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산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양한 대안이 모인 하나의 기회집합이다. … 일생일대의 결정 중 대부분은 선택 가능한 여러 집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pp63~64)
어느 한 주말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정말 많습니다. (feasibility와 affordability를 충족시킨다는 전제 하에) 여행을 갈 수도, 친구와 낮술을 즐길 수도, 가족과 영화를 보러 갈 수도 있겠거늘, 2주 전의 제가 선택한 것은 집에 앉아 막걸리를 음료수 삼아, 그 전 열흘 간 읽었었던 한 권의 책에 대한 감상문을 쓰는 것이었지요. 물론 이는 2주 전 당신의 선택과는 아마도 다를 것입니다. 그 다름은 저와 당신의 기호(preference)가 다르고, 소득 수준이 다르며, 살고 있는 지리적 위치가 다르고, 더 넓게는 살아온 환경이나 방식이 다름 등과 같은 수많은 이유로부터 기인되는 것이겠지요. 이처럼 --- 경제학은 '개인의 선택',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한 분석을 주 연구 대상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그러하기에,
경제학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으로, 인간은 다양한 목표를 세우며 그 목표를 성취하기에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p14)
적어도 경제학을 약간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경제학에 대한 위와 같은 정의(definition)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경제학이 달라진다"(p7)와 같은 주장에, 이제 더 이상은 제가 반감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고는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 '분석의 도구'로서의 경제학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고/못하고 있는 저에게, "경제학의 논점은 돈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p14)이란 저자 데이비드 프리드먼의 관점이 깃들어 있는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지요.
…………………………………………………………………………………………
원서의 제목,「The Economics of Daily Life」에서 보여지듯, 이 책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보여지는 여러 선택의 저변에 어떠한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가를, 다시 말해 우리들의 선택/행동을 이끌어내는 여러 변인들(variables)이 어떠한 원리로 작동하/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목표로 쓰여진 책입니다. 그러하기에, --- 이 책을 통해 '경제원론' 삼아 경제학을 공부해보겠다는 시도는 적절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시경제학을 이미 공부한 사람에게 이 책의 진가가 보여진다고나 할까요?
【 합리적 인간 】
행동경제학이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는 있습니다만, 이 역시 기존 경제학이 상정하고 있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인간에 대한 이의 제기일 뿐, '인간이 합리적이다'란 명제 자체에 대한 부정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이란 건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요? --- 미시경제학 교과서는 몇 가지의 수학적 공준 하의 '합리적 인간(소비자)'을 상정하고 있으나, 데이비드 프리드먼 교수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매우 단순한 의미의 '합리성'만으로 '경제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용과 편익을 계산해서 편익이 나는 일을 선택할 때 그 사람을 합리적인 인간이라고 한다.(p16)
위와 같은 가정이 이타적인 개인(A)의 행동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의문/비판은 --- A의 효용함수에는 '이타적인 행동'이 양(positive)의 독립변수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며, '이타적인 행동'이 효용함수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혹은 음(negative)의 독립변수로 포함되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A의 행동들이 '희생'으로 표현될 수 밖에 없겠으나, A에게는 그것이 (순전히 경제학적인 표현을 빌자면) '편익'이 되는 행동이었던 것이라, 경제학적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형을 만들 때 개인의 별난 행동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흥미롭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건 것까지 신경을 쓰다간 가장 중요한 연구과제인 '보편적인 시장의 힘'을 제대로 연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저스틴 폭스,「죽은 경제학자들의 만찬」p224, 알에이치코리아, 2010.
제가 이 책에 커다란 매력을 느끼게 된 두 번째 이유도 예의, 이같은 단순함으로부터 시작된 보편적 사고(思考)의 확장에 있지요. 자, 그렇다면 합리적인 개인들의 선택 원리를 분석하는 경제학은, 우리의 현실에서 보이는 (개인들의 합으로 정의될 수 있겠는) '비합리적인 사회 현상'들에 대하여는 어떠한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요?
【 비합리적 사회 】
<경제원론>이나 <미시경제학>의 '교과서'에서 배우게 되는 개인의 합리성에는 '예외'가 없는 것으로 기술되고 있습니다. 당연한 겁니다. 교과서는 태생적으로 '보수적'일 수 밖엔 없으니까요. 허나, 교과서가 아닌 이 책은,
경제학에서 설정하고 있는 인간은 합리성을 갖춘 인간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인간이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 전체 평균으로 놓고 보았을 때 사람들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p16)
"교조적인 신념이라기보다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프리즘에 가깝다"라는 한 신문 기사의 구절이 표현해주고 있듯,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가정을 '개별 개인'이 아닌 '전체 평균'의 범위로 완화시켜 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하여/그러하기에 사회의 비합리성이 생겨나는 것이라 설명하려는 것일까요? --- 이 책은 외려 다음 서술에 일말의 의구심을 제기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상식적인 판단을 한다. 단지 각자의 상식적인 판단이 모였을 때, 무시무시한 몰상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 노명우,「세상물정의 사회학」p26, 사계절, 2013.
즉, 우리가 흔히 '비합리적'이라 표현하는 현상들, 노명우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무시무시한 몰상식'이라 지칭되는 현상들이 과연 정말로 비합리적이며 몰상식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바로,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우리에게 묻고 또 답해주고 있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위의 인용문처럼 --- 전체 평균으로 보았을 때 합리적인 개인들이, 각자의 목표 달성을 위해 적합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 결과적으로 몰상식을 초래해왔다면, "경제학만큼 사회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강력한 학문은 아직 없다"와 같은 주장도 없었을 것이며, 더 나아가 경제학의 존재 또한 희미해져있어야 마땅할테니까요.
·
·
·
1,00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신은 창으로만 무장한 보병인데, 창으로 무장하고 말을 탄 창기병을 상대해야 한다. 보병이 단결해서 물러서지 않으면, 창기병의 공격을 무산시킬 가능성도 있고, 아군 사상자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병이 너도나도 도망치면 대다수가 말발굽에 짓밟혀 죽고 만다. 따라서 당신은 당연히 단결해서 버티는 쪽을 택해야 하지만 이는 잘못된 선택이다. 당신은 자신만 통제할 수 있을 뿐, 보병 전체를 통제할 수는 없다. 보병 전체가 버티고 당신만 도망친다면 당신은 적어도 적의 손에 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모두 도망치면 앞장서서 도망쳐야 살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다른 병사는 어떤 선택을 하든 당신은 처음부터 달아나는 편이 낫다. 그런데 모두 똑같이 생각하고 달아나면 대부분 죽는다. 이것이 바로 합리성의 어두운 면이다. (p19)
사회적 불합리가 발생된다고 하여 개인의 합리성이 의심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라는 것, 더 나아가 사회적 불합리들이 발생되는 것 자체가 개인의 합리성에 대한 일종의 반증이라는 사실, 그러하기에 --- 정부는 아파트 가격의 폭등을 막아야 한다 주장하면서도, 내 소유의 아파트 가격은 오르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이, 사회학자의 시선에는 이율 배반적 현상으로 보일 수 있으나,
"합리성이란 집단행동이 아니라 개개인의 행동에 대한 가정"(p213)을 상정하고 있으며, 그러한 개인의 합리성이 발휘될 수 있는 영역 또한 '개인'의 수준에 국한되고 있음을 상정하고 있는 경제학의 시선에서는 ---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에 대해 규정하는 규범의 차원이 아닌) '사회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실증적인 역할은 모자람 없이 해내고 있다 평가받을 수 있겠죠. 그것이 내/당신의 맘에 드느냐의 여부와 사회적으로 과연 '옳은' 것이냐의 여부는 차치하고 말입니다.
너무... 무책임한 듯 보이나요?
【 선한 행동의 결과 】
종이를 재활용하는 행동은 흔히 미덕으로 여겨진다. 나무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재활용 덕분에 적어도 당분간은 나무를 보호하게 된 세상을 상상한다. 재활용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이 상상하는 세상에는 나무가 무성하다. (pp242~243)
재활용 종이컵이 일반 종이컵에 비해 더 비쌈에도 불구하고, '나무를 보호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재활용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은 ('비용과 편익을 계산해서 편익이 나는 일을 선택한다'라는 의미에서의)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겠으나, '선한' 행동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지구 환경의 보호'라는 변인이 나의 효용 함수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재활용 종이컵을 구매하는 것이 반드시 '비합리적'인 행동이라 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겠듯,
그런 믿음은 잘못된 것일뿐더러 사실과 정반대다. 종이를 재활용하자는 주장에는 분명 타당한 구석이 있지만 오늘날 미국에서는 나무의 숫자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미국에서 종이를 만드는 목재 대부분은 애초에 종이를 만들려고 기른 나무에서 얻는다. 하지만 재활용은 펄프재 수요를 감소시킨다. 그리고 일단 수요곡선이 내리막을 그리면 가격은 내리고 수량은 줄어든다. 나무를 기르는 데 적합했던 땅은 가격이 바뀌면서 이제 더는 그 용도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가격 차이만큼의 면적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채식주의자가 늘면 소가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활용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무가 줄어든다. (p243)
사회적으로 '옳은 것'에 대한 의견 일치도 현실적으로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사회적으로 '옳은' 어떤 행동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할 때, 그 '옳다는 믿음'이 과연 본래의 의도에 맞는 결과를 이끌어내는가에 대한 확신 또한 금물이라는 것(이 저자 데이비드 프리드먼 교수의 주장)입니다. 이처럼 --- 선한 행동이 의도치 않은 방향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듯, '그릇된 행동'이라는 사회의 판단 또한,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오류인 경우가 있기도 하지요.
【 투기꾼의 억울함 】
가격이 낮을 때 구매하는 행동은 가격을 끌어올린다. 반대로 가격이 높을 때 판매하는 행동은 가격을 끌어내린다. (p255)
<경제 원론> 교과서에 나오는 수요과 공급의 곡선만 배우게 되면, 누구나 다 수긍하는 간단한 사실입니다. 이는 "인정많은 통치자"(p253)라 저자가 표현하고 있는, 정상적인 정부 역시 시행하는 정책이기도 하지요. 정상적인 정부는 풍년 (혹은 가격 파동)의 경우엔 수매하고, 흉년의 때엔 비축해 두었던 물량을 시장을 통해 공급함으로써 가격의 안정 (즉,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니까요. 또한,
투기꾼은 자신이 생각할 때 싸면 구매하고 비싸면 판다. 예를 들어, 올해는 작황이 좋지 않을 거라고 판단하면 가격이 싼 지금 곡물을 구매한다. 판단이 적중하면 곡물 가격이 오르고 구매한 곡물을 되팔아 많은 이윤을 챙긴다. … 만약 곡물이 넘쳐날 때 구매한다면 투기꾼은 그 당시 곡물 가격을 올리는 데 실제로 일조한다. 하지만 곡물이 부족할 때 판매함으로써 추가 수량이 정말 유용할 때 공급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춘다. (p253)
위의 인용문에서 '투기꾼'이라는 단어만을 '선물 업자(futures trader)'로 치환시키면, 현재 우리의 일상이 생필품의 커다란 가격 변동 없이, 나름 평온하게 보내지는 기반이 되는 상황에 대한 설명과도 하등 차이가 없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위 행동의 주체가 '선물 업자'가 아닌 '투기꾼'으로 지칭되는 순간, "타인의 불행을 이용해서 … 이윤을 챙기고 돈을 번다"(p253)라는 비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되지요. 이와 같은 '투기꾼'에 대한 비난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가격 변동이 해당 가격 변동으로 편익을 얻는 사람들의 짓이라고 믿는 건 일반적으로 잘못이며, 때로는 그런 잘못이 위험을 낳기도 한다.(p255)
네! 경제학의 역할이라는 것이 --- '사회는 이러이러하게 작동하여야 한다'라는 가치 판단의 영역이 아닌, "사회가 어떻게 협력을 이루며 움직여 나갈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라면, 우리의 선한 의도와 당연하다 생각했던 비난들이 사실은 그러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것이, 이 책이 일반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연 그렇다면,
경제학은 그저 현상에 대한 설명만 할 뿐, 우리에게 그 어떤 방향 제시도 하지 않는 것일까요?
·
·
·
'합리적 무시 rational ignoranc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비용과 편익의 비교를 통해 편익이 나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경제학의 정의 그대로, "정보는 얻는 데 필요한 비용이 정보의 가치보다 크다면 그 정보를 무시하는 것이 합리적"(p17)이라는 것이죠.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개인은 예의 '합리적'이며, 그러하기에 '합리적 무시' 또한 당연한 개인의 선택이 됩니다. 그러나...
대중의 규모가 커질수록, 대중에게 도움을 주려고 조성되는 재화의 가치 비율은 낮아진다. … (예를 들어) 해당 법률안이 자신에게 10달러만큼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 같은 의심을 확인하려고 너무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없다. 잠재적으로 손실을 볼 수 있는 금액이 적고, 결과를 바꿀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어떤 일은 자신이 기꺼이 할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집중된 이해관계'에 있는 구성원들과 비교했을 때, '분산된 이해관계'에 있는 구성원들은 관련 정보에 무지하기로 함으로써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 법안을 둘러싸고 입찰을 벌이는 개인과 이해집단의 이런 단순함 모델에 기초해서 우리는 어떤 예측을 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예측은 분산된 이해집단의 희생을 담보로 해서, 집중된 이해집단에 편익을 제공하는 쪽으로 입법이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농부들을 대하는 방식이 좋은 예다. 미국이나 프랑스, 일본처럼 전체 인구에 비해 농부의 숫자가 적은 부유한 나라에서는 농부들이 수확하는 곡물 가격을 인상시키는 방향으로 농업정책이 결정된다. 반면, 인구 대비 농부의 비율이 높은 아프리카나 많은 아시아의 나라에서는, 가난한 농부들로 이뤄진 분산된 대집단에 비용을 부과함으로써 노동자와 엘리트에게서 정치적인 지지를 얻으려 한다. 따라서 농업정책은 식품 가격을 낮추는 쪽으로 고안된다. (pp396~397)
진보 진영에서 주장하는 '연대(solidarity)' 의식의 고양이, "시장 자본주의를 그 내부로부터 해체하고 사회를 인본주의적 원리에 따라 재건"하는 것이라는 스스로의 '진보'에 대한 정의가 목표하는 바와는 달리, "개별적으로는 맞는 명제가 사회 전체적으로는 맞지 않게 되는" '구성의 오류'를 교정해줄 수 있는 훌륭한 처방책이라는 점을, (진보에게 극복의 대상인 자본주의) 경제학에서도 똑같이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이 변화의 창출 (p333) …… 자본주의 체제에는 위협적인 변화에 대처할 능력이 있다. 제도를 변경하거나 보완함으로써 위협적 변화에 따른 부정적 파장을 완전히 제거하거나 상당 부분 줄여낼 수 있는 것이다. (p346)
- 로버트 하일브로너 · 레스터 서로,「한번은 경제 공부」중, 부키, 2018.
"돈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p14)을 주 논점으로 삼고 있는 경제학이란 학문이 예의 ('당위'의 차원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제시까지도 해주고 있다라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으며, 부인해서도 안된다라 생각합니다.
…………………………………………………………………………………………
리카도의 유일한 저서「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에는 단순한 산수를 넘어서는 어떤 수학적 이론도 들어있지 않으며, 그가 고등수학을 알았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 오늘날 경제 이론가의 관점에서 그 책을 읽고 리카도의 성취를 실감하는 것은 마치 최초의 에베레스트 원정대 일원으로 참가해서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도착했지만, 그곳에서 티셔츠에 운동화 바람으로 조깅하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p45)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란 아이작 뉴턴의 명언을, 데이비드 프리드먼 교수는 위와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저에게 --- 헬리콥터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서선, 그 산을 등반했다라 믿어왔던 것 같은 잘못된 믿음 혹은 거만함을 일깨워 주었다고나 할까요?
공급곡선과 수요곡선은 분석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가격이 결정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단서다. (p137)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너무도 당연한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는 수준으로의 깨달음으로는 가지고 있지 못했었었음을 고백합니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에게 경제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라면, --- "관세는 미국인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다. 단, 다른 미국인 노동자들로부터 말이다"(p100)란 결론에 도달하는 저자의 논리 전개를 꼭 한 번 읽어보시라 권해드립니다.
·
·
·
이처럼, 이 책에 깃들어 있는 저자의 관점은, 적어도 저에게는 매우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제시한 관점, 즉 경제학이 광범위한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라고 보는 관점은 나만의 고유한 관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보편적인 관점도 아니다. (p454)
모 교수가 쓴 책 속의 '북핵의 게임이론적 분석'이나 '독도문제, 동북공정의 깨끗한 해결법' 등과 같은 (fancy한) 경제학적 분석이, 북핵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국민들의 고통과 독도의 상실로 인한 민족적 자긍심의 손상 등과 같은 비경제적 요소들을 완벽하게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 어마무시한 짜증이 났었듯, --- '오염'을 대상으로 한 저자의 경제학적 분석과 같이 전혀 동의할 수가 없는 부분 또한 있었습니다.
(이젠 완연히 떠나있으나, 여전히 제가) 사랑하는 '경제학'이란 학문이, 적어도 "승려가 신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이 승려를 위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학문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선, 경제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Adam Smith의 다음 지적을, 정말로 진지하게 새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어떤 중요한 목표가 하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언제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될까?"
- 조나단 B. 와이트,「애덤 스미스 구하기」중, 생각의 나무, 2007.
※ 읽어본, 경제학 입문서들
- 장하준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 유시민 :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 로버트 하일브로너 · 레스터 서로 :「한번은 경제 공부」
※ 보다 깊숙한 '경제학' :
- 홍기빈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 세일러 :「불편한 경제학」
- 데이비드 보일 · 앤드류 심스 :「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
- 데이비스 워시 :「지식경제학 미스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