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과 결과의 경제학 - 넘치는 데이터 속에서 진짜 의미를 찾아내는 법
나카무로 마키코.쓰가와 유스케 지음, 윤지나 옮김 / 리더스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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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었던「세상에서 가장 쉬운 통계학 입문」에서 저자는 "모집단이 정규분포라는 것만 알고 모분산은 모르는 경우, 소표본에서 모평균을 추정"1하는 것을 "통계학 초급의 수료지점"2이라 기술하고 있었습니다. ​--- 우리의 일상에도, 또한 업무적인 상황 하에서도 예의, 이처럼 부족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추론에 의거하여, 특정 결론에 도달하여야 하는 상황이 적잖이 있습니다만, 

'빅데이터'가 유행어처럼 되버린 요즘, 데이터를 이용한 분석이 범람하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는 그 자체만으로는 그저 숫자의 나열에 불과하다.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할지'가 매우 중요하다. 상관관계에 불과한 데이터 분석을 인과관계로 오인해 버리면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p188) 


너무나 많은 양의 데이터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 데이터를 잘못된 방법으로 분석함으로 인해 발생되는 피해 또한 분명 존재하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 이 책「원인과 결과의 경제학」의 두 저자는 "데이터 분석 기술 뿐 아니라 데이터의 분석 결과를 해석하는 기술도 필요하다"(p21)라 강조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 핵심에는 (제가 누누히 강조했었던, '수단과 목적의 명확한 구분'과도 일맥상통하는) 바로 '인과관계'와 '상관관계'의 구분이 있습니다. 

두 개의 사실 중 한쪽이 원인이고 다른 한쪽이 결과인 상태를 '인과관계가 있다'고 한다. … 한편 두 사실이 서로 관계는 있지만,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있지 않은 것을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p11) …… 인과관계인지 상관관계인지 정확히 구분해내기 위한 방법로은 '인과 추론'이라고 한다. '인과'란 문자 그대로 '원인과 결과'를 뜻하며, '추론'이란 '있는 사실을 토대로 판단을 이끌어내는 것, 추리와 추정을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즉, 두 개의 사실이 각각 원인과 결과인지 평가해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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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학생의 어휘력과 발 크기는 강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인관관계가 아니다. 새로운 단어를 습득한다고 발이 커지는 것도 아니고 발이 커진다고 단어가 저절로 외워지는 것도 아니다. 초등학생이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커갈수록 어휘력도 늘고 발도 커지는 것뿐이다. 나이라는 변수가 제3의 용인, 즉 혼동요인으로 작용한 셈이다."


- 류근관,「통계학」p113, 법문사, 2018.

이처럼 그저 단순한 상관관계에 있을 뿐인 두 사실에 대해, 우리는 종종 그것을 인과관계로 혼동하는 실수는 저지르곤 하지요. 이같은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저자는 두 변수 사이의 관계가 인과관계인지 아니면 상관관계인지 확인해보아야 하며, 그 확인에는 다음의 세 가지가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 적고 있습니다.3


(1) 우연의 일치는 아닌가?4  (2) 제3의 변수는 없는가?5  (3) 역의 인과관계는 존재하지 않는가?6 (p28)

이처럼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구분을 위한 통계적 기법으로 이 책은 '랜덤화 비교 시험', '메타 분석'7, '자연 실험', '이중차분법', '조작 변수법', '회귀 불연속 설계', 그리고 '매칭법'을 소개하고 있지요. --- 실제로 이런 통계 기법을 사용해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기 보다는8, '원인과 결과' (혹은 '수단과 목적')를 구분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라는 메시지를 독자들이 확실하게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정도가 이 책의 의의가 아닐까 싶습니다.9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기로 결정한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또한 다 읽어 낸 독자의 입장에서, 다음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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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은 종종 경기가 악화됐을 때 취해지는 정책으로, 임금을 올려 개인 소비를 진작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다. …… 연구 분석10 결과, 최저임금 상승은 고용을 상승시키지 않는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pp111 ~ 112)


이 문장만을 근거로 한다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기되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는 단번에 반박되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과연 그래도 될까요? 


"특정한 인과효과 추정치가 그것을 도출한 연구에서 대표하는 수준을 넘어서 다른 시간, 다른 장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예측력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는 외적 타당성(external validity)이라고 부른다."


- 조슈아 앵그리스트 · 예른 슈테펜 피슈케,「고수들의 계량경제학」p114, 시그마프레스, 2017.


적잖이 언급했었던, 병 나음받은 자의 간증이란 건 오로지 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지11, 그 사람의 간증대로 한다 하여 그 누구나! 병 나음을 받게 된다/받을 수 있다는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이처럼 --- 특정한 한계를 지닌 집단을 대상으로 한 추론의 결과를 '보편적(universal)'인 것으로 간주하는 오류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 및 낭비까지를 초래할 수도 있기에, 그 적용에 매우 신중해야 하는 것이죠.  


인과관계를 검증하지 않고 언뜻 효과 있어 보이는 정책을 무턱대고 실시한다면 국민들에게 큰 위험 부담을 안기게 된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p115)


이같은 '외적 타당성'과 관련하여, (조금은 다른 개념이지만) '반사실(反事實)'12과의 비교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이러한 성공은 내가 육감을 믿고 과감하게 투자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13란 도널트 트럼프의 자기 확신은, 정확하게는 '그 시절, 그 장소에서 그 사람'에게만 유효했었던 것이지, 그 자체를 우리가 배워야 할 보편적인 '거래의 기술'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14 --- "성공담에서 사회적인, 역사적인 운()은 대개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고, 그들의 인간 승리만이 비춰진다"15라는 이건범의 일갈은 바로 이 '반사실'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한 것에 대한 지적인 겁니다. 


누군가의 성공 스토리에서 우리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고 반사실은 알 수 없다.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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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작은 예의 업무적 필요성 때문이었습니다만, 뭔가 이 프로젝트를 조금이라도 더 완벽하게 수행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닌, 이 참에 다시 한 번 옛 지식들을 renewal 해보고 싶다는 개인적 욕심이, 이 책「원인과 결과의 경제학」을 읽고나니 생겨나네요. 올 한 해 읽어내게 될 책의 권수를 어느 정도 희생하더라도, 앞으로 당분간은 연필과 연습장과 함께하는 (독서라기 보다는) 공부를 하게 될 듯...




  1. 고지마 히로유키,「세상에서 가장 쉬운 통계학 입문」p221, 지상사, 2009.
  2. 고지마 히로유키, 앞의 책 p226
  3. "두 변수가 인과관계에 있다면 다시 원인이 발생했을 때 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 즉 '우연의 일치', '교란 요인', '역의 인과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두 변수의 관계가 상관관계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연의 일치', '교란 요인', '역의 인과관계' 중 하나가 존재한다. 상관관계의 경우, 그 원인이 다시 일어나도 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p35)
  4. "우연의 일치이기는 하지만, 두 변수가 매우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거짓 상관Spurious Correlations'이라 부른다. … 주가를 예측하는 사람들 중에는 우연의 일치로 발생한 사건들은 마치 '근거는 없지만 잘 맞는 경험 법칙''처럼 믿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p30)
  5. 바로 위의 인용문.
  6. "원인이라고 오해했던 것이 결과이고, 결과라고 생각했던 것이 원인인 상태를 '역의 인과관계'라고 부른다." (p35)
  7. "메타 분석이란 복수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전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 검증하는 방법이다. (p65) … 여기서 '메타'란 '고차원'을 의미하며, 복수의 연구 결과를 하나로 종합해 전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 밝히는 기법이다." (p73)
  8. "이 책은 인과 추론의 개념을 철저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쓰여졌다. … 그리고 인과 추론과 데이터를 이용한 경제학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그 해석, 즉 자료를 보는 방법에 대한 설명에도 지면을 충분히 할애했다." (p20)
  9. 통계 기법의 학습은 그 다음 단계가 되겠지요.
  10. 미국 뉴저지주와 펜실베이아주의 경계를 사이에 두고 있는 서로 이웃한 군을 대상으로 한 연구 분석
  11. 물론 신의 존재와 그 병 나음에 있어 발휘되었을지도 모르는 신의 능력까지를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12. "반사실이란 '만약에 OO을 하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라는 식으로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사실을 가정하는 시나리오를 가리킨다. … 인과관계의 존재는 원인이 발생한 '사실'의 결과와, 원인이 발생하지 않은 '반사실'의 결과를 비교해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자." (p37)
  13. 도널드 트럼프,「거래의 기술」p300, 살림, 2016.
  14. 트럼프의 그 책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내용은 아마도 다음의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 "겁낼 필요가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당신의 자리에서 당당히 일을 하면 된다", 도널드 트럼프, 위의 책 p118
  15. 이건범,「파산」p13, 피어나,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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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쉬운 통계학입문 세상에서 가장 쉬운 시리즈 (지상사)
고지마 히로유키 지음, 박주영 옮김 / 지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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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빼놓으면 통계학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아슬아슬하게 필요한 부분만을 간추려 쉽게 이해하며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아주 쉬운 입문서'다. (p13)​  ……  이 책의 최종 목표는 '검정'이나 '구간추정'이라는 통계학의 가장 중요한 목표 지점에 가장 짧은 시간에 도달하는 것 (p6)


적어도! (검정이나 구간추정이 과연 통계학의 가장 중요한 목표 지점인가에 대한 의문은 있을 수 있겠으나)1 저자가 의도하는 '아주 쉬운 입문서'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책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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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하게 필요한 부분만을 간추'렸다는 소개글처럼, 이 책은 '평균 - 표본분산 - 정규분포'에 대한 설명인 1부를 거쳐 --- "모집단이 정규분포라는 것만 알고 모분산은 모르는 경우, 소표본에서 모평균을 추정한다"(p221)라는 (저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통계학 초급의 수료지점"(p226)에 도달하는 2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같은 내용을 설명함에 있어, 


우리들은 단순히 통계학을 사용하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 (p197)


저자는 철저하게 '통계학을 배우는 학생'이 아닌, '통계학을 사용하여 무엇을 얻어내려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이 책에는 (일정 부분의 수식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확률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즉, --- 기술통계(descriptive statistics)와 추리통계(inferential statistics)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라는 것이죠.2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옛 속담처럼, 서말이나 되는 단편적 지식을 그저 알고만 있는 것 보다는, 얼마 되지 않는 지식이라도 서로 꿰어 익히고 있는 것이 훨씬 낫다라는 기준에서 보자면, 이 책의 효용은 사뭇 대단하다,라고까지 표현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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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학의 방법론은 지금까지의 과학 법칙 (예를 들어서, '지구상의 물체는 그냥 떨어뜨리면 바닥을 향해서 떨어진다'는 법칙과 같은 것)과는 조금 다른 형식을 취한다. 바로 '처음부터 100% 맞추지는 못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95% 예언 적중구간의 개념은 5%는 틀린다는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허용하는 것으로, 상당히 좁은 구간의 예언3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p104)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뽑기 위해, 전 국민이 자신의 선택을 '투표'라는 형식으로 표출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향후 5년 간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한 명의 인물이 정해지게 되지요. 다시 말해 '투표'라는 행위는 결국엔 한 가지의 결과만을 보여주게 되는, 일종의 결정론적 게임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 우리들은 여론 조사라는 행위를 통해 그 결정론적 게임의 결과를 조금이라도 미리 알고자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카지노에서 갬블링을 한 적이 없고 베팅 업체를 방문한 적이 없다 해도, 베팅은 우리 삶에 널리 퍼져 있다. 좋은 운이든 나쁜 운이든 운은 우리 사회생활과 인간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숨어 있는 정보에 어떻게든 대처해야만 하고 불확실한 가운데서도 타협을 해야 한다."


- 애덤 쿠하르스키,「수학자는 행운을 믿지 않는다」p311, 북라이프, 2016.


우리가 원하는 것이 '대처'이건 혹은 '타협'이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또는 더 정확하게 미지(unknown)의 무언가에 대해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 "대부분의 불확실한 현상은 그 뒷면에 있는 모집단을 모두 관측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p113)기에, "모집단 중에서 나오는 몇 가지의 데이터를 가지고 모집단 전체에 대한 어떠한 추측을 하"(p135)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통계적 추정'입니다.4 이 때 '추정'의 현실 유용성은 '얼마만큼의 정확성'으로 '어느 정도의 구체적인 (즉, 좁은) 범위'를 제시해주느냐로 평가되겠지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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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사람의 감정은 어째서, 뜨거운 물에 닿은 소금처럼 녹아 사라질 수 없는 걸까. … 그러다 문득 소금이란 다만 녹을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란 걸 깨닫는다." 

- 구병모,「위저드 베이커리」p185, 창비, 2009.


감정만이 아니라, 지식 또한 '다만 녹을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걸 이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학부에서 통계학, 수리통계학, 선형대수, 계량 경제학 그리고 대학원과 박사과정에서도 또 계량 경제학을 배웠던 과거의 노력이 결고 헛된 것은 아니더군요. 지난 30여 년간, '구간추정'이란 작업을 해본 적은 없었었음에도, 이 책을 읽다보니 이게 도대체 뭔 소리를 하고자 함인가는 미리 알게 되더란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데이터 세트 중에 있는 어떤 하나의 데이터가 가진 특수성은 평균에서 떨어진 정도(편차)를 나타내는 수치만으로는 계측할 수 없고, 표준편차를 기준으로 가정해야만 알 수 있다. … 그래서 '편차를 표준편차로 계산해서 얼마만큼'이라고 나타내는 변환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즉, 이것은 (데이터-평균값)/표준편차)라는 계산을 기준으로 데이터를 평가하는 것이다. (p62)


당연히, 그 수식은 금새 기억이 났습니다만, 정작 "(x-μ)/σ" 라는 통계량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왜 이러한 변환이 필요한지까지를 제가 이해했던 기억은 끝내 찾아지질 않더군요. "이전의 통계학 책은 수식이 상식을 압도했다. 수식을 풀고 증명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배운 것 같은데 막상 현실에 적용하려면 앞이 캄캄했다"6란 말이 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라는 것이죠. 


"P.Halmos는 '오솔길을 산책하며 연필도 공책도 없이 어려운 수학개념을 연인에게 쉽게 풀어서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수학을 진정으로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 류근관,「통계학」vii, 법문사, 2018.


통계 작업을 해야 할, 그러나 통계에 대한 사전 지식이 거의 없는 직원에게 소개해 준, 근데 그저 소개만 해주기엔 뭔가 무책임할 수도 있다라는 생각에, 저 또한 통계에 대한 교과서적 지식이 참 많이도 녹아 없어져버렸다 생각했기에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비록 제가 이 책을 두 번 정독했다 하여, 그 직원에게 '오솔길을 산책하며 연필도 공책도 없이' 이 책의 내용을 설명해줄 수 있을 거라곤 결코 생각지 않습니다만, 외려


통계학 책 수준으로 확실히 가르치는 것은 가능했지만, 가르치는 사람이 그 정도의 수준밖에 모르면 배우는 사람은 그 수준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학생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학생들이 공부를 게을리 했다고 보기보다는 가르치는 사람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p230) 


이것이 단지 통계학의 학습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업무의 지시에 있어서도, 더 나아가 --- 내 아이의 장래에 대한 (조언을 빙자한) 가르침을 주는 것에 있어서도 예의 적용되어야 할 매우 중요한 기준이란 배움을 얻었다라는 것이, 앞으로의 제 직장과 가정 생활에서 커다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통계학을 처음 배우고 있는 분들에게, 교과서를 보완해주는 부교재로 이 책을 강추! 드립니다. 



※ 읽어본, '통계' 관련 도서들 : 통계의 거짓말」·「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수학자는 행운을 믿지 않는다 




  1. 경제학을 전공했던 제 관점에서는 아무래도 --- 통계는 결국 여러 변수들 간의 인과관계 여부와 그 정도를 파악해내기 위한 일종의 도구(tool)로서의 의의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2. "이 책에서는 '데이터 세트에서 테이터 x는 모든 데이터 중에서 p퍼센트를 차지한다'라고 하는 것과 '데이터 세트 중에서 하나의 데이터를 관측할 때, 이것이 x일 확률은 p퍼센트다'라는 것을 동일시 하여 설명한다. 이것은 추리통계 학자가 열심히 연구해 쌓아올린 이론의 경계를 무시하는 셈이 되어 마음 아프지만, 통계학을 알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일반 독자들이 이것에 대해 심한 위화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pp18~19) --- 실제, 거의 모든 통계학 교과서가 확률론으로 시작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 점이 커다란 결점일 수도 있겠으나, '통계학을 사용하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러한 내용들의 배경에 어떠한 원리가 작동되고 있는지까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란 주장 또한 충분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 보입니다.
  3. 대략적으로 말해, 이것을 '검정' 혹은 '구간추정'이라 이해해도 됩니다.
  4. 국민투표와 같은 전수 조사는 일반적이지 않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입니다.
  5. 대통령 선거에서의 사전 여론조사를 예로 들자면, 가장 적은 수의 표본만으로 가장 정확한 예측을 해내는 것.
  6. 류근관,「통계학」vii, 법문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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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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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물질의 응집력은 수분을 전제로 하잖아요. (P164)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알지 못하나, 그것을 굳이 확인하고픈 생각도 없습니다. 작가 구병모가 그렇다 쓴 거면 그런 거겠지,라 믿어버릴만큼 이 작가를 제가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나 어쨌든, --- 작품 속 주요 등장인물인 곤, 해류, 강하의 관계라는 게 분명 '물()'을 매개로 하여 얽혀져 있다라는 건 사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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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분 전에 세탁기에서 꺼내어 걸어 놓은 빨래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고, 그 빨래들은 쏟아져 있는 맥주에 흥건히 젖어 있으며, 젖어 있는 것들 중엔 빨래들 뿐이 아니라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의 핸드폰도 함께 있고, 애지중지하던 이어폰은 한 쪽 연결선이 끊어진 채로, 역시나 자빠져 있는 의자의 등받이에 걸려 있는 거고, 그 모든 것들 위에는 --- 깨진 맥주잔 파편들이 반짝거리고 있었었으니...  


암튼! --- 이 작품「아가미」는, 위와 같은 상황이 대체 어떠한 연유로 발생되었는지를, 때로는 시간 순으로, 허나 대부분은 과거의 현재화라는 형식을 빌어 이야기 해주고 있는 소설이다,라고 설명하는 것 이외에는, 제 수준에선 어찌 표현이 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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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면 항상 손에 얹어놓고 돌리는 연필이 마루 바닥에 떨어져, 의자에 앉은 채로 고개를 숙여 연필을 주으려는 순간, 제 왼손 검지 손가락이 하필이면 핸드폰과 연결되어 있던 이어폰에 걸려버렸고, 그 반동에 저의 귀에서 이어폰이 뽑아져 나감과 동시에 핸드폰 또한 마루에 떨어졌던 것이고, 앉은 채 잃은 중심을 회복하겠노라는 반사신경으로 테이블을 잡으려 휘저었던 저의 왼손은 또 하필이면 맥주가 담겨져 있던 유리잔을 세게 쳐 마루로 떨어지게 함과 동시에, 결국 넘어져 버린 제 몸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테이블 바로 옆에 있던 빨래 걸이 또한 넘어져버린 거라는 … 


한 개 한 개의 행동들을 보자라면 '그럴 수도 있을~'이란 반응을 내보이게 되나, 굳이! 순식간에 벌어졌던 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 근본 이유를 찾아 보겠다 한다면 결국엔 --- '책을 읽을 때는 대체 왜 항상 손가락으로 연필을 돌려야 하는거지?'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저는 내놓아야 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제가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이란 건 그저,


사람은 몸에 입힌 기억이나 행위에 밀착되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법이기에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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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간 정도 만에 읽어 낼 수 있었던, 길지 않은, 그리고 복잡하지 않은 줄거리의 소설이었습니다. 뭐 그러했기에/그래서 --- 이 소설을 읽고 쓴 감상문이 이처럼 짧은 건 절대 아닙니다. "인어 남자"(p101)라는 등장 인물의 생경함에 쓸 말을 잃어서도 또한 아닌, 이게 뭐랄까, 


술에 취한 너를 들쳐 업고, 5층 아파트 계단을 오를 때 / 내 등 뒤에서 너는 아기처럼 새근새근 잠을 잤었지.

힘이 들어 난간에 기대면 어느새 깼는지 작은 소리로 /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고는 다시 잠이 들어버렸지.


열쇠를 찾아서 겨우 문을 열고 끈을 풀러 신발을 벗겨주고 / 침대에 널 뉘어놓고 돌아서 터덜터덜 층계를 내려오지.

새벽길에 옷깃을 여미며 흩어진 시간을 흩어진 기억을 / 어깨에 남은 너의 몸무게에 담아 물지게처럼 지고 가지.

- 김창완, <너를 업던 기억> 중


어떤 관계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술에 취한 채 남자1의 등에 편한 마음으로 업혀 잠을 들 수 있는 여자를, '침대에 뉘어놓고 돌아서 터덜터덜 층계를 내려'온다라는 설정 자체가 선뜻 이해되지 않기는 하나, 그렇다 하여 굳이 --- 둘의 정확한 관계가 무엇인지, 남자의 직업이 혹시 119 구급대원? 이라든가, 행여 남자에게 모종의 성적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닐지, 뭐 이도저도 아니면 등에 업혀 있던 사람 또한 남자가 아니었던 걸지 … 등과 같은 정나미 떨어지는 질문 등으로 이 노랫말에 시비를 거는 것 보다는, 


이 노래의 멜로디가 그러하듯, 딱히 하이라이트라 들려지는 부분이 없어도, 기분 좋게 취기 오른 날이면 예의, 김유신의 말()의 혼이 제 발에 깃들기라도 한 듯 찾아가곤 하는 LP bar에서 신청하여 흥얼거리며 따라하게 되는 것 마냥 그냥... 뭐, --- "누구나 아가미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를 곁에 두고 살아야만 하며 " (p203)란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을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굳이, 


인간의 몸에 어떻게 아가미가 있을 수 있느냐, 소설이란 게 이처럼 현실성 없는 설정을 통해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독자에게 줄 수 있는 '위로'가 과연 무엇이겠느냐 따위의 질문까지는 필요하지 않다 생각합니다. 왜냐, 그건...


자신의 특별함(아가미)을 감추고 싶어하는 '곤'과는 달리, 강하, 해류, 그리고 이녕은 '곤'의 특별함으로부터 구원과 위로를 받았으며, 당신과 저 역시 그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내고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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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비극에, 그리고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고난에 대비가 되어 있겠는가? 아무도 그렇지 않다. 비극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비극 - 그것이 모든 사람의 비극이다." 


- 필립 로스,「미국의 목가 (1권)」p140, 문학동네, 2014.


인간의 비극에 대한, 필립 로스의 공감되고 또 공감되는 위와 같은 규정에 대해, 마치 작정하고 준비라고 한 듯 내놓은 구병모의 다음 구절을, 각자의 상황에 맞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또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 이것이 바로,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가 아닐까 합니다.  


또다시 물에 빠진다면 인어 왕자를 두 번 만나는 행운이란 없을 테니 열심히 두 팔을 휘저어 나갈 거예요. 헤엄쳐야지 별 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p21)


이 작품도 예의, 

제가 이 작가, 구병모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이유가 되어주네요.



※ 읽어본, 작가 구병모의 작품들 (읽어본 순)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파과」·「빨간구두당」·「위저드 베이커리·「한 스푼의 시간·피그말리온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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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란 무엇인가
레너드 코페트 지음, 이종남 옮김 / 민음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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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목적은 어디까지나 '안내'이다.  독자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야구를 좀 더 즐길 수 있도록 이해의 폭을 넓혀 주는 게 이 책을 만든 기본 취지다. (p20)


겨울철이 무료한 건, 날이 금방 어두워져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빨라져서 때문이 아닌 ---「야구 냄새가 난다」의 저자 하국상의 분류로1 '그저 야구팬'이건 혹은 '야구주의자'이건 '야구가 좋아서 야구를 보고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매주 6번씩 벌어지는 응원팀의 야구 경기를 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드디어!


'이번 달'로 다가온 2019년 프로야구 개막을 대비하여, 선수들에게만이 아닌 팬 또한 일종의 '스프링 캠프'를 치르며 올 시즌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냐,란 뭔가 모를 의무감에, 장장 613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2 펼쳤더랬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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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정해진 대로, 원하는 대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야구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p197) …… 야구에 과학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크게 보면 실수투성이인 인간이 하는 운동일 뿐이다.(p231)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개막전을 TV로 직접 시청했었었으며, 오래 된, 그러나 식지 않은 열광을 지니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의 팬으로서 그 마지막 우승의 경험이 어느덧 '30년 전'을 몇 년 남겨놓지 않고 있는 처지에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이즈음만 되면, 롯데의 우승을 꿈꿔볼 수 있는/보게 되는 이유는 바로, 규칙상의 공정성3을 뛰어 넘는 그 무엇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것이 뭐, 롯데 자이언츠의 야구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겠죠.  



그럼에도 우리의 삶엔 나아가야 할 방향이란 게 항상 존재한다


미식축구나 농구, 아이스파키 등에 비하면 야구는 움직임이 느린 운동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신체적 활동이 멈춰 있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투구와 투구 사이에 맹목적인 행동으로 보이는 것도 실은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다. (p222)


타인에게 이해받느냐의 여부완 상관 없이, 나의 현재는 그 언제이든 다가올 나의 미래를 위한 준비일 것이며 또한 --- 타인의 현재 역시, 그에게 다가올 미래를 위한 여하한 준비이겠죠. 학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나의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핸드폰 게임에 빠지는 것마저도, 그에게는 변함 없이 닥쳐올 내일의 학원 수업에 대한 하나의 준비라는, 분명한 목적일 꺼라, 그렇게 이해해보기로, 다시 한 번 더 다짐해봅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가 강조하는 야구란 …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인간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 최선의 플레이 해야 하며, 그 뒤의 어줍짢은 비난이 두려워 적당히 어물거려서는 안 된다. (p159)4


오랫만에 통화하는 친구로부터, '별 일 없지?'란 안부 인사를 받고, '뭐 별 일 있을게 뭐겠어~'란 짧은 대답을 해낼 수 있기 위해 그동안, 타인의 평가와는 별개로 저 나름대로는 치열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왔었다라는 점 또한, 1점을 내기 위해 펼쳐지는 그라운드 위의 수싸움들과 별로 다르지 않겠죠. 내 아이가 제게 하는 대답인 '저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구요~'  역시, 허투루 나온 것이 아닐 꺼라는 믿음 --- 그 또한 부모된 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는 걸 되새겨 봅니다.  



삶에 요행은 없다


야구가 구조상 어김없는 '확률 경기'라는 신념을 허물어뜨려서는 안 되며 그러려면 운이라는 요소는 계산에서 배제해야 한다. 설사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운이 연거푸 겹치는 바람에 나쁜 결과가 오더라도 무슨 일이든지 결정을 내릴 때는 언제나 '가장 합당해 보이는' 동기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p178)


지난 나의 삶 속에 커다란 실패가 있었다 하더라도 --- 요행을 바라거나, 옳다 여겨왔었던 신념들을 버리지는 말자라고, 나의 과거 삶 속 실패가 내 미래 또 하나의 실패로 연결되지 않기 위해서는 여전히 옳다 믿는 것을 실행에 옮겨낼 수 있는 용기 또한 필요하다는, 그러하다보면 결국엔,  



우리가 성공이라 여겼던 것이 성공이 아니었듯, 우리가 실패라 여겼던 것이 실패만은 아니라는 점5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통계는 앞으로 해낼 일의 능률을 재는 잣대가 아니라 이미 지나간 일의 효능을 잰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앞날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서술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아 움직이는 야구라는 경기에서 일부만을 임의로 뽑아내 숫자로 옮겨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p366)


나의 실패가 지나온 내 삶의 전부를 규정짓지는 않는다라는 최소한의 위로, 과거의 실패가 미래의 내 삶을 규정하는 것 또한 아닐 것이라는 새로운 희망을 가져봄과 동시에 --- 앞으로도 수많은 변수가 작용될, 내 아이의 삶 또한 현재까지의 성과만으로 가늠해보는 우() 또한 경계해야하리라 반성해 봅니다. 



아이의 삶을, 부모가 결정지어줄 수 있을까?  


대부분의 감독은 팀의 승수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 선수들의 능력을 총체적으로 뭉뚱그린 전력으로 본다면 스타일이 다른 감독이 팀을 이끈다 해도 결과는 비슷하다는 얘기다. … 왜 그런가 하면 야구의 기본 전략이라는 게 별로 복잡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 야구에서 구사할 수 있는 모든 작전은 '언제 하느냐' 하는 것이지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게 아니다.(pp165~171)​

내 아이가​ 살아가게 될 / 살아가야 할 삶이란 게, 부모의 기준에 맞춰지기를 바라는 욕심보다는, 부모의 경험이 알려주는 '때의 중요성'을 조언해 주는 것이 훨씬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하는, 이놈의 끝없는 반성을 또 다시 한 번 해보게도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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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야구에 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직접 야구계 안에서 생활해 보지 않고서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맛보거나 헤아릴 수 없다. … 무서움을 극복하는 것이 타격의 기초이면서도 그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듯이 외로움도 야구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사항의 하나인데도 그다지 자주 언급되지 않고 있다. (p315)


스스로도 느껴왔었고, 스스로도 아쉬워 하는 점이면서도 예의, 내 아이의 외로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라는, 이 한 권의 야구 책이 저에게 가르쳐준 삶에 대한 가르침이 아닐까 싶네요. --- "야구팬은 세상 모든 것을 야구에 빗대어 말할 수 있"6다라는 말이, 그저 한 야구 덕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어쩌면 제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야구 덕후가 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 도 해봅니다. 



※ 읽어본, 야구에 관한 책 두 권

- 하국상 : 「야구 냄새가 난다

- 김정준 · 최희진 : 「김성근 그리고 SK와이번스 




  1. "그저 야구팬은 야구가 좋아서 야구를 보고 즐기는사람들이다. 야구를 소비하는 사람들이다. 야구주의자도 야구를 보고 즐기지만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책임감을 갖는다. … 그저 야구팬에게 야구는 대체가능한 서비스다. … 야구주의자라면 다르다. 야구를 통해 얻는 기쁨은 대체 불가능하고, 국내 야구의 질적 하락은 생활에 필수적인 의료, 법률, 외식 수준의 하락과 같은 것이다." - 하국상,「야구 냄새가 난다」pp202~206, 고슴북스, 2016.
  2. 원서의 발간연도가 1991년이라는 점, 또한 모든 예시와 통계가 메이저리그의 것이라는 점이, 메이저리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저에게는 아쉬웠습니다만, 이 두 가지를 제외한다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저자의 위 목적에 부족함 없이 부합되도록 쓰여 있는 책입니다.
  3. "야구 규칙은 될 수 있는 대로 양 팀에게 공정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다듬어져 있다. 야구가 훌륭한 경기인 것은 그런 공정성이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p591)
  4. "제일 매너 없는 팀은 대충 야구 하는 팀입니다." - 하국상, 위의 책 p30.
  5. 이건범,「파산」p30, 피어나, 2014.
  6. 하국상, 위의 책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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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프리드먼 교수의 경제학 강의
데이비드 D. 프리드먼 지음, 고기탁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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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산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양한 대안이 모인 하나의 기회집합이다. … 일생일대의 결정 중 대부분은 선택 가능한 여러 집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pp63~64) 


어느 한 주말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정말 많습니다. (feasibility와 affordability를 충족시킨다는 전제 하에) 여행을 갈 수도, 친구와 낮술을 즐길 수도, 가족과 영화를 보러 갈 수도 있겠거늘, 2주 전의 제가 선택한 것은 집에 앉아 막걸리를 음료수 삼아, 그 전 열흘 간 읽었었던 한 권의 책에 대한 감상문을 쓰는 것이었지요. 물론 이는 2주 전 당신의 선택과는 아마도 다를 것입니다. 그 다름은 저와 당신의 기호(preference)가 다르고, 소득 수준이 다르며, 살고 있는 지리적 위치가 다르고, 더 넓게는 살아온 환경이나 방식이 다름 등과 같은 수많은 이유로부터 기인되는 것이겠지요. 이처럼 --- 경제학은 '개인의 선택',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한 분석을 주 연구 대상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그러하기에, 


경제학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으로, 인간은 다양한 목표를 세우며 그 목표를 성취하기에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p14)


적어도 경제학을 약간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경제학에 대한 위와 같은 정의(definition)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경제학이 달라진다"(p7)와 같은 주장에, 이제 더 이상은 제가 반감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고는 하나,1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 '분석의 도구'로서의 경제학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고/못하고 있는 저에게, "경제학의 논점은 돈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p14)이란 저자 데이비드 프리드먼의 관점이 깃들어 있는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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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의 제목,「The Economics of Daily Life」에서 보여지듯, 이 책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보여지는 여러 선택의 저변에 어떠한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가를, 다시 말해 우리들의 선택/행동을 이끌어내는 여러 변인들(variables)이 어떠한 원리로 작동하/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목표로 쓰여진 책입니다. 그러하기에, --- 이 책을 통해 '경제원론' 삼아 경제학을 공부해보겠다는 시도는 적절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시경제학을 이미 공부한 사람에게 이 책의 진가가 보여진다고나 할까요? 



【 합리적 인간 】 


행동경제학이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는 있습니다만, 이 역시 기존 경제학이 상정하고 있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인간에 대한 이의 제기일 뿐, '인간이 합리적이다'란 명제 자체에 대한 부정은 아니라 생각합니다.2 그렇다면 도대체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이란 건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요? --- 미시경제학 교과서는 몇 가지의 수학적 공준3 하의 '합리적 인간(소비자)'을 상정하고 있으나, 데이비드 프리드먼 교수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매우 단순한 의미의 '합리성'만으로 '경제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용과 편익을 계산해서 편익이 나는 일을 선택할 때 그 사람을 합리적인 인간이라고 한다.(p16)


위와 같은 가정이 이타적인 개인(A)의 행동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의문/비판은 --- A의 효용함수에는 '이타적인 행동'이 양(positive)의 독립변수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며, '이타적인 행동'이 효용함수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혹은 음(negative)의 독립변수로 포함되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A의 행동들이 '희생'으로 표현될 수 밖에 없겠으나, A에게는 그것이 (순전히 경제학적인 표현을 빌자면) '편익'이 되는 행동이었던 것이라, 경제학적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형을 만들 때 개인의 별난 행동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흥미롭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건 것까지 신경을 쓰다간 가장 중요한 연구과제인 '보편적인 시장의 힘'을 제대로 연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스틴 폭스,「죽은 경제학자들의 만찬」p224, 알에이치코리아, 2010.


제가 이 책에 커다란 매력을 느끼게 된 두 번째 이유도 예의, 이같은 단순함으로부터 시작된 보편적 사고(思考)의 확장에 있지요. 자, 그렇다면 합리적인 개인들의 선택 원리를 분석하는 경제학은, 우리의 현실에서 보이는 (개인들의 합으로 정의될 수 있겠는) '비합리적인 사회 현상'들에 대하여는 어떠한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요?



【 비합리적 사회 】 


<경제원론>이나 <미시경제학>의 '교과서'에서 배우게 되는 개인의 합리성에는 '예외'가 없는 것으로 기술되고 있습니다. 당연한 겁니다. 교과서는 태생적으로 '보수적'일 수 밖엔 없으니까요.4 허나, 교과서가 아닌 이 책은,


경제학에서 설정하고 있는 인간은 합리성을 갖춘 인간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인간이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 전체 평균으로 놓고 보았을 때 사람들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p16)    


"교조적인 신념이라기보다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프리즘에 가깝다"5라는 한 신문 기사의 구절이 표현해주고 있듯,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가정을 '개별 개인'이 아닌 '전체 평균'의 범위로 완화시켜 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하여/그러하기에 사회의 비합리성이 생겨나는 것이라 설명하려는 것일까요? --- 이 책은 외려 다음 서술에 일말의 의구심을 제기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상식적인 판단을 한다. 단지 각자의 상식적인 판단이 모였을 때, 무시무시한 몰상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 노명우,「세상물정의 사회학」p26, 사계절, 2013.


즉, 우리가 흔히 '비합리적'이라 표현하는 현상들, 노명우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무시무시한 몰상식'이라 지칭되는 현상들이 과연 정말로 비합리적이며 몰상식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바로,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우리에게 묻고 또 답해주고 있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위의 인용문처럼 --- 전체 평균으로 보았을 때 합리적인 개인들이, 각자의 목표 달성을 위해 적합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 결과적으로 몰상식을 초래해왔다면"경제학만큼 사회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강력한 학문은 아직 없다"6와 같은 주장도 없었을 것이며, 더 나아가 경제학의 존재 또한 희미해져있어야 마땅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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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신은 창으로만 무장한 보병인데, 창으로 무장하고 말을 탄 창기병을 상대해야 한다. 보병이 단결해서 물러서지 않으면, 창기병의 공격을 무산시킬 가능성도 있고, 아군 사상자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병이 너도나도 도망치면 대다수가 말발굽에 짓밟혀 죽고 만다. 따라서 당신은 당연히 단결해서 버티는 쪽을 택해야 하지만 이는 잘못된 선택이다. 당신은 자신만 통제할 수 있을 뿐, 보병 전체를 통제할 수는 없다보병 전체가 버티고 당신만 도망친다면 당신은 적어도 적의 손에 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모두 도망치면 앞장서서 도망쳐야 살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다른 병사는 어떤 선택을 하든 당신은 처음부터 달아나는 편이 낫다. 그런데 모두 똑같이 생각하고 달아나면 대부분 죽는다. 이것이 바로 합리성의 어두운 면이다. (p19)


사회적 불합리가 발생된다고 하여 개인의 합리성이 의심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라는 것, 더 나아가 사회적 불합리들이 발생되는 것 자체가 개인의 합리성에 대한 일종의 반증7이라는 사실, 그러하기에 --- 정부는 아파트 가격의 폭등을 막아야 한다 주장하면서도, 내 소유의 아파트 가격은 오르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이, 사회학자의 시선에는 이율 배반적 현상으로 보일 수 있으나, 


"합리성이란 집단행동이 아니라 개개인의 행동에 대한 가정"(p213)을 상정하고 있으며, 그러한 개인의 합리성이 발휘될 수 있는 영역 또한 '개인'의 수준에 국한되고 있음을 상정하고 있는 경제학의 시선에서는 ---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에 대해 규정하는 규범의 차원이 아닌) '사회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실증적인 역할은 모자람 없이 해내고 있다 평가받을 수 있겠죠. 그것이 내/당신의 맘에 드느냐의 여부와 사회적으로 과연 '옳은' 것이냐의 여부는 차치하고 말입니다. 


너무... 무책임한 듯 보이나요?   



【 선한 행동의 결과 】


종이를 재활용하는 행동은 흔히 미덕으로 여겨진다. 나무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재활용 덕분에 적어도 당분간은 나무를 보호하게 된 세상을 상상한다. 재활용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이 상상하는 세상에는 나무가 무성하다. (pp242~243) 


재활용 종이컵이 일반 종이컵에 비해 더 비쌈에도 불구하고, '나무를 보호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재활용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은 ('비용과 편익을 계산해서 편익이 나는 일을 선택한다'라는 의미에서의)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겠으나, '선한' 행동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지구 환경의 보호'라는 변인이 나의 효용 함수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재활용 종이컵을 구매하는 것이 반드시 '비합리적'인 행동이라 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겠듯, 


그런 믿음은 잘못된 것일뿐더러 사실과 정반대다. 종이를 재활용하자는 주장에는 분명 타당한 구석이 있지만 오늘날 미국에서는 나무의 숫자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미국에서 종이를 만드는 목재 대부분은 애초에 종이를 만들려고 기른 나무에서 얻는다. 하지만 재활용은 펄프재 수요를 감소시킨다. 그리고 일단 수요곡선이 내리막을 그리면 가격은 내리고 수량은 줄어든다. 나무를 기르는 데 적합했던 땅은 가격이 바뀌면서 이제 더는 그 용도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가격 차이만큼의 면적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채식주의자가 늘면 소가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활용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무가 줄어든다. (p243)  


사회적으로 '옳은 것'에 대한 의견 일치도 현실적으로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사회적으로 '옳은' 어떤 행동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할 때, 그 '옳다는 믿음'이 과연 본래의 의도에 맞는 결과를 이끌어내는가에 대한 확신 또한 금물이라는 것(이 저자 데이비드 프리드먼 교수의 주장)입니다. 이처럼 --- 선한 행동이 의도치 않은 방향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듯, '그릇된 행동'이라는 사회의 판단 또한,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오류인 경우가 있기도 하지요. 



【 투기꾼의 억울함8 】


가격이 낮을 때 구매하는 행동은 가격을 끌어올린다. 반대로 가격이 높을 때 판매하는 행동은 가격을 끌어내린다. (p255)


<경제 원론> 교과서에 나오는 수요과 공급의 곡선만 배우게 되면, 누구나 다 수긍하는 간단한 사실입니다. 이는 "인정많은 통치자"(p253)라 저자가 표현하고 있는, 정상적인 정부 역시 시행하는 정책이기도 하지요. 정상적인 정부는 풍년 (혹은 가격 파동)의 경우엔 수매하고, 흉년의 때엔 비축해 두었던 물량을 시장을 통해 공급함으로써 가격의 안정 (즉,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니까요. 또한, 


투기꾼은 자신이 생각할 때 싸면 구매하고 비싸면 판다. 예를 들어, 올해는 작황이 좋지 않을 거라고 판단하면 가격이 싼 지금 곡물을 구매한다. 판단이 적중하면 곡물 가격이 오르고 구매한 곡물을 되팔아 많은 이윤을 챙긴다. … 만약 곡물이 넘쳐날 때 구매한다면 투기꾼은 그 당시 곡물 가격을 올리는 데 실제로 일조한다. 하지만 곡물이 부족할 때 판매함으로써 추가 수량이 정말 유용할 때 공급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춘다. (p253)


위의 인용문에서 '투기꾼'이라는 단어만을 '선물 업자(futures trader)'로 치환시키면, 현재 우리의 일상이 생필품의 커다란 가격 변동 없이, 나름 평온하게 보내지는 기반이 되는 상황에 대한 설명과도 하등 차이가 없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위 행동의 주체가 '선물 업자'가 아닌 '투기꾼'으로 지칭되는 순간, "타인의 불행을 이용해서 … 이윤을 챙기고 돈을 번다"(p253)라는 비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되지요. 이와 같은 '투기꾼'에 대한 비난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가격 변동이 해당 가격 변동으로 편익을 얻는 사람들의 짓이라고 믿는 건 일반적으로 잘못이며,9 때로는 그런 잘못이 위험을 낳기도 한다.(p255) 


네! 경제학의 역할이라는 것이 --- '사회는 이러이러하게 작동하여야 한다'라는 가치 판단의 영역이 아닌, "사회가 어떻게 협력을 이루며 움직여 나갈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10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라면, 우리의 선한 의도와 당연하다 생각했던 비난들이 사실은 그러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것이, 이 책이 일반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연 그렇다면, 


경제학은 그저 현상에 대한 설명만 할 뿐, 우리에게 그 어떤 방향 제시도 하지 않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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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무시 rational ignoranc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비용과 편익의 비교를 통해 편익이 나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경제학의 정의 그대로, "정보는 얻는 데 필요한 비용이 정보의 가치보다 크다면 그 정보를 무시하는 것이 합리적"(p17)이라는 것이죠.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개인은 예의 '합리적'이며, 그러하기에 '합리적 무시' 또한 당연한 개인의 선택이 됩니다. 그러나...


대중의 규모가 커질수록, 대중에게 도움을 주려고 조성되는 재화의 가치 비율은 낮아진다. …  (예를 들어) 해당 법률안이 자신에게 10달러만큼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 같은 의심을 확인하려고 너무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없다. 잠재적으로 손실을 볼 수 있는 금액이 적고, 결과를 바꿀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어떤 일은 자신이 기꺼이 할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집중된 이해관계'에 있는 구성원들과 비교했을 때, '분산된 이해관계'에 있는 구성원들은 관련 정보에 무지하기로 함으로써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 법안을 둘러싸고 입찰을 벌이는 개인과 이해집단의 이런 단순함 모델에 기초해서 우리는 어떤 예측을 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예측은 분산된 이해집단의 희생을 담보로 해서, 집중된 이해집단에 편익을 제공하는 쪽으로 입법이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농부들을 대하는 방식이 좋은 예다. 미국이나 프랑스, 일본처럼 전체 인구에 비해 농부의 숫자가 적은 부유한 나라에서는 농부들이 수확하는 곡물 가격을 인상시키는 방향으로 농업정책이 결정된다. 반면, 인구 대비 농부의 비율이 높은 아프리카나 많은 아시아의 나라에서는, 가난한 농부들로 이뤄진 분산된 대집단에 비용을 부과함으로써 노동자와 엘리트에게서 정치적인 지지를 얻으려 한다. 따라서 농업정책은 식품 가격을 낮추는 쪽으로 고안된다. (pp396~397) 


진보 진영에서 주장하는11 '연대(solidarity)' 의식의 고양이, "시장 자본주의를 그 내부로부터 해체하고 사회를 인본주의적 원리에 따라 재건"12하는 것이라는 스스로의 '진보'에 대한 정의가 목표하는 바와는 달리, "개별적으로는 맞는 명제가 사회 전체적으로 맞지 않게 되는"13 '구성의 오류'를 교정해줄 수 있는 훌륭한 처방책이라는 점을, (진보에게 극복의 대상인 자본주의) 경제학에서도 똑같이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이 변화의 창출 (p333) …… 자본주의 체제에는 위협적인 변화에 대처할 능력이 있다. 제도를 변경하거나 보완함으로써 위협적 변화에 따른 부정적 파장을 완전히 제거하거나 상당 부분 줄여낼 수 있는 것이다. (p346)


로버트 하일브로너 · 레스터 서로,「한번은 경제 공부」중, 부키, 2018.


"돈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p14)을 주 논점으로 삼고 있는 경제학이란 학문이 예의 ('당위'의 차원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제시까지도 해주고 있다라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으며, 부인해서도 안된다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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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도의 유일한 저서「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에는 단순한 산수를 넘어서는 어떤 수학적 이론도 들어있지 않으며, 그가 고등수학을 알았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 오늘날 경제 이론가의 관점에서 그 책을 읽고 리카도의 성취를 실감하는 것은 마치 최초의 에베레스트 원정대 일원으로 참가해서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도착했지만, 그곳에서 티셔츠에 운동화 바람으로 조깅하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p45)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란 아이작 뉴턴의 명언을, 데이비드 프리드먼 교수는 위와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저에게 --- 헬리콥터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서선, 그 산을 등반했다라 믿어왔던 것 같은 잘못된 믿음 혹은 거만함을 일깨워 주었다고나 할까요? 


공급곡선과 수요곡선은 분석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가격이 결정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단서다. (p137)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너무도 당연한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는 수준으로의 깨달음으로는 가지고 있지 못했었었음을 고백합니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에게 경제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라면, --- "관세는 미국인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다. 단, 다른 미국인 노동자들로부터 말이다"(p100)란 결론에 도달하는 저자의 논리 전개를 꼭 한 번 읽어보시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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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 책에 깃들어 있는 저자의 관점은, 적어도 저에게는 매우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제시한 관점, 즉 경제학이 광범위한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라고 보는 관점은 나만의 고유한 관점도 아니지만14, 그렇다고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보편적인 관점도15 아니다. (p454)


모 교수가 쓴 책 속의 '북핵의 게임이론적 분석'이나 '독도문제, 동북공정의 깨끗한 해결법' 등과 같은 (fancy한) 경제학적 분석이, 북핵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국민들의 고통과 독도의 상실로 인한 민족적 자긍심의 손상 등과 같은 비경제적 요소들을 완벽하게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 어마무시한 짜증이 났었듯, --- '오염'을 대상으로 한 저자의 경제학적 분석과16 같이 전혀 동의할 수가 없는 부분 또한 있었습니다. 


(이젠 완연히 떠나있으나, 여전히 제가) 사랑하는 '경제학'이란 학문이, 적어도 "승려가 신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이 승려를 위해 있는 것 같은 느낌"17을 주는 학문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선, 경제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Adam Smith의 다음 지적을, 정말로 진지하게 새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어떤 중요한 목표가 하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언제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될까?"


- 조나단 B. 와이트,「애덤 스미스 구하기」중, 생각의 나무, 2007.


※ 읽어본, 경제학 입문서들

- 장하준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 유시민 :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 로버트 하일브로너 · 레스터 서로 :「한번은 경제 공부


※ 보다 깊숙한 '경제학' : 

- 홍기빈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 세일러 :「불편한 경제학

- 데이비드 보일 · 앤드류 심스 :「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

- 데이비스 워시 :「지식경제학 미스터리




  1. '경제학은 정치적 논쟁이다'란 장하준의 주장에 낯설어 했던 저에게, 다음의 구절은 적어도 제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economy)'만큼은 정치적일 수 있다란 깨달음을 주었었죠 :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우리는 이미 거의 하나에 가까운 세계에 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정치적인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p298) …… 다국적 기업의 등장과 경제의 세계화로 인해 빚어진 새로운 문제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국가 경제간의 갈등이 아니다. 그 저변에 깔린 문제는 국가의 주권 자체를 다시 정의하는 데 따른 갈등이다. 다국적 기업과 경제의 세계화가 야기한 실질적인 고민은 경제 지도가 정치 지도와 딱 들어맞지 않다는 데에 있다. 국가의 주권이 금융이나 생산이 국제적으로 확대되고 심화된 지점까지 미쳐야 하는지 아닌지 질문에 제기되는 것도 그래서이다. 이는 세계 시장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지와 같은 단순한 문제가 절대로 아니다. 21세기에는 국가 주권 자체가 어떻게 표현될 것인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pp309~310)" - 로버트 하일브로너 · 레스터 서로,「한번은 경제 공부」중, 부키, 2018.
  2. "행동경제학은 주류경제학의 ‘합리적인 인간’을 부정하는 데서 시작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을 비합리적 존재로 단정 짓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온전히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부정하고, 이를 증명하려는 것이 행동경제학의 입장이다. 경제주체들이 제한적으로 합리적이며 때론 감정적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 '행동경제학' 중
  3. ① Completeness, ② Transitivity, ③ Monotonicity
  4. 물론 이때의 '보수적'이란 말은 '진보 VS 보수'에서의 보수가 아니라, '누구나가 확실하게 인정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 '누구나가 확실하게 인정하는' 이론의 발전과정을 이야기하면서 그 이전의 '지금은 틀린 것이라 판명된' 이론들을 소개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런 것들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도, 또한 시험에 절대 나오지도 않지요. 이는 사실 교과서라는 책이 가지는 의의이기도, 또한 한계가 되기도 할 겁니다. 교과서의 1차 목적은 이론의 소개/설명에 있으며, 독자/학생들은 교과서가 말해주는 그러한 이론들을 습득한 후에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실제 현상들에 대해 정확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을 것이며, 이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내려지는 섣부른 가치판단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쉽사리 동의하지는, 동의해서도 않되겠지요.
  5. 한국경제신문, "합리성을 먹고 자라는 경제학 … 위기를 겪으면서 더 단단해진다" 중. 2009.07.24.
  6. 한국경제신문, 위 기사
  7. "어떤 사실과 모순되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것을 증명한다고 볼 수 있는 사실" - 네이버 국어사전
  8. 이 책의 원문을 찾지 못해 '투기꾼'의 원 단어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우리 정서에서 '투자자'와 '투기꾼'의 차이는 매우 크지요. 뭐 사실 저도 '투자'와 '투기'의 정확한 차이를 알지 못합니다만, 또한 그 둘 사이에 반드시 차이를 두어야 하는 것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일단 번역본의 단어를 그대로 사용해보기로 하겠습니다.
  9. 물론, 매점매석을 통한 인위적인 가격의 조정을 통한 이윤 획득은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고, 그러하기에 저자가 투기꾼에 대한 무조건적 비난이 '일반적으로 잘못'이라 표현한 것이라 추측해봅니다.
  10. 로버트 하일브로너 · 레스터 서로,「한번은 경제 공부」 p38, 부키, 2018.
  11. "새로운 역사적 주제가 급부상하고 있단다. 바로 '지구촌 시민사회'야. …… 이들에게는 오직 하나의 동기만 있을 뿐이야. "나는 타인이고 타인은 나다" …… 이들이 모두 한데 모이면 신비한 형제애가 형성되고, 이러한 연대감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강력한 힘이 되어 자본주의라는 야만에 맞서 투쟁하게 되는 게지." - 장 지글러,「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pp178~179, 시공사, 2019.
  12. 강수돌 외,「리얼 진보」p56, 레디앙, 2010.
  13. 류동민,「경제학의 숲에서 길을 찾다」p96, 충남대학교 출판부, 2009.
  14. "이같은 관점을 지닌 대표적인 학자에는 제임스 뷰캐넌, 게리 베커, 로널드 코스, 로버트 폴리, 더글러느 노스, 조지 스티글러 등이 있으며 그들은 모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다" (p454)
  15. 저자는 이 보편적인 관점을 "다양한 목적을 위해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학문"(p454)이라 적고 있습니다.
  16. "'오염'은 가치 중립적인 용어가 아니다. … 우리가 하려는 행동 대부분에는 편익과 비용이 존재한다. 어떤 것을 '오염'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과연 그 어떤 것이 지급할 가치가 있는 비용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심지어 그것이 비용인지 편익인지조차 알 수 없다. … 경제학의 관점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적당한 양의 오염이다. 다량의 황산화물이 대기로 배출돼 발생하는 피해가 가장 저렴한 방식, 즉 굴뚝을 청소하거나, 다른 생산 방식을 도입하거나, 아예 그 공장을 폐쇄하는 등으로 배출을 차단하는 비용보다 훨씬 큰 경우 해당 오염은 비효율적이고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 피해가 배출을 차단하는 비용보다 적은 경우에 그런 오염을 효율적이다. 즉, 그 오염을 참고 지내는 편이 우리에게 이득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효율적인 오염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pp361~362)
  17. 이문열,「사람의 아들」중, 민음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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