 그냥 달이어서 …"(<도망자> 중 p132)이란 문장은, 설혹 당신이 카드 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해도 충분히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란 자위(自慰)의 뜻을 온전히 전달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나는 그저 무언가를 다시 해보려고 했을 뿐인데. … 누구에겐 초간단 요리가 또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음을. … 아무도 그것을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초간단 또띠아 토스트 레시피> 중 p181)란 작가의 말은, 무엇인가, 때로는 매우 중요한, 하지만 대부분은 내 인생에 있어 의미있는 일은 아닌 무엇인가 앞에서 나 자신을 잠시나마 힐난하게 되는 나/우리들에게, 그런 경험은 누구나에게 다 있는 것이란다란 위로를 그냥 너무도 자연스럽게 건네어 주고 있지요. 네!


이 책 속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 이기호는 '강요하는 감동'이 아닌, 스스로 깨닫게 되는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작가라는 걸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뭐, 이제 저도 나이가 들 만큼 들어서인걸까요?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들에서 유달리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받게 되더군요.

"우리는 너나없이 고통 속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란다. … 고통 다음에야 비로소 가족의 이름을 부여받는 거야. … 그래서 가족이란 단어는 들으면 눈물부터 나오는 거란다. (<아아아아>중 p171)"에서의 설명을 "아빠, 이젠 애쓰지 않아도 돼요"(<이젠 애쓰지 않아도 돼요> 중 p216)란 한 문장으로써든가, 혹은 <봄비>나 <불 켜지는 순간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야말로 '강요함 없는' 감동을 선사해주고 있지요.

뭐 그렇다고, 이 책 속 소설들이 감동의 코드만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 "사랑이 어디 합의할 수 있는 거던가요?"(<벚꽃 흩날리는 이유> 중 p20)에서 부터 시작된 작가의 유난스럽지 않은 유머코드는 <두고 봐라>와 <개굴개굴>의 작품에선 기어코 저로 하여금 옆 자리에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정말로 깔.깔.깔!~터지는 웃음을 내지르게 해주었었죠. ('슈퍼맨이 돌아왔다'스런 설정의 이야기인 <개굴개굴>은 아들 셋 키우는 아빠라면 필히 읽어보시길!!!)

·

·

·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40개의 이야기들 속에 차라리!!! --- 이처럼 감동이나 유머만이 있었더라면 훨씬 더 좋지 않았었을까,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학계에 자고로 '문학'이라면 뭔가 좀 무거운 측면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스런 것이 있어서일까요? 작가는 "원칙이란 원래 가진 자들이나 지킬 것 많은 사람들이나 내세우는 것"(<사로잡힌 남자> 중 p221)과 같은, 결코 동의할 수 없는 가치관을 보여주기도 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노트북 켜놓고 쪽수와 문장을 함께 적어가며 읽어가는 전투모드의 독서가 아닌, 지하철에서라든가, 베개를 가슴팍에 깔고 엎드려서다던가, 혹은 지난 토요일의 저처럼 맥주에 위스키 마셔가며 페이지 수가 넘어갈수록 조금씩 알딸딸해져가는 뭔가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을' 분위기에서 읽으면 오히려! 그 만족이 훨씬 더 커지지 않을까 싶은, 만나보기 쉽지 않은 매력들로 가득한 작품들이라 생각합니다. 독자들에게 이런 감동과 즐거움을 주기 위해 작가는 편두통과 위장장애를 겪었었다라 쓰고 있거늘, 그의 그러한 고통들이 이처럼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다라는 점에서 작가 스스로도 만족해하지 않을까 싶네요.​(게다가 '잘팔리면' 인세도 두둑!)



……………………………………………………………………

 

 

 

 

  

이 책을 만날 수 있게 해주신, '맥주와 위스키가 있는 (물론 커피도 있는) 서점' <미스터 버티고>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날짜와 장소를 직접 적어달란 느닷없는(!) 손님의 요구에 이처럼 멋진 필체를 남겨주신 호의에 다시 한 번 더!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 <미스터 버티고> 사장님의 이 책에 대한 감상문 :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