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모든 물질의 응집력은 수분을 전제로 하잖아요. (P164)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알지 못하나, 그것을 굳이 확인하고픈 생각도 없습니다. 작가 구병모가 그렇다 쓴 거면 그런 거겠지,라 믿어버릴만큼 이 작가를 제가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나 어쨌든, --- 작품 속 주요 등장인물인 곤, 해류, 강하의 관계라는 게 분명 '물()'을 매개로 하여 얽혀져 있다라는 건 사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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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분 전에 세탁기에서 꺼내어 걸어 놓은 빨래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고, 그 빨래들은 쏟아져 있는 맥주에 흥건히 젖어 있으며, 젖어 있는 것들 중엔 빨래들 뿐이 아니라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의 핸드폰도 함께 있고, 애지중지하던 이어폰은 한 쪽 연결선이 끊어진 채로, 역시나 자빠져 있는 의자의 등받이에 걸려 있는 거고, 그 모든 것들 위에는 --- 깨진 맥주잔 파편들이 반짝거리고 있었었으니...  


암튼! --- 이 작품「아가미」는, 위와 같은 상황이 대체 어떠한 연유로 발생되었는지를, 때로는 시간 순으로, 허나 대부분은 과거의 현재화라는 형식을 빌어 이야기 해주고 있는 소설이다,라고 설명하는 것 이외에는, 제 수준에선 어찌 표현이 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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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면 항상 손에 얹어놓고 돌리는 연필이 마루 바닥에 떨어져, 의자에 앉은 채로 고개를 숙여 연필을 주으려는 순간, 제 왼손 검지 손가락이 하필이면 핸드폰과 연결되어 있던 이어폰에 걸려버렸고, 그 반동에 저의 귀에서 이어폰이 뽑아져 나감과 동시에 핸드폰 또한 마루에 떨어졌던 것이고, 앉은 채 잃은 중심을 회복하겠노라는 반사신경으로 테이블을 잡으려 휘저었던 저의 왼손은 또 하필이면 맥주가 담겨져 있던 유리잔을 세게 쳐 마루로 떨어지게 함과 동시에, 결국 넘어져 버린 제 몸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테이블 바로 옆에 있던 빨래 걸이 또한 넘어져버린 거라는 … 


한 개 한 개의 행동들을 보자라면 '그럴 수도 있을~'이란 반응을 내보이게 되나, 굳이! 순식간에 벌어졌던 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 근본 이유를 찾아 보겠다 한다면 결국엔 --- '책을 읽을 때는 대체 왜 항상 손가락으로 연필을 돌려야 하는거지?'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저는 내놓아야 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제가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이란 건 그저,


사람은 몸에 입힌 기억이나 행위에 밀착되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법이기에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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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간 정도 만에 읽어 낼 수 있었던, 길지 않은, 그리고 복잡하지 않은 줄거리의 소설이었습니다. 뭐 그러했기에/그래서 --- 이 소설을 읽고 쓴 감상문이 이처럼 짧은 건 절대 아닙니다. "인어 남자"(p101)라는 등장 인물의 생경함에 쓸 말을 잃어서도 또한 아닌, 이게 뭐랄까, 


술에 취한 너를 들쳐 업고, 5층 아파트 계단을 오를 때 / 내 등 뒤에서 너는 아기처럼 새근새근 잠을 잤었지.

힘이 들어 난간에 기대면 어느새 깼는지 작은 소리로 /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고는 다시 잠이 들어버렸지.


열쇠를 찾아서 겨우 문을 열고 끈을 풀러 신발을 벗겨주고 / 침대에 널 뉘어놓고 돌아서 터덜터덜 층계를 내려오지.

새벽길에 옷깃을 여미며 흩어진 시간을 흩어진 기억을 / 어깨에 남은 너의 몸무게에 담아 물지게처럼 지고 가지.

- 김창완, <너를 업던 기억> 중


어떤 관계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술에 취한 채 남자1의 등에 편한 마음으로 업혀 잠을 들 수 있는 여자를, '침대에 뉘어놓고 돌아서 터덜터덜 층계를 내려'온다라는 설정 자체가 선뜻 이해되지 않기는 하나, 그렇다 하여 굳이 --- 둘의 정확한 관계가 무엇인지, 남자의 직업이 혹시 119 구급대원? 이라든가, 행여 남자에게 모종의 성적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닐지, 뭐 이도저도 아니면 등에 업혀 있던 사람 또한 남자가 아니었던 걸지 … 등과 같은 정나미 떨어지는 질문 등으로 이 노랫말에 시비를 거는 것 보다는, 


이 노래의 멜로디가 그러하듯, 딱히 하이라이트라 들려지는 부분이 없어도, 기분 좋게 취기 오른 날이면 예의, 김유신의 말()의 혼이 제 발에 깃들기라도 한 듯 찾아가곤 하는 LP bar에서 신청하여 흥얼거리며 따라하게 되는 것 마냥 그냥... 뭐, --- "누구나 아가미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를 곁에 두고 살아야만 하며 " (p203)란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을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굳이, 


인간의 몸에 어떻게 아가미가 있을 수 있느냐, 소설이란 게 이처럼 현실성 없는 설정을 통해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독자에게 줄 수 있는 '위로'가 과연 무엇이겠느냐 따위의 질문까지는 필요하지 않다 생각합니다. 왜냐, 그건...


자신의 특별함(아가미)을 감추고 싶어하는 '곤'과는 달리, 강하, 해류, 그리고 이녕은 '곤'의 특별함으로부터 구원과 위로를 받았으며, 당신과 저 역시 그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내고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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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비극에, 그리고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고난에 대비가 되어 있겠는가? 아무도 그렇지 않다. 비극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비극 - 그것이 모든 사람의 비극이다." 


- 필립 로스,「미국의 목가 (1권)」p140, 문학동네, 2014.


인간의 비극에 대한, 필립 로스의 공감되고 또 공감되는 위와 같은 규정에 대해, 마치 작정하고 준비라고 한 듯 내놓은 구병모의 다음 구절을, 각자의 상황에 맞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또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 이것이 바로,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가 아닐까 합니다.  


또다시 물에 빠진다면 인어 왕자를 두 번 만나는 행운이란 없을 테니 열심히 두 팔을 휘저어 나갈 거예요. 헤엄쳐야지 별 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p21)


이 작품도 예의, 

제가 이 작가, 구병모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이유가 되어주네요.



※ 읽어본, 작가 구병모의 작품들 (읽어본 순)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파과」·「빨간구두당」·「위저드 베이커리·「한 스푼의 시간·피그말리온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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