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다 했다. 부제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를 증명하기 위해 전 지면을 할애하여 반론을 실었다.

 

환경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낼 때 내세우는 것은 거시적인 대의이다. ‘환경을 지켜야 한다대의를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이 누구 있을까.

각론으로 들어가보면 소비를 줄여야 한다. 재생가능한 물품을 사용해야 한다.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한다 등등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각론들에 반론은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실효성이 있는지,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인지, 전체적인 면에서 효과가 없다면 현재상태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최선의 방안이 아닌 것인지 등등.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려고 하면 즉각 악의 편으로 간주된다.

 

이상하지 않는가. 대전제가 참이라고 하여 소전제와 결론이 참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반론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이 책은 극단적인 환경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소전제가 어떻게 부당한지 그 결과 대전제와 다른 결론(환경보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을 이끌어내는지를 증명해나간다.

 

잘못된 상식과 이를 고수할 때 나올 수 있는 결론이 어떻게 선한의도(? 사실 책을 끝까지 읽고나면 의도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긴다)를 배신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펴낸 것이 용기있는 행동이라 여기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선과 악의 이분법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가에 대해 나 스스로 요원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분명 이 책에 대한 반론이 나올 것이고, 아마도 근거 유무와 관계 없이 어느 한쪽의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을 악마화할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인지하게 된 것은 환경론자들의 입장과 이에 대한 반론을 취하는 측의 입장이 경제문제와 유사하다는 점이었다. 같은 출판사에서 펴낸 장하준 교수의 그 유명한 사다리 걷어차기가 떠올랐다. 선진국들이 지금과 같이 자리잡기 전에 취했던 발전의 사다리를 후진국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것. 선진국들이 단계를 거쳐서 현재 확보한 인프라와 발전단계에서 할 수 있는 조치나 정책들을 후진국에게 강요하는 것이 그것이다.

 

신재생에너지가 현재의 에너지원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기반시설과 간헐적인 발전을 상쇄할 수 있는 에너지 보관장치 등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는 점. 경제적인 성장이 동반되지 않는 이상 환경적 요인을 극복해나갈 수 없다는 점, 결국 비용만 늘어갈 뿐 환경문제는 더 악화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후 변화 대책보다 발전이 더 절실한 사람들에게, 즉 당장 먹고 살 것이 걱정인 사람들에게 환경보전을 강요하는 것이 피부에 와 닿는 것인가.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문제는 콩고 사람들에게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환경을 보전한다는 명목으로 거주민들의 생업을 금지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멸종위기의 고래를 살려낸 것은 고래기름을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의 발명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부분과 같은 맥락에서 자연을 지키려면 인공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과 미세플라스틱과 관련된 선입견을 깬 부분은 유심히 읽어볼 부분이다. 여성의 가사노동에서의 해방은 선거권 획득 등 정치적인 영역에서 찾은 영향력 덕분이 아니라 세탁기 등 과학의 발전에서 기인했다는 것과 유사하다.

 

우리나라의 원전기술자 인터뷰도 등장한다. 원자력발전과 관련된 문제. 에너지 효율성과 안전에 대한 부분 역시 읽어볼만하다. 위험성에 대해서 과장된 면이 있다는 것과 급격한 탈원전의 영향으로 화력발전 등의 비율이 높아져서 생기는 부작용, 전기료 인상 문제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의외의 점은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것이었다. 원자력 발전이 화력발전의 경우보다 유지가동에 필요한 인원이 많았다는 점이다.

 

탈원전 정책에 대해 와이프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위험성 때문에 탈원전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이 와이프의 입장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건과 일본에서의 방사능유출 등의 사건을 보면 그 위험성이 심각하다는 것인데, 이 점에 대해서도 반론이 있어 같이 읽어볼 생각이다. 아무리 수치상으로는 영향력이 적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인체에 유해를 미칠 가능성과 영향력이 낮다고 해도 말이다.

 

탈원전 정책이 맞다는 전제 아래 에너지 효율성과 환경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경우는 기대수명까지는 최대한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당장 가동을 중단하여 얻은 결과가 급격한 탄소배출량의 확대, 다른 에너지원으로 벌충하기 위한 무리한 발전소 가동, 전기료 인상 등으로 이어진다면 재고할 필요성도 있는 것 같다. 책에서는 원자력발전을 옹호하는 입장이기는 하다.

 

공정무역도 언급한다. 다국적 기업의 저임금노동자 고용 관련한 부분. 여기서도 선입견에 대한 혼란이 온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만든 옷을 입어주는 것이 결과적으로 그들을 돕는 것이 된다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육식과 채식 관련한 문제는 선택과 범위에 대한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행하도록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어느 한쪽이 비난받을 사안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본인의 신념이 언제나 옳은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아님을 고기를 먹으면서 환경을 지키는 법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환경주의자와 친환경 사업 부분을 보면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게 된다. 단체의 이름보다 재정구조와 실제 활동내역에 유의해야 할 듯 하다.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는 데 거창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일부 동물이 멸종한다 해도 우리에게 물질적 손해는 없다. 그럼에도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살리려고 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옮긴이는 저자의 입장을 환경 휴머니즘이라 칭하는데, 이에 동의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다루는 것은 미시적인 환경이 아니라 결국에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도, 아직은 봄밤 - 교유서가 소설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의 이름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읽고나서 작가가 2011년에 창비문학상을 수상한 <컴백홈>을 구매했다.

사실 이 소설집에 실린 첫 작품인 <매듭>을 읽을 때만 해도 지나치게 자학적인 이야기가 여겨져서 작가에 대한 반감이 일었었다.

산악행을 즐길 정도로 건강했던 남자의 추락사고.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게 된 남자. 그리고 그 남자와 헤어지지 않겠다는 여자. 여기서 시작된 끊임없는 갈등. 매듭이라는 장치. 끝내 묶지 못하는 매듭을 놓지 않는 남자. 그가 매듭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아는 듯한 여자. 그리고 생에 대한 조롱.

이런 이야기는 사실 너무 지치잖아. 힘들지만 읽어나갈 수 밖에 없는 아찔한 감정선.

'그후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에. 남자를 동정하였다가 원망하였다가 제 삶도 갈아먹는 여자의 이야기.

두번째 작품 <홈>을 읽을 때는 장르의 다양성을 경험하게 됐다.

같은 작가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 애완동물. 버려지지 않으려 애쓰는 두 사람이 등장.

한 명은 여자에게, 한 명은 같은 공간에 있다가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 버린 처음의 한 명에게.

길들여졌지만 쌍방통행이 아닌 일방적인 관심을 갈구하는 관계.

시작은 선택했지만 마지막은 선택할 수 없는 처음의 한 명.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별을 선택한 다른 한 명.

<홈>이란 기거할 수 있을 곳인가, 마음을 붙일 수 있는 곳인가.

물질적인 공간인가 혹은 정서적인 개념인가.

세번째 작품 <어떤 이별>을 읽고 나서 문득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작가의 인터뷰가 담긴 짤막한 기사를 보고, 책의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고서 잠시 멍 해졌다.

<어떤 이별>은 상처를 후벼파는 글이다.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있을까.

사적인 복수의 끝에 뭐가 남을까.에 대한 완벽한 답안이었다.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각자 다른 의미의 지옥을 살아간다.

"나도 그냥 .... 살아가겠죠. 끊임없이 기억하고, 증오하고, 자책하며, 하지만 질기게."

나도 띄엄띄엄, 그러나 또박또박 대답했다. 105쪽

네번째 작품 <그들만의 식탁>은 음식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컴백홈>에 실린 작가의 후기를 읽고 있자니 '음식'을 소재로 한 작품의 결과가 좋았다고 털어놓는다.

그래서 음식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고? 누군가를 이어주고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누군가를 애증의 대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등장인물의 결이 매번 다른 것이 신기하다. 음식을 매개로 어머니의 남자들과 나의 관계를 그린다.

그러고보면 단편집의 제목들이 다 애사롭지가 않다.

아홉개의 작품이 실려있다. 그 중 2개의 작품은 2011년 이전에 쓰인 작품이고 나머지는 그 이후이다. 알고나니 묘하게 분위기가 다른 듯 하다. 전체 작품에 대한 느낌을 남기지 않는 이유는 이 책을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작가는 말한다.

"소설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가 '살고 싶다'는 건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매일매일 죽고 싶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어쩐 일인지 소설만은 쓰고 싶었다. 나는 끝내 살아남았고, 영영 묻혀버릴 줄 알았던 소설들은 책으로 묶였다. 놀랍고 고마운 일이다." 304쪽

이런 사람이 쓴 글이란 어떤 글일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인 의견이나 느낌을 적은 글입니다.

#황시운작가 #그래도아직은봄밤 #작가만이쓸수있는이야기 #교유당서포터즈3기 #교유서가 #황시운소설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 - 타인을 대상화하는 인간
존 M. 렉터 지음, 양미래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들어가기 전에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

처음 들었을 때는 의아했었다. 무관심의 반대말은 관심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면 납득이 되지 않는데..

무관심이 사람을 사물처럼 대상화할 수 있다는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납득이 되었다.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 대상화에 답이 있었다.

읽으면서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던 부분들이 많다. 생각을 이정도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사람을 사물화할 수 없는 사람이거나 혹은 지독히도 사건이나 사물처럼 대상화할 수 있는 사람이리라.

인문학의 힘에 대해 느낄 때는 역시 '사유의 결과물'을 대할 때이다. 이 책의 리뷰를 어떻게 적어야 하나. 고민해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은 무수히 그었던 줄들의 흔적들을 기록해두는 것 정도였다.

2. 밑줄 그었던 부분들

제1부 동국 벽에 비친 그림자들 - 대상화의 다양한 얼굴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자신의 그림자에 불과한 존재로, 말하자면 물리적인 차원에 존재하는 신체와 영적인 차원을 초월하는 정신을 소유하고 있으며 내면적 깊이를 지닌 주체가 아닌 사물로 바라볼 때 악이 실현될 가능성은 상당 수준 증대된다. 이렇듯 타인을 주체가 아닌 사물로 바라보고 사물처럼 대하는 심리적인 과정이 바로 대상화이다. 24쪽

인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책은 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악에 대한 정의 - '자기보호라는 목적에 비추어볼 떼 불필요하고 다른 존재의 생명과 삶을 앗아기가 위해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행위이며,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사회규범에 따라 결정되는 공공 이익의 목표(예를 들어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수행한 행위(예를 들어 수단)'

타인의 주체성을 오해하는 경향은 깊은 통찰을 지닌 이들이 오래전부터 인지해온 더욱 근본적인 문제, 즉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자신이 다른 존재들과 분리된 별개의 존재라고 인식하는 문제의 증상에 해당한다. 45쪽

대상화의 핵심에 자리한 타인에 대한 오해가 다양한 수준의 인지적 미성숙 혹은 도덕적 실패를 보여준다는 점도 중요하다. 46쪽

비인간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상호연관된 두 가지 핵심 요소가 작용한다. (1)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인간적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부인, 즉 해당 개인이나 집단이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는 가정과 (2)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인간 이하의 존재라는 확신이다. 62쪽

제2부 인간이 처한 상황 - 한계와 가능성

합일의식을 경험하는 이들은 자신이 사실 이 셰계와 하나라는 인식을 갖게 되며, 이들의 정체성은 자기라는 비좁은 한계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확장되어 존재의 다른 측면과 통합된다. 누가 되건 이렇게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리라는 말은 구태여 덧붙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103쪽

제3부 인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 대상화에 기여하는 기질적 요인

인간이 지닌 각각의 고유한 특성들은 - 사랑하고 창조하고 자존감을 느끼는 능력 등은 - 그것과 정반대되는 결과를 - 증오하고 파괴하고 자기혐오를 느끼는 감정을 -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120쪽

경계의 본질과 관련해서는 고려해보아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먼저 인간은 경계에 대한 인식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두번째로 대립쌍 같은 것들이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세번째로 의사결정 행위가 일생에 걸쳐 경계를 긋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이야기한다.

네번째로 아담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되풀이하면서 경계를 긋는 과정-선별하고 분류하는 과정-을 통해 이전까지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대립쌍이 생성된다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내용은 경계를 긋는 행위를 통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대립쌍이 생성되듯이, 대립쌍이 생성되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긴장과 갈등이 초래될 수는 있다는 것이다.

대상화는 과도한 경계적 자아로 인해 초래되는 결과이다. 129쪽

나르시시즘은 자기보존과 자기고양에 대한 욕구, 자신의 유일무이함과 특별함, 우월성, 분리성에 대한 인식과 동일하다고 여겨진다. 177쪽

우리가 애착을 느끼는 사물이나 사람은 단지 존재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기에 사랑받거나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애착은 문제가 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애착은 일종의 조건을 설정하도록 부추김으로써 관계에서 진정한 친밀감을 얻지 못하게 방해하는 실질적인 장벽이 될 수도 있다. 188쪽

애착의 또다른 문제는 개인들로 하여금 성공이나 개인적인 발전을 더 많은 혹은 더 나은 무언가와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부추긴다는 데 있다. 189쪽

우리는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자신을 압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개별적 존재로서의 타당성을 입증하고자 한다. "나는 소유한다. 고로 존재한다. 내가 더 많이 소유할수록 나는 더한 존재가 된다." 202쪽

소유와 존재의 실존양식은 타인을 대상화하는 경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203쪽

제4부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대상화에 기여하는 상황적 요인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권리가 최고선으로 간주된다. 개인이 가진 이 같은 능력을 저해하는 힘은 무엇이 되었던 도덕적으로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악하다고 여겨진다. 253쪽

아히히만에 대한 아렌트의 분석은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결점 또한 존재한다. 이제는 진부해진 '악의 상투성'이라는 문구로 요약되는 아렌트의 비범한 분석은 광범한 차원의 악을 저지른 가해자들이 실은 괴물이 아니라 모두 인간이었음을 독선적인 대중이 직시하도록 한다는 중대한 목적을 달성햇다. 이는 악 그 자체와 악의 기원 - 보통의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내면 - 에 관한 일반적인 통념이 실제 자료들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불충분하며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했다. 263쪽

인격과 상황이 상호작용을 통해 행동을 만들어낸다거나 인간의 행동이 항상 다양한 상황적 맥락 속에서 발생한다는 말이 어떤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은 환경으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는 존재일지라도 그러한 환경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잠재력 또한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삶이라는 체스판 위에서 환경적 우연성에 의해 아무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물체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자신이 속하는 환경을 선택한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와 행동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다. 293쪽

인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와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결정짓는 요소들은 흔히 서로 충돌하면서 이 세상에 더욱 많은 악을 불러일으키고는 하지만, 개개인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잠재적 영웅주의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299쪽

제5부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길 - 플라톤의 동굴 출구로 이어지는 길

깨달음을 해석하는 것보다 깨달은 자가 아직 깨닫지 못한 자에게 자신의 경험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할 때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이 더 문제일 수도 있다. 313쪽

윤리와 관련해서도 유사한 과정이 진행된다. 먼저 위대한 깨달음의 순간에 경험한 신비로운 소속감을 일상의 영역으로 옮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도덕적 처방이 제시된다. 이 처방은 상대방을 대할 때 마치 나와 상대방이 하나인 것처럼 인식해야 함을 상기시킨다. 315쪽

어느 시대든 현인들은 대상화라는 문제를 초월했다. 이들은 제한된 의식이라는 동굴에서 빠져나가는 다양한 길목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이 살아온 삶은 과거에 저지른 중대한 과오들을 반복하며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그 모든 과오는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를 실제 대상으로 착각한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교훈을 넌지시 전해준다. 391쪽

3. 읽고 나서

현인들의 글들을 찾아서 읽어야 할 이유를 제시한다.

절대적인 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단순한 이유에서 행한 행동들의 반복. 사유 없는 기계적인 반복.

인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알 것도 같지만 설명할 수 없다면, 당신이. 우리가 이 책을 읽어봐야 할 이유이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난 후 주관적인 느낌과 의견을 적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북동 아버지
장은아 지음 / 문이당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북동 아버지.

그에게 나는 어떤 의미였을까..

젊은 날의 흔적, 회한.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 살고 있던 나(수혜)는 20여년 만에 한국으로 들어온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그리고 잊고 살았던 고국에서의 일들을 떠올린다.

어머니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성북동 아버지에게 맡길 때 어떤 심정으로 나를 그리로 데려갔을까?

'수애'에서 '수혜'라는 이름으로 개명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끝내 찾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은 잘 살고 있을까.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서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더디.

어떻게보면 어머니와 나의 삶은 이상하게 닮았다.

내가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은 분명 사랑받지 못했던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

사랑에 굶주렸으면서도 표현하지 못했고, 사랑받고 있으면서도 알 지 못했다.

핏줄이라. 이 책의 앞 부분을 읽지 않고 맨 나중을 읽었다면 분명 대단한 반전이라 평가받을 만 했다.

'수혜'의 삶. 그가 성장하기까지 겪었던 일들을 보면 사람 사이의 '정'과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신과 꼭 닮은 사람을 찾았지만, 인연이 아니었고, 그를 놓아주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했다.

운명이라 믿었지만 엇나간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러나 둘 사이의 일을 모르는 아니 모르는 척 한

제3자가 희생되었다.

이 책에는 희생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수혜는 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고모부'가 아니었을까.

제목이 '성북동 아버지'인 것에 의아했으나, 마지막에 가서야 알 수 있었다.

그가 했던 행동들이, 회한이 비로소 설명이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연을 들려주고서 눈을 감았다.

'핏줄'이라.

세상에는 '핏줄'을 뛰어넘어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고모'와 '고모부'. 그리고 임종을 앞둔 아버지를 두고 비로서 화해의 손길을 청한 '성북동 어머니'

'수혜'와 그녀의 딸을 품어준 남편과 시어머니.

그녀와 시어머니가 나눈 이야기들이 좋았다. 고국에서의 20여년과 타국에서의 20여년을 이어주는 느낌이랄까.

이제 '수혜'는, 그녀의 딸은 다른 삶을 살아가길 바래본다. 적어도 그녀의 딸이 본인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을

이유는 없어보인다.

핏줄과 정. 상처의 치유. 화해를 그린 소설이었다.

* 이 글은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인 느낌과 의견을 적은 글입니다.

#성북동아버지 #문이당 #장은아장편소설 #핏줄의의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발의 고독 -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
토르비에른 에켈룬 지음, 김병순 옮김 / 싱긋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사하게도 3기로 다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교유당 서포터즈의 특징은 서평을 부지런히 남길 수록 더 많은 책을 접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자발적인 독서 참여. 길들여져가고 있다.

서포터즈 관리 잘 하시는 것 같아요 ㅎ

"자발적 이동은 길이 탄생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16쪽

: 나의 자발적인 독서가 어디로든 연결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읽어본다.

떠도는 일은 본래의 목적을 상실했다.

자연의 풍경과 지리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은 인간이 생존하는데 필수적이었다.

길의 역사는 막 사라지려고 하는 세계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동하는 삶은 일정한 곳에 체류하는 삶으로 바뀌었다.

저자는 사고 이후 더 이상 운전할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된다. 이후 그의 삶은 어땠을까?

차를 몰고 나가는 대신 어디든 두 발로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가야 할 곳이 있으면 모두 걸어서 갔다.

그가 걷기 시작하자 주변의 소리들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걷는다는 행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글을 쓰고, 걷는 사람과 그들을 둘러싼 풍경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길의 역사를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생긴 변화와 그 결과물이 이 책인 것이다.

길은 인간이 걸어서 여행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1부

인간은 늘 돌아다녔다. 41쪽

2부

길은 혼돈 속의 질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길이 없는 숲을 걸어서 통과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 130쪽

당신은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언제 분명히 인지하는가? 세상이 너무 커져서 더이상 당신이 그 크기를 가늠하지 못할 때다. 148쪽

3부

나는 지난밤 눈이 온 뒤 이 숲에 나타난 최초의 인간이 틀림없었다. 165쪽

나는 걸을 때 상황이 더 복잡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모든 일이 더 단순해지고 명확해진다. 182쪽

4부

길은 그것의 본질적 특성이나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 측면에서 볼 때 옛이야기를 연상시킨다. 231쪽

내가 기억하는 길은 거기에 없었다. 벌써 사라진지 오래였다. 어쩌면 그 길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265쪽

어릴 적 누군가와 걸었던 길, 고산, 숲길, 눈덮인 길을 천천히 걸었다가 자세를 바르게 하고 걸었다가 배낭을 메고 걸었다가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눈이 쌓인 다음날에 홀로 발자국을 남겼다가.

저자는 걸으면서 연상되는 것들에 대해 적어나간다.

걷는 것과 생각하는 것. 인간이 멈출 수 없는 것.

이것은 저자가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게 되면서 생긴 변화와 사색의 기록이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문학작품과 시,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덤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인 의견이나 느낌을 적은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