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 평전 - 2026년 개정증보판
앤드루 킬패트릭.정주용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윌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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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의 투자 원칙은 익숙하다. 

“절대로 돈을 잃지 마라”, “10년간 보유할 주식이 아니라면 10분도 보유하지 마라”, “가격은 지불하는 것이고 가치는 얻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장만으로 버핏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앤드루 킬패트릭의 <워런 버핏 평전>  2026년 개정증보판은 버핏의 명언을 나열하는 대신, 그 말이 어떤 경험과 판단 속에서 나왔는지를 그의 삶 전체를 통해 보여준다.

이 책은 크게 인간 워런 버핏의 성장 과정과 투자자로서의 행보를 따라간다. 

여섯 살 때 콜라를 팔아 이익을 남기던 소년, 새벽마다 신문을 배달하던 학생, 하버드 입학을 거절당한 청년,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서 벤저민 그레이엄을 만난 제자, 고향 오마하로 돌아와 투자조합을 운영한 젊은 투자자가 어떻게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금융 제국을 건설했는지가 방대한 자료와 일화를 통해 펼쳐진다.


버핏의 성공은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는 시장이 언제 오를지를 맞히기보다 기업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분석했다. 다른 사람의 전망이나 주식중개인의 보고서보다 기업의 연차보고서, 재무제표와 같은 ‘미가공 데이터’를 직접 읽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해서 옳은 것이 아니라, 사실이 옳고 추론이 타당하기 때문에 옳다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가르침은 평생 그의 판단을 지탱했다.


그렇다고 버핏이 무조건 남들과 반대로 움직인 것은 아니다. 

충분한 분석 없이 군중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독립적 판단이 아니라 무모함이다. 버핏의 자신감은 자신이 투자하려는 기업을 철저히 이해한 뒤에야 생겼다. 그는 모든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았다. 평생 사용할 수 있는 투자 카드가 스무 장뿐이라고 생각하라고 조언하며, 확신할 수 있는 소수의 기회를 오래 기다렸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는 대담하게 투자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워싱턴포스트, 가이코, 코카콜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없었다면 버핏의 성과 역시 시장 평균을 조금 웃도는 수준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그의 성공은 수많은 거래에서 조금씩 이긴 결과가 아니라,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내린 몇 번의 중대한 결정에서 비롯되었다.


버핏이 찾은 것은 단순히 싼 주식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이 계속 필요로 하는 상품을 만들고, 강력한 브랜드와 충성도 높은 고객을 보유하며, 경쟁자가 쉽게 넘을 수 없는 ‘해자’를 지닌 기업을 선호했다. 찰리 멍거와 함께하면서 그의 투자 방식은 평범한 기업을 헐값에 사는 것에서 훌륭한 기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사는 것으로 발전했다.


좋은 기업을 샀다면 쉽게 팔지 않았다. 

버핏에게 주식은 시세표 속 숫자가 아니라 실제 기업의 일부였다. 기업 전체를 인수한다는 관점에서 주식을 샀고, 사업의 경쟁력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보유했다. 그의 투자법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보다 ‘좋은 기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사서 오래 보유하는 것’에 가깝다.


이러한 장기 보유를 가능하게 만든 힘은 복리다. 

수익이 다시 원금이 되어 또 다른 수익을 낳는 과정은 짧은 기간에는 미미해 보이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버핏이 재산의 대부분을 노년기에 축적할 수 있었던 것도 높은 수익률뿐 아니라 수익을 소비하지 않고 오랫동안 재투자했기 때문이다. 복리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결국 시간이다.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투자 철학이 버핏의 생활 방식과도 일치한다는 점이다. 

그는 수십 년간 같은 집에서 살고, 낮은 연봉을 유지하며, 과도한 부채와 불필요한 소비를 멀리했다. 버크셔 역시 화려한 본사나 경영자의 과시를 위해 주주의 돈을 쓰지 않았다. 검소함은 단순히 돈을 아끼는 습관이 아니라,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 위해 불필요한 욕망을 줄이는 태도였다.


버핏은 투자와 경영에서도 정직과 신뢰를 중시했다. 

경영자를 선택한 뒤에는 자율성을 보장했고, 잘못된 판단은 빠르게 인정했다. 주주들에게 과장된 기대를 심기보다 실적이 나빠질 가능성까지 솔직하게 알렸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뒤에는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실천했다. 그에게 돈은 과시와 소비의 수단이 아니라 더 나은 곳에 배분해야 할 자본이었다.


<워런 버핏 평전>은 어떤 종목을 사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어떤 투자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는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 대상에 욕심만으로 투자하지는 않는지, 작은 이익을 위해 원칙을 포기하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한다.


버핏처럼 되고 싶다면 그가 산 종목을 따라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스스로 공부하고, 사실을 근거로 판단하며, 좋은 기회를 기다리고, 결정한 뒤에는 오래 견디는 그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 투자는 결국 무엇을 사느냐의 문제이기 전에 어떤 사람이 되어가느냐의 문제다. 워런 버핏은 그 사실을 말이 아니라 자신의 긴 삶 전체로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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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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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의 <오직 그녀의 것>은 한 여성 편집자 홍석주의 삶을 따라가는 소설이다.
석주는 처음부터 확신에 찬 사람은 아니었다. 사학을 공부하던 그녀는 우연히 문학 창작 동아리에 들어가고, 선배의 권유로 소설 창작 수업을 들으며 문학을 접한다. 처음에는 수업계획서에 적힌 책을 따라 읽는 정도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문장에 오래 머문다. 문학은 운명처럼 찾아온 것이 아니라 우연히 열린 문이었고, 석주는 그 앞에 오래 머무르며 자기 안의 끌림을 발견한다.

석주의 열정은 불꽃처럼 겉으로 타오르지 않는다.
그녀는 조용히 읽고, 손으로 문장을 옮겨 쓰고, 문맥과 행간을 살핀다. 필사는 단순한 베껴 쓰기가 아니라 문장의 호흡을 몸에 익히는 과정이다. 석주는 그렇게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에서 문장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조금씩 변해간다. 그녀가 문학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지만, 문학이 그녀의 삶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러나 석주의 선택은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석주가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했을 때, 부모 특히 아버지는 크게 실망한다. 아버지에게 교사는 딸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었다. 출판사에 들어가겠다는 석주의 선택은 불안하고 낯선 길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석주의 첫 번째 독립 선언처럼 읽힌다. 석주는 가족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납득하는 삶과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삶이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비슷한 장면은 연인의 부모를 처음 만났을 때 반복된다.
석주가 결혼 후에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하자, 그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성의 일은 결혼 전 잠시 하는 일이고, 결혼 후에는 가정이 우선이라는 시대의 공기가 그 반응 안에 담겨 있다. 석주는 아버지 앞에서는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말해야 했고, 연인의 부모 앞에서는 결혼해도 일을 계속하겠다고 말해야 했다. 남성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을 직업의 지속성을, 석주는 매번 해명해야 했다.

출판사에서 만난 선배들은 석주를 편집자로 단련시킨다.
교열부 선배 오기서는 문장 앞에서 대충 넘어가지 않는 태도를 가르친다. 많이 고치는 것도, 적게 고치는 것도 답이 아니다. 원고가 필요로 하는 만큼 정확히 개입하는 것, 그것이 석주가 배운 교열의 윤리였다. 이후 편집부 선배 장민재는 석주에게 한 권의 책 전체를 보는 눈을 열어준다. 문장을 바로잡는 데서 나아가 작가의 세계와 독자를 함께 생각하는 법을 배우며, 석주는 교열자에서 편집자로 성장한다.

연인 원호와의 사랑도 석주에게 중요한 통과의례가 된다.
원호는 석주에게 일 바깥의 생활과 감정을 알려주지만, 그 사랑이 석주의 삶 전체를 대신 완성해주지는 못한다. 이별을 겪으며 석주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도 소중하지만,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남아 있어야 할 자기만의 세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석주에게 그것은 책 만드는 일이었다. 이별은 그녀를 일로 도피하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이 자기 삶에서 차지하는 무게를 보게 만든다.

이후 석주가 출판사를 옮기고 인정받는 과정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선배에게 배운 기준은 이제 특정 회사나 사람에게 묶이지 않고 석주 자신의 감각이 된다. 낯선 조직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안목, 어떤 원고 앞에서도 작동하는 판단력, 책을 책답게 만들려는 태도야말로 그녀가 얻은 진짜 자산이다. 편집자의 일은 본래 보이지 않지만, 석주는 그 보이지 않는 노동을 통해 자기 삶의 중심을 세운다.

책 말미에서 석주가 신입 지원자의 면접을 보는 장면은 이 소설의 결산처럼 다가온다.
젊은 시절의 석주는 늘 질문받는 사람이었다. 왜 교사가 되지 않느냐는 질문, 왜 결혼 후에도 일을 계속하려 하느냐는 시선, 편집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증명해야 하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석주는 질문하는 자리에 선다. 지원자에게 건네는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젊은 날의 자기 자신에게 뒤늦게 건네는 말처럼 들린다. 이 일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버티기 어렵지만, 좋아하는 마음 없이도 버틸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책을 만드는 일은 화려하지 않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으로 살게 해주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지점에서 제목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석주는 평생 남의 원고를 읽고, 남의 문장을 고치고, 남의 책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이 남의 것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작가의 원고를 대하는 태도, 선배의 가르침을 자기 안목으로 바꾼 시간, 사랑이 끝난 뒤에도 남은 열정, 어디서든 잃지 않은 직업적 자존은 모두 석주의 것이었다.

이 작품은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와도 닮아 있다. 스토너가 세상의 큰 인정 없이도 문학을 통해 자기 삶의 중심을 지켰다면, 석주는 보이지 않는 편집의 자리에서 자기 삶을 축적해간다. <스토너>가 상실의 소설이라면, <오직 그녀의 것>은 축적의 소설이다. 석주는 부모의 기대, 결혼제도의 압력, 사랑의 상실, 직업 세계의 불안을 지나며 자기 삶을 조금씩 자기 것으로 만든다.

결국 <오직 그녀의 것>은 한 편집자의 성장담이자, 한 여성이 자기 삶의 소유권을 회복해가는 이야기다. 오직 그녀의 것이란 어떤 지위나 성취가 아니라,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었던 시간과 선택, 그리고 남의 문장 곁에서 끝내 잃지 않은 자기 삶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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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신재민 지음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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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불타 버린 집을 복원하려 하고, 누군가는 이를 목숨을 걸고 막으려 합니다. 그런데 읽어 갈수록 알게 됩니다. 여기서 되살리려는 대상은 한 채의 한옥만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생가>는 전직 대통령의 생가 복원이라는 현실적 소재에 수목 신앙, 한옥 건축, 대물림되는 가족의 비밀, 대한민국 현대사의 어두운 기억을 결합한 한국형 오컬트 호러입니다.
제13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대상 수상작으로, 영화감독 출신인 작가가 시나리오로 구상했던 이야기를 장편소설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래서인지 문장을 읽다가 영상을 그릴 때가 자주 있었어요.

2017년, 독재로 권력을 유지했던 전 대통령 이운암의 생가가 화재로 불탑니다. 이 집을 지었던 도편수 지범근은 아들 재헌에게 “생가…… 절대 복원하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의문의 죽음을 맞습니다. 아버지와 오래 절연하고 독일에서 살던 재헌은 이운암의 손자 건승으로부터 복원을 제안받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하려 하였으나 경제적 이유 때문에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왕 시작하려 마음먹은 재헌은 이 일은 평생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넘어설 기회이자, 유언에 맞서는 복수로 여깁니다.

그런데 조사차 생가에 들어간 그는 곧 깨닫습니다. “이건 집이 아니거든요.” 건물의 구조와 동선은 무언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를 가두거나 불러들이기 위해 설계된 거대한 장치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목차는 한옥을 짓는 순서(파가, 개기, 열초, 선목, 벌목, 입주, 상량, 생가)를 따르는데, 여기서 집이 완성되어 간다는 것은 안전한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공사가 진전될수록 땅속에 묻혀 있던 기억과 원한도 함께 형태를 갖춥니다. ‘복원’은 잠들어 있던 악을 다시 깨우는 일이 됩니다.

생가에 쓸 소나무를 베는 장면은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 줍니다. 재헌은 수백 년 된 소나무를 베어 운반하지만, 이후 가지에서 붉은 명주 조각과 밧줄에 쓸린 흔적을 발견합니다. “베지 말아야 할 걸 베고 말았다.”
붉은 명주와 고목, 도편수와 대들보처럼 한국인에게 익숙한 것들에서 시작되기에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생가>는 한편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재헌은 아버지의 금기를 깨고 생가를 완공하려 하고, 건승은 할아버지의 명성을 다시 세우려 합니다. 두 사람 모두 윗세대가 남긴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재헌은 아버지를 증오한다고 생각하지만, 생가 깊숙이 내려갈수록 점차 아버지를 닮아 갑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선택으로 심연 속에 몸을 던져야 합니다.
소설은 사람이 자신이 태어난 집과 가족, 역사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지, 아버지의 죄와 권력이 자식에게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를 집을 매개로 묻습니다.

이운암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국가폭력을 남긴 인물이 시간이 지나며 영웅으로 미화되고 생가가 성역처럼 보존되는 모습은 우리 현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생가를 다시 짓는다는 것은 그가 상징하는 권력과 숭배의 질서까지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귀신보다 두려운 것은 잘못된 역사를 잊고 죽은 권력을 계속 불러내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또 다른 주인공 시록은 무병을 피해 트럭을 몰며 살아가는 여성으로, 생가에 쓸 소나무를 운반하며 재헌과 얽힙니다. 위계와 규칙에 굴복하지 않는 그녀의 성격은 권력과 가부장적 질서에 사로잡힌 인물들과 대비를 이루며,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합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한옥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조화와 안식의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죄악을 감추고 죽은 권력이 되살아나기를 기다리는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서사도 영화적입니다. 흩어진 단서들이 중반부터 빠르게 결합하고, 후반에는 반전이 이어지며 의미가 계속 달라집니다. <파묘>나 <곡성>처럼 전통신앙과 역사적 기억을 결합한 오컬트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만족할 만합니다.


집은 사람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기억을 감추기도 합니다. 죄악으로 세워진 집을 복원하는 일은 역사를 보존하는 일일까요, 끝났어야 할 과거를 다시 불러들이는 일일까요.

<생가>는 그 질문에서 출발해 집과 가족, 권력과 역사가 뒤엉킨 심연으로 독자를 끌고 갑니다.
그래서일까요? 책을 읽고 악몽을 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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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 최신개정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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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옷을 입은 <연금술사>, 새해 첫날 다시 읽는 마음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다시 펼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줄거리를 몰라서 읽는 책이 아니라, 이미 아는 이야기를 지금의 내가 다시 확인하기 위해 읽는 책이라는 생각입니다.

양치기 청년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아 피라미드로 떠나고, 먼 길을 돌아 결국 보물이 처음 출발했던 자리 가까이에 있었다는 이야기. 줄거리만 보면 단순합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이야기는 해마다 다르게 읽힙니다. 특히 1월 1일에 읽으면 더 그렇습니다. 한 해가 시작되는 날, 우리는 대단한 목표를 세우고 싶어집니다. 그때 <연금술사>는 조용히 묻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저 멀리에 있느냐, 아니면 이미 가까이에 있지만 아직 알아보지 못한 것이냐고요.

이번에 새 옷을 입고 옮긴이의 말을 새로 실은 판본은 그래서 더 반갑습니다. 옮긴이의 말은 이 책이 여전히 “나만의 보물을 찾아가는 소중한 여정”으로 읽힌다는 점을 짚어줍니다. <연금술사>는 단지 산티아고의 모험담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삶의 표지를 읽고 자기만의 보물을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는 문장은 냉정히 보면 낙관적이고 자기계발서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간절히 원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이 책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이 문장이 현실을 부정하는 주문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연금술사>는 “원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위로하는 책이라기보다 “정말 원한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 책입니다.
산티아고는 꿈만 꾸지 않습니다. 양을 팔고, 길을 떠나고, 도둑을 맞고, 다시 일하고, 다시 떠납니다. 이 책이 말하는 연금술은 납을 금으로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두려움과 실패와 우회를 삶의 재료로 바꾸는 힘입니다.

산티아고가 돈을 잃었을 때 그 사건은 단순한 실패일 수 있었지만, 그는 그곳에서 언어와 장사를 배우고 다시 떠날 힘을 얻습니다. 크리스탈 가게에서 보낸 시간도 우회로처럼 보이지만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든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내가 실패라고만 불렀던 일들, 멈춤이라 생각했던 시간들이 정말 아무 의미 없었을까 돌아보게 됩니다.

이 책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은 어쩌면 크리스탈 가게 주인입니다.
그는 메카 순례라는 꿈을 갖고 있지만 떠나지 않습니다. 꿈이 이루어지면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사라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 인물은 꽤 불편합니다. 마치 내 모습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같습니다.
우리는 꿈을 말하지만 막상 그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실패가 아니라 변화가 두려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1월 1일에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이 조금 뜨끔해집니다. 올해도 꿈을 아름답게 보관만 할 것인지, 서툴더라도 한 걸음 걸어볼 것인지 묻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말이 여전히 좋습니다.
산티아고는 피라미드까지 갔다가, 보물이 처음 꿈을 꾸었던 고향 근처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결말을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로만 읽으면 조금 싱겁습니다. 중요한 것은 보물의 위치가 아니라, 산티아고가 그 보물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떠나기 전과 돌아온 그는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같은 장소에 도착했지만 시선은 완전히 달라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새해 첫날에 특히 잘 어울립니다.
한 해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삶 안에 있던 것들을 새롭게 알아보는 눈일지도 모릅니다. 가족, 일, 건강, 오래 미뤄둔 마음, 아직 포기하지 못한 가능성. 그것들이야말로 각자의 숟가락 위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일 수 있습니다.

나는 올해 무엇을 향해 걸어갈 것인가.
내가 두려워 미루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내 삶이 보내는 표지를 무심히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나만의 보물은 지금 어디에 묻혀 있는가.
<연금술사>는 답을 주는 책이라기보다 이 질문들을 다시 꺼내게 하는 책입니다.

새해 첫날, 산티아고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그 길은 결국 피라미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로 이어집니다. 멀리 헤매던 모든 길이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이 책은 여전히 부드럽고 단순한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새옷을 입은 <연금술사>. 여전히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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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북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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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가뭄이 닥치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피난을 떠나지만, 일흔두 살의 셴 할아버지는 남습니다. 늙은 몸으로 피난길을 따라가 봐야 며칠을 버티지 못할 것이고, 어차피 죽는다면 살아온 땅에서 죽고 싶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집 앞에 옥수수 싹 하나가 돋아납니다. 마을에 남은 것은 노인과 눈먼 개, 아직 열매를 맺지 못한 옥수수 한 그루뿐입니다.

셴 할아버지 곁에는 비를 기원하는 제물로 묶여 있다가 눈을 잃은 개가 있습니다.
죽어가던 개를 풀어준 노인은, 모두가 떠난 뒤 그 선택을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둘 다 늙고 쇠약하지만 서로에게 기대어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이 작품의 따뜻함은 강한 존재가 약한 존재를 구하는 데서가 아니라, 약한 존재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가까스로 살아가는 데서 나옵니다.

옥수수를 살리려는 노인의 사투는 처절합니다.
씨앗을 찾아 헤매고, 늑대와 대치하고, 쥐 떼가 밭을 뒤덮자 잎을 하나하나 닦아냅니다. 처음엔 지나친 고집처럼 보이지만, 읽을수록 옥수수가 단순한 농작물이 아님이 드러납니다.
그를 필요로 하는 유일한 생명, 자신이 아직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느끼던 노인에게 옥수수는 삶의 이유가 됩니다.

셴 할아버지는 옥수수로 산맥을 되살리고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공덕비를 세워주는 미래를 상상합니다. 허영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공동체에 필요한 존재이길 바랍니다. 몸이 늙어 예전처럼 일할 수 없을 때, 자신이 짐이 되었다는 감각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가 옥수수를 지키는 일은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와 세상에 증명하기 위한 마지막 싸움입니다.

<노인과 바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두 노인 모두 외부의 보상을 얻지 못합니다. 물고기는 상어에게 뜯기고, 공덕비도 세워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싸움에는 결과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존엄이 남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얻었느냐가 아니라, 선택한 일을 끝까지 감당했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씁쓸한 장면은 동전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옥수수의 거름이 될 존재를 정하려 동전을 던지지만, 훗날 발견된 동전은 양면이 모두 같은 글자입니다. 처음부터 자신이 거름이 되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연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그 동전을 그냥 땅에 던져버립니다. 한 사람에게는 삶 전체가 담긴 물건이 타인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폐품이 되는 순간—우리의 삶도 어쩌면 그렇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 옥수수에는 서른일곱 개의 알이 맺혔지만, 제대로 살아남은 것은 일곱 알뿐입니다. 그 일곱 알에서 다시 일곱 그루가 자라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바둑으로 치면 겨우 반집 차이의 승리, 그 작은 차이가 생명과 죽음을 가릅니다.

셴 할아버지는 죽음을 피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자신보다 연약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의 죽음도 받아들입니다.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지를 선택한 것입니다. 옥수수 뿌리가 노인의 몸을 관통한 모습은 잔혹하면서도 숭고합니다.
죽음으로써 죽음을 이긴 것입니다.

'연월일'이라는 제목은 해와 달과 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단위를 나란히 놓은 말입니다. 셴 할아버지의 싸움은 물을 긷고 쥐 잡고 흙 파는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집니다. 그 시간 속에서 한 사람의 사랑과 희생이 축적되고, 잊히는 삶일지라도 그가 살아낸 하루하루는 옥수수 일곱 알 속에 남아 다음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가 떠올랐어요. 모자무싸.
나이 들었을 때뿐 아니라 실패했을 때, 초라해졌을 때도 우리는 말합니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셴 할아버지에게 옥수수는 그 말을 대신해 주는 생명이었습니다. 공덕비는 세워지지 않았고 동전도 버려졌지만, 그가 지켜낸 일곱 알은 다시 싹을 틔웠습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한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살아낸 시간은 그렇게 다른 생명 속에 남습니다.

옌롄커의 <연월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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