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표지에 대한 제언



이 책. 상반신이 아니라 전신을 표지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앞표지에 법대와 법복을 입은 상반신이 드러나게 정면에서 찍은 사진 혹은 그림을,

뒷표지에 법대 뒤에서 판사의 전신이 드러나게 찍은 사진을 비교되게 표현하면 좋을 것 같다.

혹시라도 많이 팔려서 리커버판을 낸다면 부디 표지만은 바꿔주셨으면.



2. 법정에 들고나갈 때, 시보시절 경험(책 내용과 무관하다), 책의 리뷰를 하기 전 소회



법정에 들고날때마다 법대에 앉아계신 판사님께 인사를 한다. 일종의 예절이라 배웠다.

우리쪽 의뢰인의 입장이 간절하면 그만큼 판사님에게 기대는 마음이 더 생긴다.



서울고등법원 시보를 한 때였다. 주로 민사사건 재판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판사실에 들어가 본 몇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아무일 없이 평온하고 무료하게 느껴지던 시간에 짖눌려 있었다.

항소심이다보니 대부분의 사건기록은 두꺼워질대로 두꺼워진 나머지 몇 개의 책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었고,

골무를 사용하지 않으면 기록을 넘기는 일도 버거웠다. 쉽사리 나오지 않을 결론이라 장고하게 되지만, 누군가는 합당한 판단을 내려야 하고 그 누군가는 다른 누구도 아닌 판사이다.

시보때 민사부 재판장이었던 분은 작년에 언론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 형사사건을 맡았다. 얼굴 한 번 뵈었다는게 이상하게 친근감이 들었다. 판결의 결론에 신뢰감이 들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들어 나온 '검사내전'은 어느새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고 리커버판이 나올 정도로 주목받았다. 얼마 안 있으면 드라마로도 나올 예정이다.



변호사와 검사가 주목받는 반면, 판사의 경우 최근에서야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친애하는 판사님께', '미스 함무라비' 정도. 사건에 따라 그 정도의 마음을 쓴다면 법대에서 오랜시간 버티지 못할 것 같다. 업무량을 따라가기에도 벅찬 현실을 비추어 보면 그 드라마들의 장르는 분명 '판타지'에 속할 것 같다.



간혹 소설 쓰는 판사님들 책을 접한다. 서울남부법원에 재직 중인 판사님 법정에 들어가 보기도 했는데, 역시 글로 하시는 말씀과 재판진행은 별개더라. 모든 사건에 같은 정도의 노력을 쏟을 수는 없다는 점을 감안해서인지 그렇게 큰 불만은 생기지 않았다. 역시.



이 책을 읽기 전에 들었던 생각 역시 '뭐, 다를게 있을까' 정도였다.



3. 이 책을 읽고



그런데, 구성이 특이하다.



1장 나는 개가 아니다

2장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3장 부탁받은 정의

라니....



실제 판결을 내린 사건의 사실관계를 적시하고 그 이후 사건의 경과를 서술하면서 마지막에 실제로 내린 양형과 그 이유에 대해 서술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양형이유 부분은 사실 정형화되어 있으나, 이 책의 저자는 상당한 고민을 한 후에 그 고민의 흔적을 양형이유에 공들여 적시하는 것 같다. 살면서 언젠가는 받아보고 싶은 판결문이다. 가끔 잘 쓰여진 판결문은 보관해두고 읽어보곤 한다.



하긴 이 정도로 본인의 직업과 법정에서 하는 일을 묘사하는 분이라면 판결문도 남다를 수 밖엔 없을 듯 하다.



법정은 모든 아름다운 구축물을 해체하는 곳이다. 사랑은 맨 먼저 해체되고, 결국 가정도 해체된다. 형사사건에서는 한 인간의 자유를 지지해준 법적 근거마저 해체시킨다. 재산을 나누고, 아이도 나눈다. 사랑의 잔해를 뒤적이고 수숩하다 보면 법정이 도축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법관은 굳어버린 사랑을 발라낸 다음 가정을 이분도체, 사분도체로 잘라내고 무두질한다. 법은 날카롭게 벼린 칼이고, 법관은 발골사다.

- 이런 비유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살다 보면 모든 일에 변곡점이 찾아온다. 시대적 소명일 수도 있고 개인적 변화일 수도 있다. 변곡점의 세찬 파동이 인생을 드높게 쏘아올릴지, 바닥으로 처박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인생이라는 함수의 변곡을 예감하고, 그 파고에 기꺼이 몸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수평 그래프로 사는 삶이 평온한 것 같지만 어쩌면 그런 삶은 삐 소리와 함께 벌써 생의 종지부를 찍은 상태인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것은 고유의 파동이 있기 때문이다.







후회로 남은 결정은 판사를 놓아주는 법이 없다. 변제가 불가능한 채무이자 지울 수 없는 화인이다.

- 간혹 판사님들께 질문하고 싶은 주제가 있었는데, 위의 문장과 아래에서 인용한 부분은 그 주제에 대한 완벽한 답인 듯 하다. "판사님은 본인이 내린 판결에 대해 후회하신 적 있으신가요?"



재판의 당사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 건 재판장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이다. 재판 진행이나 결과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복기하고 또 복기한다.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이런 결과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든다. 불면의 밤이 이어진다.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정년을 앞둔 노법관은 법정에 들어가는 게 두렵다고 고백했다. 기자를 상대하는 나 역시 다리가 후들거렸다. 큰 문제 없이 진행된 재판이었다고 몇 번을 되짚어 자위했음에도 자책감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나는 그 사건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본 후 판결문에 적시된 그 문장이 나오기까지의 고민과 노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 계기가 된 것 같다.

요즘 이례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판사님들이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그분들과 이 책의 저자는 출신이 다를 것이다(저자는 '향판'이자 '출포판'이라 자칭한다.). 그러나 입을 열기 시작한 그 분들이 자신의 과오에 대한 변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적어도 자신들이 단죄?했던 기준이나 가치에 부응하는 선이었으면 한다.



오랜만에 군더더기 없는 문장의 글을 읽었다. 그리고 더 없이 따뜻한 판결문을 읽어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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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치는 왜 퇴보하는가 - 청년세대의 정치무관심, 그리고 기성세대의 정치과잉
안성민 지음 / 디벨롭어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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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십대 청년들에 대해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다만, 이 부분은 페미니즘과 관련된 남,녀의 대립구도와 상대적 박탈감을 조명하는데 집중되는데 아쉬움이 있다.

특별한 이슈가 있는 경우 잠시동안 청년들이 주목받는 때가 있다. 취업률에 대한 통계를 인용할 때.

그리고 선거 후 투표율에 대한 언급이 있을 때이다.

특별한 이슈가 있는 경우란 가령 대통령이 언급을 하는 경우이다.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추천하셨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사가 난 시점이 여름휴가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고, 즉 이 책을 완독하기 전이었다는 점이 무척이나 아쉽다.

"90년생이 온다"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관리자나 어른들이 신입사원과 각을 세우지 않고 일을 하는 방법이나 그들의 사고방식을 따라가기 위해 읽어야 할 필독서라면,

이 책은 정당정치를 하고 있는 정치인과 이제는 기득권이 되어버린 구386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정치는 생활'이라고.

그런데 생활. 말 그대로 살아가는 것의 버거움을 느끼고 있는 20, 30 청년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는 단순한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정치권은 청년들의 진출기회를 실질적으로 제공하고 있는가.

현재 국회에 있는 청년정치인은 과연 청년들의 대표자로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은 구체적인 수치와 표로 알려준다.

그렇다면, 청년들의 정치권 진출을 위해 각 정당들은 실제로 노력하고는 있는가.

한 정당의 대표가 청년들에게 의무적으로 발언을 하도록 강요한 기사를 보아도 기존 정치인들이 청년을 어떻게 대하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그런데 혹시 이거 아는가. "40대 기수론"이 처음 등장한 때가 1970년대였음을.

정치란 밑바닥부터 경험을 쌓아올려 역량을 키운 다음에 도전해야 하는 것일까?

아닌 것 같다. 과연 자격이란 무엇일까?

70년대에 40대 기수론이 등장했다면 시대의 흐름과 교육수준의 변화 등을 반영하면 30대 기수론은 나오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실제로 프랑스의 경우를 우리는 보아 알고 있다. 실제 사례가 있다면, 단지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일이라 치부하고 말 이유가 없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매일을 살아내면서 엄청난 변화를 마주 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요즘 10년이면 못해도 3번은 바뀌는 것 같다.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은 기존 정치인들보다 요즘 젊은이들이 훨씬 낫지 않을까? 당장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비교불가할 정도로 넓다. 단지 역량을 펼칠 판이 마련되지 않았을 뿐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날들이 많은 이는 결국 청년들이다. 35.7%의 유권자 수를 가졌음에도 정치지분은 겨우 1%만을 가진 청년들이고 언젠가는 기성세대가 되겠지만 지금 정치에 관심을 갖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지금처럼 미미한 수준에만 그치지 않을까?

저자는 말한다.

“무슨 일이든지 실패하더라도 실험을 해야 새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청년 정치는 어찌 보면 짧디 짧은 한국의 민주 정치사에서 꾸준히 해야 하는 실험과 같은 존재일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실험을 제대로 몇 번 해보지도 못했다. 이미 실험 결과를 예단하고 냉소적으로 보기에는 일러도 한참 이르다”

선거가 내년으로 다가온 이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관심을 갖는다면 적어도 우리 청년을 위한 정책이 어떤 것인지, 단지 입바른 소리일 뿐인지 실제 가능한 공약인지 여부 등은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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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호하게 살기로 했다 - 일, 관계, 인생 앞에 당당해지는 심리 기술
옌스 바이드너 지음, 장혜경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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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조용히 묵묵히 내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인정받겠지. 그래 분명 누군가는 나의 진가를 알아봐줄거야.

그렇지 않다는 것(스스로 존재감을 어필하지 않아도 누군가 알아주는 일은 없음. 특히 나에게는)을 알게되기까지의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사실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일단 적어도 묵묵하게 일을 한다는 인식을 남에게 주기까지에는 일정량의 시간은 필요한 것이니까(이 부분도 사실 인간승리 수준의 합리화가 아닐까).

더 이상 누군가 알아주길 기다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이것은 직장생활이든 짝사랑이든 공통되는 점인 듯 싶다.

이제는 끝낼 때가 되었다.

많은 구성원들이 경쟁하는 시스템에서는 특히 적극적으로 어필할 필요가 있다.

요즘 '90년생들이 온다'와 비슷한 책들(공교롭게도 같은 컨셉의 책들이 요즘 자주 출간되는 듯 하다)에서 90년대생들의 특징을 이야기하면서 그 바로 위 선임의 지위에 있는 80년대생의 특징 역시 서술하는데

읽다보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 전 세대처럼 성장의 과실을 특별히 누려보지 않았지만 위계질서를 무의식적으로 존중하는 끼인 세대. 그래서 신입들에게 꼰대 소리 들을까 겁내하고 선임들의 지시사항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해야 하는.

이 책은 성과를 인정받고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카리스마를 발휘해내야 하는 직장인들이 읽으면 좋은 책인 듯 싶다.

조금은 웃기지만 마냥 웃고 넘어갈수만은 없었던 부분은 "언제 웃고 언제 화낼 것인가"라는 챕터.

이 제목. 이 제목을 보고 난 이후 이 책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졌다.

8단계, 번외편으로 0단계를 나누어 서술하는 이 책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지장이 없으니

곁에 두고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읽는 것도 방법이다.

이 책이 강조하는 부분은 아래와 같다.

80퍼센트의 친절함에 20퍼센트의 단호함을 발휘하라. 희생양이 되지 말라.

역동적이되 남의 마음을 헤아릴 줄도 알고 품위가 넘치는 사람이 되어라.

실력을 갖추고 있으되 직장 내에서 늘 희생양의 위치에 있는 누군가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를 희망하면서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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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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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에 대한 최근의 관점은 전과 조금쯤 달라졌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이 영화의 제목과 내용이 새삼 떠오른 이유는

개인적으로 모성과 부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지', '친자확인의 소'라는 법적인 제도가 있다. 부친이 주체가 된다.

모친의 경우에는 생물학적으로 체내수정을 통해 10달이라는 기간동안 품은 후 세상으로 나오기 때문에 굳이 법적인 장치를 만들어 친생 추정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인지 '모성'은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취급되어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덜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모성'의 의미와 천성적으로 주어진 것인지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럴만한 사건들이 있었고(미디어의 영향인지 최근 신생아를 유기하거나 아이를 학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가 빈번하게 노출된 것 같다),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사회적 환경 탓인지 모성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해 여성들의 희생을 강요했었던 분위기가 바뀐 것 같다.

학익2동 주민센터 현관에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합심해야 한다'라는 문구가 걸려있다. 그만큼 아이를 어엿한 성인으로 키우기까지 많은 노력과 보살핌이 필요하단 뜻을 것이다.

그럼에도 모성이라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그 많은 책임을 떠넘겼으니 문제가 생겨날 수 밖에.

천성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면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 형성될 수 밖에 없는데,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학습의 결과라면 숙련도나 성취도에서 당연히 개개인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그게 정상적일 것이다.

퍼펙트 마더. 완벽한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기에 만든 것이 '어머니'라는 존재라고 하는데, 이러한 만들어진 이미지가 여성들에게 특정한 역할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기에 '퍼펙트 마더'에서 일어난 극적인 사건(생후 6주 아이의 실종)이 일어났을 때(말 그대로 엄마들 입장에서는 의도치 않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비난의 모든 화살은 아이를 방치하고 그 시간 술집에 있었던 '엄마'라는 존재에게 집중된다.

"아기를 낳았다고? 축하해! 이제 모든 게 네 탓이 될 거야."

책의 뒷표지에 적힌 위 문구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읽는 이에 따라서 이 책은 장르가 소설이 아닌 르포가 될지 모른다.

내용과 별개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책이었다.

다산북스 통해서 여러 장르의 책을 접하는데 이 책은 장르로서의 미덕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캐릭터들이 잘 자리를 잡고 있고 읽다보면 '위기의 주부들'이 연상되기도 했다(특히 드라마에서 '나래이션하는 부분').

페이지 넘기는 속도 역시 늦춰지지 않았으니 이 책을 읽고 후회는 없을 것이다.

독서토론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제안해봐야 겠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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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순간 -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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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무언가가 되기 위해 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복되는 일에 지쳐서 힘에 겨워하던 때였습니다. 막연히 지쳐있다는 생각만 하던 중 미디어에서 '번아웃'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처음 접하고 난 후 지금 내 상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난 후 과연 내 상태가 번아웃이라는 단어로 규정지을 수 있었던 것인가 되새김하면 그렇지는 않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지나고보면 미디어에서 소개하는 새로운 것들(상품이든 이론이든 현상에 대한 설명이든)을 덮어놓고 믿지 않았나합니다.



당시 제게 필요한 것은 쉼이 아니라 목표설정이었거든요.



효율성이나 가성비, 가심비 등 그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도구화된 것들을 추구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정작 제게 중요한 것들은 비교가능하거나 상대적인 것이 아니었는데 ...

자기 철학의 중요성에 대해 자각하게 된 시점이기도 합니다.





"행복은 쾌락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에서 나온다"

니체부터 데리다까지 10명의 철학자와 함께 삶의 공허함을 물리치는 유쾌한 지적 탐험

이 책의 뒷표지에 기재된 문구입니다.

제가 너무도 공감한 지점이기도 하지요.



이런 리뷰는 좀처럼 쓰지 않는데 이번에는 너무도 맘에 드는 문구가 많아서 서문에서부터 이렇게 인용글이 많아지기 시작해서 결국 10개의 장마다 밑줄을 치다 나중에는 옮겨적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 생각되어 인용글을 적는 것으로 리뷰에 갈음하자는 결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2. 마음에 들어온 문장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바깥에서 삶을 관찰하기보다 오히려 삶 속으로 파고들 필요가 있습니다.



현상 자체가 무언가의 부재를, 목마름을 반영하는 것일테니까요.

11쪽



저는 삶의 의미가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얻기 위한 도구적인 일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일과 그 자체를 위해 몰두하는 활동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지, 우디 앨런처럼 천문학적으로 먼 거리에서 삶을 관찰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제가 이 강의를 통해 두루려는 '태도 또는 관점'입니다.

13쪽



도구적 활동이나 관계는 그 자체로는 별 문제가 없으며, 사실 피한다고 피할 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삶 그 자체를 도구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15쪽



그 결과 우리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들을 도구로 전락시켜버리게 되었습니다.

20쪽



문제는 우리가 이런 수단을 목표 그 자체로 바꾸려 한다는 것입니다.

24쪽



제가 심리학을 비판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심리학은 개인이 다양한 심리학적 도구를 활용해 자기 자신을 찾고 계발하도록 돕는 일에는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개인을 윤리적 사회적으로 성숙시키지는 못합니다.

25쪽



니체는 신의 죽음이 허무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했습니다. 달리 말해 사람들은 스스로 새로운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니라, 삶의 무의미를 대놓고 주장하거나 숭배하는 경향으로 치우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0쪽



니체는 이러한 허무주의의 위협에서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가치, 특히 기독교 가치의 본질을 비판하고 재평가하려 했습니다.

31쪽



오늘날 우리가 행복이라 부르는 것은 삶의 의미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행복이란 '주관적 안녕감'이나 '자아실현' 같은 심리학 개념을 토대로 한 주관주의적 감정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35쪽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줄 10가지 생각

1. 우리가 그 자체를 위해 하는 것이 선이다(아리스토텔레스)

2. 존엄성은 가격으로 따질 수도 없고 대체될 수도 없다(칸트)

3. 인간은 약속하는 동물이다(니체)

4. 자기란 관계 그 자체와 관계하는 관계다(키르케고르)

5. 진리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진실할 수 있다(아렌트)

6.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은 그의 삶 무언가를 손에 쥐는 일이다(로이스트루프)

7. 사랑은 우리 자신 외에 다른 무언가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가능한 무척 어려운 깨달음이다(머독)

8.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이다(데리다)

9. 자유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이루어진다(카뮈)

10.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는 법을 잊는다(몽테뉴)





1강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 우리에게 있는가



정작 우리는 다른 사람이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그 일이 정말 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생각하기보다는 '그게 지금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지?'라고 묻게 됩니다.

49쪽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적인 행동뿐 아니라 진리에 대한 관조 역시 그 자체로 목적인 활동으로 꼽았습니다.

55쪽



효용성과 즐거움 같은 도구적 가치는 철학 용어로 표현하면 '우연적'인 것들입니다.

59쪽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도구적 관계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런 관계를 맺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을 정의하는 본질적인 특징이라 말하지요.

59쪽



반대로 개인이 주관적으로 인정하든 말든 선한 것이 따로 존재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이 옳다면, 우리에게는 이성적으로 선의 가치를 논의할 가능성이 열립니다. 가치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 태도를 다른 사람에게 들이밀며 싸운는 대신에 말입니다.

61쪽





2강 쓸모없기 때문에 쓸모가 있는 목적의 왕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존엄하게 반응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본능적으로 이해한다는 점이지요.

75쪽





3강 지키지 못한 것들에 왜 죄책감을 느끼는가



"약속할 수 있는 동물을 기르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역설적 과제가 아닌가? 그것이 인간의 진짜 문제가 아닌가?"

95쪽



우리가 다른 사람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거나 의사소통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이처럼 서로가 약속을 지키리라는 암묵적인 믿음을 토대로 하니까요.

97쪽



죄책감은 우리의 도덕성을 지탱하는 접착제입니다.

98쪽



4강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그러니까 자기는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 키르케고르에게는 신이고 비고츠키나 미드에게는 사회공동체에 의해 형성되는 반성적 과정이라는 점 말이지요.

119쪽



5강 불확실한 세상에서 신뢰를 쌓는 방법



나중에 아히히만을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전형으로 묘사했지요. 물론 이 개념이 그가 저지른 행위 자체가 평범하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그의 개인적인 성격이 우리를 심란하게 할 만큼 평범했다는 말이지요.

129쪽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은 우리가 언제든 이처럼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실존적 진실에는 근본적인 존엄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건강하거나 성공하거나 행복해지기 위해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운이 좋아서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얻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진실과 신뢰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오직 그것이 그 자체로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137쪽



6장 타인에 대한 나의 영향력을 점검하라



윤리적 요구란 바로 "당신에게 건네진 다른 사람의 삶을 보살피라는 요구"이자 책임입니다.

144쪽





기본적인 윤리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양성이 훨씬 적습니다.

148쪽



윤리의 표현 방식은 문화권마다 다양하지만, 그렇다고 윤리적 요구라는 현실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윤리적 요구는 다수결로 채택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권한으로 폐지할 수도 없습니다.

149쪽



7장 내가 아닌 존재에 어떻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가



머독이 보기에 실존주의 문제는 개인에게 너무 많은 권력을 쥐여준다는 점입니다. 삶을 선택의 문제로 봄으로써 의미를 부여할 힘을 개인에게만 쥐여주었던 것이지요.

162쪽



사르트르가 삶의 관점을 선택하거나 창조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 머독은 관점이 선택될 때보다 주어질 때가 많다고 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렇게 주어진 것을 인식하고 발견하는 일이지요.

164쪽



"사란은 개인의 인식이다. 사랑은 우리 자신 외에 다른 무언가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가능한 무척 어려운 깨달음이다."

169쪽



8강 불가능하기에 가능한 것



"죄가 없는 곳에서는 용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188쪽



9강 어떤 순간에도 희생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가



"자유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이루어진다."

209쪽



10강 내 삶의 노예가 되지 않는 방법



"철학은 본질적으로 죽음을 위한 준비다."

226쪽



"죽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은 동시에 사는 법도 가르칠 것이다."

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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