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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없는 영웅들
퍼디아 레넌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8월
평점 :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가 관객 1,000만 명을 넘기며 고대 그리스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퍼디아 레넌의 데뷔작 <영광 없는 영웅들>은 묘한 경험을 선사한다. 두 작품 모두 2천 년 전 지중해를 배경으로 전쟁과 귀향, 인간의 존엄을 다루지만, 시선의 방향은 정반대다. <오디세이>가 위대한 영웅의 귀향을 그린다면, 이 소설은 역사에 이름조차 남지 않을 실직 도공 람포·겔론과 굶어 죽어가는 전쟁포로들을 바라본다.
기원전 412년 시라쿠사.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은 참패로 끝났고, 살아남은 아테네 병사들은 채석장에 갇혀 죽어간다. 승리한 시라쿠사도 온전치 않다. 무역은 무너졌고 사람들은 가족을 잃었으며, 도시 전체가 거대한 PTSD를 앓는 듯하다. 그런 도시에서 일자리를 잃은 람포와 겔론은 아테네 포로들을 배우로 세워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와 <트로이의 여인들>을 공연하겠다는, 말 그대로 미친 계획을 세운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낯선 것은 말하는 방식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장중한 문장 대신 현대 아일랜드 특유의 구어체와 농담, 빈정거림으로 말한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곧, 로마인에게 영국식 억양을 입혀온 기존 역사물 쪽이 오히려 자의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식민 지배를 겪은 시칠리아와 아일랜드 사이의 역사적 공명, 그리고 고대 희극과 더블린 유머의 닮은꼴에서 이 선택의 근거를 찾는다. 그 결과 람포와 겔론은 술집 옆자리에 앉은 사람처럼 생생해진다.
소설은 두 얼간이가 사람들을 끌어모아 연극을 올리는 버디 코미디로 시작해 점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리허설이 진행될수록 그저 '적군'이었던 구덩이 속 아테네인들은 이름과 가족,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 된다.
전쟁이 상대에게서 이름을 지우는 방식이라면, 연극은 그 이름을 돌려주는 일이다. 대사를 외운다는 이유로 한 사람이 굶어 죽지 않고, 시라쿠사 관객은 증오하던 적군이 연기하는 슬픔을 보다가 결국 자신의 슬픔과 마주한다. 사람은 전쟁으로 타인을 적으로 만들고, 이야기로 다시 인간으로 되돌린다.
여기서 두 소설은 다시 갈라진다.
"영웅은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는가"라는 <오디세이>의 질문에 이 소설은 "전쟁이 끝난 뒤 인간은 어떻게 다시 인간이 되는가"라고 되묻는다. 그 답으로 예술을 내놓는다.
람포는 허세 있고 무책임하며 종종 비겁한, 결코 미화되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예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가며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된다.
배우들이 처음엔 공연의 도구였다가 점점 공연보다 소중한 존재로 바뀌는 과정에서, 소설은 단순한 예술 찬가를 벗어난다. 예술이 사람을 자동으로 선하게 만들진 않는다. 다만 잠시 타인의 삶을 상상하게 하고, 그 상상이 가끔 한 사람의 선택을 바꾼다.
겔론은 다른 방식으로 슬퍼한다.
상처를 피하는 람포와 달리 그는 죽은 아이와 떠난 아내의 흔적을 사물 속에서 되짚으며, 세상이 망가졌는데도 아름다운 것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려 한다. 감옥에 갇힌 사람이 20년 전 들은 희곡의 한 구절로 목숨을 건지는 장면은, 문학이 살아남는 방식이 도서관이 아니라 기억을 건네는 순간에 완성됨을 보여준다.
후반으로 갈수록 소설은 초반의 유쾌함을 걷어낸다. 시라쿠사는 승리했지만 패자도 승자도 전쟁에서 온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제목 '영광 없는 영웅들'은 다르게 읽힌다. 이 책의 영웅은 괴물을 죽이거나 나라를 구하지 않는다. 대신 음식을 가져다주고, 배우를 구하고, 밧줄을 던지고, 친구를 끌어올리고, 이야기를 기억한다. 역사가 기록하지 않는 영웅적 행위는 대개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오디세이>가 바다와 신, 운명이 펼쳐지는 거대한 귀향의 서사라면, <영광 없는 영웅들>은 채석장과 술집, 조그만 무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한쪽은 한 인간이 세계를 건너 집으로 돌아오고, 다른 쪽은 망가진 사람들이 잠시 서로의 고통을 바라본다. 그런데도 책을 덮고 나면 후자의 위업이 결코 작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죽은 이를 기억하고 적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며, 때로 자기 자신까지 구해낸다. 그래서 이 고대 그리스 배경의 소설은 놀라울 만큼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효율적이지 않아도 된다.
당장 세상을 바꾸지 못해도 된다.
망가진 세계에서 아름다운 것 하나를 만드는 일, 그것만으로 충분히 영광스러운 위업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