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간추린판)
E. P. 샌더스 지음, 박규태 옮김, 김선용 간추림 / 비아토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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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서는 신학적 관점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저서이다. 저자의 피나는 노력과 희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저서를 실력있는 학자에 의해서 요약된 축약판이 우리 곁에 왔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에게유익을 줄 것이다. 이 책에 대해서 독자들의 많은 기대와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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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40주년 기념 한국어판) - 2018 세종도서 학술부문 선정도서 신행신학 시리즈
E. P. 샌더스 지음, 박규태 옮김 / 알맹e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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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서는 신학적 관점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저서이다. 저자의 피나는 노력과 희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많은 기대와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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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토리 씨 가족의 도시 수렵생활 분투기
핫토리 고유키.핫토리 분쇼 지음, 황세정 옮김 / 더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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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세상 속에서 우리의 삶에 활기찬 삶으로이어질 수 있는 연결고리가 필요한 것 같다. 이 책은 수렵이란 주제를 통해서 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내용을 잘 묘사한 삽화 역시 읽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한다. 내용과 삽화가 조화롭다. 지금 시점에 필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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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읽는 천로역정
하정완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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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천로역전을 읽은 기억이 있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진 책이며, 목사님들이 설교 때에 예화로 자주 인용되었던 책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그만큼 익숙한 책이다. 그런데 이번에 생명의 말씀사에서 말씀과 함께 읽은 천로역정을 출간하였다. 이 책의 저자는 하정완 목사님이다. 그는 시편 119105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을 살리는 힘이라고 믿으며 복음 전도에 대한 뜨거운 갈망으로 세상과 소통해 온 목회자이다. 많은 책을 저술하였다.

 

책의 구성은 내용의 흐름을 따라서 총 4부분으로 되어 있다. 1장은 멸망의 도시를 떠나 십자가 앞으로 이다. 2장은 십자가에서 앞만 보고 걸어가다 3장은 고통은 있지만 그 길을 걸어가다. 4장은 드디어 하나님 나라에 이르다

 

저자는 본 저서를 시작하면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천로역정을 신앙소설로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안타까운 말한다. 왜냐하면 책의 내용이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까지 가는 크리스천 순례자의 여정에 대해서 묘사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 저자는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 책을 조금만 읽어보아도 알 수 있지만,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성경을 많이 인용해 놓았기 때문이다. 즉 이 책은 성경이 중심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주인공 역시 순례의 길을 떠난 이유가 성경을 읽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 볼수록 주인공은 자신의 죄에 대한 무게를 더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이 무게감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너무 고통스러웠던 나머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하여 길을 떠나게 된다. 이것이 이 책의 시작이다.

 

존 번연이 천로역정을 쓴 배경을 잠시 살펴보면 그는 영국 국교회와 일치하지 않는 예배를 집행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그는 무려 12년 기간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이 때 성경을 연구하면서 이 책을 쓰기 시작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책은 성경 없이 해석될 수 없다. 또한 그는 자신이 복음을 전하였던 대상들을 염두에 두고 그들에게 복음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 그래서 이 책에는 분명하게 드리는 메시지가 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신앙의 여정을 잘 견디며 승리하는 길에 대해서 잘 묘사해 놓았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책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주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할지에 대해서 잘 안내해 주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신앙 안내서이라고 말한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의 주장을 동의한다.

 

우리는 이 저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저자가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풍성하게 인용한 성경말씀을 통해서 이 책의 내용들에 대해서 다시 깊이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첫 장에 기록된 첫 내용은 죄에 대한 고민이다. 모든 영적 부흥의 시작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된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베드로가 시편 16편을 인용하여 다윗이 바라보았던 주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했다. 이어서 그는 110편을 인용하여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놀라운 비밀에 대해서 말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설교를 듣고, 각자 자신들의 죄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말씀을 듣고 고민했다는 것은 그가 사람의 영혼을 영적으로 깨어나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부분을 보면 교회가 가르쳐야 할 것은 성경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확신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이 진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가 최고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혹자는 이 책을 좋은 문학작품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지옥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무수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에게 심판은 천국을 의미한다. 우리는 복음을 믿는 순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다. 그래서 그 분은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이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을지라도 우리는 그 분의 심판에서 놓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확신은 성령이 우리 안에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심판과 지옥은 있다. 이는 우리 시대에 사라져 버린 가르침이다. 이 놀라운 인식이 신앙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부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이 옳은 것이며, 축복받는 삶인 것처럼 가르치다 못해 강요한다. 허영의 시장에 우리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미 성경은 이런 시대상에 대해서 디모데후서 31절에 말세에 너는 이것을 알라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라고 예고해 주셨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삶은 고통을 당한다. 실제로 바울 사도와 일행이 다산과 풍요의 도시 에베소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이상한 기류가 벌어졌다.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그와 일행들을 향해서 시위를 벌였다. 또한 그의 제자 마케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 약 2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극장에서 기세등등하게 시위를 벌였다. 그들의 반응은 믿음의 사람들과 다른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 3가지로 표현했다. 첫째 그들의 겉모습이 달랐다. 둘째 말이 달랐다. 셋째 물건에 큰 관심이 없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랐던 것이다. 즉 그들의 다른 모습이 세상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두 가지를 질문해 보아야 한다. 과연 세상에서 자신의 길을 지키고 진리를 추구하며 살았는지 또 어떤 불이익에도 자신의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용기가 있었는지를 질문해 보아야 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시대적 흐름이나 생각에 대해서 맞서려 하지 말고 세상이치에 맞추어 신앙생활을 해보도록 노력하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함께 그 종교로부터 유익을 얻을만한 것이 있을 때만 주님과 함께 동행하길 갈망해 보라고 권면한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신앙은 모든 사람들과 화해하고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우리도 무너지고 양보할 때에 있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의 모습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거기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크리스천의 고백과 같이 고난과 역경이 와도 꿋꿋이 맞서 싸워야 한다. 좁고 협착한 길을 묵묵히 가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이런 우리에 대해서 세상은 우리를 이해하지 도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우리 안에 이런 모습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시대를 향해서 주님의 제자입니까 저자 후안 까를로스 오르디즈 목사는 교회가 성장을 이루었지만, 결국 목회의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비극이다. 이런 상황에도 우리는 크리스챤과 소망과 같이 흔들림 없이 가야 한다.

 

바울 사도 자신과 함께 했던 데마가 이 세상을 사랑하여 즉 그가 세상의 방법을 정말 좋았다고 표현하였다. 세상적 아주 매혹적이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게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 곳에 멍하니 있게 할 때도 있다. 그것을 바라보지만, 추구하지 않는 삶은 우리가 아직 정직한 그리스도인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잠언 30장에 기록된 아굴의 기도를 주목해서 보아야 한다. 그는 배부르고, 잘되고, 기막히게 모든 것이 이루어지면 분명히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가난하게도 말고 부하게도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우리는 롯의 아내와 같이 소돔성을 빠져나올 때에 뒤를 돌아보았듯이 세상에 더 나은 미래가 있다는 거짓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행복은 소유보다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함께하는 삶을 살 때 그 분의 나라를 경험하며 살도록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치하와 유대인들의 핍박 속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중에도 빌립보교회를 놀라운 권면을 한다. 그는 빌립보서 412절에 기록된 대로 어떤 상황에도 만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하였다. 이어서 13절을 보니까 그 비결은 하나님이었다. 물론 14절에 기록된 대로 세상의 눈에는 고난이고 궁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 신앙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다. 사실 누구나 크고 넓고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 다니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헛된 확신을 내려놓아야 한다. 사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런데 우리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서 넘어지고 만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영원히 용납하지 않으신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넘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당장 편해 보이지 않더라도 그 분의 길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길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말씀, 설교, 묵상한 내용을 적용해야 한다. 그 때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 그런데 우리는 듣고 좋다고 고백만 한다. 정작 죄의 길에서 돌아서기 위하여 적용하지 않는다. 참 안타까운 사실이다.

 

비록 우리의 믿음이 겨자씨와 같이 작을지라도 구원의 은혜를 빼앗기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길은 우리의 믿음의 크기와 관계된 것이 아니라, 믿음 그 자체와 관계되었다. 그런데 작은 믿음의 문제는 자신이 가진 믿음의 힘을 잊고 현실에 만족하며 산다는 사실이다. 마태복음 8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책망하신 모습이 잘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성숙을 이루어야 한다. 그때 우리가 만나는 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그 날은 분명히 온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다. 나 또한 그 곳에서 만남을 기대한다.

 

오늘 삶 문제로 인해서 갈팡질팡하는 분들, 원작의 감동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은 분들게 이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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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런 관계 떠나기
게리 토마스 지음, 이지혜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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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런관계떠나기
#게리토마스
#생명의말씀사

이번에 생명의 말씀사에서 게리 토마스의 또 하나의 신간이 “고통스런 관계 떠나기”가 나왔다.
저자는 우리에게 너무 많이 알려진 분이다. 실제로 그의 저서는 우리나라에 다수가 번역되어 있다. 지금도 그는 관계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많은 강연과 세미나로 열심히 사람들을 섬기고 있는 대표적인 복음주의 사역자이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CUP에서 번역된 부모학교, 부부학교, 연애학교,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 거룩이 능력이다,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 등이 있으며, 좋은 씨앗에서 번역된 결혼, 영성에 눈뜨다, 상주시는 믿음 등이 있다.
저자는 본서의 첫 장을 시작하면서 관계의 유독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산다. 실제로 이 관계 속에 우리의 건전한 관계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그들을 피하는 것은 기독교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우리에게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그런데 그들과 관계가 멈춘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과 싸우며, 마음속에서 쫓아내려고 애쓴다. 심지어 예배시간이 기쁨과 감사의 시간이 아니라, 근심과 걱정의 시간으로 바뀌게 되는 경우들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에 우리가 간과한 한 가지 사실이 숨어있다. 바로 독이 되는 관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바울 사도와 베드로 사도, 그리고 사랑의 요한 사도 역시 독이 되는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경고하였다. 우리의 믿음의 모범이 되시는 예수님 역시 군중으로부터 떠나가신 모습이 성경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 상처 받기 쉬운 존재로 만들고 우리의 영향력을 심각하게 감소시키고 있다. 이때 우리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독이 되는 사람은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뜻대로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사람이었을까요?
만약 누군가가 하나님께 받은 소망을 좌절시키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바로 독이 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뜻에 합당한 사람이 되고자 애쓰는 것은 이기적인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한 그 분께 받은 소명을 실천하는 것 역시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경계한다는 것은 그들과 만남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독이 되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혜롭게 경계할지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교회를 향한 사탄의 가장 교묘한 공격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과 은사를 독이 되는 사람들에게 다 주도록 재촉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랑하고 돌보는 일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그렇게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독이 되는 사람들에게만 집중하도록 끊임없이 재촉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중요한 전략이다. 그들의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들어간 공동체를 얼마든지 무너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관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는 그들을 가려낼 때이다.
본 저서는 총2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장과 2장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소명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와 실제 그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3장부터 5장까지는 독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정의가 기록되어 있다. 6장과 7장은 마태복음 6장 33절과 디모데후서 2장 2절을 통해서 충성된 종이 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섬길 때 무엇에 집중해야 되는 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8장 예수님이 해 주신 유명한 말씀을 살펴본다. 9장에서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과 이름을 부르는 것의 차이점을 기록해 놓았다. 다음 10장에 독이 되는 수많은 공격 앞에서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한 느헤미야의 훌륭한 본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독이 되는 관계를 항상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11장에 가룟 유다를 다루신 예수님의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12장에서는 우리의 사명을 지키기 위해서 미움 받는 적절한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참 슬픈 우리의 현주소를 가르쳐준다. 13장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좋은 것이 악에 의해 오염되었는지를 성경적 관점으로 설명해 준다. 14장에서는 우리의 영적가족에 대한 충성이 혈연가족보다 우선해야 된다고 말해준다. 15장은 가족 구성원들에게서 받는 흔하고도 잔인한 공경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
마지막으로 16-19장은 실제로 부모, 배우자, 자녀 등 가족관계에 우리가 배운 모든 내용을 적용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20장은 독이 되는 삶에서 벗어나려는 한 남자의 사례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21장은 우리 자신을 덜 독하게 대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이제 본론을 통해서 독이 되는 관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기 위하여 이 땅에 임하셨다. 하지만 실제로 그 분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을 떠나거나 떠나보냈다. 심지어 자신에게 머물러 달라고 간청한 자들에게서 발길을 돌리기도 하셨다. 이 모든 경우들이 갈등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나의 단적인 예를 든다면 부자청년이야기이다. 물론 예수님은 그의 중심을 다 알고 계셨다. 결국 그는 돈을 떠날 수 없어서 그 분을 떠나기로 한다. 이 때 그 분은 그를 붙잡지 않으셨다. 우리는 이 점을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
이 후 그 분은 제자들에게 가셔서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을 설명하셨다. 이와 같이 그 분은 마음이 닫힌 사람보다 충성된 사람들을 훈련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 분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은 다름 사람들을 떠나거나 떠나보낼 것이다.
우리는 독이 되는 사람들과 언쟁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예배하고 알아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이 더 지혜로운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독이 되는 사람들과 관계에서 지향해야 할 모습이다.
마태복음 8장 28-34절을 보면 예수님이 돼지떼를 비탈 아래로 굴러 떨어지게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온 마을 사람들이 그 분께 떠나달라고 간청하였다. 이 때 언쟁하지 않으시고 다음 9장 1절에 그분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분은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하지 않으셨다. 그 분이 독이 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거나 떠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진리를 거부한다면 우리 역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당시 제자들이 이 사실을 이해하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들의 반응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당시 예수님은 독이 되는 사람들을 그냥 떠나신 것이 아니라, 사역의 효율성을 염두에 두신 것이었다. 그 분의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자신 삶의 진정한 주인이셨기 때문이다. 그 분을 뒤따르는 우리 역시 누군가의 결핍이나 독성으로 인해 결정해서는 안 된다. 결핍은 독성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 수동적인 공격은 교모하게 우리를 효과적으로 흔든다. 만약 누군가 우리를 통제하려 한다면 이것은 독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통제이다.실제로 그 분은 우리에게 본만을 보이신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은 균형 있는 사역을 위해 잠시 재충전하러 떠나기도 하셨다. 우리가 연료 없이 그 분의 사역을 하는 것은 백해무익한 일이 될 수 있다. 우리 역시 새로운 열정을 품고 다시 사역을 감당해야 하며 그 분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어떻게 사람들을 떠나고 떠나보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독이 있는 사람들은 단순히 까다롭거나 불쾌한 사람 또는 구제불능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사명을 파괴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기중심과 악의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그들은 상대방을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는지도 모른다. 즉 본래 우리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들은 우리 주위에 있다. 그들은 사탄의 방식과 같다. 마치 그들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하였던 헤로디아와 같다.(막6:18-19) 이런 관점에서 그들은 영혼의 살인자들이다. 요한 사도는 이 부분에 대해서 요일 3장 15절을 통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동일한 증언해 주었다. 또한 사도행전을 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않고 영혼을 죽이려는 자들이 이야기로 가득하다.
독이 있는 사람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특징에 대해서 스캇 펙 박사는 그들의 특징에 대해서 살인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정의했다. 이것이 그들의 사고방식이다. 결국 그들의 행복은 다른 사람이 치룬 대가지불이다. 이어서 그들은 누군가의 삶을 통제하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그들과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 만약 우리가 올바른 대의명분을 가졌더라도 그들에 대해서 너무 집중한 나머지 악으로 악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결코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그들과 관계에 대해서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그들과 관계를 적절하게 다루어야 되는 이유는 우리에게 지속적인 사명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은 중요하다. 저자의 표현 그대로 자질구레한 일들에 우리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에 사명에 집중해야 한다. 그 분의 나라를 구하는 것에 우리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6절에 기록된 대로 독이 되는 사람들과 그들이 행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당시 그들은 개를 기르지 않았다. 또한 그들의 거주지역에 있었던 개들은 도시의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아주 지저분한 잡종견들이었다. 이와 같은 같은 자들이 바로 독이 되는 자들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그 분은 이런 자들에게 거룩한 것을 주지 말씀해 주신 것이다. 사실 당시 진주는 극소수 부유층의 소유물이었다. 이런 자들에게 귀한 것을 던져 줘봐야 오히려 화를 내며 내뱉을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룩한 것을 알아볼 능력이 전혀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들에게 귀한 것을 주는 것은 낭비일 뿐이다. 그래서 잠언의 저자는 잠언 9장 7-8절에 충성되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찾아 섬기라고 말해주셨다. 우리는 지혜롭게 그들과 엮이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갈등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심리적 기질과 영적 취향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과 관계를 더 빨리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느헤미야를 통해서 독이 되는 수많은 공격 앞에서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였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그는 그들이 본심을 꿰뚫고 그들과 만남을 거부하였다. 심지어 그들은 그의 사명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협박까지 서슴없이 했다. 하지만 그는 거절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순종으로 행해야 한다. 그들의 악의적 공격이나 공허한 아첨으로 자유로워야 한다. 때로는 그들은 친구인 척한다. 물론 이때도 우리는 그들의 거짓에 반응할 필요 없다. 그저 우리는 기도해야 된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의 공격을 무시하고 충성된 자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종종 독이 되는 사람들로부터 떠나거나 그들을 떠나보내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분은 그가 독이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셨다. 그래서 그가 죄짓지 못하게 하지 못하게 하지 않으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초점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한다. 또한 이 과정에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의 악하다고 증언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들은 유사한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여 공격한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22장 16절에 바리새인들이 그 분을 존경하는 척하며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은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방법 역시 그러했다.
우리는 그들의 공격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들의 공격을 다룰 때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 그들은 겉으로 진리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실상은 엉터리 모조품일 뿐이다. 예수님은 그들에 대한 완벽한 본을 보여주셨다. 공동체 안에서 험담으로 반격하지 말라. 그들에게 1초 허비하지 말라. 충성된 사람들을 찾으라. 물론 우리가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악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이것을 배워야 한다. 성경은 독이 되는 사람의 실상과 함께 그들에 대한 대처방법에 대해서 통찰력을 제시해 준다. 여기에 중요한 토대는 창조, 타락, 구속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기다리며 악을 다루고 인식하고 대면해야 한다. 왜냐하면 악은 마지막 순간까지 악착같이 제몫을 챙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속은 완성되지 않다. 악은 치명타를 입었지만, 마지막까지 반격해 올 것이다. 교회는 이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만약 교회가 이 사실을 망각한다면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된 것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악에 대항하여 대항해야 한다. 굳게 서서 악의 공격을 받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역기능적 반응을 강화하기 위하여 내가 먼저 하나님께 속하고, 가족이 그 다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명료성을 제공해야 한다. 독이는 가족을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지혜롭게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결정한 결정을 하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게 책임이 없다. 이때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도와주신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를 구하며 끝까지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독이 되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능숙한 독이 되는 존재이다. 마치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했듯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말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할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이와 독이 되는 부모와 배우자의 관계는 그저 실망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파괴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참된 가르침을 적용할 틈새를 주지 않는다. 상대방에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뉘우치는 시늉을 한다. 그들은 잘못된 관계를 돌이키지 않는다. 그들은 학대의 기반을 유지한다. 이와 같은 관계 속에서 우리가 소망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열심히 싸우시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그 분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독이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아야 한다. 그 분께 나아갈 때에 독이 되는 관계로부터 자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독이 되는 관계로 고통관계로 인하여 힘들어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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